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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무명귀 님의 서재입니다.

저승이 처음인 나는 죽음을 바란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무명귀
작품등록일 :
2021.05.12 17:20
최근연재일 :
2021.12.08 20:50
연재수 :
86 회
조회수 :
3,647
추천수 :
39
글자수 :
437,315

작성
21.05.18 20:08
조회
99
추천
1
글자
8쪽

[7] 저승의 밤은 가혹하다.

DUMMY

인생에서 번외편이 있다면 바로 지금일 것이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타이밍에 다시 스크린에 불이 켜진다. 아무도 바라지 않는 영화가 끝난 뒤의 쿠키 영상 같은 세상. 저승이란 그런 같잖은 것이다. 나는 자신이 인생의 결론을 스스로 낼 수 없다는 걸,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나서야 깨달았다. 끝은 곧 다른 시작이라 했던가.


나는 내 인생의 감독이 아니라 관객이었다. 그저 틀어주는 운명을 목도하고, 무력히 감상해야한다. 관객은 인생을 즐기거나 인생이 마음에 들지 않아 화를 낼 수는 있어도 엔딩을 정할 수는 없다. 모든 건 운명이라는 미상의 감독이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불공평하지만 현실이다. 고약한 현실.


나는 황천길 휴게소의 숙직실에 있다. 소장인 그녀가 쓰는 작은 방이다. 좁은 침대와 탁한 공기가 휴게소장이 저승에서 그다지 좋은 대우를 받는 직책은 아님을 알게 했다. 한울은 응급처치를 하고 안정을 되찾았다. 인간은 정말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상처는 깊었으나 가까스로 급소를 빗겨갔다고 그녀가 진단했다.


“ 좀만 빨리 왔으면 모든 걸 막을 수 있었어요. 정말로요. 뭐하다가 뒤늦게 오신 거죠. ”


말은 상대방을 공격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지금이 그랬다. 나는 내 책임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다.


“ 난.. 언제나 늦었어. ”


그녀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눈빛이 떨렸고, 진심으로 책임을 느끼는 듯했다. 사람 당황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나는 그 말을 철회하고 싶었다. 하긴, 그렇다. 누가 누구에게. 나도 그 둘의 싸움을 막지 못했는데. 어리석은 지적이다. 내 얼굴에 침을 뱉어도 유분수지.


“ 미안해요. ”


내가 사과하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화를 낸 모양새가 부끄러워졌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정말로 감정적이고 이기적이다. 내 안에 이런 인격이 산다는 것 자체가 치욕스럽다.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모든 것이 망가진 듯이 우는 그녀를 보며 나는 어쩔 줄 몰라했다. 어째야하나. 나는 길을 잃은 부랑자처럼 망연히 서있었다. 여지껏 밝기만 한 줄 알았던 휴게소장의 얼굴이 그토록 어두워질 줄이야. 한울과 그녀는 무슨 사이일까. 보통 사이라면 이렇게까지 울 수 있을까.


나는 마음을 정비했다. 저승은 이승보다도 어질어질한 세상이었다. 머리가 깨질 듯하다. 이곳에 있으려면 만성두통은 필수인가. 나 역시 무리한 걸까. 오랫동안 걷고, 긴박한 상황에 몰리고, 여자까지 울리고 혼란스럽다. 나는 이제 어디도 나아가야 하나. 나는 잠시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휴식을 취하기로 한다. 쉬지 않으면 쓰러질 게 자명했다. 나는 손님방으로 향했다. 여기도 구조는 비슷했다. 나같은 망자들에게 하룻밤을 제공하는 모양이다. 나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하지만 마음이 복잡했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 탓도 있고, 어느새 한울이 걱정되었다. 우습긴 했다.


그가 내게 뭘 준 것도 없는데. 오히려 나에게 대못을 박았으면 박았지. 그런데도 마음이 쓰였다. 그세 정이 든 걸까. 그는 어찌됬건 날 지키려고 그렇게 됬다. 그가 상대한 바이크가 뭐하는 사람인지 확실치 않지만 한울은 내가 그를 따라가지 않길 바랐고, 자신이 위험해지는 한이 있어도 막으려 했다. 마치 영화 속 보디가드처럼 말이다.


그때 그의 표정에는 무슨 수를 써서리도 막아야 한다는 결의가 담겨져 있었다. 마치 내가 그쪽으로 가면 큰일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대체 왜 그랬을까. 내가 그를 걱정하는 것만큼이나, 그가 나를 걱정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바이크 남자의 말이 떠올랐다. 잘생긴 얼굴에 묘한 미소를 지으며 한 응어리를 풀어준다는 말이 걸렸다. 내겐 응어리가 많았다. 풀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만큼. 그의 말을 충분히 매혹적이었다. 언젠간 또다시 만날 날이 올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관심이 생겼다. 그는 어디로 날아갔을까. 왠지 기다려진다.


멍청하게 그를 보냈다. 붙잡아서 무슨 말이라도 들어봤어야 했다. 물어볼 것도 갚아줄 것도 많은데. 그가 정말로 나의 응어리를 풀어줄 수 있는지 궁금했다. 이가 갈리지만 호기심도 들었다. 인간의 원초적인 호기심에 더해 망자 특유의 집착이랄까. 그가 누군지 알아내 마땅했다. 그에게선 나와 같고도 더욱 심한 냄새가 났다. 도가 지나칠 정도로 죽고 싶은 자의 냄새. 내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나는 이곳에 온 뒤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냄새를 느꼈다. 이곳은 후각을 예민하게 하는 냄새들로 가득했는데, 그에게서는 슬픈 냄새가 났다. 불행한 나그네의 눈물냄새. 나의 조잡한 표현력이 이정도 밖에 할 말이 없다. 내가 조금 더 어른이 되어야만 그가 내뿜는 어떠한 냄새를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은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를 다시 만나고 싶다. 한울은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는 듯하지만. 이름도 묻고 싶고, 누군지도 묻고 싶고, 무엇보다 나에게 뭘 원하고 줄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모든 것이 수수께끼라서 더욱 끌렸다. 그것이 한울을 배반하는 것일까. 한울에게 물어봐야 하는 걸까. 모르겠다. 그의 상태가 나쁜 지금은 함구하고 싶었다. 절대안정이 중요하니까.


나는 눈을 감았다. 눈앞은 온통 어둠으로 가득했다. 도저히 생각이 진전되지 않았다. 무언가 장막이 생각이 쳐진 것처럼. 피곤해서일까. 그렇겠지. 너무나 많은 일을 겪었으니까. 고통이 너무나 심했으니까. 삶에서 얻은 스트레스가 죽어서도 영향을 끼치는 듯했다. 지금이 어스름이 갓 내려앉은 시각인 건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늘과 땅의 시간이 같은지, 난 알 수 없는데.


한울의 등장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나는 꿈자리를 헤메면서 생각했다. 잠은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졸리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좁고 어둔 숙직실이 나에게 불편이라는 감정을 안긴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난 잠이 들지 않았다. 한울에게 가보고 싶었다. 불켜진 복도에서 그녀가 몇 번 지나갔다.


그녀는 몇 번이나 한울의 방을 들락거리는 모양이다. 왜 그렇게까지 할까. 한울이 뭔데. 그래, 한울이 뭘까. 그저 날 데리러 온 사자였다. 사자가 뭔지 난 알지 못한다. 죽은 자를 데리고 어디론가로 가는 사람.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 법한 유명한 귀신 중에 하나.


난 그를 따라 먼 길을 걸었다. 사실 그리 멀지도 않았다. 하지만 황야는 끝없고 날은 잘 저물지 않았다. 이곳은 낮의 길이가 지상의 몇 배는 되는 듯했다. 이 밤도 짧게 지나가는 찰나 같다. 벌써부터 동이 틀 조짐이다. 뜨겁고 힘든 걸음을 재촉해 그의 뒤꽁무늬를 쫓았다.


나는 그 순간, 그를 전적으로 믿었다. 아니, 그러는 선택지말고는 권리가 없었다. 황무지는 넓고 길고 덥고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 길을 잃거나 지치거나 미쳐버릴 염려가 있었다. 혼자 다니기엔 아무것도 없기에 더 무서운 곳이다.


나에게 한울은 필수적인 동반자였다. 그것이 짧은 시간 동안 그를 겪은 나의 결론이다. 그가 나를 초대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가 원망스러웠다. 이곳으로 온 뒤 처음 만난 것이 그였으니까. 이젠 누굴 원망해야할지 모르겠다.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바라는 건 하나인데, 그곳으로 가는 길이 모호하다. 누군가를 믿어본 적이 없어서, 그러기도 쉽지 않다. 밤이 짧은데 생각할 게 너무 많다. 내일 다시 떠날 수는 없을 것 같다. 한울의 곁에서 머물러야 하나. 그래, 다른 길잡이가 오지 않는 이상 그래야겠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잠이 들지 못했다. 하지만 피곤하진 않았다. 고민하다보니 머리는 되려 맑아졌다. 뭔가에 집중한 보람이 있다. 누구냐는 나의 말에 전혀 모르는 사람이 서있었다.


작가의말

주인공맘이 내맘.. 머리 터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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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 똑똑, 당신의 아들이 갑자기 죽었어요. +1 21.05.17 95 1 11쪽
5 [5] 나를 두고 싸우는 두 사람이 남자다. +1 21.05.16 113 2 11쪽
4 [4]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엄마가 있었다면 21.05.15 139 1 11쪽
3 [3] 살인도 용기가 있어야 한다. 21.05.14 197 3 14쪽
2 [2] 천국 가자는데 말이 많다. 21.05.13 355 5 14쪽
1 [1] 죽는 것도 쉽지 않다. +1 21.05.12 644 1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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