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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무명귀 님의 서재입니다.

저승이 처음인 나는 죽음을 바란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무명귀
작품등록일 :
2021.05.12 17:20
최근연재일 :
2021.12.08 20:50
연재수 :
86 회
조회수 :
3,641
추천수 :
39
글자수 :
437,315

작성
21.05.16 15:04
조회
112
추천
2
글자
11쪽

[5] 나를 두고 싸우는 두 사람이 남자다.

DUMMY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바이크에 탄 남자가 맹렬히 달려왔다. 꽤 값비싼 바이크 같았다. 바퀴는 웬만한 자동차 바퀴만했고, 소리는 요란했고, 차체는 잘 닦았는지 윤기가 났다. 윤기가 나는 바이크는 내 앞에서 멈췄다. 남자는 헬멧을 벗었다. 젊고 잘생긴 남자였다. 마치 백마를 대신해서 바이크를 타고 온 왕자님 같았다.


“ 잠시 저랑 좀 가실까요? ”


남자가 은밀한 유혹을 하듯 말했다.


“ 당신은 또 누구죠. ”


나는 이곳으로 온 뒤에 만난 모든 이들에 진저리가 났다. 대체 왜 날 가만 내버려두질 않는 건데.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나는 경계태세를 취했다. 끽해봐야 노려보는 것 뿐이지만.


“ 당신의 응어리를 풀어줄 열쇠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


알 수 없는 말이다. 응어리를 풀어준다니. 나는 도리질쳤다. 믿을 수 없는 말만 늘어놓고 있다. 애당초 내가 이곳에 온 것부터가 믿을 수 없었지만. 구역질이 났다. 사후세계가 인간을 이렇게 괴롭혀도 되는 건가? 정말 죽어서도 헬이다.


“ 말을 좀 쉽게 해주시죠. ”


내가 말했다. 더 대화를 이어봤자 큰 소득은 없을 거라고 이성적으로 판단했으면서도 어디까지 이야기가 흘러갈지 내심 궁금했다. 뭘 어떻게 푼다는 건데.


“ 거기까지 하시지. ”


뒤에서 한울이 나타났다. 급하게 뛰어온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꽤 긴박해보였다. 싸움과는 담을 쌓은 듯한 순한 눈빛에 적의가 담겨있었다. 백마를 대신해서 바이크를 타고 온 왕자님이 쿡쿡 웃었다.


“ 누가보면 내가 악귀인 줄 알겠다. 표정 풀어. ”


골치아픈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늘 그래왔지만.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심정이었다. 죽음을 달라. 소리없는 아우성을 쳤다. 듣는 이 없는 아우성. 둘은 결투라도 할 듯이 대치했다.


“ 무슨 꿍꿍이속이지? ”


한울이 종잇장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둘은 대체 무슨 사이일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너무 생각이 많으면 오히려 머리가 굳는다더니, 지금 상황이 딱 그랬다. 나는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상황을 지켜보는 수 밖에 없다.


“ 그렇게 말하다니 섭섭한 걸. ”


한울은 문제상황에 직면한 것처럼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누구를 응원해야할까. 숨죽이며 그들의 동태를 살폈다.


“ 무슨 속셈이냐고 물었다. ”


“ 너도 알고 있잖아. 내가 무슨 목적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


둘은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의 맥락을 짚을 수 없어 속이 답답했다. 맥락을 짚을 실마리가 필요했다.


“ 잘 알지. 하지만 네 놈이 노리는 건 얻지 못할 거다. ”


한울이 내 앞에 섰다. 마치 나를 보호하려는 듯한 움직임이다. 날 지키려고 등장한 히어로처럼.


“ 무슨 자신감이지? ”


“ 내 의뢰인을 현혹하는 꼴을 두고 볼 것 같아? ”


“ 다들 뭔 소리야! 나만 빼놓고! ”


나만이 인지하지 못하는 이 상황이 싫었다. 나만 바보가 된 것 같아서.


“ 넌 빠져있어! ”


한울이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내 가슴을 한쪽 팔로 그에게 다가서지 못하도록 가로막고서.


“ 자살귀님, 당신의 선택입니다.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랍니다. 저 저승사자놈을 완전히 신뢰할 수 있습니까? ”


바보가 된 것 같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의 향연이다. 납득을 시켜줘야 선택을 하건 말건 할 것 아닌가. 한 가지 분명한 건 둘 다 못 미덥다는 것이다.


“ 넘어가선 안 돼. ”


한울이 도리질치며 말했다. 그 표정을 보면 제 아무리 저 남자가 금은보화를 준다고 해도 선뜻 그의 품으로 달려갈 수는 없을 것이다.


“ 당신의 선택입니다. 그 누구도 결정에 개입해선 안 돼요. ”


남자가 선택을 종용했다.


“ 너, 진짜! 그럴 거야? ”


한울이 거의 애원하듯이 말했다.


“ 너희가 우리한테 해준 게 뭐가 있지? ”


“ 그, 그건! ”


“ 어둠 속을 헤메다 마지막 희망으로 몸을 던진 우리를 이곳에 가둔 너희에게, 우리가 뭘 어째야 하는 거냐고! ”


무거운 분위기가 황무지에 내리깔렸다.


“ 영웅이나 구원자가 필요했던 게 아니야. 오로지 죽음만이 필요했다고. 그걸 당신들이 빼앗아갔어. ”


백마를 대신해서 바이크를 타고 온 왕자님의 분노는 점점 성장세를 키워갔다. 나의 등골엔 공포가 삽시에 들불처럼 번졌다. 그의 증오심이 내뿜는 열기가 숨 막혔다. 같은 자살귀인 나조차도 비교가 안 돼는 강도였다.


“ 그래서 다른 이들까지 너희처럼 만들 셈이야? 어떤 연유로든 자살은 저승법에서 용납할 수 없는 범죄야! ”


한울이 소리쳤다. 그가 화도 낼 수 있구나, 싶어 내 가슴도 벌렁 뛰었다. 분노 스위치를 제대로 누른 듯 싶었다. 뒤에서 바라본 바, 그의 어깨가 경련하듯 들썩거렸다. 분노의 증상이다. 응축된 분노를 더는 참아낼 수 없어서 비어져나오는 증상. 폭발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퍼뜩 위기감이 몰려왔다.


“ 그만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러다 큰일나겠어! ”


중재자들은 책속에선 나름 멋지게 그려지지만, 나같은 한낱 평범한 인간에겐 해당하지 않는다. 둘은 번뜩, 하는 사이 맞붙어버렸다. 속수무책, 나는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큰 폭발음이 귓전을 때렸다. 망연히 그들의 칼질을 바라보았다. 말 못할 고통의 신음이 비어져나왔다.


“ 다들, 뭐야.. 대체 왜 싸우는 건데? ”


기도했다. 그들이 다치지 않기를.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그러고 싶었다. 그리고 싸움이 멎기를 바랐다. 날 데려와놓고 이런 꼴을 보여줄 셈인가.


“ 갈라져라! ”


한울이 검은 검기를 만들어 바닥에 내리꽂자 바닥에 균열이 생기고, 그 균열은 백마를 대신해서 바이크를 타고 온 왕자님에게로 이어져 큰 폭발을 일으켰다. 울음이 쏟아질 것 같았다. 이런 싸움은 싫다고 외치고 싶었다.


머릿속으로 날 괴롭힌 아이들의 기억이 떠올랐다. 폭력은 진저리가 났다. 폭력은 피해자를 낳는다. 저승에선 그런 것도 모르나? 저승은 이토록 야만적인가. 죽은 자의 세상이라면 어느 곳보다도 신성해야하는 것 아닌가.


“ 아프지도 않군. 이정도론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해, 애송이. ”


그는 연기 속에서 우뚝 서서 말했다. 연기가 걷혔을 때 그의 표정에는 완연한 살의가 띄워져 있었다. 여유롭지만 불안한 두눈에는 충동이 어렸다. 가만두면 큰일을 저지를 것 같은 눈이다.


“ 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


이제부터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이 되지 않았다. 그가 왜 그 살의를 풀어내지 않는지 모를 일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한울을 끝내버릴 수도 있을 텐데.


“ 또 내빼시려고? 요즘에도 그 도망치는 버릇은 못 고쳤군. ”


“ 마음대로 생각해. ”


그가 그 말을 남기고 떠나려 하자 한울이 다가섰다. 한울은 그의 품에 파고들었고, 무게를 실어 그를 넘어뜨렸다. 그들은 삽시에 몸이 뒤엉켜 마치 합쳐진 것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 어딜 가려고. 너희들의 본진을 말해! ”


한울이 그를 누르고 올라서서 소리쳤다.


“ 말하라면 순순히 말할 거 같아? 순진하기는! ”


이어지는 상황은 참혹하기 그지 없었다. 그의 손에 한울의 가슴을 관통하는 가시가 생겨난 것이다. 모든 것은 찰나의 일이었다.


나는 경악했다. 한울의 입으로 피가 솟구쳤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떤 말로 종합할 수 있을까. 당혹스러웠다. 모든 게 순식간에 벌어지고 있다. 감정과 감정이 부딪히고 서로를 깨뜨리고 마침내 죽이려든다. 이미 한 번 죽어본 이들이라 그런 걸까. 그래서 살육의 무게를 가벼이 여기는 건가.


“ 이렇게까진, 하고 싶지 않았는데. ”


그가 한울을 옆으로 밀어버리고 일어났다. 가시에서 빠져나온 한울의 가슴에서 핏물이 솟구쳤다. 공기중에 흩뿌려진 피로 대기는 붉게 물들었다.


나는 망연히 고통에 나뒹구는 한울을 향해 비명 같은 탄식을 내지르며 달려오는 그녀를 보았다. 어디에서 무얼 하다가 사달이 난 뒤에야 온 건지 원망스러웠다.


내가 그 사달을 막아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그녀의 등장으로 덜 수 있을까. 늦게 온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비겁한 발상이나 해대는 내가 역겹다. 애초에 만나지 않았어야 했다지만, 우리의 인연이 결코 좋지도 길지도 않았다지만, 내 죽음을 갖고 흥정하는 그들이 밉다지만.


내 앞에서 벌어진 핏빛 비극에서 나는 자유로울 수 없다. 이제 나는 마음놓고 죽을 수도 없게 되었다. 그가 죽는다면. 나에게 인생은 늘 난관이었다. 지금도 그렇잖은가. 전생에 무슨 큰죄를 지었을까. 절규하고 싶은 심정이다. 목구멍에서 역한 토기가 파도쳤다. 한울은 아직 시체도 아닌데, 시체를 본 뒤의 증상이 나오다니. 그만큼 한울의 상태는 나빴다.


그녀의 표정이 내게로 쏟아졌다. 나를 책망하는 눈빛. 이렇게 되도록 뭐했냐는 눈빛. 그러나 그 눈빛은 이내 거둬지고 한울에게로 향했다. 나는 뒤늦게 그의 곁으로 달려갔다. 울음이 쏟아졌으나 그녀가 더 크게 울었다.


“ 하루가, 가네요. ”


그가 저무는 해를 돌아보며 지그시 웃었다. 이게 아파 죽는 사람의 태도인가? 낙천적인 건지, 멍청한 건지 모를 일이다.


“ 일단, 휴게소로 옮기자. ”


그녀가 내게 말했다. 나는 그 즉시 피가 철철 흐르는 한울을 업고 뛰었다. 조급한 마음에 종종걸음을 뛰다가 넘어질 뻔도 하였다. 이대로 그를 죽일 순 없다. 나를 죽여줄 유일한 자인데.


“ 조금만 참아. ”


나는 그의 가슴께를 손으로 지혈하며 부축해 휴게소로 내달렸다. 서둘지 않으면 그가 죽을까봐 나는 두려웠다. 저승에서까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진정한 미지의 세상으로 가버리는 걸까.


“ 천천히 가. 난 괜찮아. ”


한울이 말했다. 말은 괜찮다고 하지만,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 괜찮기는.. 당장 처치하지 않으면.. ”


그녀는 차마 뒷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 오지 않아야 했으니까. 눈앞에 휴게소가 보였다.


“ 간만에.. 소장누님 솜씨 좀 보겠네. 우리 소장누님, 생전에 간호사 출신이었지. ”


한울이 담담하게 말했다. 죽을 때 되면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른다는데. 나는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두려운 미래를 머릿속에서 걷어내려고 부단히도 노력했다.


“ 녹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나 죽이면 안 됍니다. ”


한울이 농담하듯이 웃으며 말했다. 이젠 말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 아직 안 죽었어, 나. 반드시 살릴 거야. ”


작가의말

제목 어그로 죄송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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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99 다오랑
    작성일
    21.05.16 15:16
    No. 1

    백마 대신 바이크! 기발한 상상력입니다. 이글 '죽는 것이 쉽지 않다' 부터 보고 왔는데 ㅉ구 이대로 흔들림없이 나가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잼있는 글 선작. 추천하고 갑니다. 작가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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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 똑똑, 당신의 아들이 갑자기 죽었어요. +1 21.05.17 95 1 11쪽
» [5] 나를 두고 싸우는 두 사람이 남자다. +1 21.05.16 113 2 11쪽
4 [4]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엄마가 있었다면 21.05.15 139 1 11쪽
3 [3] 살인도 용기가 있어야 한다. 21.05.14 197 3 14쪽
2 [2] 천국 가자는데 말이 많다. 21.05.13 355 5 14쪽
1 [1] 죽는 것도 쉽지 않다. +1 21.05.12 644 1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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