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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무명귀 님의 서재입니다.

저승이 처음인 나는 죽음을 바란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무명귀
작품등록일 :
2021.05.12 17:20
최근연재일 :
2021.12.08 20:50
연재수 :
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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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6
추천수 :
39
글자수 :
437,315

작성
21.05.15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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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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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4]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엄마가 있었다면

DUMMY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 자리인 것 같았다. 사방은 황무지였고,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를 걸음을 걷다가 나는 화가 났다. 나는 묵묵히 걷기만 하는 한울에게 쏘아붙였다.


“ 대체 얼마나 더 가야하는 거지? ”


나는 나의 정적을 찢는 목소리에 놀랐다. 호흡소리를 제외하고 처음으로 소리란 것을 들어본 것 같았다. 내 성대에서 이런 갈라지는 소리가 나오다니.


“ 내 의뢰인 중에서 네가 제일 일찍 지치는군. 그러게 평소에 운동을 했어야지. ”


그가 비아냥대듯 말했다. 여전히 재수없는 놈이다. 나는 그의 말에 딱히 반박할 거리를 찾지 못했다. 한울은 지그시 웃었다.


“ 조금만 더 가면 황천길 휴게소가 나올 거야. ”


정말인지 웃기는 이름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실소를 지었다. 무슨 이름이 그래? 반신반의하며 길을 걷던 나는 멀리서 파란 지붕의 건물을 발견했다.


정말 이 한가운데에 휴게소가 있단 말인가. 나는 이 이상한 곳에 혀를 내둘렀다. 가까이 다가서니 휴게소라기엔 볼품없는 작은 건물이었다.


“ 왜 이렇게 조그맣지? ”


내가 건물의 외벽을 둘러보며 말했다. 크림색 건물과 센서로 작동되는 자동문이 전부였다. 매점도, 사람도, 주유소도 없었다.


“ 황천길에 손님이 바글바글할 리가 없잖아. 그래서도 안 돼고. ”


한울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나는 그가 왜 그리 심각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가 휴게소에 들어섰을 때, 우리를 반긴 건 몸매가 좋은 여자였다.


구릿빛 피부에 커피색 머리카락을 지닌 그녀는 앞치마와 두건을 쓰고 있었다. 그녀의 도톰한 입술은 밝게 웃고 있었고 올라간 광대뼈 위에는 손톱만한 점이 있었다.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와 구릿빛 손으로 내 작은 손을 감싸쥐었다. 나는 가슴이 들뛰는 걸 느꼈다.


“ 어서 오렴. ”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나긋했다. 내 가슴은 아지랑이 피는 여름의 아스팔트처럼 달궈졌다. 인터넷에서 보았던 섹시한 여자들, 나의 마스터베이션에 도움을 주었던 여자들과는 다른 매력을 품고 있었다.


나는 허기가 졌다. 내 배꼽시계가 그리 말하고 있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허기였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느끼지 못했는데. 정말로 배가 고픈 건지, 다른 욕망이 생겨난 건지 모를 일이다.


그녀는 우리를 안으로 안내했다. 서너 테이블을 지나 미닫이문을 열면 조그만 방이 있었다. 좌우로 긴 방에 둘씩 마주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었다.


이런 구조는 휴게소라기보다 식당에 가까웠다. 테이블은 잘 닦여 광택이 나있었다. 그러고보면 휴게소 전체가 그랬다. 작은 먼지 하나 존재하는 것을 허락치 않겠다는 듯 반짝반짝했다.


작지만 낡은 부분은 보이지 않는 신축 건물이었다. 테이블에는 내가 환장하는 요리들이 펼쳐져 있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진수성찬이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지그시 웃었다.


“ 먹으렴. ”


그녀의 상냥한 말씨가 좋았다. 한울이 손뼉을 쳤다. 그는 밥상을 바라보며 군침을 흘렸다. 나는 두 눈을 끔벅이며 밥상을 바라보았다. 정말인지 하나같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어릴 적 엄마가 해준 것들.


게찜이며 반숙계란을 넣은 라면, 엄마가 잘하는 김치인 섞박지, 콩자반, 고등어 튀김 등이 식탁에 올라와있다. 요즘 들어 통 먹어보질 못하는 것들이다. 엄마는 보험회사에 다닌 뒤로 그 어떤 요리도 차려준 적이 없다.


원래 요리에 보람을 느끼는 타입이 아니었다. 엄마는 늘 복직을 꿈 꿨다. 그래서 미련없이 집안일을 그만두었다. 마치 이직하듯이 집을 떠난 것이다. 나는 혼자서 차려먹는 것에 익숙했다. 그러면서도 늘 나에 대해 간섭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한울은 목을 쭉 빼고 상차림을 둘러보았다. 어지간히도 배가 고픈 모앙이었다. 나는 도리질쳤다. 엄마가 떠올랐다. 왜 다시는 이런 상을 차려주지 않는지 따져묻고 싶었다.


내 죽음엔 엄마의 책임도 분명 있었다. 식탁 위에 음식들이 회전하며 나에게로 돌아가며 다가왔다. 게찜을 시작으로 고등어 튀김, 다시 게찜. 그때마다 엄마와의 기억이 단편적으로 지나갔다.


주위에선 앞치마를 두른 그녀와 한울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음식들의 회전은 점점 더 빨라져 그 속도를 따라가기엔 역부족일 정도가 되었다. 시각이 마비될 것 같았다.


어떤 것이든 붙잡아서 마주하고 싶었지만, 내 손은 어느 접시 하나 마음껏 잡지 못했다. 그때 그녀가 내 어깨를 팔로 둘러 안았다. 나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가슴이 척추를 눌렀다. 


“ 아직 어리구나, 너는. ”


그녀가 나를 끌어안았지만 무겁지는 않았다. 그녀는 채식주의자처럼 가벼운 몸집이었다. 나는 그녀의 의중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식탁엔 다시 처음처럼 음식들이 즐비했다.


“ 그게 무슨 소리에요. ”


그녀는 내 귀에다 대고 속삭이기 시작했다. 엄마가 불러주던 자장가였다. 나는 그녀를 뿌리치고 말았다. 식탁 위 집기 몇몇이 뒤집어졌다. 그녀는 동요의 기색이 없었다. 나는 엄마의 자장가가 몸서리치게 싫었다. 엄마는 나를 재우고 싶어했다.


내가 놀아달라는 신호를 철저히 무시했다. 나는 엄마가 엄마로서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았다. 나는 그녀가 엄마를 따라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나를 골탕먹이려는 한울의 술수라고 추측할 뿐이다. 한울의 표정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 말하고 있지만 녀석을 믿을만큼 사이가 돈독하진 않았다. 나는 그에게 불신의 눈빛을 보냈다.


나는 그 자리를 떴다. 어디든 떠나야 했다. 이 상황으로부터 도피해야 했다. 나는 초원을 달리는 말처럼 뛰쳐나가 황무지를 달렸다. 아무도 쫓아오지 않았다.


나는 제 풀에 지쳐 쓰러졌다. 저승의 태양이 불길처럼 타올랐다. 내 얼굴이 뜨거워졌다. 바닥만큼이나 뜨거웠다. 나는 헛기침이 났다. 살아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진작에 끝났어야 했다. 정말로 그랬어야 했다. 그랬다면 이런 모욕을 당하지도 않았을 텐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 눈물이 바닥을 식힐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다. 내 눈물은 왜인지는 몰라도 뜨거웠으니까.


“ 미안, 내 장난이 너무 심했어. ”


그녀와 한울이 고개를 숙여 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머리칼이 내 눈앞에 닿을 듯이 흘러내렸다. 예쁜 적발이었다. 그녀의 그을린 피부는 역광 탓에 더 어두워졌다. 그녀의 표정이 어린아이를 달래려는 것 같아 나는 또 불쾌해졌다. 난 투정을 부리는 게 아니라, 화를 내는 것이다.


“ 하지만 장난만은 아니었어. ”


그녀가 솔직하게 말했다. 그녀는 이제 무릎을 접어 내 얼굴 가까이서 얘기했다. 상대방에게 눈을 맞추겠다는 의도로 읽혔다. 내가 상체를 일으키자 우리 둘은 거의 바로 앞에서 눈을 맞대고 있었다. 그을린 피부와는 다른 영롱한 초록색 눈동자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 그럼 대체 뭘 의도한 거죠. 왜 엄마 식탁을 흉내내고 자장가를 부른 거냐고요. ”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의 상태를 즐기는 것 같았다. 얘야 그건 네가 생각할 몫이란다, 하듯이. 나에게 수수께끼를 내듯이. 그녀는 아리송한 여자였다.


“ 모든 건 너의 기억이 바탕이야. ”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녀는 한 치의 흐트러짐없는 미소를 유지했다. 그 모습이 어딘가 경이로웠다. 나는 숨을 죽이며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나는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하고 싶었다. 닿기만 하면 모두 다 잊을 수 있을 것 같은 도톰한 입술이 나를 끌어당겼다.


“ 거짓말. 나는 엄마에게 좋은 기억이 없어요. ”


“ 아니, 틀림없어. 넌 엄마를 사랑했어. ”


그녀가 나를 안았다. 넓고 푸짐한 가슴에. 눈물이 새어나왔다. 그녀의 말이 모두 맞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머리는 아니라고 부정하는데 이미 내 감정은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엄마. 내 엄마. 다신 볼 수 없는 건가. 내 선택 때문에.


나는 또다시 후회라는 불필요한 감정에 휘둘리고 있었다. 몇 번이고 다짐했었다. 죽음 앞에서 지난 기억을 미화하지 말자고. 그들을 그리워하지 말자고. 모든 건 죽음에 방해만 될 뿐이라고.


“ 나보고 어쩌란 거에요. ”


나는 울부짖듯 말했다. 이제와서 후회하란 말인가. 잔인하다. 그들이 바라는 건 대체 뭘까. 같잖은 회개? 역겹다. 토나온다. 그러나 그녀의 손길이 자꾸만 나의 가슴을 진정시킨다. 믿을 수 없는 따뜻함이다.


“ 어쩌지 않아도 되. 너의 마음을 잘 들여다 봐. ”


그녀가 온화하게 말했다. 하라는 대로 하고 싶어지는 목소리였다. 지금 내가 가장 피해야할 목소리. 살고 싶어지도록 유도하는 목소리. 나는 도리질치며 그녀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견딜 수 없었다. 너무 따뜻해서 오히려 숨이 막혔다. 나는 일어났다. 그녀도 일어났다. 내가 뒤돌자 그녀가 날 뒤에서 끌어안았다.


“ 다시 한 번만 죽기 직전을 떠올려보겠니. ”


모든 게 수수께끼 같다. 나에게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자살귀란 고달픈 거구나, 싶었다. 이런 방식으로 어리석은 자살귀들을 훈육하는 건가. 역겹지만 통하기 직전이다.


나는 단 한번도 엄마 생각에 가슴이 따뜻해지지 않았다. 지금 그녀는 내가 모르는 감정을 되살리려 하고 있다. 헛된 꿈이에요,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뤄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이를 앙다물었다. 이제는 겨우 버티는 수준이었다. 난 정말 죽고 싶었을까, 라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 나는 그녀를 뿌리쳤다. 내 팔꿈치에 밀린 그녀가 엉덩방아를 찧고 작은 신음을 내뱉었다.


나는 숨이 찼다. 겨우 악몽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주위를 둘러봤다. 꿈 속 같은 광경이다. 나는 저승에 와있다. 믿기지 않지만. 헛웃음이 났다. 난 이미 악몽 속에 있는 거다. 장밋빛 죽음이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들 아득바득 살려고 노력하는 걸 테지. 그래서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였나. 다들 이런 미래를 알고도 묵인한 걸까. 나는 오만가지 상상이 흘러드는 것을 막지 못했다. 내가 목격한 순간순간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 난 이미 모든 걸 잊었어요. 더 이상 날 흔들지 마요. ”


나는 그들에게 등을 보이며 걸었다. 어디로 가야할지는 모르지만 그들을 따라가고 싶지 않았다. 오기일 수도 있겠다. 그래봤자 저승은 초행길인 어린아이에 불과하니까. 결국 길잡이에게로 돌아오게 되있을 테니까.


나는 정처없이 걸었다. 이 걸음이 나를 어디로 이끄는지는 모르겠다.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잘 가고 있는 걸까. 돌아가야 할까. 그러나 그러고 싶지 않다. 또다시 그들의 수작에 놀아나고 싶지 않다. 그때, 어디선가 강렬한 엔진음이 들렸다. 소리는 내게로 달려오고 있었다.


작가의말

저희 엄마는 좋은 분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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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 똑똑, 당신의 아들이 갑자기 죽었어요. +1 21.05.17 95 1 11쪽
5 [5] 나를 두고 싸우는 두 사람이 남자다. +1 21.05.16 112 2 11쪽
» [4]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엄마가 있었다면 21.05.15 139 1 11쪽
3 [3] 살인도 용기가 있어야 한다. 21.05.14 197 3 14쪽
2 [2] 천국 가자는데 말이 많다. 21.05.13 355 5 14쪽
1 [1] 죽는 것도 쉽지 않다. +1 21.05.12 644 1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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