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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무명귀 님의 서재입니다.

저승이 처음인 나는 죽음을 바란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무명귀
작품등록일 :
2021.05.12 17:20
최근연재일 :
2021.12.08 20:50
연재수 :
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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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39
글자수 :
437,315

작성
21.05.1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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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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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글자
19쪽

[1] 죽는 것도 쉽지 않다.

DUMMY

나는 지금 세상의 끝에 서있다. 내 짧은 생의 끝이고 학교 옥상 난간의 끝이며 작은 불씨조차 남지 않은 희망의 끝이다.


바람은 온화하게 불고 하늘은 내 절망과 상관없이 푸르다. 나는 밑을 쳐다보았다. 까마득한 바닥엔 아무도 없었다.


완벽하다. 나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밑을 보는 게 무서워서 그랬고, 마지막으로 쏟아지는 햇살과 눈싸움을 했다.


또렷하게 쳐다보기 힘든 빛이었다. 언제나 찡그리게 되는 빛이었다. 다가가기 힘든 빛이었다. 이제 나는 미지의 세상에 접속할 것이다.


그 세상엔 빛이든 어둠이든 무언가로 가득할 것이다. 그리고 영원하고 편안할 것이다. 두려움을 애써 삼켰다.


괜찮으리라 스스로를 다독였다. 뭐가 됐든 지금보단 나으리라.  나는 결심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머릿속 결심의 불이 다 타기를 기다렸다. 하나... 둘... 셋... 펑.. 폭발은 순식간이었다. 그 찰나에도 지난 날의 기억은 어떻게든 욱여넣듯이 지나갔다.


별로 좋은 기억은 없었던 것 같다는 기분이 들기도 전에 나는 암흑을 만났다. 참으로 깔끔한 무통의 잠에 빠져들었다. 나의 목적은 보기 좋게 달성되었다.



정신이 들었다. 땅은 차갑지만 말라있었다. 난 분명 죽었는데 눈이 떠지는 게 이상하다. 죽기 전에 치르는 마지막 의식처럼 가족들에게 유언을 남기는 시간이라기엔 온몸이 멀쩡하다. 더구나 여긴 병원이 아니다. 바깥이다.


외부에서 깨어나다니. 그럼 죽지 못하고 살아난 건가. 나는 의식과 감각이 살아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화가 났다. 누군가 나를 발견한다면 운좋게 살았다고 하겠지.


그리고 왜 이런 선택을 했냐고 나무라겠지. 나는 몸에 힘을 주었다. 힘이 들어갔다. 숨도 쉬어졌다. 호흡은 너무 가쁘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코끝에서 흙냄새가 났다. 모든 게 멀쩡했다. 정상의 범주 안이었다.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나는 죽음을 소망했다. 그러나 나는 죽지 않았다. 살아있었다.


참으로 질긴 목숨이었다. 보통 이런 것은 살인마가 자신의 범행이 실패했을 때 하는 생각이겠지만, 지금은 나의 생각을 대변하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문장은 없었다.


나는 이 상황을 납득해야만 했다. 언제까지고 죽치고 엎드려 있을 수는 없었다. 내가 자살하려고 한 게 모두 꿈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일어나서 상황을 확인해야 했다. 꿈인지 생신지.


“ 이제 그만 일어나지, 잠꾸러기. ”


명령인지 권유인지 모를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검은 구두의 주인공이 틀림없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나처럼 앳된 얼굴의 남자였다. 나이는 나와 동갑이거나 조금 더 많을 것 같았다. 그는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다. 어울리진 않았다. 어른스러워 보이기 위해 애쓰는 어린애 같았다.


얼굴도 잘생긴 편은 아니었다. 청소년 특유의 여드름이 피부에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눈은 작고 코는 두툼했다. 입술은 갈색에 가까웠다. 볼품이 없었다.


내가 판단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예쁘고 잘생긴 사람만 남의 외모를 비평할 권한을 가진 건 아니니까. 그렇게 따지면 대한민국 대다수의 사람들은 남의 외모를 가지고 왈가왈부할 수 없을 테니까. 남자는 자신에게 붙박여 움직이지 않는 나의 시선을 불쾌하게 쳐다봤다. 작은 눈이 더 쪼그라들었다. 째려보는 거였다.


“ 누구야, 넌. ”


나는 내 생각보다 침착하게 대답했다. 이런 이상한 일은 소설로 많이 접해서인지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소설은 인생의 예행연습용 교재니까.


살인사건 목격, 가족의 죽음, 외계인 침공, 신과의 만남 등을 경험하기 전에 놀라지 말라고 미리 준비하는 거니까. 그러나 여전히 내가 죽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나를 살린 게 저 남자일까. 그렇다면 저 남자는 나의 호의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나는 누구보다 죽고 싶었으니까. 죽고 싶은 사람을 살린 건, 살고 싶은 사람을 죽인 거나 다를 바가 없는 거니까. 법으로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살인죄나 다름없으니까.


“  내가 누군지 궁금하니. ”


남자가 수수께끼를 내듯 말했다. 지금 장난하자는 건가. 농담 같은 상황 속에서 진지한 사람이 나 뿐이라고 느껴졌다.


“ 여긴 어디야. ”


나는 침착하게 물었다. 동요하고 있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노력이 빛을 발하기를 바랐다.


“ 너, 죽으려고 했지? ”


남자가 다 안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 넌 누구냐고. ”


나는 적의를 드러내며 말했다. 나를 죽음으로부터 끄집어낸 자에 대한. 어서 정체를 드러내라는 채근이기도 했다.


“ 널 데리러 온 사자. ”


남자가 우스갯소리처럼 말했다. 뭐가 그리 재밌는 걸까.


“ 사자? 저승사자 말이야? ”


내가 반문했다.


“ 응. ”


저승사자가 말했다.


“ 그럼 여기가 저승이야? ”


“ 응. ”


나의 질문에 그는 지체없이 대답했다. 답변이 너무 빨라서 나는 다음 질문을 고르는 데 시간이 걸렸다.


“ 그런 건 책 속에서나 있는 거잖아. ”


“ 하지만 현실이지. ”


역시나 남자는 빨랐다. 거의 질문을 듣지 않고 말하는 수준이었다. 네가 뭘 말하는지 다 알고 있어,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확실히 이 모든 일이 가짜라거나 꿈일 리는 없었다. 너무도 사실적이었으므로. 피부에 닿는 바람 한 점마저도 현실감이 뛰어났다.


“ 믿을 수 없어. ”


나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 그러시든가. ”


저승사자가 빈정댔다. 네 의견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간단한 말이었다.


“ 사후세계란 게 진짜 있는 거야? ”


나는 당혹스러웠다. 죽고 싶었는데. 이런 귀찮은 2회차 인생을 강요 받다니. 멲살이라도 잡고 흔히 죽음을 상징하는 어둠 속으로 보내달라고 외치고 싶었다. 나는 모든 감각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완연한 자유를 누리고 싶다.


“ 보시다시피. ”


저승사자가 다시 짧게 대답했다. 그 짧은 말 속에 업신여김, 귀찮음, 냉정함이 모두 담겨져 있었다. 나는 그의 마음 속에 가득할 것 같은 오만이 불쾌했다.


저승사자라면 신의 부하쯤 될 것 같았다. 그동안 저승사자들은 승천한 인간들을 이렇게 대해왔나. 저승도 별 거 없구나, 싶었다. 이들도 이승의 인간들과 하등 다를 바 없었다. 조금 잘나간다고 으스대는 꼴이란.


“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


나는 또다시 읊조렸다. 들어달라고 하는 소리라기보다 내가 믿었던 죽음에 대한 환상이 깨져서 실망감에 나온 소리였다. 죽으면 삶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 작은 소망마저도 짓밟히니 헛웃음이 났다. 옥상에서 공포심과 슬픔을 억누르며 결의를 다진 것이 다 허사였다.


무슨 큰일을 해내는 것처럼 스스로를 다독이고 뛰어내리면 날아오르기라도 할 것처럼 결심에 의미를 부여했다. 나는 그냥 죽은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처럼 승천한 것이고.


어둠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상상이었다. 많은 이들이 상상이라 믿었던 사후세계가 진실이었다. 기독교 따위의 종교집단이 옳았다. 그동안 도를 아시냐고 물으며 내 축 처진 어깨를 붙잡고 기도를 올렸던 미치광이들의 교리가 옳았다.


인간은 죽으면 승천한다. 완전한 죽음, 어둠 속을 유영하며 무념무상에 젖는 무한의 시간은 없다. 씨발, 진작에 말해줬으면 좋았잖아.


“ 뭘 원하셨는데. 저승 환영회라도 열어드릴까. ”


이젠 저승사자가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상대방의 감정에 공감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일 의지조차 없는 모습이다. 저승사자의 입술에 옅은 미소가 띄어졌다.


“ 나는 완전한 죽음을 원했어. 영원히 지속되는 어둠의 세상 말이야. ”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면 저 검은 남자가 나의 소원을 이뤄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오히려 그 반대되는 일을 치르려고 하는 데도 바보 같이.


“ 알았어. ”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알았다니. 소원을 이뤄주겠다는 건가. 나는 기뻤다. 좀 전까지 그렇게 욕했으면서도. 이제 나는 비로소 죽음과 가까워질 수 있으리란 희망에 사로잡혔다.


“ 정말 고마워. 이름이 뭐야? ”


나는 뒤늦게 고마운 이의 이름을 물었다. 그냥 저승사자일 리는 없었다. 그도 이름이 존재할 것이다.


“ 한울. ”


나는 한울의 손을 두손으로 꼭 잡고 흔들었다. 왠지 반가웠고 친근했다. 날 죽음으로 이끌어줄 수만 있다면 널 사랑할 수도 있어, 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참았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으니까.


“ 한울, 빨리 날 죽여줘. ”


어감이 조금 이상했지만 상관없었다. 저승보다 말도 안 돼는 건 없었다.


“ 넌 왜 그렇게 죽고 싶어 안달이냐. 다른 사람들은 제발 살려달라고 아우성인데. ”


그의 말에 높아진 박동이 잦아들었다. 나는 그에게 솔직히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남이고 이제 나는 그의 손에 죽을 테니. 시시콜콜하게 사생활을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 어서 죽여주기나 하시지. ”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한울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는 손바닥을 펼쳐 나에게 내밀었다. 손금을 봐달라는 건 아닐 테고, 나는 그 손바닥의 중심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손바닥의 중심에선 잠시의 침묵을 뒤로 하고 열기가 피어오르고 검은 구체가 나타났다. 구체는 점점 더 커지더니 검은 선이 생겨났다.


구체는 팽창을 손바닥만한 크기에서 멈추고 검은 선에서 자줏빛 가스가 새어나왔다. 검은 선은 서서히 벌어져 입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나는 긴장한 채로 구체의 아가리를 응시했다.


아가리는 눈 깜짝할 사이에 나를 삼켰다. 나는 구체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안은 완벽한 어둠이었다. 내가 바라던 어둠. 간절히 소망하던 어둠. 나는 버둥대다가 눈을 끔벅거렸다. 눈을 감으나 뜨나 똑같았다.


“ 이게 죽음이구나. ”


나는 말했다. 나는 신기한 동물을 본 어린애 같았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멍청한 짓이었다. 세상은 온통 까맸다. 나는 냄새가 나는 걸 느꼈다. 불쾌하고 독특한 냄새였다.


“ 이제 만족하니. ”


왠지 기운없는 목소리였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는 듯 생색내는 어조였다.


“ 응. 이제 날 죽여줘. ”


내가 말한 죽음은 뜬눈으로 보내달라는 게 아니야. 나는 굳이 이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죽여달라는 말에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담겨있었다. 영혼까지 말끔히.


“ 냄새를 맡아. 가능한 많이. ”


나는 그렇게 했다. 죽을 수만 있다면 시키는 건 뭐든 할 용의가 있었다.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정말 참을 수 없는 악취였다. 그러나 견뎌야했다. 그러자, 나는 점점 눈이 감기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죽음이 시작된 것이다. 무릎이 접혔다. 몸의 대부분이 기능을 상실했다. 이제 뇌가 닫힐 시간이다. 하지만 나는 오래도록 기다려야했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몸도 꿈쩍할 수 없었다. 많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뇌세포들이 집을 나간 것처럼 내가 알고 있었던 것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언제쯤 죽냐고 묻고 싶었으나 이미 죽음은 막바지에 다다른 듯했다.


마지막 관문에서 차질을 빚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흩어진 뇌세포들을 끌어모았다.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어째야하는지.


나는 어느새 살 궁리를 하고 있었다. 내가 원한 건 죽음인데 어째서. 죽음이란 이런 건가. 죽고나서 후회하는 건가. 하지만 죽음이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는 것과 같다. 내가 알기로는 그랬다. 근데 왜 나는 생각하고 있는가. 따져묻지도 어둠을 벗어나지도 못했다.


나는 겁이 났다. 영영 이 상태로 남아있어야 할까봐. 어둠 속 미아처럼. 영원히 닫히지 않는 생각의 틀 속에서 같은 질문을 반복하며. 마침내 나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으로 퇴보할지도 모를 일이다.


시간은 흐르는 듯 보였다. 그럼 나는 지금보다 더 많은 걸 잊겠지. 끔찍하다. 나는 이 어둠이 내 모든 걸 앗아갈 것 같았다. 그토록 바라던 어둠인데 소름끼쳤다.


어둠을 인식한다는 건 무서운 일이다. 죽음은 어둠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의 어둠은 그 생각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나는 구원을 바랐다. 내가 졌어. 날 살려줘. 지금 이대로는 안 돼겠어. 나는 소리치고 싶었다. 속에서 천불이 났다. 이 천불이 어둠을 밝혀주기를.


“ 꽤 오래 버텼네. ”


한울의 목소리가 들렸다. 죽었다면 들릴 리 없는 목소리였다. 역시 녀석이 장난을 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눈앞은 여전히 어둠이 장식했다. 숨을 쉰다는 느낌도 없었다. 감각도 그대로였다. 모든 게 원상복구되지는 않았다. 오직 귀만이 살아있는 듯 움직였다.


“ 내 목소리가 들리는 게 이상하니. ”


한울은 나지막히 말했다. 나는 놈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오징어처럼 쓰러져있는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 날 볼 수 있게 해줄까. ”


나는 끄덕이고 싶었다. 그 사실이 치욕스러웠다. 녀석에게 굽혀야한다는 사실이.


“ 빌어. 속으로 빌어. 눈을 뜨게 해달라고 빌어. ”


나는 그리 했다. 그러자 내 앞에선 촛불을 들고 있는 한울이 보였다. 어둠 속에서 얼굴의 일부만이 촛불에 의해 빛났다. 기이하고도 위엄 있는 얼굴이었다.


나처럼 어린 소년의 얼굴이 아니었다. 무언가 다 아는 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눈과 귀를 얻었다. 이제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들리는 거라곤 한울의 목소리 뿐이고, 보이는 거라곤 촛불을 든 한울의 작은 얼굴 뿐이다. 나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 그렇게 바라던 어둠인데 왜 거부하는 거야. ”


내가 원하던 건 이런 게 아니었어. 나는 그리 외치고 싶었다. 나를 죽여주기로 했잖아. 거짓말쟁이. 나는 그를 비난했다.


“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데. 너는 할 말이 많은 것 같네. ”


나는 부정할 수 없었다. 말하고 싶었으므로. 따져물을 게 많았으므로. 한울은 웃기 시작했다.


“ 너는 진정한 죽음을 몰라. ”


그는 잔인한 선고를 하듯 말하고 뒤로 돌아섰다. 촛불이 사라지고 다시 어둠이 드리워졌다. 살아있는 귀에는 아무 소리도 잡히지 않았고, 살아있는 눈에는 아무 빛도 감지 되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선물이 도착했다. 나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발작하듯 입술을 떨었다. 한울이 어디까지 갔는지 몰라서 더 겁이 났다.


“ 가지 마. ”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허공에 대고 말했다. 몸은 여전히 오징어처럼 어색한 자세로 엎드려있었다.


“ 가지 마. ”


침묵이 주는 공포가 나를 압박했다. 한울은 대답이 없었다.


“ 가지 말라니까. ”


나는 거의 울먹였다. 살아있는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런데 흐르는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현실감이 느껴지는 감각이었다.


눈과 귀와 입만 살아있었다. 생각도 어느 정도 가능했다. 그게 문제였다. 생각해선 안 돼는 거였다. 이건 죽음이 아니었다.


나는 일단 탈출해야 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조급증이 몰려왔다. 한울이 날 두고 떠날까봐 조마조마했다.


“ 난 여기에 있어. ”


나는 조금 안심했다. 그가 어쨌든 여기에서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그의 목소리가 나를 안심시키는 듯했다. 나는 다음 말을 골랐다.


“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


울먹거림이 잦아들지 않아서 발음이 뭉게졌다. 나는 부끄러움을 억눌렀다.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랫입술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 내가 뭘. ”


한울이 뻔뻔하게 말했다. 정말 모르겠다는 투였다. 나는 기함할 지경이었다.


“ 날 엿 먹였잖아. ”


나는 주체하지 못했다. 굽실거려 마땅했지만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나를 속인 건 한울이다. 내가 굽실댈 이유는 없었다. 생각을 전환하니 용기가 샘솟았다. 나는 더 몰아붙이기로 했다.


“ 나를 죽여준다면서 이런 좆 같은 짓을 벌였잖아. ”


나는 거의 악을 쓰듯 말했다. 이성을 잃은 듯 내 눈알은 핏발이 곤두섰다. 죽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장난을 치는 저승사자가 다 있다니. 염라대왕은 아시나?


“ 내가 어쨌다고 그러는 거지. 너 스스로 선택했으면서 이제와서 뒤집어씌우려고? ”


그는 더욱 뻔뻔히 나갔다. 나는 가슴에서 천둥이 치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더 싸우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았다. 나는 한 발 물러섰다.


“ 이제 장난 그만쳐. 어서 날 꺼내달라고. ”


나는 신경질을 내듯 말했다. 그는 실소인지 조소인지 모를 웃음소리를 냈다.


“ 살려주세요, 해봐. ”


나는 두 귀를 의심했다. 뭘 요구하는 거야. 난 죽고 싶다고. 제발 죽게 내버려둬. 하지만 선택권이없었다.


“ 얼른. ”


나는 결심해야했다. 이 또한 죽음으로 가는 길이리라 생각했다.


“ 살려줘. ”


나는 들릴랑말랑하게 나지막히 말했다. 제발 눈치껏 넘어가주기를.


“ 잘 안들리는데. ”


젠장. 나는 이를 갈았다. 나가기만 하면 죽빵을 날려줄 테다.


“ 살려달라고, 개새끼야. ”


나는 성질을 부렸다. 곱게 네 말대로 할 것 같냐는 의미가 내포되어있는 욕설이었다. 한울의 속이 좁거나 뒤틀리지만 않으면 치사하게 내빼진 않으리라 믿었다.


“ 조건이 있어. ”


나는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 뭐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


“ 뭔데. ”


내가 대답했다. 한울은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 나와 같이 가자. 천국으로. ”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그렇게 소리칠 뻔했다. 죽여달라니까 어째서 천국을 가자는 거지. 나는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대답이 늦었다.


“ 갈 거야, 말 거야. ”


나는 일단 살아야 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살아야 했다. 가겠다고 해야 했다.


“ 갈게. 그러니까 제발 살려줘. ”


나는 절제하려 했지만 울음이 터졌다. 나를 놓고 가지 말라는 듯. 나는 어디까지 망가지고 비참해지는 걸까.


“ 당연히 그래야지. ”


그는 자신감에 가득찬 목소리로 으스댔다. 내가 굴복할 줄 알았다는 듯이.


“ 이제 어서 날 꺼내줘. ”


나는 다시 소리쳤다. 그는 기다리라고 한 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완벽한 침묵이었다. 나는 하염없이 기다렸다. 천년처럼 긴 시간이었다.


작가의말

완주가 목표입니다아아..

힘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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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 살인도 용기가 있어야 한다. 21.05.14 197 3 14쪽
2 [2] 천국 가자는데 말이 많다. 21.05.13 355 5 14쪽
» [1] 죽는 것도 쉽지 않다. +1 21.05.12 644 1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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