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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무명귀 님의 서재입니다.

저승이 처음인 나는 죽음을 바란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무명귀
작품등록일 :
2021.05.12 17:20
최근연재일 :
2021.12.08 20:50
연재수 :
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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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6
추천수 :
39
글자수 :
437,315

작성
21.05.17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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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6] 똑똑, 당신의 아들이 갑자기 죽었어요.

DUMMY

사람들은 규성에게 천재라고 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며 가문을 일으킬 아이라고 불렀다. 명절이면 뭇 자식들 중에서 가장 사랑 받았다. 규성 나이 여덟에 친척 아이들 중 나이가 가장 많은 고등학생 사촌형이 받는 세뱃돈을 넘어섰다. 모든 것이 규성의 차지였다. 단 한 명의 예외가 있다면 늦둥이로 태어난 막내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욕심이 없었고, 그저 귀여운 응석받이였다. 그러나 다른 형제들과 친척들은 달랐다.


가족 사이에 시기와 질투가 넘쳐났지만 규성은 느끼지 못했다. 규성은 어렸고, 똑똑한 것이 그 어떤 상식과 대조해봐도 잘못은 아니었다. 규성의 특출난 머리는 특히 할아버지의 기쁨이었다. 이제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어린 규성을 종종 무릎에 앉혀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고는 했는데, 주로 집안 얘기였다. 그 얘기들은 어린 규성을 고무시킬 의도가 있는 것이 자명했다.


“ 우리 집안은 예로부터 명망있는 가문이었다. 너는 아직 어려서 가문이 뭔지도 잘 모를 거다. 지금은 우리가 근근히 먹고 산다지만, 이 할애비의 할애비 때만 해도 우리 가문 하면 모르는 사람들이 없었단다. ”


규성은 그때의 할아버지를 기억한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할아버지는 별볼일 없어진 집안에 콤플렉스를 겪고 있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의 눈에는 기대감이 가득했었다.


할아버지 뿐만이 아니었다. 집안 큰어른의 호언장담은 곧 집안 전체를 고무시켰다. 규성은 어느새 그런 집안의 기대주가 되어있었다. 규성이 커서 사람들의 눈이 맞음을 증명했을 때, 모두는 입을 모아 그의 자식도 천재일 거라고 했다. 사실이 아니었다면 조금은 나았을까.


바보 같은 생각이다. 멍청한 소리라고 넘겼어야 했는데, 그게 뭐라고 눈이 멀었던 것일까. 규성은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들도 자신과 같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우월함을 즐기고, 모두의 시기심을 관심이라 느끼며 당당하게 이익을 챙기며 살아가리라 생각했다.


어찌보면 오만했고, 건방졌던 자신처럼 살아가리라고. 강하고, 군림하고, 무리의 중심이 되리라고. 모든 것은 허상이었다. 자신의 뜻대로 자라지 않는 아들을 보며, 규성은 차갑기만 했다. 사자가 새끼를 절벽으로 밀어떨어뜨리듯, 규성은 유약한 아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관심을 갈구하는 눈빛이 한없이 애처로워보여서 참을 수 없었다. 자신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얻어내면 자연스럽게 모든 조명이 자신으로 고개를 돌렸다. 애처롭게 바라보며 관심을 갈망하는 것은 패배자의 최후의 수단이다. 용서할 수 없는 행위다.


집에 돌아온 규성은 아내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그대로였다. 오늘 그녀는 뭘 먹긴 했을까. 절망 속에서 허덕이는 여자.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파에 파묻혀있는 여자. 규성은 자신이 아는 아내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규성은 그녀를 처음 만났던 다방이 생각났다. 중세유럽의 술집을 연상케하는 목조건물. 아직도 그 자리에 우뚝 서있을까. 유명 커피 전문점이 세상 어디에나 있는 시대에도 그 고풍스러움을 유지하고 있을까.


아마 몰라보게 달라졌을 것이다. 재개발에 들어갔었다고 들었으니까. 세상은 변화를 주저않는다. 아내를 만난 건 규성의 무료한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였다. 늘 승리감에 도취했던 그에게 아내는 신선한 도전정신을 불어넣었다. 아내는 보험설계사였고, 자신의 커리어에 강한 프라이드를 갖고 있었다. 규성은 그 점이 좋았다. 아내의 표정과 말투에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아내는 규성이 내뿜는 빛까지 모두 가져가버릴 정도로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비단 외모를 갖고 하는 말은 아니다.


아내는 자신감이란 무기를 잘 다루는 장수였다. 적재적소에 웃고, 절대로 상대방에게 먼저 호감을 표하지 않는다. 그녀는 사랑 받아 마땅했고, 자신도 그것을 잘 알았다. 규성이 사랑을 주고 싶은 여자는 그녀가 처음이었다. 또한 아내는 비밀이 많았다. 아내는 능숙하게 자신을 숨기고, 상대방에 대해 조금이라도 많은 정보를 이끌어냈다. 사실 대단한 기술은 아니었다. 그저 사랑하게 만들면 됬다.


규성은 자신이라는 상품을 홍보하듯이 그녀의 마음에 들기 위해 너무나 많은 것을 흘려주었다. 아마 몇 번을 만나서야 깨달았던 것 같다. 규성은 아내를 잘 모르고, 아내는 규성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걸. 그래도 좋았다. 아내는 규성을 미치게 했다. 비밀로 가득찬 그녀에게서 알고 싶은 게 너무나 많았다. 그 점이 결혼 전에는 매력으로 다가왔다. 알고 싶게 만드는 여자. 상상력을 부추기는 여자. 신비로운 여자.


규성의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날아갔는지, 땅으로 파고들었는지 지금의 아내는 문법이 뒤죽박죽인 문장처럼 엉망진창이다. 아내는 끝장나버린 것이다. 모든 현실이 뜬구름 잡는 삼류 SF 소설처럼 아득히 먼 곳 이야기 같다. 거짓말도 이토록 믿을 수 없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이 부부의 삶에서 송두리째 사라졌다. 누가 단번에 믿을 수 있을까. 아들은 이제 열 여덟이다, 열 여덟.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도리질치고 두 뺨을 때리면 잠이 깨고 아침이 되어 짠, 하고 꿈이었다고 하는 것이 더 믿을만했다. 상상도 해보지 못한, 상상해서도 안 됄 일이다. 아들이 죽고 며칠간, 아내는 밤마다 비명을 질렀다. 아내는 슬퍼했고, 절망했고, 기도했다. 누구를 위한, 누구를 향한 기도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내에게 그 순간 종교는 무의미했다. 누구라도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으면 족했으니까. 그래도 그때가 그나마 나았는지도 모른다. 울고불고하다가 기력을 못 이겨 잠들다 비명을 지르고 하던 때가. 이젠 낮과 밤의 개념을 상실해버렸으니까. 사는 게 사는 게 아니게 될 때가 인간의 바닥이다.


낮이고 밤이고 부부는 이젠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비명을 가슴으로 지르고 있으니까. 이미 비명을 내뱉을 목은 잠겼고, 울 수조차 없을 정도로 눈은 퉁퉁 부었다. 안약을 넣어서라도 울어 마땅했지만 젓가락 하나 들 힘도 없다. 차라리 소리지를 수 있을 때가 나았다. 소리를 지르면 무엇이 달라지기라도 할 것 같았다.


아들이 돌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열심히 소리를 질렀을 때가 나았다. 무력한 몸뚱이를 소파에 운신한 채로 어딘가 꿈 속에 잠긴 표정으로 눈을 뜨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시체를 본 것보다도 참혹했다. 한 가지 가혹하지만 분명한 진실을 받아들인 순간, 아내는 그렇게 되고 만 것이다. 비명을 지르든 지르지 않든, 아들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가혹하고 분명한 진실. 정말로 농담 같고, 농담이어야 하는 현실이다. 똑똑, 당신의 아들이 갑자기 죽었어요, 라는 질 낮은 농담.


“ 여태 뭐하고 지냈어? ”


대답이 없었다. 날이 어둡도록 이러고 있었단 말인가. 하염없이 창 밖만 바라보며 산송장처럼 가만히. 규성은 돌처럼 굳어있는 아내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냐고 호통이라도 치고 싶었다. 날마다 이런 하루가 지속되고 있다. 끔찍하다.


일생이 단 한 번의 사건으로 뒤집어질 수 있다는 현실이. 이 현실이 주는 어둠이 언제쯤 걷힐 수 있을까. 이 나날들이 언제쯤 중단될 수 있을까. 기약 없는 소망일 것이다.


세상은 다른 아이의 죽음으로 떠들썩하다. 아들의 소식은 식사 후 디저트보다 가볍게 다뤄질 뿐이다. 한심한 현실이다. 헛웃음만 자아내는. 영원 같은 어둠 속에서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


남편의 등장에도 아내는 먼 산만 응시하고 있다. 규성은 아내의 시선을 돌릴 자신이 없다. 그 방법을 누가 알까. 알면 가르쳐달라고 하고 싶다. 공부라고 하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던 규성에게도 이 상황은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였다. 문제를 풀기는커녕 설명하기 힘든 감정들이 우후죽순 피어오를 뿐이다.


규성은 현관을 벗어나 아내의 앞에 쪼그려 앉고 그녀의 손을 잡는다. 돌처럼 차갑고 단단한 손등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아내는 돌아보지 않는다. 영영 그녀의 의식은 머나먼 곳으로 떠나버린 것 같았다. 이제 어떤 걸로도 그녀의 생기를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았다.


“ 뭐라고 말 좀 해봐. ”


욕설이라도, 책임을 묻는 비난이라도. 당신이 뭐했냐는 원망이라도 해주길 바랐다. 규성은 뭐라 단정지을 수 없는 감정에 빠졌다. 지키고 싶었던 존재를 잃은 슬픔인지, 고통인지, 죄책감인지 모를 감정. 어쩌면 셋 다 모두 해당할 수도 있겠다.


규성은 동생을 떠올린다. 동생 내외는 아이를 유산한 적이 있었다. 동생은 산부인과를 다녀온 어느 날, 아이가 공주님이라며 한껏 자랑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단 한 번도 제 아비의 품에 안겨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비극이다.


모두가 슬퍼했고, 가족중 누구 하나 빠짐없이 그를 찾아가 위로의 말을 건네고 안아주기까지 했다. 그는 누구에게나 사랑 받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랑스러운 막내였으므로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그렇게 아픔을 이겨내는 듯했다. 동생 내외는 금세 일상을 되찾았다. 제수는 회사에 가고 동생은 가게문을 다시 열었다. 규성도 회사에 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은지 오래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아들이 죽었는데. 차라리 실종된 거라면 좋겠다. 어딘가에 살아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전단지를 돌리거나 장난 제보전화에 속아 반쯤 미쳐 전국을 돌더라도. 희망은 삶의 의지로 충분하다. 설령 배신할지라도.


이젠 희망은 그와 관계없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규성은 아내에게서 눈을 돌리고 집안을 훑는다. 아침 그대로다. 아들이 죽고 난 뒤로 집안일은 규성의 몫이 되었다. 아내는 열과 성을 다할 곳을 잃자 급격히 상태가 안 좋아졌다.


규성은 정리되지 않은 집을 청소하기로 한다. 잘잘못을 따지기엔 서로 너무나 큰 데미지를 입었다. 싸움도 힘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이다. 규성이 청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아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아무것도 안 먹었냐는 물음에 그녀는 잠자코 있더니 입을 열었다.


“ 신이 있을까. ”


아내의 힘없는 한 마디는 부부의 현 주소를 가장 깔끔하게 요약했다. 독실한 카톨릭인 아내와 불자의 아들인 규성에게 지금 이 무간지옥은 각자 믿는 신의 존재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믿음은 고통의 순간에 흐려지기 마련이다.


오랜 기간 모아왔던 믿음에 배신 당했을 때, 인간은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평생의 버팀목을 잃은 기분을 무신론자들은 모를 것이다. 안정적인 삶이 침범 당했을 때, 가장 믿었던 존재가 아무 쓸모없다고 느낀다. 이럴 때일 수록 신앙의 힘으로 버티라고 누군가는 쉽게 말한다. 하지만 현실에 신앙이 끼어들 틈은 없다. 인간의 일에 신이 끼어들 틈이 없듯이.


작가의말

짜잔, 몰래카메라.......이고 싶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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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똑똑, 당신의 아들이 갑자기 죽었어요. +1 21.05.17 95 1 11쪽
5 [5] 나를 두고 싸우는 두 사람이 남자다. +1 21.05.16 112 2 11쪽
4 [4]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엄마가 있었다면 21.05.15 138 1 11쪽
3 [3] 살인도 용기가 있어야 한다. 21.05.14 197 3 14쪽
2 [2] 천국 가자는데 말이 많다. 21.05.13 355 5 14쪽
1 [1] 죽는 것도 쉽지 않다. +1 21.05.12 644 1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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