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팔찌와 반지
그녀가 땅을 짚고 고개를 살짝 들더니 홱 하고 돌렸다.
“네가 그랬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번개 날린 거?”
에디였다. 난 멈칫하며 떫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목소리마저 상실감에 분해서 떨렸다.
“응. 알..았..어?”
“너 표정이 왜 그래? 날 원망하는 표정이다?”
“그게. 그런 게 있어. 그놈이 눈이 삐었나? 쳇. 근데 넌 어떻게 그리 쉽게 납치되냐?”
“수면 마법에 당한 거지.”
“검을 쓰던데?”
“마검사였군? 쉐도우 중에 상급. 엘리엇 공작가가 파인 후작가를 처리하면 쉐도우들이 카밀라 공주는 더는 찾아다니지 않을 거야.”
“나도 그 생각은 좀 했어. 임무를 달성하려면 영지를 지나가야 하니까 그때 처리할 생각이야.”
“프로리안을 가야 하는 임무?”
그녀의 눈빛이 빛났다. 그녀는 내가 프로리안으로 간다고 하니까 무척 반가운 가 보다. 자기 집에 들를 생각을 해서 그런가?
오딘의 성화로 새벽부터 더 건질 것이 없는 호수에 또 왔다.
“그러니까 바위에 뭘 발출? 그게 무슨 뜻이야? 발출?”
[손에서 뭐가 나간다고 생각을 하시고 목표물을 향해 던지라는 겁니다.]
“손에 뭘 쥐고 있다고 가정하고 슉하고 던지라는 거지?”
[네, 그게 발출입니다.]
호숫가에 희생 제물이 될 이끼 낀 검은 바위들.
난 그 중에 가장 큰 놈을 골랐다.
“저거야. 내 목표물은.”
[여러 개를 고르셔야 하는 데요. 열 개 골라 주세요.]
“여러 개라. 좋아. 그럼 저 목표물 좌우로 열 개!”
난 한 번 호흡해서 리듬감을 주고 손에서 뭔가가 빠져나간다고 생각하며 바위를 노려보았다.
미친 짓?
그러나 결과는,
뻐버버버벙.
손에서 단검이 여러 개 날아가며 바위가 폭발해 버렸다.
“이거 뭐냐? 검이나 광선과는 차원이 다른데? 빠르고 예측하기 어려운걸?”
[그렇습니다. 아까 슬쩍하셨던 단검입니다. 복제품이 재생되었던 거죠. 진품은 주인님 몸속에 있죠.]
“이 단검이 좀 특별한 건가?”
[마나를 품고 있습니다. 특이한 검입니다. 스스로 돌아온 검의 날을 한 번 살펴보시죠.]
단검이 바위를 폭파했는데도 날이 멀쩡했다.
다시 몸 안으로 사라진 단검. 무기가 하나 더 늘었다.
* *
나는 F 클래스. 에디는 언제 마나를 그렇게 많이 흡수한 건지 C반이다. 게다가 반장이다.
F 클래스는 정말 멍청한 학생들로 이루어진 반이다.
“실망스럽군. 초급 검술을 헤매다니.”
첫 수업은 검술 훈련이었다. 교관은 기사로 학생들이 대부분 귀족의 자제들이라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다.
“하체가 흔들려서는 검이 제 궤도를 가지 못 합니다.”
“난 못하겠어. 검이 너무 무겁다고.”
이런 식이었다. 어이가 없다.
“정말 너희는 구제불능이야. 내가 보여줄게.”
나는 초중급 검술을 빠른 속도로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와! 천재다.”
“라이언은 월반 준비해. 다음 주에 대련이 있는데 그걸 통과하면 월반이야.”
마나 측정으로 반을 나누는 시스템에 가끔 잘 못 측정될 수가 있어서 월반 제도가 있다고 한다. 4년 이내에 A반을 졸업하면 조기 졸업이다.
오딘이 어디서 엉뚱한 소리를 들은 건지 미녀는커녕 여자도 몇 명 없었다.
여러모로 흥미를 잃은 나는 더는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해서 수업을 빼먹고 학교가 보이는 언덕에 드러누워 낮잠을 자고 있었다.
“여기서 뭐 해? 벌써 농땡이야?”
에디다.
“넌 여기 왜 왔어? 성실한 줄 알았는데.”
“나 월반 준비하래. 그래서 시간이 남아.”
“넌 언제 마나는 그렇게 모은 거야? 던전에서는 별 볼 일 없더니.”
“실전에 약한 거뿐이겠지. 난 중급 마법사야. 그리고 너와 다니면서 많이 늘었나 봐.”
“나도 그럼 바로 B반 월반 신청할까?”
“C반은 F반도 갈 수 있지만 B반은 C반 이후에 갈 수 있어. C반 월반하고 남은 학기는 쉬지그래? 그런다고 하지 않았어?”
“너희 반에는 미녀 없냐? 여긴 순 추남 추녀만 모였어.”
“그래? 우리 반에는 미남미녀만 있던데?”
나는 벌떡 일어났다.
“그래? 반이 후지니까 인물들도 별로였던 건가? 흐흐흐”
나는 다음 달에 C반으로 월반했다. 처음만 마나를 측정하고 그다음부터는 귀족들은 행정 등 교육은 이미 영지에서 받았다고 여기는지 순전히 실력으로 반이 올라가는 시스템이었다. 학교가 순 인맥 만드는 수단일 뿐인가? 뭐하러 있는 건지. 귀족들이란 참.
* *
“형. 나도 C반 왔어요.”
윌리엄, 자이언트 산맥 왼편의 하쿰 왕국에서 온 왕족이다. 나보다 한 살 어리다.
“그래? 자식 열심히 운동하더니 잘 왔다. 여긴 확실히 물이 좋아. 제대로 된 학창시절을 보내겠어.”
“물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여자들이 예쁘다는 말이지 그런 것도 모르냐?”
“와! 그래요? 우리 사촌 누나보다 예쁜가?”
“누나? 몇 살인데 그렇게 예뻐?”
“형하고 동갑인데요. 웨스트 엘도에서는 최고의 미녀라고 하던데요?”
“최고의 미녀? 자식 넌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에 쏙 들더라.
앞으로 뭐 먹고 싶은 거나 간혹 보호가 필요한 일 있으면 형에게 얘길 해라.
넌 순진해서 잘 못 하면 괴롭힘당할 스타일이야.”
“라이언, 누구야?”
“형. 이분은 누구세요? 되게 미남이시다. 우리 사촌 누나하고 있으면 천생연분이겠다.”
“야야야. 내가 이미 찍었어. 네 사촌 누나는. 이미 임자 있는 몸이라고. 에디, 윌리엄인데 하쿰에서 왔어.”
“안녕하세요.”
“응. 그래. 라이언 조심해. 너 버린다.”
에디가 되지도 않는 헛소리를 한다. 산통 깨는 데는 뭐가 있다.
“무슨? 이상한 그런 농담을? 애들은 믿는다고.”
“사실인걸?”
“됐어. 넌 도서관 같은 곳에는 안 가니? 공부나 좀 하지?“
“그래서 왔어. 같이 가자고 하려고.”
“난 거의 다 봤어. 입학 전에.”
“음. 내가 가려고 하는 곳은 못 갔을 텐데? 거긴 열람이 안 되는 곳이라. 내가 교수님께 말씀드려서 키 얻었어. 그리고 넌 우리 엄마를 찾아야 하는 숙제도 있잖아?”
“물론 그렇지. 같이 가자.”
아주 흔쾌히 같이 가기로 하자 에디가 조금은 당황한 것 같았다.
도서관 지하 밀실의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에디와 함께 조심스럽게 내려 갔다.
“여긴 아무도 모르는 숨겨진 보물 같은 것들도 있데. 주인을 기다리는.”
“주인을? 서고에 왜 그런 물건이 있는 거지? 말도 안 돼.”
“이곳이 오래전엔 보물 창고였다고 해. 그냥 호사가들이 퍼뜨린 전설일 수도 있고.”
“신기하네? 프랑켄처럼.”
“프랑켄? 근데 어디 간 거야? 안 보이던데?”
“엘라 태우고 숲 속에 갔어. 엘라가 예쁘다고 나는 이제 거들떠보지도 않아. 그 자식이.”
“응. 여기 있어 봤자 할 일도 없는데 잘됐네. 그리고 아마 숲에 암컷 야생마들이 많으니까 갔겠지. 주인하고 성격이 똑같아. 큭큭.”
“여기 마법 고 서클 주문 책도 있고. 엄마의 원수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도 있을 거야. 같이 찾자. 그래 줄 거지?”
“그럼. 당연하지. 하하.”
물론 나는 보물을 찾겠지. 이런 식의 보물찾기는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장르다.
[오딘, 특별한 기운이 있다거나 마나나 뭐 그런 거 느껴지면 알려 줘.]
[강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물건이 하나 있습니다.]
[벌써?]
이에 웬 횡재냐? 에디는 너무 보수적이지만 착한 구석이 있단 말이야. 깨물어 주고 싶네.
“왜? 그렇게 쳐다보는데? 느끼하게.”
몬스터에 관한 책을 고르는데 책이 너무 빡빡하게 꽂혀 있어서 잘 빠지지 않는다. 힘으로 그냥 확 잡아 빼자 책이 우루루 쏟아졌다.
땡그렁.
뭔가 금속 물체가 바닥에 떨어지며 소리를 냈다.
“봤지? 뭐가 떨어졌는데? 보물은 이렇게 찾는 거야. 이거 혹시 진짜 보물일까?”
분명히 시끄럽다고 뭐라고 할 에디가 말이 없다.
“이상하네?”
고개를 돌리자 에디도 없고 서고도 없어졌다. 그리고 나도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뭐야? 이거?”
“뭐 긴? 넌 위대한 나에게 찍힌 거지.”
“누구 신데 감히 나에게 이러는 거지?”
난 검을 뽑았다. 내 몸 안에 있는 아만티움이다.
“오호! 생각보다 대단한걸? 하지만 난 널 헤치려는 게 아니다. 다시 넣어라. 흉물스러우니까.”
“그럼 원하는 게 뭔데?”
“글쎄? 너에게 급하게 흥미가 생겨서? 너처럼 무식하게 서고를 뒤지는 놈은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어. 게다가 생긴 것도 멍청하게 생겨서 가지고 놀기 딱 좋게 생겼다.”
“멍청? 후후. 착각을 잘하는 놈이구만? 뭔가 부탁할 게 있는 데 수줍어서 그런 거라면 편하게 말해. 내가 좀 대단한 사람이라 보통 사람들이 못하는 것도 다 할 수 있으니까.
대신 나도 부탁할 게 있어.”
“그래? 너에게 뭐 특별한 부탁은 없고. 내가 상당히 심심하거든? 내가 알아서 너 속에서 널 주물럭거릴 거니까 넌 할 게 없어. 편하지? 넌 무슨 부탁인데?”
“나? 여기에 보물이 있데. 그거 찾아 줘.”
“아주 솔직하네? 보통 사람들하고는 달라. 지루하지는 않겠어. 여기서 가장 값비싼 보물을 주지. 팔 내밀어.”
팔에 무언가가 채워지는 느낌이 들고 나는 다시 돌아왔다. 지하 서고로.
[주인님의 팔에서 강한 마나와 생명체와도 비슷한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내 팔에 무지개색이 반짝거리는 팔찌가 채워져 있다.
“진짜 시끄럽게 책 본다. 그건 뭐야?”
에디가 눈을 반짝거리며 팔찌를 바라보았다.
“뭐?”
그러나 어느새 오딘이 분석을 위해 내 몸 안으로 팔찌를 흡수해 버렸다.
“내가 잘 못 봤나?”
[주인님, 책은 그냥 손만 대면 통째로 복사가 됩니다. 에디에게 말해서 중요한 책만 골라 달라고 하시죠. 그리고 이게 뭐지? 전 당분간 휴업입니다. 능력은 유지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야! 오딘!]
말이 없다. 팔찌를 분석한다고 오딘이 어디로 숨어버렸다.
“찾았다. 흑마법사와 마족에 관한 책.”
“에디, 일단 줘 봐.”
난 그냥 책을 잡고 다시 돌려줬다.
“뭐해? 읽어 보겠다고 달라고 한 거 아니니?”
“다 읽었어.”
“아 진짜. 좀 진지해 봐. 쳇.”
“미안하구나. 난 진심으로 진지한데. 능력이 지나치게 크구나. 휴.”
“좋아. 널 믿지. 미친 척하고.”
그리고는 마구 골라서 약 오백 권은 입력한 것 같다.
“자. 이제 뭐 할지 알겠지? 테스트다. 모르기만 해 봐. 진짜. 확!”
하필 오딘이 휴업 중이다. 제기랄.
“하나도 모르잖아. 너는 정말!”
하면서 두꺼운 책의 모서리로 정확히 내 이마를 향해 던졌다.
그런데 갑자기 내 몸에 갑옷이 착착착 둘러졌다.
텅!
책이 내 갑옷에 부딪혀 반이 찢어져 나갔다. 귀한 책일 텐데.
그런데 그 책 어디에 숨겨져 있던 건지 은색 반지가 또르르 굴러 나왔다.
“어? 이게 뭐지?”
에디가 후딱 집어 들더니 자세히 이리저리 살펴본다.
“트리플 엑스다. 전설의 반지를 얻었네?”
“전설? 그게 뭔데?”
“이건 금반지와 쌍으로 있던 아주 오래전 유명했던 반지야. 책에서만 본 건데. 엑스자가 세 개가 있지? 여기.”
“응. 그렇네.”
“같은 문양의 금반지와 함께 능력을 발휘한다고 했어. 주인을 투명하게 만든다고 하던가? 사라지게 한다고 하던가? 암튼 어떤 공격도 통과시킨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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