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언 왕국의 살인마
소니언 왕국으로 들어서려 우리는 국경의 검문을 기다리고 있다.
“수룡은 잘 갔겠지?”
에디가 내 배를 덮쳐 나를 호수에 빠뜨린 수룡과 정이 들어서 가끔 생각나는 것 같다.
그 이후로도 졸졸 우리를 잘 따랐었다.
나는 질색을 했지만 에디는 수룡에게 물고기도 먹여 주고 애완동물처럼 잘 대해 주었었다.
그런데 몸집이 커진다고 엘라가 바다에 데려다주었다.
“바다로 잘 갔어. 라이언이 에디의 성격을 조금만 닮으면 참 좋은 인간이 될 텐데.”
“엘라, 넌 정령이 아니라 천사 같아. 분별력도 뛰어나고.”
“둘이 참 잘 논다.”
소니언 왕국에 살인마가 나타나서 국경에는 검문검색이 강화되었다.
“잠시만요. 마차 안의 짐 검색을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잠시 왼편으로 물러서 주시겠습니까?”
“형, 저 상자는 뭐라고 할 거예요? 열리지 않죠?”
“응. 뭐라고 하지?”
아니나 다를까.
“이 상자 좀 열어 주십시오. 안의 내용만 확인하고 통과시켜 드리겠습니다.”
검문하던 기사가 상자를 가리키며 나에게 말했다.
“그건 안 열리는 데요. 확인시켜드릴 방법이 없어요.”
“그럼 잠시 대장님께서 오기 전까지 임시 숙소에서 기다리셔야 합니다.”
대장은 마법사와 함께 와서 심리 검문을 한다고 했다. 살인마인지 바로 알 수 있다고 한다.
“척 봐도 우린 아닌데 왜 저러는 거지?”
에디가 말했다.
“내가 아까 상점에서 들었는데 살인마가 사람이 아니라는 얘기가 있었어.”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기사는 우리의 신분이 귀족이라 최대한 친절하게 대하는 것 같았다.
“어? 이튼 남작님!”
“윌리엄 공자님, 여긴 무슨 일로?”
“학교 형하고 대륙 횡단 투어 중이에요. 이튼 남작님은 왜 여기에?”
“출장 왔습니다. 겸사겸사 고향 친척들도 뵐 겸.”
“내가 아는 분이네. 통과시키게.”
“공자님, 요즘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강도 살인 사건이 자주 발생한다고 합니다. 이 근처에서만 벌써 이십 명이 당했다고 하는 데요. 조심하셔야 합니다.”
“괜찮아요. 여기 계신 분들이 다들 엄청난 능력자들이라서.”
“특이한 힘을 쓴다고 하니까 밤에는 여행을 자제하십시오.”
“네. 그럴게요. 이튼 남작님도 일 잘 보시고 잘 돌아가요.”
그러나 이튼 남작은 한참 동안 윌리엄과 소곤거리며 무슨 얘기를 오랫동안 했다. 그런데 대화를 끝내고 오는 윌리엄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왜? 집에서 오래?”
“아니요. 휴. 별거 아니에요.”
윌리엄은 나지막이 한숨을 쉬며 내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우린 굳이 여관에 머물지 않고 한적한 곳으로 가서 아공간에서 집을 꺼내기로 했다.
혹시 살인마가 나타날까 걱정은 되었지만 윌리엄과 에디는 스크롤을 가지고 있어서 여차하면 도망가면 그만이었다. 게다가 에디는 통과 반지도 있고.
“에디 말대로 바로 득을 보네? 살인마는 뭘까?”
“살인의 동기도 특별히 없는 것 같고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아직 못 잡은 걸 보니까.”
엘라는 시냇물이 있다고 물 먹으러 가고 아공간에서 꺼낸 집에서 내가 음식을 하고 있다.
“이럴 줄은 정말 몰랐다. 아무도 음식을 할 줄 모르다니.”
에디는 할 수 있는 요리라고는 계란 삶기가 전부였다. 윌리엄은 계란 껍질을 처음 본다고 했다.
“너희 정말 그래서 사랑받겠니? 어휴.”
결국 내가 마늘과 고기를 갈아서 익히고 토마토를 삶아 으깨서 간단하게 면 요리를 했다.
“라이언, 쩝쩝 맛있어. 너 의외의 면이 있구나. 이런 건 언제 배웠어? 요리는 귀족들이 할 일이 없을 텐데.”
나야 혼자 여기저기 털러 다닐 때 많이 해 먹었었지.
“사랑받을 남자라면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어? 난 섬세한 남자라고.”
“난 이거 싫어요. 마늘. 으. 이상한 냄새 나.”
“윌리엄, 남자는 마늘을 많이 먹어야 해. 얼마나 좋은 거라고. 자식. 넌 아직 멀었구나. 정력을 위해선 물불을 안 가리는 남자가 진짜 어른이지.”
“라이언, 마늘이야 좋지만. 누가 그래? 이상한 걸 주입하지 좀 말라고.”
“누가 막 울어. 저쪽 나무들 많은 데서. 물은 맛 있다.”
엘라가 들어 오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어딘데?” 부리나케 나가는 에디를 따라 윌리엄도 나섰다.
“아무도 없는 데서 혼자 울고 싶은 가 보지. 나는 더 먹는다.”
나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다들 나가니 혼자만 먹고 있기 뻘쭘해서 에디의 뒤를 따라갔다.
“흑흑. 마크야. 흑흑.”
웬 아줌마가 땅을 치며 통곡하고 있다.
“무슨 일이세요?”
“괴물이 제 아들을 잡아갔어요. 용사님, 부디. 부디 좀 구해 주세요. 제발요.”
울고 있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무시무시하게 생긴 다리가 여러 개인 괴물이 아들을 돌돌 말아서 잡아갔다고 한다.
“라이언, 현상금이 걸려 있던 그 살인마 같은데?”
“현상금?”
“응. 아까 벽보에 보니 500골드?”
“뭐? 그럼 마나석 5개? 던전보다 훨씬 낫잖아?”
“아주머니, 어디로 갔습니까? 한 놈이었어요?”
“잘 모르겠어요. 저는 뭔가에 맞고는 계곡 반대편으로 굴러떨어져서 잠시 정신이 없었어요. 잘은 모르겠지만 저 절벽 쪽으로 간 것 같아요.”
“윌리엄, 상자는 네가 좀 지켜. 무슨 일 있으면 불덩어리를 하늘로 날려. 내가 금방 갈 테니까.”
“엘라 말고는 아무도 없으니 아쉽지만 알았어요. 제가 엘라를 지켜야죠.”
“에디, 가자.”
난 플라이 마법으로 에디의 팔을 어깨에 걸치고 하늘로 올랐다.
“에디, 넌 이거 못 하니?”
“아직은. 주문을 못 외웠어.”
“내가 알려줄게. 너도 날면 편하겠다.”
“근데 좀 느리다. 뛰는 게 더 빠른 거 아닐까?”
그랬다. 그러나 위에서 보면 범인을 찾기가 더 수월할 테니까.
“저기 시꺼먼 뭔가 움직인다. 보여?”
“어디? 아. 저기 거북이 모양의 큰 바위 아래?”
절벽을 올라가는 검은 물체가 있었다. 수직으로 올라가는 괴물.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가까이 가보니 벌써 어디론가 사라졌다.
“분명히 이 근처에 있을 텐데?”
어느새 해가 져서 주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라이트!”
에디가 밝은 구를 만들어 계곡을 비췄다. 그러자 절벽의 중간 부분에 동굴이 하나 보였다.
우린 동굴로 들어서서 안쪽으로 계속 들어갔다.
“분명히 여기 같은데?”
끼리릭. 끼리릭.
“무슨 소리지? 아악!”
에디가 비명을 지르며 밝은 구를 꺼트리자 사방이 암흑으로 변하고 무언가가 내게 다가오고 있다.
[주인님, 전방에서 생명체가 다가옵니다. 삼 미터 앞입니다.]
코 앞이다.
“라이트!”
“우왁!”
뭔가가 눈 앞에서 날 노려보고 있다. 거울처럼 매끈한 작은 붉은 구 여러 개에 내가 비친다.
내가 위험을 느끼자 손에서 검이 솟아 나왔다.
“분광회전검!”
파바바박!
“끼이이악!” 괴물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시큼한 냄새 나는 액체가 내 얼굴에 쏟아졌다.
검이 몇 번 더 춤을 추자 비명은 멎었다.
“꺅!”
에디 같다. 저런 여성형 비명을 지르는 걸 보니.
“에디! 어디야?”
에디가 마법 공격을 하는지 불이 날아오르며 사방이 환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한 발짝 디디는 내 발 앞에서 푸스슥. 퉁. 퉁. 돌이 아래로 떨어져 굴렀다.
다가가려다 순간 멈칫했다. 바로 앞이 낭떠러지 같다. 그곳으로 에디가 떨어진 것 같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난 상체를 숙이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낭떠러지의 중간 부분에 거미줄로 거미집에 에디가 걸쳐서 그의 다섯 배는 될 법한 엄청나게 큰 거미와 싸우고 있다.
에디가 얼굴을 들어 날 보고는 아미를 찌푸리며 얼른 어떻게 해보라고 고갯짓을 하고는 얼음 화살을 거미에게 날리고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에디가 위험할 수도 있어서 광선보다는 근접 거리에서 검을 날리는 것을 선택했다.
[오딘, 저 대가리를 정확히 조준해줘. 뛰어내리면서 검을 날릴 거야.]
[알겠습니다. 조준 완료!]
“간다. 비켜!”
난 뛰어 내리면서 에디에게 비키라고 한 손을 휘저으며 소리쳤다.
그리고 에디가 거리를 두는 것을 확인하고는 휙 하고 검을 거미의 대가리에 정확히 던졌다.
퍽!
대가리가 터지며 푸른 액이 사방에 튀었다. 그러나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다리는 아직 그대로 에디를 휘젓고 있다.
난 손에서 단검을 발사했다.
슉슉슉슉!
네 발의 단검이 정확히 다리에 맞아 다리가 터지면서 거미의 움직임이 멎었다.
거미줄 위에 내려와서 초록색 액이 범벅된 에디의 머리를 닦아 쓸어주면서 물었다.
“에디! 잘 어울린다. 괜찮아?”
“응. 난 괜찮아. 고마워. 이거.”
에디가 그 와중에 거미의 입에서 튀어나온 노란색 구슬을 받아서 내게 주었다.
“고맙다. 근데 이런 걸 위험한 순간에도 챙기냐? 너도 참.”
“안 챙겼어 봐라. 뭐라고 또 한 참 궁시렁거렸을 거면서.”
“두 마리 잡았다. 수지맞았는데? 키키”
“가자.”
“잠깐만. 여기 다 태우고 가야지. 아래에 알이 많아.”
우린 동굴 속의 거미 알을 다 태우고 거미 두 마리를 아공간에 넣고는 거미줄에 의해 고치가 되어 있는 네 명의 사람을 구해서 돌아왔다.
마크라는 소년은 아주머니에게 잘 데려다주었고 다른 세 명의 어른은 무사히 집으로 보냈다.
그들은 우리를 보고 하늘의 용사라고 불렀다.
에디는 당연한 듯 맞다고 했다. 에디의 행동이 좀 이해가 안 되었다. 내가 모르는 병이 있나 보다.
[주인님, 이거 이상해요. 그동안의 마나와는 다릅니다. 그러나 에너지는 훨씬 많습니다.]
나는 마나 덩어리라고 해서 노란 구슬을 그냥 삼켰었다.
[그리고 어떤 바이오 능력을 신체에 주는 것 같습니다. 분석 후 특별한 해가 없다면 신체에 적용하겠습니다.]
[그래. 그 바이오 능력이라는 건 알게 되면 더 알려 줘.]
“엘라, 이거 보여 줄까? 잡은 거.”
“보여 줘요.” 윌리엄이 대신 대답했다.
“짠!”
집채만 한 거미 두 마리가 허공에서 떨어졌다. 그런데 움직이던 관성 때문인지 다리가 꿈틀거렸다.
“으악!”
윌리엄이 반쯤 정신이 나가고 엘라는 징그럽다고 사방에 물을 뿜었다.
“앞으로 나한테 징그러운 거 보여주지 마!”
“이거! 닦아.”
“그래. 고맙다.”
난 엘라가 뿜어 댄 물을 닦고 에디에게 손수건을 돌려주며 물었다.
“아까 왜 그랬어? 평소 같지 않게?”
“어떤 거? 혹시 하늘의 용사?”
“그래. 그런 거 창피하지 않아?”
“일부러. 다 이유가 있어서 그래. 너에게도 좋은 거니까.”
병이 있는 게 맞군. 에디는 명예욕이 큰 사람인가 보다. 앞으로 그럼 그레이트 에디라고 불러주면 좋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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