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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언

빛 위의 그림자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SF

킬리언
작품등록일 :
2019.04.30 20:49
최근연재일 :
2019.05.10 20:00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964
추천수 :
3
글자수 :
155,545

작성
19.05.10 19:30
조회
30
추천
0
글자
8쪽

태풍 전야

DUMMY

집무실 안엔 연보랏빛 머리에 곱게 나이를 먹어서인지 나이에 비해 팽팽한 얼굴을 하고 노년의 나이에도 총기를 잃지 않은 듯 반짝이는 눈빛을 가진 모린이 커다란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손짓 하나 행동 하나하나 우아하고 기품이 있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시선을 사로잡는 그녀는 금빛 깃털 장식이 된 펜으로 전자 노트에 열심히 무언가 적고 있다가 대장이 들어오자 고개를 들었다.


“왔는가?”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그녀의 기품있는 자태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깊은 보랏빛 눈을 볼 때면 그녀는 왕으로서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조약이라는 굴레로 인해 왕이 되지 못한 비운의 여인이었다.

이름은 레이리스 플라네.

제2대 모린으로서 이 나라에 그녀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대장은 불같은 성격의 모린이 아직도냐며 불호령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대장을 본 모린은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일에 대해 묻지도 않고 그저 한숨만 푹 내쉬었다.


“고생 많았네.”

“죄송합니다. 번에도 역시나 결과가 없습니다.”

“하아. 그랬는가? 알았네. 피곤할 텐데 가서 쉬게.”


세상에 두려울 것 없는 사람이라 늘 자신만만하고 후광이 비친다고 표현할 정도로 빛이 나던 분이 오늘따라 딸의 건강을 염려한 탓에 기운 없는 평범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괜히 짠한 기분이 들어 또 결과 없다는 보고를 드리고 나오는 마음이 무겁다 못해 위에서 신물이 다 올라오는 기분마저 들었다.

모린의 집무실을 나와 걷다 로비에 전시된 거대한 조각상들 앞에 멈췄다.

그 중 쓰러졌다는 그레이시의 조각상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는 그 조각을 올려다보며 턱관절이 울룩불룩할 정도로 강하게 이를 물었다.


‘그녀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찾아낸다. 어떻게든! 그것이 내가 이 자리에 있게 된 이유니까! 어떻게든 그녀에게 미소를 되찾아 주고 말겠어.’


그는 강하게 결심한 듯 자신의 집으로 퇴근하기는커녕 발길을 돌려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


리샤의 비트리오 학교 생활은 행복 그 자체였다.

그녀를 압박하는 사람도 없었고 슈토는 맞을 일이 없었으며 카일은 그녀에게 늘 한결같았다.

가끔 조직에서 그녀를 호출해 중요한 임무를 맡겨 피곤했지만, 스피아를 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삶이었다.

그 사이 늘 날이 서 있던 리샤의 긴장감도 조금씩 잦아들고 3년이란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여전히 또래보단 왜소했으나 제법 키가 커서 입학 당시 줄여 입었던 학생 가운을 새로 맞춰야 할 정도가 되었고 무엇보다 표정이 많이 밝아졌고 가시 돋친 말투도 많이 부드러워졌다.

부드러워졌다고 해도 그걸 느끼는 사람은 슈토와 카일 정도였다.

주변 사람들은 늘 까칠한 태도의 그녀를 얼음 여왕이란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카일과 본관 앞 찻집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요샌 틈만 나면 만나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두 사람은 사람들에게 좋은 오누이로 보이기도 했고 누구에겐 사귀는 사이로 보이기도 했다.


“어어~ 둘이 데이트 중이야? 보기 좋네~”


나이 많은 선배 하나가 외출했다 복귀하며 두 사람을 보고는 놀려댔다.


“데이트 아니거든요!”

“뭐가 아니야~ 너희 둘이 사귄다고 학교 안엔 정설처럼 떠도는데. 꼬맹이 커플이라고 너희 유명하잖아.”

“정설이라고 하다니. 무슨 우리가 연구대상도 아니고.”


리샤가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연구대상 맞지 뭐~ 이실직고해.”

“맞아요. 저희 데이트 중입니다. 선배님.”


카일은 아직 완전히 지나가지 않는 변성기로 인해 걸걸해진 목소리로 수줍게 웃으며 리샤의 손을 덥석 잡았다.


“거 봐.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잘해봐라~”

“카일! 뭐라는 거야! 선배! 아니에요! 아니라니까요!”


선배는 건성건성 알았다는 손짓을 하며 들어가 버렸다.


“카일 자꾸 이러면 곤란해.”

“뭐 어때. 일일이 설명하기 귀찮잖아. 저들 좋을 대로 생각하라고 해. 그리고 난 너 같은 애인이 있으면 참 좋겠다 싶은걸?”

“너까지 그러기야? 우린 친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야!”

“그거 조금 섭섭하네. 난 너 좋은데.”

“이 팔찌! 우정의 증표라며! 평생 풀지 말자며!”


노란 가운의 소매를 걷어 나눠 가졌던 팔찌를 보여주며 강조했다.


“우정이 사랑 될지도 모르는 거잖아.”

“내가 말을 말아야지.”

“넌 내가 싫어?”

“싫은 건 아니지만.......”

“그거 봐. 나중에 우리가 크면 말이야. 그때 너도 나한테 마음이 있으면 내가 너한테 청혼할게! 그땐 내 반쪽이 되어주는 거다!”

“내가 너한테 마음이 있으면 이라는 전제조건 붙인 건 너니까 맘대로 청혼은 하지 마.”

“네. 네. 누가 별명이 얼음 여왕 아니랄까 봐 냉랭하게 굴긴. 여왕님 분부받잡지요. 하하하.”


둘이 옥신각신하고 있는데 두 사람 곁으로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다가왔다.


“저기요. 사진 한번 같이 찍어주시면 안 될까요?”


귀족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카일을 지나가는 관광객들이 흘끔흘끔 보다가 다가온 것이었다.

세간엔 카일을 비트리오 귀공자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로 유명해져 있었다.

그의 배경도 한몫했지만, 카일이 뿜어내는 귀티 때문에 인기가 많은 모양이었다.

나름 팬도 생겨 가끔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선물이 배달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는 여유롭게 관광객과 사진을 찍어주며 사람을 홀린 만한 미소를 지었다.

리샤는 그가 자신 이외의 사람들에게 환한 미소를 짓는 걸 보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 잘 생겼어요~ 고맙습니다~ 어떡해~ 너무 멋져~~ 노란색이 저렇게 잘 어울리기 힘든데 말이야. 뭘 입어도 그림이야~”


관광객들은 호들갑을 떨며 멀리 가지도 않고 카일의 주변을 맴돌았다.


“아무래도 여긴 오래 못 있겠다. 남은 차 마시고 들어가자.”


카일이 먼저 일어섰다.


“응. 안 그래도 슈토가 기다리겠어.”


뒤따라 일어선 리샤의 옆에 그러고 보니 늘 24시간 붙어있던 그림자가 없었다.

두 사람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데이트 같지 않은 데이트를 하고 있건 말건 슈토는 방에서 비칼비 교수가 넘겨준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있었다.

비칼비는 교수 자리 유지를 위한 논문과 발명품들을 정리하느라고 밤낮없는 탓에 세심하게 핀에 정보를 담은 머리카락을 고정하는 작업까지는 해서 줄 여력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슈토가 맡아서 그 일을 하고 있었다.

요샌 리샤가 제법 성장해서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보좌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이렇게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시간이 늘어났다.


“아. 이거 쉽지 않네. 으윽.”


그는 기지개를 켜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몸을 풀어주었다.

그는 비칼비가 평소 정보를 담은 머리카락들 때문에 눈이 고되다고 투덜거리던 걸 몸소 느끼고 있었다.

그 가느다란 머리카락들을 핀에 간신히 다 붙이고 한숨 돌리며 며칠이 접선 날짜인지 확인하기 위해 달력을 보다가 지난번 정보 전달자로 왔던 진이 몰래 건넨 말이 떠올랐다.


‘조직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아. 내부 간부들 사이에 분열이 알게 모르게 일어나고 있어. 보스를 따르는 보스파와 반 보스파로 갈라질 것 같은 조짐이 보이니 죽은 듯이 지내.’


라는 말을 했었다.


“심각해지면 리샤를 데리고 도망쳐야 할 텐데....... 여기선 조직 상황을 빠르게 알 길이 없으니.......”


다음번 외출 시에 그저 진이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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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위의 그림자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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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소환 명령 19.05.10 30 0 8쪽
» 태풍 전야 19.05.10 31 0 8쪽
45 레이리스 19.05.10 31 0 8쪽
44 이상한 교수 19.05.10 30 0 8쪽
43 엄마의 목걸이 19.05.10 28 0 9쪽
42 다시 가시돋힌 19.05.10 28 0 7쪽
41 입학식 2 19.05.10 31 0 8쪽
40 입학식1 19.05.10 27 0 7쪽
39 기쁘지만은 않은 합격 소식 19.05.10 30 0 7쪽
38 아이들의 괴롭힘 19.05.10 29 0 7쪽
37 리샤의 과거3 19.05.10 32 0 8쪽
36 리샤의 과거2 19.05.10 30 0 7쪽
35 리샤의 과거1 19.05.10 29 0 7쪽
34 복귀 19.05.10 31 0 8쪽
33 잠깐의 휴식 19.05.10 29 0 7쪽
32 시험날의 잊지 못할 추억 19.05.10 32 0 7쪽
31 붙어도 그만 안 붙어도 그만 19.05.10 29 0 7쪽
30 꼬맹이들의 달콤한 시간 19.05.10 29 0 8쪽
29 다시 만난 적? 친구? 19.05.10 28 0 8쪽
28 시험이 미션 19.05.10 30 0 7쪽
27 투정 19.05.10 10 0 7쪽
26 기계화된 세상 19.05.10 10 0 9쪽
25 비트리오 학교 입성 19.05.10 9 0 9쪽
24 새해부터 주어진 임무 19.05.10 8 0 7쪽
23 무조건 우승 19.05.10 9 0 8쪽
22 사건 발생 19.05.09 7 0 8쪽
21 못된 심보 19.05.09 9 0 8쪽
20 그녀를 다스리는 법 19.05.09 10 0 8쪽
19 친구가 되고 싶은 아이 2 19.05.09 12 0 8쪽
18 친구가 되고 싶은 아이 19.05.09 9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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