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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귿 공방

카델(CADEL)-미지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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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귿(D)
작품등록일 :
2023.05.31 09:23
최근연재일 :
2023.06.11 19:30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3,825
추천수 :
251
글자수 :
164,018

작성
23.06.10 19:30
조회
79
추천
8
글자
9쪽

습격-3

DUMMY

“연아야! 연아야!”


거친 호흡을 정리하랴 연아를 소리쳐 부르랴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러나 잠시도 쉴 수 없었다. 이미 어둠은 짙어졌고, 조금 전까지 희미하게나마 들리던 학생들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만약 학생들이 먼저 연아를 찾았다면, 그들의 외침은 ‘연아’가 아니라 ‘선생님’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들은 목소리는 연아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비 오듯 흐르는 땀을 닦을 새도 없이 숲을 헤쳤다. 언덕에서 미끄러지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무릎은 시큰거리고 온몸이 따갑고 쓰렸다. 사물도 제대로 분간되지 않아 몇 번이나 나뭇가지에 부딪혔다. 그래도 발길을 멈출 수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면서도 정신없이 걸음을 옮겼다.


“연아야! 대답해 봐! 연아야!”


모든 게 후회스러웠다. 마음을 가다듬고 연아의 흔적을 차근차근 찾으며 쫓아야 했다. 연아의 마음을 헤아려 혼자 두지 말았어야 했다. 친구들과 관계가 소원해지기 전에 달래야 했다. 억지로라도 일을 시켜야 했고, 어떤 불만이 제기되더라도 강제적으로 학생들을 통제해야 했다. 처음부터 모두 그랬어야만 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이젠 돌이킬 수 없다.


‘아니! 되돌릴 수 있어!’


태준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연아만 찾으면 돼. 연아만 무사히 찾으면 모든 걸 되돌릴 수 있어. 전부 해결할 수 있어!’


아직 늦지 않았다. 연아에게 아무런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다시는 비슷한 문제가 벌어지지 않도록 통제할 수 있다. 꼰대, 공공의 적이 돼도 괜찮다. 학생들의 안전만 지킬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연아야! 선생님이야! 연아야!”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아무리 닦고 문질러도 흐르는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일주일 전 해변에서 눈을 떴을 때도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비행기 사고에서 살아난 기쁨과 환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눈물이 흐를 정도는 아니었다. 태준을 따라 숲을 헤맬 때도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동훈과 친구들을 만났을 때도, 이곳이 무인도란 사실을 알았을 때도 친구들의 눈물에 공감하지 못했다. 그런데 왜 지금껏 아무 반응도 없던 눈물이 이리도 흐르는 걸까. 연아는 숨까지 헐떡이며 엉엉 울었다.


한참을 울고 나니 가슴을 옥죄던 답답한 마음이 조금 풀린 기분이었다. 눈물은 더 이상 흐르지 않고, 호흡도 안정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울음의 대가는 참담했다. 목에선 쉰 소리가 나오고, 눈꺼풀은 팅팅 부었다. 얼마나 추한지 보지 않아도 선명히 그려졌다. 이 꼴로 친구들에게 돌아갈 수는 없다. 이곳에 온 뒤로 제대로 된 꼴이었던 적이 없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망가진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조금만 더 있다 가야겠다.”


적어도 눈꺼풀에 부기는 빠진 뒤에 돌아갈 생각이었다.


숲속의 소리는 해안과 전혀 달랐다. 다양한 산새 지저귐이 사방에서 들리고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가 파도처럼 쉴새 없이 사방을 울렸다. 향긋하고 시원한 바람은 비릿한 바닷바람의 끈적거림과 사뭇 달랐다. 상쾌하고 포근하며 편안했다. 친구들을 피해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했던 건데 썩 훌륭한 선택이었다.


“사람들이 이래서 산을 오는구나.”


생각해 보니 일부러 산이나 숲을 찾은 적이 없었다. 해외여행도 유명 유적지나 바닷가 휴양이 대부분이었다. 여행은 편안한 휴식이 목적인데 땀 흘리고 사서 고생하고 싶지 않았다. 내려올 산을 왜 오르는지, 위험하고 벌레도 많은 숲을 왜 찾는지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때론 한심해 보일 정도였다. 선호가 꼭 그랬다.


“캠핑? 부시 크래프트에 가깝긴 하지만······.”


으레 그렇듯 전학 첫날 선호를 향한 관심은 지대적이었다. 학생들은 쉬는 시간마다 우르르 몰려들어 전학생을 둘러싸고 호기심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전학생은 소극적이고 어눌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전학생을 향한 관심은 이내 시들해졌다. 그래도 몇몇은 꾸준히 전학생의 면모를 확인하려 노력했다.


“부시 크래프트? 그게 뭐야? 캠핑이랑 다른 거야?”


취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알아들은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캠핑의 일종이야. 수풀이란 뜻의 부시(Bush)하고 기술의 크래프트(Craft) 합성어로, 자연에서 얻는 재료로 도구 같은 걸 만들어서 즐기는 캠핑을 말하는 거야. 정글의 법칙 봤지? 거기에서 불 피우고, 도구 만들어서 사냥도 하잖아. 그런 거 하는 거야.”


주눅 들었던 전학생의 얼굴이 처음으로 활짝 피었다. 어눌했던 목소리에 생기가 돌았다. 대화를 지루하게 만들던 말투는 사라지고, 알아듣지 못할 전문 용어가 와르르 쏟아졌다. 교실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신나 떠들었다. 그러나 듣도 보도 못한 유별난 관심사는 공감을 얻지 못했다.


선호는 딱히 성격이 모나거나 무례하지 않았다. 도리어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친절했다. 그러나 관심사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공부, 연예인, 음악, 게임, 운동, 연애까지 어느 하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캠핑과 트레킹밖에 몰랐다. 결국 친구들의 대화에 섞이지 못했다. 친구들도 선호의 관심사가 어색하고 불편해 다가가지 않았다. 대화의 단절은 자연스럽게 선호와 거리를 벌렸다.


‘이상하긴 해도 나쁜 애는 아니었는데······.’


선호와 대화는 고사하고 인사 한 번 나눈 적이 없었다. 그런데 비행기 추락 전 마지막으로 대화 나눈 게 선호라니······.


하필 옆자리에 앉은 게 선호라 불쾌했다. 고작 한 시간도 안 되는 비행에 호들갑 떠는 게 짜증 났다. 어딘가 조금 부족해 보이는 듯 어눌한 말투가 거슬렸다. 한마디 할 때마다 눈치 보고 주눅 드는 게 귀찮았다. 지나치게 상대를 배려하는 행동이 불편하면서도 마음 쓰였다. 그리고··· 옆자린데 혼자만 살아남아 미안했다.


‘하아··· 왜 하필 그 애 생각이 나는 거야.’


사고 전 마지막으로 나누던 대화가 머릿속에 울렸다. 생각을 떨치려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하지만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도리어 선호가 신나서 떠들던 소리가 어렴풋이 메아리쳤다.


“불 피우는 거 그렇게 어렵지 않아. 요령만 알면 누구나 할 수 있어. 그 영화에서 숲에서 길 잃은 여자 주인공이 밤에 혼자 야영지 찾아오잖아. 그러면 안 돼. 밤에 길을 잃으면 가급적 움직이지 않는 게 좋아. 차라리 안전한 곳에 숨어 있다가 밝을 때 움직이는 게 훨씬 안전해. 맨손 낚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 나도 몇 번이나 해 봤는데 한 번밖에 성공하지 못했어. 차라리 숲에서 도구를······.”


‘누가 그런 걸 재밌어한다고··· 그래도 그 애가 살아있었으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심하다 욕하고 무시했으면서 필요에 따라 찾는 건 너무 비겁했다.


눈꺼풀을 더듬었다. 다행히 부기는 제법 빠진 것 같았다. 더 시간을 지체하면 친구들이 찾아 나설지도 모른다. 더 큰 민폐를 끼치기 전에 돌아가야 했다. 자릴 털고 일어난 연아는 터전을 향해 숲을 헤쳤다. 이미 한 번 밟고 꺾으며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뭇가지나 가시에 긁히거나 다치지 않도록 신경 쓰며 한참을 걸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언제부턴가 지나온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가지가 꺾이고 밟힌 흔적이 전혀 없었다.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봤다. 울창한 숲, 빽빽한 아름드리나무, 하늘을 뒤덮은 나뭇잎,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몇 가닥 빛줄기까지 똑같다. 잠자리 주변, 계곡, 조금 전 쭈그리고 앉아 울던 숲속과 똑같았다. 전혀 다른 곳 같으면서도 비슷했다. 여기가 어딘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길을 잃었나?’


등골이 오싹해지며 식은땀 한 방울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시원하고 상쾌하던 바람이 오싹했다. 푸르고 아름답던 숲이 괴기스러웠다. 산새 지저귐은 예견된 불행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숨을 죌 듯한 공포가 가슴을 짓눌렀다. 눈앞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속이 메슥거리고 어지러웠다. 다리도 풀려 멀쩡히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비틀거리며 나무에 기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한참 만에 호흡이 되돌아오자 시야도 맑아졌다. 흰 물감을 바른 듯 흐릿하던 땅바닥 가득한 낙엽과 잡초들이 선명히 보였다.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고개를 들었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자세히 살펴보면 분명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천천히 주변을 훑었다. 조금 전 헤친 수풀, 그 너머 아름드리나무, 그 너머 골짜기, 익숙한 듯 낯선 수풀 너머, 그 너머 어디선가 들릴 것 같은 파도 소리까지 찾으려 집중했다. 그러나 친구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정보는 어디에도 없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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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생존-5 23.06.05 82 7 12쪽
12 생존-4 +1 23.06.05 85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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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표류-7 +1 23.06.02 97 6 12쪽
6 표류-6 23.06.02 104 7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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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표류-3 +4 23.06.01 130 9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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