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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귿 공방

카델(CADEL)-미지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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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귿(D)
작품등록일 :
2023.05.31 09:23
최근연재일 :
2023.06.11 19:30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3,823
추천수 :
251
글자수 :
164,018

작성
23.06.04 19:00
조회
90
추천
7
글자
10쪽

생존-3

DUMMY

앞장선 태준의 뒤를 바짝 따르던 동훈의 눈이 번쩍 뜨였다. 쉬지 않고 들려오는 파도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 너머로 낯익은 풍경 선명했다. 파란 하늘을 배경 삼아 우뚝 솟은 바위는 처음 눈을 떴을 때 해안의 한쪽을 막고 있던 절벽 봉우리와 똑같았다.


“저, 저기··· 선생님, 저기요!”


당황한 동훈의 목소리에 태준과 친구들의 시선이 나뭇잎 사이로 드러난 바위를 향했다. 특별할 게 없는 바위에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는 친구들과 달리 한영과 상국은 크게 반색하며 소릴 질렀다.


“맞아! 저기야! 저기!”


“와! 찾았다! 애들 있는 곳이야!”


동훈 등을 만났을 때 바닷소리를 들었다. 드디어 지긋지긋한 숲을 탈출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만약 보람과 다른 학생들의 생존을 몰랐다면, 해안에서 구조를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학생들을 내버려 둘 수 없었다.


태준은 동훈의 의견을 수용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학생들을 이끌고 다시 숲을 헤쳤다. 인원이 많아진 만큼 속도는 느렸다. 여전히 확실하지 않은 목적지를 향한 발걸음 또한 무거웠다.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 착실히 지난 자리를 표시했다. 필요 이상으로 나무를 꺾고 밟아 눈에 띄게 길을 넓혔다. 다시 길을 잃더라도 계곡과 해안만 찾으면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우려는 기우였다. 생각보다 빨리 학생들이 있는 해안을 찾았다.


“보람아! 지우야!”


해안에 즐비한 마른 나무처럼 쓸쓸히 앉아있던 보람은 귀를 의심했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소리를 좇아 바삐 시선을 돌리던 그들의 눈에 막 숲에서 뛰어나오는 동훈이 보였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슴을 단단히 막고 있던 걱정은 반갑게 소리치며 손을 흔드는 동훈을 본 순간 말끔히 사라졌다. 드디어 해방이다. 끔찍했던 고생에 마침내 종지부가 찍히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동훈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기다려 마지않던 구조대가 아니었다. 한영과 상국도 아니었다. 담임 태준과 다른 친구들이었다.


“저기··· 쌤 아니야? 그리고 뒤에··· 정하야!”


미연과 유리는 친구들을 다시 본 반가움에 한달음에 뛰어갔다. 보람과 지우, 석훈도 친구들을 향해 달렸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을 다시 만난 반가움은 굶주림과 갈증도 잊게 만들었다.


“으앙. 난 너희들 죽은 줄 알았어. 우리만 산 줄 알았다고.”


단짝 정하를 끌어안은 미연은 바로 울음을 터뜨렸다. 유리도 그들의 등을 얼싸안았다. 다른 친구들도 다르지 않았다. 억지로 누르고 있던 감정들이 복받쳐 얼싸안고 눈물 흘리며 재회를 반겼다. 이미 재회의 기쁨을 나눈 동훈만 가운데서 홀로 머쓱했다.


“너희들 너무 한 거 아니냐? 난 안 보여? 난 안 반가워?”


그러나 아무도 동훈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만의 감정에 빠져 안중에도 없었다. 대신 태준이 동훈의 어깨를 토닥였다. 재회의 반가움에서 소외된 건 태준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학생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했는데, 이런 상황에선 그냥 어른일 뿐이었다.

자꾸만 눈에 고이는 눈물을 훔치며 반가움을 나누던 보람의 눈에 한영과 상국이 들어왔다. 숲에서 막 빠져나온 둘은 해변에 벌어진 상봉 현장에 어색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어떤 고생을 했는지 얼굴과 몸에 작은 상처들이 가득했다. 그제야 덩그러니 어색하게 서 있는 동훈이 보였다.


“미안··· 힘들었지? 괜히 내가 쓸데없는 소리 해서 고생했지?”


“아냐. 내가 길 잃어서 한영이하고 상국이가 고생했지. 너희는 어땠어? 별일 없었어?”


“응. 우리야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데 별일이야 있겠어? 근데··· 구조대는?”


십여 개의 시선이 동시에 보람을 향했다. 친구들과의 재회보다 더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그러나 눈빛에 담긴 감정은 두 종류로 나뉘었다. 기대와 희망, 흥분으로 떨리는 눈빛이 먼저 바쁘게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웬일인지 다른 친구들은 그들의 눈빛을 피했다. 태준도 차마 기대에 가득 찬 그들의 눈빛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구조대는? 다른 사람들은 어딨어?”


당연히 한영과 상국의 뒤로 구조대가 따라 나올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직 한 사람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멈추지 않을 것 같던 눈물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기대로 가득했던 눈빛은 스멀스멀 밀려오는 불안에 파르르 떨렸다. 보람, 지우, 미연, 유리, 그리고 석훈까지 다급하게 주변을 훑었다. 어디선가 나타나리라 믿던 구조대를 찾는 게 아니었다. 담임 태준과 친구들의 반응을 살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그 눈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또 한 번 희망이 무너졌다.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어둠에 갇힌 듯한 절망이 몸을 짓눌렀다.




가급적 해안으로 걸었다. 바위나 절벽으로 막힌 곳은 굳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최대한 해안에 가깝게 숲을 헤쳤다. 부두나 사람의 흔적을 찾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4시간이 넘도록 걸으면서 부두는 고사하고 흔한 쓰레기 하나 찾지 못했다. 물병에 반쯤 남았던 물은 오래전에 비웠고, 굶주림은 점점 심해졌다.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젖 먹던 힘이라도 쥐어짜겠지만, 나아가면 갈수록 이곳이 무인도라는 확신만 강해졌다.


더는 걸을 힘도 의지도 없었다. 선호는 모래사장에 주저앉았다. 햇빛을 피할 기운조차 남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눈을 감고 잠들고 싶었다.


“하아··· 괜히 오바했나?”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한 줌도 되지 않는 희망에 너무 큰 기대를 걸었다. 수색 중인 구조대를 만날 수도 있다. 고깃배의 눈에 띄거나 바위산에서 보지 못한 사람의 흔적을 발견할 수도 있다. 수도 있다······. 어째서 희박한 확률에 모든 걸 걸고 아무 준비도 없이 무모한 걸음을 시작했던 걸까? 그러나 후회해봐야 이미 늦었다. 되돌아간다고 해서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작열하는 태양 볕에 수분이 증발하듯 기운도 서서히 몸을 빠져나가 하늘로 흩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의지도 점점 희미해졌다. 그냥 이대로 잠들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아니고 싶었다. 그냥 이대로 잠들면 모든 게 편해지고 해결될 것 같았다. 무거운 눈꺼풀이 스르르 내려왔다. 포근한 어둠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던 그때 무언가 선호의 이마를 때렸다.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왁! 뭐야?”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난다는 게 그만 모래에 발이 빠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엉덩이를 타고 허리로 올라오는 얼얼한 통증을 느끼며 충격의 정체를 찾았다. 바쁘게 움직이는 시선에 들어온 건 작은 나뭇가지였다.


“아이씨, 뭐야··· 괜히 놀랐네.”


바람에 날아왔을 나뭇가지에 맞은 것도, 별것도 아닌 일에 놀란 것도 약 올랐다.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 나뭇가지를 향해 신경질적으로 발길질했다. 발에 차인 모래가 사방으로 튀고 나뭇가지도 저만치 날아가 모래 위에 떨어졌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가기 싫은데 억지로 떠난 수학여행, 비행기 사고, 어딘지 알 수 없는 섬, 구조대는 보이지 않고, 배도 고프고 목도 말랐다. 햇볕은 뜨거웠고, 씻지 못한 몸은 끈적거리고 찜찜했다. 그냥 모든 게 짜증 나고 화가 치밀었다. 억지로 참고 눌렀던 감정이 한 번에 치밀어 올랐다. 화산처럼 뿜어진 역한 감정은 우연히 바람에 날아와 머리를 때린 나뭇가지를 향했다.


“씨발! 좆 같은 수학여행! 좆 같은 비행기! 좆 같은 새끼들!”


모래 위에 덩그러니 떨어진 나뭇가지를 향해 사정없이 발을 굴렀다. 찍고 짓밟고 짓이겼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치미는 화를 토하며 발을 굴렀다. 나뭇가지는 순식간에 부러지고 부서져 모래에 박혔다. 형체를 찾아볼 수 없을 때까지 발길질을 멈추지 않았다. 한참을 씩씩거리며 분풀이하던 선호는 제풀에 지쳐 털퍼덕 주저앉았다. 눈물이 났다. 절망밖에 남지 않은 현실이 힘들고 두려웠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씨발··· 수학여행 안 간다니까······.”


울먹이며 엉망이 된 모래 한 줌을 쥐어 던졌다. 그래도 기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되려 배만 더 고팠다. 겨우 남겨뒀던 마지막 에너지를 짜증에 쏟은 덕에 몸에 힘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축 처진 몸을 늘어지는 대로 늘어뜨리고 앉아 멍하니 지저분하게 파헤쳐진 모래에 시선을 걸쳤다. 눅눅하게 젖은 갈색 모래 사이로 부서진 나무 조각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모래를 헤쳐 나무 조각을 집어 들었다. 죄없이 화풀이의 대상이 된 나뭇가지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네가 무슨 죄가 있겠냐.”


사죄의 의미로 태어난 곳으로 돌려보낼 생각으로 던지려 팔을 뒤로 뻗었다. 그런데 그때 문득 머릴 스치는 장면이 있었다. 뒤로 뻗은 손을 얼굴 앞으로 가져와 펼쳤다. 손바닥 위에 놓인 나무 조각에 뭔가 이상한 게 붙어 있었다. 손가락으로 들고 이리저리 자세히 살폈다. 확실하진 않지만 아무리 봐도 이끼처럼 보였다. 황급히 엉망이 된 모래를 뒤졌다. 그 안에 제법 긴 형태로 남은 나뭇가지를 찾았다. 역시 이끼로 보이는 것이 붙어 있었다.


‘이끼가 왜······.’


벌떡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파란 하늘, 작열하는 태양에 비친 밝은 세상,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 바람결에 흔들리는 숲··· 모든 게 그대로다. 그러나 선호는 관찰을 멈추지 않았다. 눈은 바쁘게 숲과 굽은 해안을 훑었고, 남은 신경은 새로운 소리를 찾으려 집중했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조금 전까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늘어져 있던 몸은 거짓말처럼 멀쩡히 움직였다.


해안을 따라 천천히 걷던 선호의 눈이 갑자기 번쩍 뜨였다. 아직 눈에 보이진 않지만 확실히 들렸다. 시끄럽게 세상을 흔드는 파도 소리 사이로 분명히 들렸다. 소리는 저 앞 모래사장을 가로막은 숲속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소리의 정체를 확신한 선호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숲을 향해 달렸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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