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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귿 공방

카델(CADEL)-미지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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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귿(D)
작품등록일 :
2023.05.31 09:23
최근연재일 :
2023.06.11 19:30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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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24
추천수 :
251
글자수 :
164,018

작성
23.06.0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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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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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2쪽

생존-4

DUMMY

좁은 계곡에서 졸졸 흐르는 물은 지금까지 먹었던 그 어떤 물보다 아니, 음식보다 맛있었다. 달고 시원한···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풍미가 느껴질 정도였다. 벌컥벌컥 정신없이 물을 들이켰다. 둥글게 모은 두 손에 고인 물을 얼마나 마셨는지 허기도 제법 가셨다.


“후··· 이제 좀 살겠다. 물이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어.”


“공감. 나 이제 음료수 안 마시고 물만 마실 거야.”


“나도, 나도! 물이 최고네.”


바싹 말라비틀어졌던 몸이 생기를 찾으며 활짝 펴지는 것 같았다. 갈증과 허기를 달랜 덕에 찾아오는 만족감에 미연과 유리는 오랜만에 긴장을 풀고 활짝 웃으며 낄낄댔다. 보람과 지우도 한데 어울려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석훈은 혼자였다. 여학생들의 대화에 좀처럼 스미기 힘들었다. 대신 이번엔 동훈이 옆에 있었다.


“넌 안 마셔?”


“난 아까 많이 마셔서 괜찮아.”


“그래도 다행이다. 가까이 물이 있어서. 한··· 10분 걸렸나?”


“그 정도 될 거야.”


의도는 달랐지만, 길을 넓힌 덕에 계곡까지 오는 길이 처음보다 훨씬 수월했다. 직접 수풀을 헤치고 길을 넓히며 걸었을 땐 30분도 넘게 걸렸던 거리가 이젠 10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 물 괜찮은 걸까? 전에 어디서 봤는데, 계곡물 조심해야 한다고 하던데··· 짐승 시체나 똥 때문에 오염됐을 수도 있다고.”


“엑? 진짜? 그럼 병균 옮는 거야?”


유리의 말에 미연은 구역질하는 시늉을 했다.


“하하하. 괜찮아. 아까 우리도 다 마셨는데 아직 이상 없잖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동훈도 처음엔 계곡물을 보고 망설였다. 아무리 깨끗해 보이는 물이라 해도 유리의 말처럼 알게 모르게 오염됐을지 몰랐다. 하지만 원혁의 말에 안심할 수 있었다.


“선생님도 그러더라.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먼저 마셔보겠다고. 한··· 한 시간쯤 기다렸나? 아무 이상 없더라. 그래도 불안하셨는지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목만 축이래. 그리고 또 기다렸어. 사람마다 반응이 다를 수도 있다고. 다행히 다들 괜찮더라. 그때부터 우리도 벌컥벌컥 마셨어.”


처음으로 담임 태준이 달리 보였다. 학생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장난 좋아하는 담임이 때론 나잇값 못하는 철딱서니 없는 어른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숲에서 태준을 다시 만났을 때 크게 실망했다. 태준은 의지할 수 없는 어른이란 생각이 강하게 박힌 동훈에게 통제를 방해하는 훼방꾼으로만 보였다. 차라리 친구들만 있었다면 더 좋았을 거라 생각했다. 어른이면서 무모한 선택으로 학생들을 고생시킨 사실을 알게 됐을 땐 더욱 한심하게 보였다. 그런데 원혁의 말을 듣고 나니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그래도 어른은 어른이구나.’


함께 있는 친구 중에 이 상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친구는 많지 않았다. 또래에 비해 체격과 힘이 압도적인 철현, 냉정하게 상황을 보고 현명하게 판단하는 보람, 온화한 성격으로 친구들에게 인정받는 중재자 지우 정도였다. 상국과 원혁도 딱히 모나지 않은 성격에 체력도 좋아 무난했다. 그러나 나머지 친구들은 못 미더웠다. 특히 한영과 은서는 불안할 정도였다. 연아도 걱정되긴 마찬가지였다. 까칠하고 제멋대로에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연아가 극한 상황에서 적절히 융화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언제까지 기다려야 되는데요?”


해변에 발을 딛는 순간 연아의 찢어질 듯한 고함이 동훈을 맞았다. 우려하던 일이 벌써 벌어졌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슬그머니 철현에게 다가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무슨 일이야?”


“담임이 모래사장에 나뭇가지 모아서 구조신호를 만들자고 했어.”


그러고 보니 해변 한쪽에 나뭇가지를 모아 제법 크게 만든 구조신호(S.O.S)가 있었다. 고작 나뭇가지 몇 개 모아서 구조신호를 만드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연아의 성격상 허드렛일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담임을 비롯해 반 친구들도 굳이 연아가 거들도록 종용하지도 않았을 텐데, 연아가 저렇게 화를 내는 이유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알잖아. 담임. 저거 다 만들고 엄청 나대더라. 하늘에서 보일 정도로 크게 만들었으니 금방 구조될 거라고. 캠핑 왔다고 생각하고 조금만 견디면 구조대 금방 올 거라고 혼자 신나서 엄청 떠들었거든. 안 그래도 어제부터 담임 때문에 고생해서 짜증 잔뜩 났는데 좋게 보이겠냐? 이게 무슨 캠핑이냐고, 지금 웃음이 나오냐고······.”


잠깐이라도 담임에게 기대를 걸었던 순간이 후회스러웠다.


“연아야, 그만하자. 선생님은 우리 힘내라고 하신 말씀이시잖아.”


보다 못한 보람이 나섰지만 연아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선생님이잖아요! 어른이잖아요! 어떻게 좀 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틀 동안 물밖에 못 마셨다고요!”


매몰차게 몰아붙이는 연아의 투정에 태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힘들고 불안한 건 태준도 학생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태준의 불안은 더욱 컸다. 학생들에게 차마 말을 하지 못했지만, 이곳이 어딘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사고 지점을 생각하면 분명 남해안 어딘가이다. 그런데 그 흔한 양식장이나, 고깃배 한 척 보이지 않았다. 지형은 더 이상했다. 태양의 위치를 고려했을 때 어제 정신을 차린 해안과 이곳은 반대쪽이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다. 곶이거나 섬이다. 둘 다 말이 안 된다. 남해안에 동서로 길게 뻗은 곶은 들어본 적도 없다. 이토록 울창한 숲과 쓰레기 하나 없는 해변을 가진 섬도 역시 들어본 적이 없다.


‘도대체 이곳은 어디지?’


학생들과 의견을 나눌 수도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굶주림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학생들의 불안을 키울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학생들을 안심시키고 조심스럽게 알아볼 생각이었다. 그러려고 일부러 사소한 노동을 시켰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 몸을 움직이면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 거란 계산이었다. 과도한 감정 표출도 분위기를 상기시키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전부 허사였다. 연아뿐 아니라 학생들의 눈빛엔 여전히 불안과 불신이 가득했다.


“조금만 진정하자. 선생님이라고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우리도 같이 방법을 찾아보자. 다 같이 생각하면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동훈은 연아를 진정시키고 태준에게 다가왔다.


“지치고 힘들어서 그러니까 선생님이 이해하세요. 나쁜 의도로 저러는 건 아닐 거예요.”


단 두 마디로 상황을 정리하는 동훈이 새삼 놀라웠다. 이제 18살밖에 되지 않은 학생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고맙다. 동훈이 네가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다.”


태준은 믿음직스러운 동훈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학생들을 향해 소리쳤다.


“얘들아! 모여봐. 우리 모여서 얘기 좀 하자.”


하나둘 태준과 동훈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연아만 그늘에 앉아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려 애써 외면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회의를 좀 해보자. 선생님은 일단 가만히 있을게. 그러니 너희들끼리 자유롭게 회의를 해봐.”


학생들의 눈빛에 숨은 불신을 확인한 태준은 지시를 포기했다. 이미 한 번의 큰 실수로 믿음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그래도 선생이라는 위치 덕에 구조신호를 만드는 것까진 따랐다. 하지만 연아가 터뜨린 불만은 다시 불신의 불씨가 되어 점점 불꽃을 키워갔다. 이럴 때 무조건적인 지시는 불만을 쌓을 뿐이다. 해소되지 못한 불만이 계속해서 불신을 키워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처하는 순간, 연대는 깨질 수밖에 없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일부러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숲에서 과일 찾아보면 어때요?”


미연의 의견에 친구들이 먼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밤새 숲을 헤매면서 먹을만한 과일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낚시는요?”


“맞아. TV에서 보니까 작살 만들어서 물고기도 잡고 하던데.”


“작살이 없잖아.”


“나무 깎아서 만들면 되지.”


“나무는 뭘로 깎고? 칼도 없잖아. 그리고 물고기 잡아서 어떻게 할 건데? 그냥 먹어?”


“불 피워서 구워 먹으면 되지.”


“불? 너 라이터 있어? 불을 어떻게 피울 건데?”


“넌 왜 반대만 하는 건데? 사사건건 반대만 하지 말고 너도 의견을 내봐. 그렇게 잘났으면 네가 방법을 얘기해 보라고.”


“누가 잘났대? 네가 하도 어이없는 얘기만 하니까 그러지.”


회의는 순식간에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의견 제시나 옳고 그름에 대한 논의 보다 상대 의견의 단점을 비난하고 무시했다. 기본 지식이 없는 회의의 당연한 결과였다.


확실하지 않은 정보를 가지고 무작정 의견을 뱉는다. 합당한 근거가 없는 의견의 허점은 신용을 주지 못한다. 상대는 허점을 파고들어 반대 의견을 제시하지만, 역시 납득 시킬 정보와 근거가 정확히 제시되지 못한다. 결국 상대 의견의 허점만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개싸움만 남았다.


“그만, 그만해. 이렇게 싸우기만 해서 어쩌자는 거야?”


결국 동훈과 보람이 끼어들었다.


“일단 진정하고 정리부터 해보자. 우선 우리한테 필요한 게 음식하고 불이라는 거잖아. 맞지?”


보람의 질문에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숲에는 먹을 게 없는 거 맞지? 그럼 바다밖에 없는데··· 낚시해 본 사람 있어?”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당연히 불 피워본 사람도 없을 거고··· 라이터 가진 사람 진짜 없어?”


십여 개의 시선이 태준을 스쳐 철현과 한영에게 쏠렸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철현과 한영은 태준의 눈치를 살피며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왜? 우릴 왜 보는데?”


“없어. 우린 아무것도 없어. 진짜야. 뒤져봐.”


그러나 의심의 눈초리는 전혀 가시지 않았다.


“그러지 말고 줘봐. 너네 담배 피우는 거 여기 모르는 사람 있냐?”


상국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철현의 억센 손이 멱살을 움켜잡았다.


“뒈지고 싶냐? 이 새끼가 어디서 생사람 잡고 있어?”


“철현아!”


잠자코 지켜보던 태준의 한 마디에 철현은 슬그머니 손을 놓았다. 하지만 눈빛은 아직도 상국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었다.


“여기서 있던 일은 나중에 절대 문제 삼지 않을게. 그게 어떤 일이라도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니?”


이 자리에서 소지품 검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학생들에게 맡기자니 조금 전처럼 철현이 무력을 쓰는 일이 또 벌어질 것 같았다. 지금은 스스로 꺼내놓게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철현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진짜 없어요. 비행기 타기 전에 다른 친구한테 맡겼단 말이에요.”


동훈과 지우는 공항에서 한영이 선호를 때리는 장면을 떠올렸다. 한영의 주먹이 선호의 명치를 가격하기 전 선호가 가방을 열고 무언가 건네주려 했다. 그땐 한영의 괴롭힘만 보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담배와 라이터를 돌려주려던 상황이었다.


“친구 누구? 여기 있니?”


“아뇨··· 없어요.”


선호라고 말할 수 없었다. 선호의 이름을 꺼내는 순간 부탁이 아니라 강요라는 사실을 들킬 게 뻔했다. 다행히 태준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라이터 문제가 해결되자 보람은 다시 회의를 주도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반씩 나누자. 반은 바다에서 먹을 수 있는 걸 찾아보고, 나머지 반은 불을 피우는 거야. 다들 한 번도 안 해봤으니까 돌아가면서 해보자. 괜찮지?”


이견은 없었다.


“좋아. 그럼 지금 앉은 자리대로 나누자. 미연이부터 상국이까지, 그리고 나머지가 한 조. 먼저 미연이네 조가 먹을 걸 찾자. 힘들면 바로 말해서 교대하고. 그리고 선생님은······.”


“난 주변을 좀 더 둘러봐야겠다.”


“네?”


믿음은 가지 않아도 유일한 어른이었다. 군대까지 다녀온 성인 남자의 지식과 연륜이 필요한 상황에 태준의 대답은 너무 의외였다.


“금방 돌아올 테니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태준은 보람에게 다시 한번 학생들의 안전을 당부하고 숲으로 들어갔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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