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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귿 공방

버서사이-미소녀 천재 대마법사 전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디귿(D)
작품등록일 :
2022.05.12 14:41
최근연재일 :
2023.04.19 19:10
연재수 :
104 회
조회수 :
3,361
추천수 :
176
글자수 :
761,699

작성
22.05.13 18:20
조회
57
추천
6
글자
22쪽

#5. 대단한 곰탱이

DUMMY

“아현이는 어디 가고 혼자야? 어디 갔어?”


문이 열리며 혼자 들어오는 피아를 보며 두엉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 건 아닌데······.”


“또 혼자 뒷산 언덕에 간 거야?”


“네······.”


피아는 걱정되는 마음에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벌써 며칠째 아현은 홀로 마을 뒷산을 올랐다. 마을 반대쪽 산골짜기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이 목적지였다. 언덕에 자리를 잡으면 몇 시간씩 꼼짝도 하지 않았다.


처음엔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는 거라 생각했다. 걱정이 되긴 했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였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아현의 행동은 닷새가 넘도록 계속되었고, 가끔 이렇게 끼니를 거를 때도 있었다.


“걱정돼 죽겠어요. 평소엔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내요. 마을 일도 잘 돕고 저하고 얘기도 많이 해요. 그런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언덕만 올라가면 혼이 나간 것 같아요. 불러도 대답도 잘 안 하고 한참동안 멍하니 앉아만 있어요.”


아현을 걱정하는 마음은 마을 사람도 피아와 마찬가지였다.


“당분간 지켜보자꾸나. 가족하고 떨어져 이런 낯선 곳에 갑자기 오게 됐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복잡하겠니.”


“모르는 건 아니지만 걱정돼서 그러죠. 저러고 있다가 병이라도 나면 어떡해요?”


피아를 안심시키려 뱉은 말이었지만 걱정되는 건 아한지도 마찬가지였다. 건강이 염려될 정도로 끼니를 자주 거르는 건 아니지만, 마음의 병이 걱정이었다.


“알았다. 내가 얘기를 좀 해보마.”


언제까지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아현이 혼자 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나 일단 대화라도 시도해볼 생각이었다.


* * *


“시스템! 씨스템! 씨스퉴!”


발음을 이리저리 바꾸며 외쳐봤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내 발음이 그렇게 구린가? System!”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이렇게 하는 게 아닌가? 도대체 이게 며칠 째야? 왜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거냐고!”


안 불러 본 호칭이 없었다. 운영자, 소환자, 감시자, 관찰자, 집행자, 신, 마신, 여신, 하느님, 부처님, 알라부터 상태창, 알림, 스테이터스, 스탯, 스킬까지 생각나는 대로 열심히 외쳤다. 발음도 다양하게 바꾸고, 자세도 취하고, 말도 안 되는 주문도 외쳐봤지만 모두 허사였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그동안 읽었던 회귀나 이세계(異世界)를 소재로 한 웹소설과 웹툰에선 시스템이 먼저 주인공을 찾았다. 모든 시스템이 친절하게 주인공의 편의를 봐주진 않았지만, 적어도 1차원적인 개입은 있었다. 자세한 설명은 없어도 최소한 시스템의 존재 여부는 드러내는 게 기본이었다.


“도대체 왜 반응이 없는 거야? 설마 내가 주인공이 아닌 거야? 그냥 그렇고 그런 엑스트라인 거야? 말이 안 되잖아! 이렇게 예쁘고 완벽한 미소녀 엑스트라가 어디 있냐고!”


누구를 향한 외침인지 모르나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포효하듯 뱉어냈다. 하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운영자든 시스템이든 대답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도리어 소리 지른 덕에 배만 꺼졌다.


“관두자. 관둬. 될 거라면 언젠간 어떻게든 되겠지. 안 되면 말고. 그나저나 난 어떻게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거야?”


정체를 알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의 목적은 차치하더라도, 이세계로 소환된 계기조차 감이 잡히지 않았다.


“오그마 던전? 던전 클리어가 소환 조건인 건가?”


유일하게 의심할 수 있는 한 가지였다. 하지만 게임이 소환의 계기라면 이 세계에서도 게임과 관련된 무언가 있을 텐데, 지난 일주일 동안 의심할 만한 어떤 것도 찾을 수 없었다.


“다른 버서사이를 만나면 확실히 알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아한지의 완강한 주의를 생각하면 그것도 쉬운 방법은 아니었다.


“괜찮으신가요?”


등 뒤에서 갑자기 들린 목소리 때문에 아현은 소스라치게 놀라 하마터면 앉아있던 바위에서 미끄러져 떨어질 뻔 했다.


‘미친··· 심장 내려앉을 뻔 했네.’


너무 놀라 욕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왔지만 다행히 입 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앗, 죄송합니다. 놀랠 생각은 아니었는데.”


‘장난해? 당신 같은 덩치가 인기척도 없이 갑자기 튀어나오는데 안 놀랄 사람이 어딨냐고.’


“아니에요.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느라··· 괜찮아요.”


마음의 소리를 꿀꺽 삼키고 학교 선생들에게나 짓는 가식적인 표정으로 아한지를 대했다. 그런 속내를 알 리 없는 아한지는 수심 가득한 표정으로 아현을 지나쳐 언덕 너머 끝없이 펼쳐진 울창한 숲을 바라봤다.


“푸른 숲이라고 합니다.”


“네?”


“신기하죠? 가까이서 보면 온통 녹색 잎사귀뿐인데 이렇게 멀리서 보면 바다 빛을 띤다고 해서 그렇게 불리고 있죠. 신의 숨결이 닿는 곳이라고도 하고, 요정이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확히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아무도 모르죠. 허나 확실한 것은 하나 있습니다. 그건 푸른 숲의 엄청난 넓이입니다.”


갑자기 나타나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의도가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게다가 목소리 표정이 너무 진지해 물어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동쪽 끝 카야르 왕국을 제외한 대륙의 동부지역 대부분을 뒤덮고 있습니다. 이 마을에서 서쪽으로는 카르만, 북쪽으로는 카잔과 카간 왕국까지 닿아있죠. 그리고 바다만큼이나 넓은 카그 호수까지 품고 있는 엄청난 크기의 숲이죠.”


‘갑자기 지형 설명은 왜? 일 열심히 안 한다고 마을에서 쫓아내기라도 하려는 건가?’


“저도 가끔 저 끝없이 펼쳐진 숲을 보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평안을 찾을 때도 있답니다.”


몸을 돌려 아현을 바라보는 아하지의 표정은 여전히 근엄하고 진지했다.


“아현의 심려를 온전히 공감할 수는 없지만 결코 편안할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피아와 마을 사람 모두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마을 일이나 사람들 눈치 안 봐도 괜찮으니 천천히 마음 추스르세요.”


그제야 마을 사람들이 단단히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피아를 따라 마을 일을 돕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공동 노동의 대부분의 마을 사람 몫이었고, 손님인 피아와 아현의 임무는 오전에 계곡에서 물을 길어오는 게 전부였다.


물을 긷고 나면 대부분의 시간을 피아와 숲을 돌며 보냈다. 새로운 세계에 관한 설명을 듣거나 -아한지 몰래-지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러다 시간이 남으면 홀로 언덕에 올랐다.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원주민은 모르는, 선택받은 주인공에게만 허락된 비밀스런 장면을 보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그게 다 부질 없는 짓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지난 며칠은 끼니마저 거를 정도로 매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행동이 마을 사람들의 오해를 사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니, 저 그게······.”


“괜찮습니다. 부담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그래도 가급적 식사는 거르지 마세요. 몸 상할 수도 있습니다.”


아한지는 가볍게 웃으며 작은 보자기 꾸러미를 아현에게 건넸다. 받아든 꾸러미에선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도시락일 게 분명했다.


“먼저 내려가겠습니다. 천천히 오십시오.”


“저··· 저기······.”


아현이 뭐라 변명도 하기 전에 아한지는 순식간에 바람처럼 언덕 아래로 사라져 버렸다.


‘망했다.’


* * *


“오~ 우리 스승님한테 그런 모습이 있었네.”


“난 민망해 죽을 뻔 했어. 그냥 생각할 게 조금 있었던 것뿐인데, 그렇게 걱정 끼치고 있을 줄 몰랐거든.”


한껏 들뜨고 신난 피아와 달리 아현은 죽상을 하고 있었다. 오해를 풀 생각으로 피아에게 대충 설명 했지만, 미안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너무 신경 쓰지 마. 언니한테 물어봤으면 되는데 우리가 지레짐작했던 거잖아. 그냥 지금처럼 잘 지내면 아무도 티내지 않을 거야. 그나저나 그 곰같이 무뚝뚝한 아저씨한테 그런 섬세한 면이 있었다니 의외네. 나한텐 만날 엄하게 굴면서.”


엄하게? 아한지가 들었으면 땅이 꺼져라 하늘아 무너져라 깊은 한숨을 쉴 말이었다. 말이 좋아 사제지간이고, 호칭만 스승이었다 뿐이지 피아의 태도만 보면 누구도 그렇게 볼 수 없었다. 버릇없는 조카와 삼촌 관계 정도로라도 보면 다행이었다.


“피아야,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랬어. 아저씨가 너한테 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런가? 에헤헤. 내가 어려서부터 귀하게 자라서 버릇이 조금 없거든. 그래도 악의는 없으니까 오해하진 마.”


볼 때마다 신기했다. 스승에게 대하는 태도는 상당히 불량했다. 그런데 어색하거나 불쾌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처음엔 예쁜 년은 뭘 해도 예쁘게 보이는구나 생각했는데, 지켜본 결과 그게 아니었다. 묘하게 선을 넘지 않는 느낌이랄까.


“너도 너지만 아저씨도 대단한 것 같아. 스승님이라며? 가끔 한 번쯤은 제자한테 혼도 낼 수 있잖아. 사람이 원래 그렇게 순한 건가? 우리 세계에선··· 아니, 고향에선 스승한테 그랬다간 엄청 혼나거든.”


아한지의 충고도 있었고, 굳이 세계를 구분 짓는 표현 대신 고향이라고 바꿔 부르기로 했는데 아직 입에 배지 않았다.


“스승은 어딜 가나 엄한 존잰가 보네. 우리도 마찬가지야. 스승 앞에서 고개도 함부로 못 들고 있거든. 근데 뭐랄까? 스승님과 난 좀··· 특별한 관계라고 해야 하나? 설명하자면 너무 길지만, 그런 게 있어. 그리고 스승님이 지금은 저렇게 순한 곰탱이지만 원랜 엄청난 사람이었어.”


“그래? 어땠는데?”


2미터가 넘는 키에 엄청난 근육질 몸매, 거기에 사자후까지 쓸 수 있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을 리 없었다.


“굉장하지. 정식 칭호를 받은 건 아니지만 명인(名人)급 검사에, 지안의 영웅, 지안·싱 전쟁의 악귀(惡鬼), 싱 학살자로 불렸던 때도 있었어.”


“응? 뭐? 내가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이 들어가 있는 것 같은데?”


“아, 맞다. 미안. 7년 전에 대륙 남쪽 끝이 싱이라는 나라하고 바다 너머에 있는 섬나라 지안과 전쟁이 있었어. 그 전쟁을 지안·싱 전쟁이라고 해. 스승님은 그 전쟁에서 지안군(軍)으로 참전했었는데 엄청난 활약을 떨쳤거든. 그때 그런 무수한 별명이 생겼었대.”


“외모만 보면 충분히 그럴 것도 같으면서 하는 행동 보면 또 확실히 의외긴 하네. 근데 명인은 뭐야? 작위(爵位) 같은 건가?”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어디부터 설명해야 좋을까··· 음··· 이 곳에는 수많은 종류의 괴수가 있어. 몬스터라고도 하는 존잰데, 그 것들은 저마다 등급이 있어. 크기, 강함, 위험도 등을 종합해 등급이 정해져. 1급부터 10급까지 등급을 나눠. 단순히 수치만 보면 10급이 가장 약한 몬스터라고 볼 수도 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아. 똑같은 10급 몬스터라고 해도 어떤 건 크기가 큰데 위험도와 강함이 낮고, 어떤 건 크기도 작고 위험도도 낮지만 다른 10급에 비해 월등히 강한 몬스터도 존재할 수 있어.”


토끼곰은 아예 등급에 들어가지도 않는 ‘짐승’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곰토끼는 10급 몬스터다. 각 개체의 강함은 상대적으로 다른 10급에 비해 약한 편이지만, 무리를 이룬다는 특성과 공격성, 육식성향 때문에 10급 몬스터로 분류되고 있었다.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 못하는 등급을 굳이 나눈 이유는 토벌 때문이야. 10급 몬스터를 토벌하려면 훈련된 군사 몇 십, 혹은 몇 백이 필요할 거야. 하지만 압도적은 무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혼자서도 가능하지. 어떤 조건의 10급이라도 홀로 토벌할 수 있는 무력을 가진 무인에게 내려지는 칭호를 장인(匠人)이라고 해.”


반대로 말하면 장인 한 명이 훈련된 군사 수 백 명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된다.


“장인은 명인 이상의 칭호를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임명할 수 있어.”


장인 - 명인 - 명장(明匠) - 대명장(大明匠) - 천재(天才) - 황제(皇帝)


다른 칭호도 마찬가지로 상위 칭호를 받은 사람이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장인처럼 최소한의 기준이 없다. 명인이라면 장인 10명을 홀로 상대할 수 있다든지, 9급 몬스터를 홀로 토벌할 수 있다든지 하는 식의 기준이 없다. 오로지 상위 칭호를 가진 ‘누군가’의 개인적인 기준과 판단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렇기에 같은 칭호를 가졌다 하더라도 그 실력 차가 클 수도 있다.


게다가 칭호를 받지 못했다면 이미 대명장의 실력을 가졌어도 장인에 머물러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칭호가 의미를 갖는 것은 최소한이다. 장인이라면, 명인, 명장이라면 최소한 얼마큼의 실력임을 입증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아! 그래서 아까 네가 아저씨를 명인 급(級)이라고 한 거야?”


“맞아. 스승님은 사실 장인 칭호도 받지 못했거든. 하지만 전쟁에서 이미 실력이 검증 됐으니 그렇게들 불렀던 거야.”


칭호는 거절할 수도 있다. 아한지 역시 장인과 명인 칭호 모두 거부했지만, 피아도 그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압도적인 천재. 알려지기론 세계에 4명밖에 없다고 하는데 2명 외엔 누군지 알려진 바가 전혀 없어. 홀로 한 국가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무력이라는데··· 솔직히 나도 믿진 않아. 그리고 황제. 오직 1인만 존재할 수 있으며, 이전 황제가 다음 황제를 임명하고, 신에 가까운 무력, 하늘 아래 모든 생명 중 가장 강한 존재 등등. 그냥 전설이야. 전설. 마지막 황제가 몇 십 년 전 종적을 감춘 뒤로 부재중이라고 하는데··· 천재도 안 믿는데 황제는 뭐······.”


처음엔 경지(境地)라고 생각했다. 무협지의 고수, 초고수, 화경이나 판타지의 클래스와 유사한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설명을 듣다 보니 경지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자격증의 등급 같다고 할까.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세밀한 부분엔 차이가 있었지만 결국 이곳은 판타지 세계관이 확실했다.


‘나이스!’


아직 곰토끼 밖에 보지 못했지만, 그보다 훨씬 강한 몬스터가 무수히 존재한다. 게다가 그런 몬스터를 홀로 대적할 수 있는, 무장한 훈련된 군사 수 백, 수 천을 능가하는 무력을 가진 사람도 존재한다. 더군다나 홀로 국가와 맞먹는 능력자까지 존재하다니. 이제 마왕만 존재하면 완벽하다.


“칭호를 레벨로 나누는 건 아니구나.”


“레벨? 그게 뭐야?”


“용어가 다른가? 능력의 수치화라고 해야 되나?”


판타지 장르의 게임이나 웹소설, 웹툰에서 묘사하는 레벨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피아의 표정은 아리송했다.


“능력을 수치로 정확히 구분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은데? 내가 알기론 중앙대륙 내에서 그런 개념은 없어.”


“그럼 경험치는? 그러니까······.”


설명을 듣는 피아의 표정이 대답을 대신하고 있었다. 이 세계에는 완전히 없는 개념이었다.


“에이, 그건 정말 말이 안 된다. 그러면 푸줏간에서 도축하는 사람들은 다들 장인이나 명장이 되어 있을 걸? 아··· 혹시 언니 고향에선 그런 개념이 있는 거야? 내가 혹시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했나? 미안해 언니.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


피아의 크고 맑은 눈이 시무룩하게 변했다. 아현은 잘못을 들킨 어린아이처럼 잔뜩 주눅 들어 눈치를 살피는 피아의 어깨를 토닥이며 웃어보였다.


“괜찮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리고 레벨이나 경험치 같은 건 소설에서 나오는 얘기야. 소설 속에서 상상하던 세계와 이곳이 비슷해서 물어본 거야.”


그간 읽었던 수많은 웹소설, 웹툰처럼 이 세계 사람에겐 통용되지 않는 상식일지 모른다. 어쩌면 버서사이-지구인-이세계에서 온 이들에게만 허락된 특별한 능력일 수도 있다. 그러니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 다양한 모험과 몬스터 토벌로 경험치를 획득하고, 레벨을 올려 언젠가 10서클의 천재 미소녀 대마법사가 되고 말테다.


“그건 그렇고 피아 너는?”


그렇지만 현실은 아직 쭈글이다. 눈앞에 있는 또래의 예쁜 이세계 소녀와의 차이는 얼마나 될까?


“나? 뭐가?”


“네 레벨··· 아니, 실력은 어떤데?”


명인 급인 아한지의 제자라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그동안 봐왔던 피아의 신체능력은 놀라울 따름이었다. 울창한 숲을 자유자재로 뛰어다닐 수 있는 민첩함이나 계곡에서 물을 길어 나를 때도 또래 여자라고는 상상도 되지 않을 힘이었다.


“에이, 어림없지. 아까 이야기했잖아. 장인이면 10급 몬스터를 홀로 토벌할 수 있을 정도라고. 기억 안나? 곰토끼 십여 마리도 혼자 어쩌지 못하고 도망쳤잖아.”


사실 암컷 곰토끼 십여 마리는 피아도 큰 무리 없이 상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리의 피해에 반드시 복수하는 곰토끼의 특성상 마을에 피해를 줄 수도 있었다. 게다가 아현을 지키며 상대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마침 아한지가 근처에 있었기에 도망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렇구나. 난 또 장인이 가장 낮은 등급이라 흔할 줄 알았는데 엄청난 거구나. 그럼 아한지 아저씨도 엄청난 사람인 거네.”


“스승님이 강한 건 사실이지만 대단하진 않아. 그냥 사람 좋은 곰탱이랄까?”


“아무리 그래도 곰탱이는 너무한 거 아니냐? 그래도 내가 스승인데.”


“꺄아악!”


아현과 피아는 갑작스런 아한지의 등장에 놀라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인기척도 없이 그렇게 갑자기 나타나면 어떡해요? 놀랐잖아요!”


적반하장(賊反荷杖). 아한지는 하도 어이가 없어 짧은 한숨을 뱉었지만, 늘 그렇듯 얼굴엔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앞에 없다고 험담이나 하고 있으니 인기척을 못 느낀 게지.”


“험담 안 했거든요. 스승님 대단하다고 얘기하는 중이었어요.”


“대단한 곰탱이······.”


작게 중얼거리는 아한지의 말을 분명히 들었다. 분명 농담이었겠지만, 워낙 진지한 표정 덕에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맞아요. 피아가 아저씨가 명인 급의 무인에 전쟁 영웅이라는 얘기하고 있던 참이에요.”


“쓸데없는 얘기였군요.”


“왜요? 제가 살던 곳에선 그런 개념이 없어서 엄청 대단하고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진심이었다. 아현이 머릿속으로만 그려왔던 판타지 세계 속 무인의 모습 그대로인 아한지를 진심으로 선망하고 있었다.


“처음엔 어떤 의도로 생겼는지 모르나 장인이란 칭호는 결국 몬스터 토벌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실상 여러 칭호들은 국가나 기타 세력의 힘의 세기를 나타내는 지표로 전락한지 오래지요. 누구는 명예라 말하지만 제겐 썩 훌륭하게 보이진 않습니다.”


기대했던 것과 다른 반응에 아현은 괜스레 머쓱해졌다.


“고지식해. 고지식하고 답답해. 스승님이 그렇게 말 하면 아현 언니 입장이 어떻겠어요?”


아한지는 그제야 자신이 너무 진지하게 대답한 것을 깨달았다.


“아, 죄송합니다. 저는 그런 의도로 말씀드린 게 아니었는데······.”


“아니에요. 도리어 제가 죄송하죠. 이 곳에 대해서 잘 모르다 보니 제가 너무 경솔하게 말했어요.”


아현이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나쁜 스승님.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덤비는 고지식한 스승님. 우리 예쁜 아현 언니 마음 괴롭히는 못된 스승님.”


피아는 오랜만에 잡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 어쩔 줄 몰라 하는 아한지에게 갖은 비난을 쏟으며 약을 올렸다. 가만 보면, 아니 어떻게 봐도 한도 끝도 없이 얄미운 년이었다. 사람 놀리는데 탁월한 재주를 가진 걸 뽐내듯 잠깐의 틈만 보이면 인정도 사정도 보지 않았다. 아현도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그만 해. 그럼 내가 더 죄송스러워지잖아.”


“그런가? 언니가 그렇담 그만 하지 뭐. 스승님 다행인줄 알아요. 언니 아니었으면 마을 사람한테도 다 소문내려고 했어요.”


‘나도 어디 가서 밀리지 않는 미친년인데 얘는 정말 물건이네.’


아현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피아에게 만큼은 밉보이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아, 근데 언니랑 얘기하다가 생각난 건데 스승님은 명장이나 대명장 보신 적 있어요?”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는 건지 그저 기분에 따라 지껄이는 건지 장난스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대명장은 아직 만나보지 못했지만 아는 명장은 몇 있단다.”


“와! 진짜요? 정말 그렇게 강해요?”


“모든 명장이 다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명장은 엄청 강하지. 도저히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할까.”


“그럼 천재는요? 정말 천재가 그렇게 강해요? 소문에는 마음만 먹으면 나라도 전복시킬 수 있다고 하잖아요. 전 솔직히 믿기 어렵더라고요.”


“글쎄다. 나도 소문으로만 들어서 정확히 말 할 수는 없지만 불가능한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되는 구나. 내 스승님도 어떤 칭호도 받지 않으셨지만 그 분의 강함의 끝을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을······.”


아한지가 갑자기 말을 멈추고 산 아래 마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덩달아 아현과 피아의 시선도 마을로 향했다. 처음 보는 붉은색과 노란색의 화려한 갑옷을 입은 20명 남짓한 무리가 마을로 들어서고 마을 사람들도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다.


“누구죠?”


“먼저 내려갈 테니 천천히 내려오너라.”


대답 대신 아한지는 순식간에 마을로 향하는 숲속으로 빨려들 듯 사라졌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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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 미지와의 조우 +1 22.05.12 99 12 16쪽
2 #1. 미소녀 천재 마법사가 되고 싶은 긍정 대마왕 +2 22.05.12 150 16 22쪽
1 #0. 프롤로그 +1 22.05.12 295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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