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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마마바 님의 서재입니다.

S급 헌터의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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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마마바
작품등록일 :
2020.01.28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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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5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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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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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47.

DUMMY

47.

눈앞에 하얀 것이 일렁인다. 천 같기도 하고 물결 같기도 한 것이 나풀거리며 눈앞에 어른거린다. 나는 그걸 붙잡으려고 해보지만 그 하얀 것은 내 손을 피해 이리저리 움직인다.


짜증이 난 나는 하얀 것을 확 낚아챈다. 그 순간 하얀 것이 활짝 열리면서 앞이 보인다. 내 앞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사람들의 얼굴이 흐려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다. 나는 눈을 깜빡인다. 몇 번 반복하자 그제야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가장 앞에 있는 사람은 이시윤이다.


그 뒤에는 가브리엘의 동생이 있다. 김재우도 있고 맨 뒤쪽에는 사람들과 허공에 난 균열이 있다. 게이트다. 게이트에서 괴물들이 기어 나와 사람들을 하나씩 먹기 시작한다.


나는 괴물들을 막으려고 달려가지만 아무래도 너무 늦은 것 같다. 결국 이시윤까지 괴물의 입으로 들어가고 나는 잠에서 깨어난다.


눈을 껌뻑이며 어디에 있는 건지 파악하려 애쓴다. 소독약 냄새가 나는 것 보니 병원이다. 옆에는 서지아가 앉아있다. 기시감이 든다. 병원에 있는 것도 이제는 꽤 익숙하다.


“일어나셨어요?”

“보면 모르냐?”

“말하시는 거 보면 멀쩡하신 거 같네요.”

“안 멀쩡해.”


꿈의 파편들이 일렁거려서 불편하다. 습관처럼 품 안을 뒤적거리는데 환자복에는 안주머니가 없다.


“술 없냐?”

“병원에서 무슨 술이에요. 좀 쉬세요.”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냐?”

“팀장님은 가져온 자료를 정리하러 가셨어요. 박정후 씨는 팀장님에게 끌려갔고, 조훈 씨는 여자 친구 만난다며 갔고, 가브리엘 씨는 동생을 묻을 곳을 찾겠다며 전향기 씨를 데리고 나갔어요.”

“그래.”


다시금 파편들이 일렁거린다. 술이 필요하다.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뱃속이 뒤틀리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조심하세요. 내장이 다시 자리 잡히기 전까지는 안정을 취하랬어요.”

“얼마나 걸리는데.”

“적어도 오늘까지는 병원에 있어야한댔어요.”


나는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 눕는다.


“필요하신 거 있으시면 저한테 말씀하세요.”

“필요한 거 있지. 약 끊어라.”

“필요한 물건이요.”

“약 끊어.”


서지아는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미 팀장님한테 몇 시간 동안 설교를 들었어요.”


오채민과 돌아다니는 동안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끊겠다고?”

“나중에 얘기해요.”

“나중에 언제? 네 뇌가 다 녹아버린 다음에?”


서지아는 손가락에 있는 거스러미를 뜯는다.


“저한테는 아직 그게 필요해요. 그거 없이 능력을 통제할 수 있게 되면 그때 끊으려고요.”

“너 말고도 이 일을 할 사람은 많아. 무리하면서까지 이럴 필요가 없다고.”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지 말라고.”

“연습도 틈틈이 하고 있어요. 곧 약 없이도 능력을 통제하게 될지도 몰라요.”

“안 될걸.”

“그 얘기는 됐고....... 아, 맞다 이거 돌려드려야죠.”


서지아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이야기 주제를 바꾸려는 의도가 뻔히 보인다.


“사장님이 주무시는 사이에 팀장님이 핸드폰에 저장된 자료를 살펴보려고 했는데 잠금이 걸려있더라고요.”

“걸어두길 잘했지.”

“여기요.”


핸드폰을 건네받는다. 안에 들어있는 자료들은 번역이 필요하다. 오늘은 어차피 움직이지 못하니 이것부터 처리하는 게 좋을 거 같다.


“나가서 프랑스어를 번역해줄 사람을 찾아와라.”

“번역은 나중에 전향기 씨한테 부탁하면 되지 않아요?”


가능하면 전향기가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 번역하고 싶다. 아직 서류를 훔쳤던 게 누군지 모르니까.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라. 그리고 숙소에 들러서 술 좀 가져오고.”

“술은 안돼요. 의사 선생님이 안정을 취하라 그랬어요. 번역해줄 사람은 찾아올게요.”


서지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일어나 나간다. 나는 서지아의 뒷모습에 대고 말한다.


“술 가져와.”


서지아는 들은 척도 안하고 가버린다. 아무래도 술을 가져올 거 같진 않다. 그렇다면 알아서 구하는 수밖에.


통증을 참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복도로 나가 한번 주위를 둘러본다. 간호사들은 보이지 않는다. 환자 몇이 나와서 문병객들과 떠들고 있다.


복도 끝에 의료용품 창고가 있다. 창고 문을 건드려보니 잠겨있다. 로비로 가 간호사를 찾아 말한다.


“내 딸애가 놀다가 창고에 들어갔습니다. 저기 문 좀 열어주세요.”

“창고에요?”

“네. 무슨 의료용품? 그렇게 쓰여 있는 창고인데.”

“잠겨 있는데 무슨 수로 애가 들어가요?”

“저도....... 저도 모르겠네요. 분명 애는 그리로 들어갔어요. 창고 안에서 애 소리가 나더라니까요. 분명 애는 거기에 있어요.”


남자 간호사가 지나가다가 우리가 떠드는 걸 보고 끼어든다.


“무슨 일이에요?”


그러자 접수를 맡은 간호사가 한탄하듯 말한다.


“이 환자 정신이 좀 이상한가봐. 잠겨있는 창고에 딸이 들어갔다고 막 우겨댄다니까.”


남자 간호사는 웃으면서 말한다.


“그럼 한 번 보여주죠. 자기 딸이 안에 없는 걸 알면 진정하겠죠.”


나는 남자 간호사와 창고로 간다. 간호사는 창고를 열어 안을 보여준다.


“내 딸이 여기 있을 텐데.”


나는 중얼거리며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면서 팔을 휘적거리다가 쌓여있는 플라스틱 약통을 쓰러뜨린다.


“아, 뭐하시는 겁니까.”


남자 간호사가 투덜거리면서 약통을 주섬주섬 주워 다시 쌓는다.


“아이고 미안해서 어째.”


간호사는 약을 정리하느라 바쁘다. 나는 간호사 뒤에서 조용히 움직이며 진열된 약들을 살펴본다. 마침내 의료용 알코올을 발견하고 환자복 안에 감춘다.


“딸은 어디 다른 데로 놀러갔나 보네.”


나는 그렇게 말하고 간호사를 남겨두고 병실로 돌아간다. 간호사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나를 돌아보긴 했어도 붙잡진 않는다.


병실로 돌아간 뒤 의료용 알코올의 뚜껑을 열고 마신다. 맛은 별로다. 그래도 의료용이라 그런지 마실수록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느낌일 뿐이겠지만.


*


취해서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서지아가 돌아와 있다. 서지아는 침대 밑에 숨겨놨던 알코올을 발견했는지 꺼내서 옆에 놓인 서랍장 위에 올려놨다.


“이래놓고 저한테 뭐라 하신 거예요?”

“술이 약보단 나아.”


아직도 취기가 남은 거 같다. 머리가 어질하다.


“몸도 낫지 않았는데 그렇게 마셔대면 어떡해요.”

“몸속도 소독 좀 시켜야지.”

“잘나셨네요.”


서지아는 툴툴거리고 일어난다.


“번역가는 데려왔냐?”

“병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뭐 술 좀 깨시면 보실래요?”

“아니 데려와.”

“힘들게 구했으니까 예의바르게 대해주세요.”

“노력해볼게.”


서지아는 나갔다가 키 작은, 움츠러든 자세의 남자와 들어온다.


“이쪽은 불어번역가 나중권 씨에요.”

“어....... 지금은 조합 말단 사원이.......”

“......지만 한 때는 불어번역가였던 나중권 씨에요.”

“번역할 수는 있대냐?”

“할 수 있대요.”


서지아의 확답과 달리 나중권은 자신이 없는지 중얼거린다.


“사실 불어를 본지가 꽤 돼가지고 할 수 있을지 잘은 모르겠는데요.”


나는 핸드폰 사진첩을 켜서 보여준다.


“번역할 수 있겠냐? 아니, 만지지는 말고 그냥 떨어져서 봐라.”

“어....... 일단 한 번 해볼 게요.”


서지아가 공책과 펜을 건네자 나중권은 자세를 잡는다.


“여기 표시된 두 개부터 해라.”

“네. 여기 이거 말이죠?”

“표시된 건 뭐가 특별한데요?”


서지아가 묻는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걸 표시할 때 서지아는 다른 곳에 있었지.


“연구소로 다시 가서 서류를 살펴봤더니 두 장이 사라져 있더라.”

“누가 가져간 거예요?”

“아마도 우리 팀원 중에 한 명이겠지.”


서지아는 표정이 좋지 않다. 팀원을 의심해야하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술병을 들고 연다. 서지아가 내 손을 붙잡는다.


“그만 마시세요.”


서지아의 손을 떨쳐내고 크게 한 모금 넘긴다. 서지아는 알코올 냄새를 맡고는 얼굴을 찌푸린다.


“이런 걸 용케도 드시네요.”

“의외로 먹을 만해.”

“그거 소독할 때 쓰는 거 아니에요?”

“그쪽은 번역이나 하고.”


핀잔을 주자 나중권은 화들짝 놀라며 공책으로 시선을 옮긴다.


나중권은 30분에 걸쳐서 2장의 보고서를 번역해낸다. 이쪽에서만 쓰이는 단어들이 많아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상당 부분을 음차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오스쿨리아 역장의 퍼텐셜 증가로 인한 공간의 불안정이 관측되어.......’


“오스쿨리아라는 게 뭐냐?”

“저도 모르겠어서 그냥 발음대로 써놨어요.”

“번역자면 박사 아닌가?”

“불문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죠. 까뮈를 연구해서요.”

“모른다는 건가?”

“네 모르겠습니다.”


읽어보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기술적인 부분뿐이다. 그쪽은 굳이 이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중요한 건 상황에 대한 설명이다.


보고서는 예상대로 게이트 사태를 다루고 있다. 보고서의 저자들은 게이트에서 괴물이 쏟아져 나오기 10일 전부터 상황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현상의 규모를 예측하지는 못한 모양이다.


‘이전까지의 전투 결과로 볼 때 큰 위협이 되진 않을 것으로 판단. 소규모 병력을 배치하여 대응이 가능할 것.’


이런 문구를 보면 확실하다.


그 외에도 괜찮은 정보들이 많다. 공간 불안정이라는 건 이공간을 발생시키는 바람에 일어난 듯하다.


‘하의성 연구소의 실험이 공간을 비틀었을 가능성이 있음.’


보고서는 이를 하의성 연구소의 책임으로 보았다. 이유도 설명되어 있다.


‘하의성 연구소의 연속 발생 실험의 위험성은 이전부터 지적되고 있었음.’


하의성 연구소 측은 위험성을 알면서도 실험을 계속한 모양이다. 결국은 그 실험이 게이트 사태의 원인이 된 건가?


“이거면 됐나요?”

“읽을 만한데. 이것도 번역해라.”


나는 이공간에서 발견한 서류들의 사진을 내민다. 나중권이 번역하는 동안 서지아에게도 번역된 것을 보여준다.


서지아는 읽고 나서 말한다.


“이 자료를 왜 가져간 걸까요?”

“글쎄다.”


짐작이 가기는 한다. 이 자료를 폐기한 사람은 우리 팀원이니 한국인에게 사주를 받았을 거다. 그리고 이 자료에 언급된 것 중 한국과 관련된 것은 하의성 연구소뿐이다.


이 자료를 폐기한 사람은 하의성 연구소가 게이트 사태의 원인이라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았던 거다.


나중권은 속도가 붙어 10분에 한 장 꼴로 번역을 한다. 번역되는 족족 확인해본다. 대부분은 매출자료다. 자료에 확실히 나와 있지는 않지만 크리스티앙을 위해 일하는 직원이 작성했을 거다.


이공간에 보관한 자료이니 누가 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지 꽤나 상세하게 적혀있다. 뭘 얼마나 받았고, 어디로 물건을 보냈는지.


이미 확인한대로 한국으로도 상당량이 보내진다. 전처럼 환전이 수월하지 않으니 거래는 물물교환으로 이뤄지는 모양이다. 마약을 준 대가로 받은 물건들을 다시 판매한 장부도 있다.


‘한국 - 가공유 7dr’


한국측 구매자는 주로 기름으로 대금을 지불한 것 같다.


“이 가공유라는 거 정확히 뭘 말하는 거지?”

“휘발유, 경유 같은 거요.”


크리스티앙은 암시장에 기름을 팔아 월 30만 유로를 챙겼다. 즉 한국에서 매달 30만 유로 값의 마약을 사들이고 있었다는 거다.


정확히 한국의 누구에게 파는 건지 안다면 좋으련만 크리스챤은 판매자, 구매자 정보는 기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사할 방법은 있다.


“그런데 약 문제에 왜 이리 집착하시는 거예요?”

“단순히 약이 문제가 아니야.”


나는 번역물의 사진을 찍고 수첩에 중요한 것들을 옮겨 적으며 말을 잇는다.


“누군가가 하의성 연구소에 대한 자료를 파기하고 이공간을 불태웠어. 연구소 자료를 파기했으니 관련자였겠지. 이공간을 불태운 건 마약에 대한 증거와 자료를 파기하기 위해서였을 거고.”

“그게 왜요?”

“그러면 마약을 거래한 사람이 하의성 연구소와도 관련이 있다는 뜻이겠지.”


그리고 하의성 연구소와 관련이 있다면 김경훈의 실종과도 관련이 있을 거다.


서지아는 금방 이해하지 못했는지 생각해보다가 말한다.


“아, 그렇겠네요.”

“이해했으면 약을 어디서 샀는지 불어.”

“저요?”

“그럼 저 사람에게 말했겠냐?”


서지아는 못마땅한 표정이다.


“그 방법 밖에 없겠어요?”


다른 방법도 있긴 하겠지. 하지만 이 방법이 효율적이다. 약 파는 놈을 잡아서 조지면, 누가 약을 대주는지도 알 수 있고, 서지아가 약을 더 사지 못하게 막을 수도 있으니.


“그래. 이것밖에 없어.”

“알았어요. 일단 회복하시고 나오면 안내해드릴게요.”

“그리고 서지아 너는 어디가지 말고 여기 있어라.”

“간병이 필요하세요?”

“아니. 네가 미리 가서 약장수에게 경고해주면 곤란하니까.”


서지아는 의심받는 게 서운한지 시무룩한 표정이다.


“와, 설마 제가 사장님을 배신하고 그럴 거라고 생각하세요? 사장님은 따지자면 제 은인인데요?”

“약쟁이들은 애미 애비도 못 알아보잖아. 은인이라고 알아보겠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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