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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마마바 님의 서재입니다.

어느 히어로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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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마마바
작품등록일 :
2019.08.16 17:18
최근연재일 :
2019.09.16 18:05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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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9
추천수 :
192
글자수 :
142,121

작성
19.08.2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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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1

DUMMY

11.

스플릿맨 새 이슈 출시! 내 판단은 옳았다. 스플릿맨 2편은 잘 팔린다. 중박 정도? 어쩌면 대박에 가까운 중박? 어쨌든 확실히 소박은 아니다.


물론 몇 사람, 폄훼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제레미와의 사건, 노이즈 마케팅 때문에 잘 팔린 거 아니냐고.


그럴 리 있나? 그건 사정을 모르는 소리다. 제레미와 내가 비비면 제레미가 이득을 보겠지, 내가 이득을 보겠는가?


제리는 활짝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일일 판매량을 보내준다. 판매량은 쭉쭉 늘어난다. 덩달아 첫 번째 이슈의 판매량도 늘어난다.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동네 코믹스 가게를 염탐한다. 골목 모퉁이에 숨어서.


아이들이 아트웍스 코너로 달려간다. 역시, 내 신작 덕에 모처럼 아트웍스 코너에도 활기가 돈다.


귀여운 애들이다. 원한다면 싸인도 해줄 텐데.


내 싸인은 희귀해서 가치가 높을 거다. 작가 생활하면서 3번쯤 했을까? 한번은 제리에게 해줬으니 팬에게는 2번 해줬지.


아이들은 책을 하나씩 품에 안고 나온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뭘 샀는지 본다. 애들이 가까워지자 표지가 보인다.


표지에 안경 낀 소년이 그려져 있다. 아는 얼굴이다. 천재소년 에이브.


나온 지 얼마 안 된 스플릿맨이 바로 옆에 있는데 왜 에이브를 고르는 거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에이브를 산 아이 중에 한명이 내 쪽으로 온다. 나는 말을 건다.


“얘. 에이브가 재밌냐?”


애는 겁먹은 표정이다. 간신히 고개를 끄덕인다.


“어떤 점이 재밌니? 아 무서워하지 마렴. 아저씨는 아트웍스에서 일하는 사람이란다. 아이들이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설문조사하러 나온 거야.”


나는 명함을 보여준다. 아이는 내 이름을 뚫어져라 본다. 왜지?


“아저씨가 헨리에요? 제레미랑 싸운 사람?”


“아냐아냐. 아저씨는 아트웍스 직원이란다. 작가가 아니라. 이름이 똑같긴 하지. 하하, 평소에도 오해를 자주 받아.”


나는 인자한 미소를 짓는다.


“그래요?”


아이는 못미더운 표정이다.


“그래. 헨리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니?”


“뚱뚱한데다가 성격이 괴팍한 사람이요.”


아이는 용감하게도 그렇게 말한다.


“그래? 헨리라는 사람도 우리 회사에서 잘나가는 작가던데?”


나는 어른답게 참는다.


“그 사람 만화를 사는 건 다 제레미를 싫어하는 사람들이에요. 제레미가 싫으니까 헨리 만화를 사는 거라고요.”


“그러니? 재밌어서 사는 거 아닐까?”


“그 사람 만화는 재미없어요.”


애들은 왜 이렇게 솔직할까?


“읽어는 봤니?”


“아저씨가 헨리죠?”


“아니라니까.”


나는 짜증을 낸다. 아이가 나를 수상쩍게 바라본다. 왜 나는 아이보다 말을 못할까?


“그래서, 헨리 작가 만화를 읽어봤니?”


“안 읽어 봤어요.”


“왜?”


“재미없어 보여서요.”


“읽어봐야 재밌는지 재미없는지 알지.”


“척 보면 알아요.”


나는 한숨을 내쉰다. 하긴 애들 대상으로 그린 건 아니니까 상관없지. 근데 그럼 에이브는 척 봐도 재밌어 보여서 산 건가?


“에이브는 뭐가 재밌냐?”


이제 좋은 아저씨인척 하는 것도 포기한다. 나는 지친 목소리로 묻는다.


“에이브는 엄청 똑똑해요.”


“그게 왜 재밌냐니까.”


“똑똑하잖아요.”


“아인슈타인 위인전이 재밌냐?”


아이는 누군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분명 알면서 모르는척하는 거다. 내기해도 좋다. 영악한 녀석.


아이는 한숨을 내쉬며 나를 본다.


“아저씨는 재미없어요. 집에 갈래요.”


“너도 재미없어. 집에나 가라.”


나는 애를 이기려고 노력한다. 마지막으로 말한 게 나니까 내가 이긴 거다. 애는 에이브와 집으로 돌아간다. 나도 가야지.


돌아가는데 문자가 온다. 로즈다.


‘오늘 시간 돼?’ - 로즈 델리아


‘왜 또 무슨 행사 있어?’


나는 문자를 썼다가 공격적인 거 같아 수정한다.


‘또 무슨 행사 있어?’ - 헨리


‘아니. 그냥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어서.’ - 로즈 델리아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불만족스러운 결혼생활. 동창회에서 만난 매력적인 남자. 흔들리는 마음. 목숨을 건 결투. 승리. 사랑. 혹은 사랑의 승리. 이런 건가?


‘오늘 시간이 될지 모르겠네.’ - 헨리


나는 그렇게 싼 남자가 아니다.


‘아 그래? 그럼 다음에?’ - 로즈 델리아


‘잠깐, 일정 좀 확인하고.’ - 헨리


‘오 저녁에 시간이 좀 되는데.’ - 헨리


‘잘됐다. :)’ - 로즈 델리아


‘7시 어때? 늘 보던 펍.’ - 로즈 델리아


‘좋지. :)’


‘좋지.’ - 헨리


쿨하게. 이모티콘 없이.


그나저나 늘 보던 펍이라. 우리만의 아지트. 비밀언어. 좋은 느낌이다. 늘 보던 펍에서 늘 보던 친구와. 나는 늘 보던 옷을 입고 가야지.


펍에 앉는다. 나는 조금 일찍 도착했다. 종업원이 나를 알아보는 눈치다. ‘아 그때 그 처량한 풋사과’ 그런 눈빛으로 나를 본다.


나는 보란 듯이 맥주 2잔을 주문한다. 종업원은 자기 일처럼 미소 짓는다.


로즈는 5분 늦게 도착한다. 괜찮다. 그녀는 편안한 트레이닝복 차림이다. 눈이 조금 부어있다. 자다 온 걸까?


“안녕.”


나는 이번에는 내 목소리로 인사한다.


“안녕. 늦어서 미안해. 애들이 달라붙어서.”


진짜 애들이 있구나.


“애들? 몇 살이야?”


“7살 5살.”


“귀엽겠네.”


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다.


“귀엽지.”


기운 없는 목소리다.


“무슨 문제 있어?”


“아니 뭐. 그냥 보통 가족들은 다들 문제가 있잖아. 딱 그 정도야.”


로즈가 말한다.


“다 괜찮은 거지?”


“그럼 괜찮지.”


로즈는 그렇게 말하며 웃는다. 그녀는 배시시 웃으면서 말을 잇는다.


“고마워. 너와는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거 같았어.”


“너는 친구도 많을 거 같은데.”


“그때, 행사 때 동창들 못 봤어? 다들 뒤에서는 남 얘기를 하면서 시시덕대잖아. 걔네들한테 문제가 있다고 털어놓으면 한 시간도 안 되서 다들 알게 될 걸.”


기분이 좋다. 로즈의 특별한 사람이 된 느낌. 동시에 기분이 나쁘다. 로즈의 무료 상담사가 된 느낌. 그녀는 날 일종의 대나무숲으로 여긴다.


“좋은 뜻으로 말한 거야. 오해하지 말았으면 해.”


로즈는 내 표정을 보고 말을 덧붙인다.


“알아.”


우리는 맥주를 마신다. 시원하다. 로즈는 얼굴이 금세 붉어진다.


“괜찮아? 술 약한 거 아니야?”


“아니야. 그냥 좀....... 간만에 마시거든. 애들 생기고 나서는 그럴 일이 잘 없어서.”


“그래?”


달리 할 말이 없다. 애를 키우는 게 어떤 건지 모르니까. 뭘 키워본 일은 어렸을 때 개미를 키운 게 마지막이다.


로즈는 빠르게 마신다. 쌓인 게 많은 거 같다. 그녀는 한잔을 다 비우고 나서 목소리가 커진다.


“아니, 행사 때 말이야. 걔들은 왜 그러는 거래? 동창들 말이야. 네가 무슨 잘못한 게 있어? 내가 초청해서 온 건데, 마치 자기들만 초청받은 양. 정말 잘났어.”


역시 동창들 얘기를 들었구나.


“모르겠어. 내가 거기 간 게 잘못일 지도 모르지.”


나는 솔직히 말한다.


“난 네가 거기 있어서 재밌었어. 너한테 배운 애도 네가 거기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걸?”


“그 내가 울린 애 말이야?”


“그래 그 애. 아마 앞으로 공부나 운동을 열심히 할걸. 10년 뒤에 걔 부모가 감사인사 하러 올지도 몰라.”


로즈는 그렇게 말하고 내 팔뚝을 때리며 웃는다. 나도 웃는다. 술이 들어가니 별 거 아닌 얘기도 즐겁다.


로즈에게 한참 얻어맞고 나서 팔뚝에 멍이 들었나 싶을 때 종업원이 감자튀김을 가져다준다. 나는 시킨 적 없다고 말한다.


“서비스입니다.”


종업원은 그렇게 말하고 가버린다.


우리는 마주보고 웃으며 펍에 대해서 칭찬을 늘어놓고 안주와 맥주를 먹는다. 한참을 떠들고 나서 우리는 펍을 나선다. 종업원에게 팁을 듬뿍 안겨주고.


밖은 어둡다. 나는 로즈에게 데려다주겠다고 말한다. 로즈는 거절하지 않는다. 우리는 교외를 향해 걷는다. 초록 잔디밭을 가진 집들이 나온다.


로즈는 말 수가 줄어든다. 즐거운 시간 뒤에 일상으로 돌아갈 때 느끼는 무거운 감정이 우리를 짓누른다.


“데려다줘서 고마워.”


로즈는 어느 집 앞에서 말한다. 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뒤돌아서 각자의 길을 간다.


나는 뒤를 돌아본다. 로즈는 거리를 걷는다. 한참을 걷는다. 이어서 모퉁이를 돌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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