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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마마바 님의 서재입니다.

어느 히어로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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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마마바
작품등록일 :
2019.08.16 17:18
최근연재일 :
2019.09.16 18:05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3,237
추천수 :
192
글자수 :
142,121

작성
19.08.22 17:30
조회
103
추천
6
글자
10쪽

8

DUMMY

8.

예고된 재앙 vs 갑자기 닥쳐오는 재앙


어느 쪽이 나은가? 나는 후자가 더 낫다고 본다. 재앙을 기다리는 건 끔찍한 일이다. 지금 내가 그런 상태다. 예고된 파멸을 기다리는 상태.


나는 늘 어린애들을 다루는데 미숙했다. 물론 어른들도 못 다루긴 하는데, 애들은 특히 어려웠다는 거다.


어른들이 날이 숨겨진 위선으로 나를 공격한다면 애들은 예측할 수 없는 솔직함으로 나를 찔러대었다.


그러니 지역 사회 봉사를 앞두고 내가 불안한 것도 당연하다.


로즈 델리아는 - 이제는 성이 베일로 바뀌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녀를 델리아로 부른다. - 확인 문자를 몇 번이나 보냈다.


‘3일 뒤에 애들 가르쳐주기로 한 거 알지??’ - 로즈 델리아


‘재능기부까지 2일 남았어!!’ - 로즈 델리아


‘드디어 내일이 그날!’ - 로즈 델리아


그녀는 마치 살아있는 달력 같다. 형태가 있는 시리거나. 나는 답장하지 않는다. 왠지 단체문자일 거 같다. 답장하면 우스운 꼴이 되겠지.


불안한데 말할 사람도 없다. 제리는 sns건으로 아직도 화나 있다. 전화도 하지 않고 문자도 없다.


나는 댄스에게 문자를 보내 회사 상황을 물었는데, 편집장에게 제리가 엄청 깨졌다고 한다. 담당 작가를 컨트롤 할 줄도 모른다고. 편집자를 몇 년 하고도 이 모양이냐고.


일단은 사과 문자를 보내 놨다. 제리가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읽었는데 답장이 없는 것과 아예 읽지도 않은 것. 어느 쪽이 더 나쁠까?


제리와 연락을 못하는 동안 나는 댄스와 조금 친해졌다. 내 연락처에서 회사 상황을 알고 있고, 답장도 보내주는 건 댄스뿐이었으니까. 결국 나는 불안함을 덜고자 댄스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일 지역 봉사 활동 간다.’ - 헨리


‘정말요? 좋은 일 하시네요. 무슨 봉사인데요?’ - 제레미 댄스


‘애들 그림 가르쳐 주는 거. 만화가가 어떤 건지 말해주고.’ - 헨리


‘멋지네요! 저도 가도 될까요?’ - 제레미 댄스


나는 댄스와 내가 나란히 앉아있는 꼴을 생각해본다. 그 비참한 꼴을. 절대 안 된다.


‘안 되겠어. 일정이 이미 나와서. 참석자를 늘리기는 힘들걸.’ - 헨리


‘아쉽네요. :P’ - 제레미 댄스


다음 날 나는 아이들에게 친숙해보이고자 초록색 후드를 입고 집을 나선다. 택시를 타고 행사장으로 간다.


행사장은 작은 잔디 동산이다. 여기 저기 책상이 놓여 있고 필요한 물건들이 널려있다.


로즈가 입구에 서 있다가 나를 보고 아는 체를 한다.


“여기야 헨리!”


“안녕 로즈.”


내가 어색하게 인사한다.


“네가 안 올 줄 알고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알아? 답장이 없기에 안 오는 줄 알았어.”


“아, 나는 단체문자인줄 알았어. 답장 할걸.”


“아 그래? 이름이라도 써줄 걸 그랬다.”


로즈가 미소 지으면서 말한다. 이 대화만으로도 오늘 여기 온 보람이 있다.


로즈는 나를 내 책상으로 안내한다. 애들이 좋아할 법한 노란색 플라스틱 책상이다. 내 코믹스가 몇 권 쌓여 있다.


“이 코믹스 좀 멀리 둘까? 읽는 애들이 몰리면 신경 쓰일 거 같은데.”


내가 제안한다. 로즈도 좋은 생각이라 말한다. 우리는 책상을 하나 더 가져다가 좀 떨어진 곳에 두고 거기 코믹스를 쌓아둔다.


곧 로즈는 다른 동창을 안내하러 가고 나는 혼자 남는다. 행사는 아직 시작하지 않는다. 30분쯤 남았나?


그 사이 다른 동창이 온다. 저번 동창회 때도 봤을 텐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장을 입은 남자 동창이다.


“왔구나. 헨리.”


“왔지.”


“뭐 준비 많이 해왔냐?”


“그냥 왔지. 지식을 전달하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어?”


“그래. 지식. 근데 만화에도 그런 게 있나?”


동창은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물어본다. 그렇게 물어보니 화내기도 좀 그렇다.


“있지.”


“뭐 색칠공부 비슷한 거?”


이제야 동창이 나를 놀리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모를 때가 더 행복했는데. 뒤에서 두세명이 우릴 보고 킥킥거린다. 예이츠 고등학교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뭐 그런 거지.”


내가 달리 뭐라 하겠나.


“아 그러냐? 힘내라.”


동창들은 비굴한 내 모습을 보고 불쌍해졌는지 그냥 가버린다.


이윽고 행사가 시작된다. 아이들이 동산으로 들어온다. 부모들과 함께, 친구들과 함께, 혹은 혼자서.


나에게 배우려는 애들은 없다. 내가 뭔가를 가르칠 수 있다고 믿는 부모들도 없다. 부모들은 코믹북이라는 역병이 아이들에게 옮을까봐 전전긍긍한다.


내 앞은 텅 비었다. 코믹북을 읽고 싶어 어정거리는 애들뿐이다. 나는 코믹북을 너무 멀리 둔 걸 후회한다. 어쨌든 지금은 목소리를 높이려 애쓴다.


“자 만화 그리는 법 배워볼래?”


애처롭게 높은 목소리가 애들에게 흘러간다. 애들은 무슨 빌런을 보듯이 나를 보고는 다시 코믹북에 얼굴을 파묻는다.


뒤에서 동창들이 비웃는 소리가 들린다. 자기들끼리 농담하는 소리. 나에 대한 농담.


비라도 오면 좋겠다. 행사가 취소되고 집으로 돌아가 잠이나 잤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누가 말을 건다.


“날씨가 덥네. 다른 날을 잡을 걸 그랬나봐.”


로즈가 말한다.


“아냐, 날은 좋아. 행사도 좋고. 다만 내가 애들을 잘 못 가르쳐서 그렇지.”


나는 너무 감정적으로 말한다. 최악의 대답이다. 로즈는 뭐라 말할지 몰라 고민한다.


“그렇게 말하지 마. 너는 잘하고 있어.”


로즈는 청춘드라마처럼 말한다. 그녀가 옆에 있어서 그런지 애들 몇이 다가온다. 스케치북을 가지고.


“아저씨. 만화 보여드려도 돼요?”


“그럼. 자 보자.”


내가 인자한 목소리로 말한다. 산타클로스처럼 배는 나왔으니 이런 목소리를 내면 아이들이 좋아할지도 모른다.


맨 앞에 아이가 쭈뼛거리며 스케치북을 펼친다. 뼈만 앙상히 남은 캐릭터들이 나오는 만화다.


4컷이 전부고 뼈만 남은 사람이 뼈와 뿔만 남은 사람을 반토막내는 내용이다. 악당의 머리가 땅에 떨어져 있다.


이 애가 몇 살이지? 8살? 9살? 너무 잔인한 거 아닌가?


“아저씨 생각에는 악당을 반토막내는 건 너무 잔인한 거 같아.”


내가 말하자 애가 운다. 내가 뭘 했다고? 부모가 달려와서 나를 나무란다.


“이건 사과하는 모습을 그린 겁니다. 허리 숙여서 사과하는 거라고요.”


“아.”


이제야 선 두 개가 겹쳐있음을 눈치 챈다. 때는 늦었다. 아이는 울면서 부모의 손을 잡고 가버린다. 나는 어쩌다 미래의 경쟁자를 제거했다.


애 한명이 가버리자 다른 애들도 무서운지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뒤에서는 로즈가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린다.


우는 아이와 부모가 충분히 멀어지자 로즈는 웃음을 터뜨린다. 내 어깨를 두드리면서. 그녀의 웃음은 다른 동창들의 것과 다르게 기분 좋게 들린다.


“잘했어. 저 애는 그림에 재능이 없다는 걸 배웠을 거야.”


로즈가 웃음을 흘려가면서 말한다.


“뭐라도 가르쳤으니 다행이네.”


“내말이.”


로즈는 여전히 웃는다.


갑자기 내 앞에서 코믹스를 보던 애들이 싸우기 시작한다.


사춘기에 접어든 애들인 거 같은데, 강철남자와 번개의신 중에 누가 더 센지 결정하려고 싸우고 있다. 왜 드힌을 보다가 그런 걸로 싸우는 거지? 로즈는 애들을 말리러 가버린다.


혼자 남은 나에게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뒤에서 낄낄대던 동창들마저 질렸는지 각자 애들을 상담해주러 갔다. 나는 다양한 방식으로 펜을 돌린다. 조금씩 늘어나는 실력에 감탄하면서.


“요즘 애들이란.”


로즈가 애들을 떼어 놓고 온다.


“그러게 말이야.”


나는 맞장구 쳐준다.


“오, 너도 애들이 있구나?”


너도? 로즈에겐 있다는 뜻인가?


“아니. 난 결혼도 안했어.”


사실은 못했지.


“왜? 번듯한 직장도 있고 사람도 좋은데. 누구 소개시켜줄까?”


로즈 같은 사람들은 이게 문제다. 항상 세상이 밝고 너그러울 거라고 생각하는 거.


예를 들면 자기 친구가 자기처럼 나를 재밌어할 거라고 생각한다던지. 로즈는 나를 소개시켜 주는 것만으로도 친구를 잃을 수 있다는 걸 모른다.


“아냐. 난 혼자가 좋아.”


“그래 그런 것도 좋지. 아, 나 다른 부스도 둘러봐야 해서. 가볼게. 있다 봐.”


로즈는 바삐 걸어간다.


나는 그 뒤로 혼자 고군분투한다. 펜을 돌리고 굴리고 쌓는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어떤 빌런의 함정에 빠진 것 같다. 시간이 멈추고 움직이는 건 단 한명. 세계의 마지막 희망 스플릿맨. 음 좋은 소재일까? 나는 종이를 끌어다가 콘티를 끼적이기 시작한다.


행사는 5시가 되어서 끝났다. 나는 콘티를 그린 종이를 가방에 넣고 일어난다. 찌푸등한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풀어준다.


동창들은 한데 모여서 서로 수고했다고 말한다. 나는 거기 끼고 싶지 않다. 집에 가려고 걷는다.


“수고했어.”


그런 나에게 로즈가 다가와서 말한다.


“왜 굳이 따로 인사를?”


“저기 가기 싫어할 거 같아서.”


“내가?”


나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는다. 마치 나는 아무 문제없는 사람이고 바빠서 집에 가는 거라고 말하듯이.


“응.”


로즈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그녀도 나에 대해 동창들이 하는 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나는 그게 부끄러워 황급히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면서 나는 우울한 생각을 한다. 댄스가 왔으면 구름같이 아이들이 몰렸겠지. 부모들도 안심하고 보냈을 테고.


‘자 애들아 저런 어른이 되어야 한다.’ 부모들은 댄스를 보고 이렇게 말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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