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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이윤후

민간군사기업 블랙 레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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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이윤후
작품등록일 :
2013.04.16 12:56
최근연재일 :
2014.02.18 12:00
연재수 :
1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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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90,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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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6.15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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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6장 [결심] -01-

DUMMY

태민은 오랜만에 집에 돌아왔다. 지난번에 예원이 했던 말에 따라 주말을 이용해 잠깐 돌아온 것이다. 거의 2달 가까이 방치해둔 집은 청소가 필요할 정도로 먼지가 쌓여있었다. 덕분에 오전은 팔자에도 없었던 집 안 청소를 하며 보냈다. 냉장고에 있던 채소와 과일은 괜찮은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버렸다. 반 이상이 쓰레기통행이었다.


커다란 쓰레기 봉투를 버리는 것을 끝으로 청소가 끝났다. 태민은 거실 소파에 누우려다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 창고를 열었다. 그동안 방치되었던 레고가 그대로 들어있었다. 태민은 레고를 상자째 꺼내 바닥에 놓고 그 안에서 블럭들을 선별해서 가방에 집어넣었다. 오늘 집에 온 이유는 이 레고를 가져가기 위해서가 컸다. 하나하나 보면 작은 플라스틱 블럭이지만 이 플라스틱 블럭이 웬만한 CD보다 비쌌다. 한때는 택배를 이용할까 생각했지만 지하철 종점 철문 앞에 놓아달라는 부탁을 택배 기사에게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블럭을 적당히 챙긴 태민은 거실로 돌아와 TV를 켜고 손에 태블릿PC를 들었다. 제일 최근에 온 메일에 부모님이 일주일 뒤에 귀국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 메일을 처음 읽는 순간 반가웠고, 동시에 걱정도 찾아왔다. 오랜만에 부모님의 얼굴을 본다. 그것만으로도 반가움의 이유는 충분했다. 하지만 연구소에서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어보면 그건 정말 골치였다. 오전에는 운동하고 오후에는 영어 공부해요, 말고는 생각나는 대답이 없었다. 홍콩에서 있었던 일은 절대 입 밖에 내면 안 될 일이었다.


이것 때문에 며칠 전에 연구소 사람들에게 해결책을 물어봤지만 도통 쓸모가 없었다. 예원은 “사실대로 말씀 드려. 어차피 세상은 돈이야” 라고 하면서 태평한 소리를 했다. 김건진은 “글쎄, 나한테 그런 걸 물어봐도…” 라고 얼버무리며 회피했다. 접수대의 최수진은 “그러고 보니 태민 학생은 연구소에서 뭐 하는 거예요?” 라고 오히려 반문했다. 양 갈래머리의 박마루 연구원은 “내가 기초 물리학이라도 가르쳐 줄까요? 그거면 부모님께 연구한다고 말해도 될 텐데” 라고 말해서 간단하게 수업을 들어봤지만 도무지 이해 못 할 내용들이라 포기해야 했다. 의사와 턱수염 연구원에게는 아예 물어보지도 않았다.


결국 혼자서 생각할 문제였다. 태민은 일단 시간을 두기로 하고 거실 벽에 걸린 시계를 봤다. 분침이 오후 2시 2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1분만 더 빨리 봤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저녁때 잡은 약속 생각이 났다. 아쉬울 때만 찾는 친구, 김현과 저녁을 먹기로 했던 것이다.




※※※




김현은 만나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갑자기 웬 귀걸이냐?”


얘기가 나올 줄은 예상했지만 설마 처음부터 귀걸이 얘기를 할 줄은 몰랐다. 태민은 아직 깁스가 단단히 감겨있는 왼팔을 들어 보이면서 불평했다.


“네 눈에는 이 부러진 팔보다 조그마한 귀걸이가 더 눈에 들어오냐?”

“사람이 사람을 볼 때는 얼굴부터 본다고 하잖아?”

“어이구. 말이나 못 해.”

“사실 그 말도 하려고 했어. 너 연구소 들어간다고 했잖아? 거기서 대포라도 만드냐?”


지레짐작으로 한 말이었지만, 태민은 순간 가슴이 뜨끔했다. 솔직한 심정으로, 김현에게는 사실대로 말해도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비밀은 두 사람이 아는 순간부터 비밀이 아니었다. 그래서 김현을 믿지만 적당히 꾸며내기로 했다.


“계단에서 굴러 넘어졌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무거운 장비 옮기다가 손 한 번 삐끗해서 이렇게 돼버렸다.”

“팔이 부러질 정도였으면 굉장히 무거웠나 봐?”

“우리 박사님은 내 팔보다 비싼 장비를 더 걱정하셨지만.”


둘은 웃으면서 먹거리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은 연구소에 들어가기 전 김현과 만났을 때와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당황스럽게도 집보다 이 사람으로 북적북적한 먹거리 골목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기분을 느꼈다. 집이 청소가 되어있지 않아 기억과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김현이 얇은 코트에 두 손을 집어넣은 채로 물었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미리 생각해 둔 곳이 있지. 저기다!”


태민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항상 가고는 싶었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엄두도 내지 못했던 샤브샤브 전문점이었다. 가게를 확인한 김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야, 나 저기 더치페이 할 돈 없는데….”

“하긴 가난한 학생의 신분인 너한테는 비싸겠지. 하지만 나에게는 그럴 돈이 있다. 어떤가. 형님이라고 말하면 내가 너에게 친히 샤브샤브를 하사해주겠노라.”

“어서 들어가시죠. 형님.”

“…너무 쉽게 말하면 보람이 없잖아, 임마.”


태민은 이곳에 오기 전에 미리 은행에 들려 잔액을 확인했다. 만든 순간부터 마지막 확인하는 날까지 저금 된 액수가 최고 100만 원을 넘어가지 못했던 불운의 계좌였다. 그래서 예치금액 첫 자리에 6이 찍히는 순간 깜짝 놀랐고, 그 뒤로 이어지는 0의 개수에 두 번째로 놀랐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돈이 통장 안에 있어보긴 처음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더하고 나눠봐도 예원이 약속했던 연봉 1억에는 부족한 금액이었다. 리엔이 각종 세금을 떼고 난 최종 금액이라고 가르쳐주지 않았으면 정확한 돈을 받고도 화를 낼뻔했다.


샤브샤브 가게는 생각보다 붐벼서, 자리를 찾기 위해 가게 안쪽까지 들어가야 했다. 안에 들어와서 보니, 테이블에는 기본 세팅만 되어 있고 나머지는 직접 가져와야 하는 가게였다. 태민은 테이블 안쪽에 앉아 코트를 벗으면서 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환자이고 동시에 계산을 하는 자다. 그러므로 네가 재료을 조달하고 요리하길 바란다.”

“알았어. 처음이니까 소고기 종류로 가져온다?”

“어? 그래….”


김현은 가볍게 웃고 음식을 가지러 갔다. 태민은 테이블에 설치된 전기 버너에 스위치를 넣고, 김현이 사람들 틈에서 고기를 챙기는 모습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왜 나는 예원 누나처럼 안 되지?’


뭘 하든 항상 자기가 당하는 역할을 하는 게 불만스러웠던 태민이었다.


식사를 하면서 김현은 자기가 이제까지 생각해왔던 것과 전혀 다른 대학 생활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강의는 직접 고를 수 있으나 그것뿐이고 학점 관리를 위해서는 여전히 하루 시간 중 대부분을 공부에 보내야 한다는 게 그의 요점이었다.


태민은 그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김현이 연구소에 대해 질문하면 턱수염 연구원과 김건진, 예원과 최수진을 적절히 섞어서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내 정상적인 일을 하는 것처럼 둘러댔다. 여기서 정상적인 일이란 절대 타인을 위험에 빠트리지 않는 일을 뜻했다. 게다가 새롭게 만들어진 인물은 사려 깊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쉬운 말로 가르쳐주는 이상에 가까운 멘토였다. 김현은 가상의 인물에 대한 얘기를 들을 때마다 입으로 감탄을 내뿜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일 인분에 25,000원이나 하는 샤브샤브에 대한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맛있긴 한데 25,000원이나 낼 만큼은 아닌 것 같다.” 태민의 감상이었다.

“내 돈 내고 저걸 또 먹을 일은 없을 걸.” 김현의 감상이었다.


둘은 서점에 들러 시간을 보내다가 마침 영화관에서 상영하고 있던 할리우드 액션 영화를 보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시간을 날려버리는 데는 최적이었다. 영화가 끝났을 때 밖은 이미 밤이 무르익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시간은 밤의 시작이었지만, 태민과 김현에게는 집에 돌아갈 시간이었다.


버스 정류장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마침 김현이 타야 하는 버스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버스를 타러 가면서 말했다.


“오늘 재밌었다. 나중에 시간 나면 또 보자.”

“그래. 들어가라.”

“그런데 다음에는 그 귀걸이는 좀 빼고 와라. 난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기 싫어.”


그쪽 사람은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에 귀걸이를 건다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김현의 말마따나 오해만 깊어질 것 같아 그만뒀다. 태민은 버스 속의 콩나물시루가 되어 떠나간 김현을 뒤로하고 지하철역을 향해 걸었다. 지금부터 출발하면, 밤 11시쯤에는 연구소에 도착할 것 같았다. 이어폰을 귀에 끼우고 역 계단을 내려가는 도중, 아무리 생각해도 참을 수 없어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리엔, 왜 사장님은 널 귀걸이 형태로 만들었대?”


태민은 마치 통화하는 것처럼 리엔에게 말을 걸었다. 거기에 장단을 맞춰주는지 리엔의 목소리는 머릿속이 아니라 휴대폰에서 들렸다.


[휴대하기 편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거기에 대해선 할 말이 없었다. 사실 귀걸이는 평소에는 그 존재를 잊어버릴 정도로 가벼웠고, 따로 조작을 하지 않아도 되는 만큼 편했다. 태민은 귀걸이를 만지작거리다가 계단 아래에서 올라오는 사람이 자기를 빤히 바라보자 급히 손을 내렸다.


“다음부터는 밖에 나올 때 후드라도 써야겠다.”




※※※




“주말에 뭐 몸에 좋은 거 먹었니?”


이전하고 똑같이 늘어난 티셔츠에 헐렁한 츄리닝 바지를 입은 간호사가 엑스레이를 보면서 물었다. 질문이 날아올 줄 몰랐던 태민은 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별로요. 그냥 쓸데없이 비싼 샤브샤브나 먹었는데.”

“너 그거 자주 먹어야겠다.”

“왜요?”

“벌써 뼈가 붙었어.” 태민이 금방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짓자 간호사는 말을 덧붙였다. “다 나았다고. 조금만 기다려. 깁스 풀어줄게.”


간호사는 큼직한 가위를 가져와 깁스를 자르고 들어냈다. 오랫동안 씻지 않은 팔에서 역한 냄새가 올라왔지만, 태민은 냄새를 잊고 멀쩡히 움직이는 팔을 놀라운 눈으로 쳐다봤다.


“갈 때 화장실에서 좀 씻고 가라.”


간호사는 그 말을 남기고 진찰실을 나갔다. 태민은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리엔에게 말을 걸었다.


“리엔, 이게 정말 샤브샤브 먹어서 그런 거야?”

[절대 아닙니다. 레가니움의 활성화로 인해 몸의 회복 능력이 올라간 것입니다.]

“너 전에 자가회복 같은 건 안 된다고 했잖아.”

[그것은 인위적인 회복에 대해서 한 말입니다. 크로노스의 자가회복은 자연을 거스른 방법입니다.]

“글쎄, 내가 보기엔 이것도 별로 다른 것 같지 않은데.”

[다릅니다.] 그 목소리는 단호했다.

“알았어.”


이제는 하다못해 인공지능에게도 야단을 맞는구나 하는 생각에 왠지 서글퍼졌다.


화장실에서 팔을 비누로 닦던 태민은 예전에 얼핏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깁스를 오랫동안하고 나면 그쪽으로 영양이 가지 않아 홀쭉해진다는 말이었다. 거품을 물로 씻어내고 두 팔을 거울에 비춰 굵기를 확인했다. 눈이 나빠진 게 아니라면, 왼팔이 조금 하얗기는 했지만 굵기는 동일했다.


태민은 자신이 다쳤던 일을 떠올려봤다. 기억하기 싫은 어렸을 때 폭발 사고를 제외하면, 크게 다친 건 그 뒤로 이번이 처음이었다. 학교를 다닐 때도 누구나 겪는 가벼운 찰과상이나 감기 정도가 전부였다. 모두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낫는 그런 종류. 이 빠른 회복이 예전부터 있었던 것인지 확인하기에는 다친 경험이 너무 적었다.


어쨌든 태민은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게다가 이번 주 주말에는 부모님이 유럽에서 돌아온다. 그때 깁스를 한 왼팔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걱정했었는데 문제가 자연스레 해결된 것이다. 이제 문제는 하나만 남았다. 정상적이고 안전한 멀쩡한 연구소를 만들어 부모님께 설명하는 일이었다. 다행히 김현과 만났을 때 했던 얘기에 살을 좀 더 붙이면 그럴싸한 모습이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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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6장 [결심] -05- +20 13.06.25 9,609 133 12쪽
30 6장 [결심] -04- +12 13.06.22 9,138 13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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