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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이윤후

민간군사기업 블랙 레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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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이윤후
작품등록일 :
2013.04.16 12:56
최근연재일 :
2014.02.18 12:00
연재수 :
128 회
조회수 :
838,556
추천수 :
16,202
글자수 :
790,195

작성
13.05.11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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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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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글자
12쪽

3장 [리엔] -02-

DUMMY

태민은 부모님에게서 온 이메일을 읽고 있었다. 지중해가 보이는 어느 절벽 위의 그림 같은 별장에서 지내고 있다며 한동안 더 머물겠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였다. 부모님께서 당신들의 인생을 즐기시는데 이견은 없었지만 대체 그 돈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따져보고 싶었다.


‘혹시 내가 여기 취직했다고 남아있는 돈을 흥청망청 쓰시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머릿속의 명탐정은 이 불길한 예상을 이미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태민은 너무 오랫동안 유럽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냐고 따지듯이 답장을 적다가 이내 모두 삭제하고 즐겁게 지내시는 것 같아 다행이다라고 썼다.


더 쓸 말이 없는지 생각하고 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화면으로 정장을 차려입은 예원이 보였다.


“나가요!”


일부러 문 너머로 들리게끔 큰 소리를 지른 건 출발하기 전에 답장을 보내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이었다. 결국 더 쓸 말이 없었던 태민은 답 메일을 보내자마자 코트를 챙겨 입으며 방문을 열었다.


“오래된 옷인데 의외로 괜찮다?”


예원의 감탄에 태민은 가볍게 웃어 보였다.


태민이 입고 있는 정장은 원래 김건진의 옷이었는데 마지막으로 입은 지 5년이 지났다고 하면서 넘겨준 물건이었다. 김건진과 태민은 체격 차이가 꽤 났기 때문에 예원이 숙소 내 시설을 이용해 손수 옷을 줄여줬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태민이었지만 완성된 정장은 꽤 훌륭했다.


“빨리 가자. 시간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해.”


단지 옷 하나 바꿔 입었을 뿐인데 매일같이 걷는 길이 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처음 입어보는 정장이 가져오는 불편함은 긴장을 놓지 않게 해주는 유용한 자극이었다. 엘리베이터 벽은 오늘도 지치지 않고 푸른 바닷가를 보여줬다. 그리고 1층에 도착하는 순간 항상 그렇듯이 텅 빈 로비가 두 사람을 맞이했다.


“지금 가시는 건가요?”


유일하게 로비를 지키고 있던 최수진이 말을 걸었다. 보다 가까이에 있었던 예원은 그 말을 무시했고 대신 태민이 두 사람 분의 키 카드를 반납하면서 사과했다. 이런 반응을 미리 예상했던 최수진은 귀엽게 입을 살짝 내밀면서 예원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올 때 선물 안 사오면 방에 못 들어갈 줄 알아요.”


그 대답으로 예원은 말없이 오른손을 올려 중지를 들어 보였다. 그러자 일회용 휴지봉투가 날아와 그녀의 뒤통수에 명중했다.


사무실을 지날 때는 연구원들과 간단히 인사라도 할 줄 알았는데 다들 자기 자리에 앉아 일에 열심일 뿐이었다. 그래도 양 갈래 머리를 한 여 연구원은 태민과 눈이 마주치자 입술만 움직여 잘 다녀와 라고 말하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 외에 일부러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해준 사람은 엘리베이터 앞을 지키고 서 있던 턱수염이 무성한 연구원이었다.


“올 때 선물 잊지 마.”

“안 사올 거 알면서도 맨날 그 말 하시더라.”


예원에게 한 소리들은 연구원은 피식 웃으면서 태민을 바라봤다.


“태민 학생도, 가서 좀 힘들 테지만 힘내.”

“예. 감사합니다.”


태민은 무엇 때문에 힘들다는 건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기 때문에 간단히 대답해야 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탔었던 내부가 새하얀 엘리베이터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럼 갔다 올게요.”


예원이 말하자 연구원은 손가락을 이마에 갖다 댔다가 떼면서 인사를 대신했다.


육중한 철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내려올 때와 마찬가지로 빠른 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전에는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했던 태민은 이제 한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여유롭게 서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예원처럼 휴대폰을 만지는 수준에는 오르지 못했다.


오랜만에 본 새하얗고 긴 통로는 여전히 낯선 느낌이었다.


“5분 뒤에 지하철 오니까 서둘러.”


예원은 무빙워크에 몸을 올리고 나서도 부지런히 발을 움직였다. 서둘러야 한다는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던 듯싶었다. 별생각 없이 뒤를 따라가던 태민은 예원이 하이힐이 아니라 단화를 신고 있는 걸 보았다.


‘예원 누나답다고 할까.’


통로 끝에 거의 다다르자 예원은 냉큼 달려 미리 인식 작업을 끝내놓고 문 옆에 설치된 작은 모니터로 문밖의 상황을 확인했다. 당연하지만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써있는 오래된 철문에 접근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예원은 태민에게 빨리 오라는 손짓을 함과 동시에 철문을 열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지하철은 특유의 폐쇄된 공기와 냄새로 반겨줬다. 그 덕분에 태민은 자기도 모르게 헛기침을 하면서 연구소 안의 공기가 지상과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로 깨끗하단 걸 다시금 깨달았다.


“그런데 누나. 뭐 타고 가는 거예요?”

“지하철 타고 김포공항까지 갈 거야.”

“지하철로요? 거의 끝에서 끝이잖아요. 차라리 차를 타고 가는 게 빠르지 않을까요?”

“나도 그러고 싶었는데 실험실 파손의 책임을 져야 해서.”

“내가 부순 것도 아닌데….”


무심코 한 말에 예원이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자 태민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무슨 말 했어?”

“의식 있는 문화시민이라면 당연히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똑똑하네.”


역에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니, 두 사람이 유일했다. 잠시 뒤 지하철이 도착했고 예원은 누구보다도 빨리 올라타 문 바로 옆자리를 차지했다.


‘서두르지 않아도 이 칸에는 우리밖에 없는데.’


이렇게 생각하며 그녀의 옆자리에 앉은 태민은 휴대폰으로 지하철 노선을 검색하다가 중간에 두 번 정도 갈아타야 하는 걸 발견했다. 단순히 그것을 알리기 위해 예원을 돌아봤는데, 그녀는 이미 두 눈을 감고 졸고 있었다. 아마도 앉자마자 곧장 이 자세로 들어간 듯싶었다. 최근에 그렇게 바쁜 일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이러는 걸 보면 지하철만 타면 반사적으로 자는 것 같았다.


태민은 예원이 자게 놔두고 처음 가보는 외국은 과연 어떤 곳일지 상상하기 시작했다. 지하철이 역들을 지나면서 사람이 많이 탔다가 많이 내리면서 상상은 멀어지고 지루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채웠다. 잡상인이 큰 목소리로 떠들 때도 잠에서 깨지 않는 예원을 깨워 지하철을 갈아타야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평일인데도 도심 쪽으로 들어가면 사람들이 많아서 자리 잡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예원은 서 있는 상태에서도 눈을 감고 꿋꿋하게 졸았다.


두 번째로 갈아타야 할 역에서 내려 한참을 걷고 있던 태민은 어느 순간 예원이 옆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디에서 헤어졌는지 도저히 기억나지 않아 왔던 길을 돌아가야 했다. 몇 초도 안 되는 시간이지만 갖가지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 동시에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이렇게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기가 막혔다.

길을 거슬러 올라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원을 발견했다. 그녀는 계단 중간에 앉아 있는 할머니에게서 싸구려 과자를 다섯 봉지나 사고 계단을 내려왔다.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태민은 예원과 눈을 마주치자마자 뭐라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아이처럼 해맑게 웃는 얼굴을 보고 차마 화를 낼 수 없었다.

예원이 봉지 하나를 내밀면서 말했다.


“자, 너도 좀 먹어.”

“뭐하러 이런 걸 샀어요?”


그러면서도 손은 예원이 준 봉지를 뜯고 과자를 집어 든다.


“이유가 있나. 벌써 지하철 탄지 1시간도 넘었고, 배도 좀 출출하고, 그래서 샀지.”

“그래도… 쩝쩝. 사람한테 말은 했어야죠. 쩝쩝. 잃어버린 줄 알고 걱정했네.”

“어머. 내 나이가 몇인데 잃어버려?”


두 사람은 김포공항에 도착하기 한참 전에 과자 다섯 봉지를 모조리 먹어 치웠다.



※※※



난생처음 공항이란 장소에 온 태민은 천천히 안을 구경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다고 서두르는 예원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북적이는 느낌은 없었어도 평일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다들 커다란 여행 가방을 옆에 들고 삼삼오오 모여있는 모습을 보니 이전에 있었던 불안감이 다시 일어났다.


홍콩행을 통보 받은 그날 저녁, 태민은 식당에서 예원과 식사를 하는 중에 질문을 날렸었다.


“저기 누나. 제가 외국에 나가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잖아요.”

“응. 그게 왜?”

“그래서 여권이라든지…. 입출국에 필요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홍콩에 갈 수 있을까요?”

“괜찮아 괜찮아. 내가 미리 말해 놓을게.”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바람에 믿고 맡겼지만 출국심사 과정에서 험한 꼴을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이었다. 예원이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하는 사이, 공항직원과 여자승객이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고 덕분에 태민의 걱정은 더 심해졌다.


“잠깐만 보자. 어딘가에 머리 긴 건방진 놈이 있을 텐데.”


예원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람들 사이에서 긴 금발에 정장을 입은 백인 남자가 두 사람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정장으로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상당히 좋은 남자라는 것이 느껴졌다.


“가자.”


백인과 거리가 가까워지자 예원은 한 손을 들어 올리더니 남자의 손바닥을 치고 그대로 악수했다. 두 사람은 앞서 걸어가며 영어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예원을 부를 때 이름대신 캣으로 불렀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뒤에서 걷고 있던 태민은 대화 내용을 이해하진 못했지만 두 사람이 꽤 친하고, 오랜만에 만난 사이란 것 정도는 분위기로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두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몸을 뒤로 돌렸다. 대화 내용은 몰랐지만 예원이 말하는 자신의 이름과 손동작으로 봤을 때 소개를 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태민이 어색하자 웃으며 목 인사를 하자 남자가 이빨을 보이면서 뭐라 말했는데 마지막의 ‘키드’만 제대로 알아들었다.


남자는 둘을 사람들이 없는 통로로 데려갔다. 짐을 맡기는 작업도, 신체검사도, 출국심사도 없었다. 사람이 없는 깔끔한 길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활주로에 나와 있었다. 겨울을 품고 있는 회색 풍경을 배경으로 일반 승객들이 사용할 여객기가 보였다.


태민은 고개를 돌려 백인 남자가 향하는 방향을 보았다. 그곳에는 여객기보다 조금 작고 훨씬 날렵하게 생긴 비행기가 대기하고 있었다. 비행기 옆에 또 다른 백인 남자가 대기하고 있었는데 이쪽은 몸이 좋을 뿐만 아니라 덩치까지 컸으며, 대머리에 검은 선글라스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일행을 보자마자 문을 열어 탑승할 준비를 했다.


태민은 긴 머리 남자와 예원에 이어 세 번째로 비행기에 탔다. 비행기 내부는 평소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바닥에 카펫이 깔려있고 푹신한 소파와 탁자에 무게 있는 갈색으로 장식된 벽, 마치 고급 카페 같다고 생각했다.


“자자, 태민아. 우리는 저쪽에 앉자.”


예원은 제일 안쪽에 있는 소파로 태민을 앉히고 자신은 그 맞은편에 앉았다. 곧이어 문을 열어줬던 대머리 남자까지 올라타자 비행기가 출발할 준비를 모두 마쳤다는 듯이 기분 좋게 흔들렸다. 백인 둘은 왼편에 있는 소파에 앉으면서 영어로 뭔가 말을 건넸다가 예원의 답변에 기분 좋게 웃음을 터트렸다. 대화를 알아듣지 못한 태민은 그저 창 밖만 내다봤다.


이윽고 비행기가 떠올랐다. 창 밖으로 땅이 멀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감탄하다가 무심코 고개를 돌렸더니, 얼굴을 살짝 찡그리고 있는 예원이 보였다. 그제서야 얼마 전 사고로 예원이 부상당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평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여 잊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태민이 걱정의 한마디를 하려고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뒤에서 영어 한마디가 들리더니 눈앞으로 검정 물체가 지나갔다. 정확하게 예원을 노리고 날아간 그 물건을 본 태민은 깜짝 놀랐다. 그것은 자동권총이었다.


작가의말

권총은 꽤 무거운 물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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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6장 [결심] -05- +20 13.06.25 9,609 133 12쪽
30 6장 [결심] -04- +12 13.06.22 9,138 13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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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6장 [결심] -01- +10 13.06.15 10,633 13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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