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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이윤후

민간군사기업 블랙 레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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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이윤후
작품등록일 :
2013.04.16 12:56
최근연재일 :
2014.02.18 12:00
연재수 :
128 회
조회수 :
838,550
추천수 :
16,202
글자수 :
790,195

작성
13.05.09 12:47
조회
12,909
추천
155
글자
10쪽

3장 [리엔] -01-

DUMMY

빌딩 유리 벽에 반사된 햇빛이 아침이 되었음을 알려줬다.


태민은 손등으로 눈을 비비면서 어제 몇 시에 잤는지 떠올려보려 애썼지만 도저히 기억나지 않았다. 분명한 건 김건진에게 아무런 연락이 없었단 거다. 태민은 부엌에서 냉수를 한 잔 마시고 바로 방을 나왔다.


시계를 확인하지 않았지만 평소보다 늦거나 빠른 시간인지 엘리베이터는 중간에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바로 2층에 도착했다. 태민은 수술실로 향했다. 아직도 두 사람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장면을 기대했지만 의자는 텅 비어있었고, 수술실 안에서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문을 살짝 열고 안을 확인했다. 수술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답답함을 느끼며 왔던 길을 되돌아오던 중 등 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아침부터 무슨 일로 오셨나?”


눈 밑에 다크서클이 뚜렷한 의사는 비쩍 마른 작은 몸에 이미 반쯤 벗겨진 머리를 가지고 있었고, 숨을 쉴 때마다 강한 알코올 냄새가 공기에 섞여 날아왔다. 태민은 웬만하면 상대방에게 불편한 감정을 보이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이번만은 예외였다. 만에 하나 뭐가 잘못돼도 이 사람에게만은 몸을 맡기고 싶지 않다는 강한 의지가 얼굴에 번졌다.


“혹시…. 한예원 관리자님의 수술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래도 지금은 질문할 사람을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의사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손끝으로 머리를 긁어댔다.


“어제 했던 수술 얘기로군. 괜찮아. 잘 끝나서 병실에 집어넣었어.”

“혹시 병실은 어디 있는지….”


의사는 머리를 긁던 손가락으로 복도 한쪽을 가리켰다.


“이쪽으로 쭉 가다가 오른쪽, 그리고 첫 번째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면 돼. 1호실이다.”

“감사합니다!”


태민은 바로 몸을 돌려 의사가 가르쳐준 곳으로 가려고 했다.


“잠깐.”


의사의 한마디는 조금이라도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던 태민을 힘들게 했다.


“왜 그러세요?”

“네가 이번에 관리자가 데려온 꼬맹이냐?”

“아마도 그런 것 같네요.”

“흠. 그래.”


의사는 태민을 위아래도 훑어보더니 입을 꾹 다물었다. 태민은 빨리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래도 상대가 연장자여서 꾹 참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의사가 아무 말도 않고 이제는 귀를 파기 시작하자 인내심이 바닥나 버렸다.


“이제 그만 가봐도 될까요?”

“그래. 뭐…. 그래라. 그리고, 열심히 해라.”


말 자체는 평범한 격려였지만 그 말을 전하는 목소리는 격려대신 걱정을 품고 있었다. 태민은 그 점이 잘 이해되지 않아 왜 그러냐고 되묻고 싶었지만 빨리 자리를 피하고 싶은 마음에 간단히 “예”라고 대답하고 도망쳤다.


의사의 말대로 복도를 달려 복도 끝의 1호실에 도착했다.


‘501호도 그렇고 여기도 그렇고. 복도 끝 되게 좋아하네.’


기분이 나아지게끔 일부러 흉을 보았지만 오히려 문을 열기가 더 힘들게 되어버렸다. 태민은 손잡이를 잡고 푸른색 문을 잠시 동안 응시하다가 단숨에 열었다.


침대에 누워 생명 유지장치에 의지하고 있는 예원을 보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그녀가 거의 죽을 듯이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환자복을 입은 사람이 침대 위에서 TV에서 나오는 생활 체조를 따라 하는 모습은 뭔가 아니라고 생각됐다.


“오, 태민이 왔어?”


목소리에서도 아픈 기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태민은 빈 침대를 하나씩 차지하고 세상 모르게 자고 있는 김건진과 최수진을 지나쳐 예원에게 다가갔다.


“몸은 괜찮은 거예요?”


생각 같아서는 드라마에 나오는 시어머니처럼 가시 돋친 잔소리를 하고 싶었지만 환자에게 그런 행동은 아무래도 독이라고 생각됐다. 예원은 TV 채널을 뉴스로 바꾸더니 양반다리를 하며 침대 위에 털썩 앉아버렸다.


“응. 누구씨가 되지도 않는 심폐소생술 한다고 갈비뼈를 부러뜨려 버렸지만 크게 불편하진 않아.”

“…그거 굉장히 위험한 거 아니에요?”

“아니. 푹 쉬고 몸조리만 잘하면 돼. 그것보단….” 예원은 갑자기 진지한 얼굴을 했다. “그거 평범하게 다루면 안 되겠더라.”

태민은 잠시 머릿속을 돌아다니다가 대답했다. “어제 추출한 에너지요?”

“어. 방아쇠 당기는 순간 정신이 아예 사라졌거든. 그걸 뭐라고 해야 하지? 장마 때 계곡물에 휩쓸리는 느낌? 어쨌든 내 평생 그런 적은 처음이야.”


태민은 그래도 다행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제 예원이 쓰러져 있던 모습이 떠올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생각을 읽었는지 아니면 다른 생각할 거리가 있는지 예원은 말 없이 창 밖에 보이는 숲 속을 한동안 쳐다봤다. 그건 엘리베이터나 태민의 방에 있는 것처럼 잘 만들어진 가짜였다. 태민은 숲을 보고 있는 예원의 옆 모습에서 후회와 걱정을 본 것 같았다.


한참을 숲을 응시하던 예원이 땅이 꺼질 듯이 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후아. 보고서 어떻게 쓰지.” 그 말에 태민을 할 말을 잃고 침대에 머리를 박았다. “응? 너 왜 그래. 다리에 쥐라도 났어?”

“아니요. 그냥 좀 피곤해서요.”

“아침인데?”


예원은 점심때부터 환자복으로 돌아다니며 실험실과 사무실, 식당의 피해 상황을 확인하며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날 일어났던 진동으로 사무실과 식당에서도 모니터나 식기들이 떨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들은 없었지만 가벼운 부상을 입은 사람들은 숫자가 꽤 되어서 그 부분까지 본사에 알려야 했다.


예원이 이리저리 뛰어다닐 동안 태민은 한쪽 벽이 부숴진 실험실에서 기초 체력 훈련을 계속하는 한편, 김건진과 함께 레가니움 원석에서 에너지를 추출했다. 이번 사고에 대한 보고서를 올릴 때 위의 분들이 납득할 수 있을 증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다시 추출된 에너지는 총 두 개였고 예원이 직접 연구소 밖으로 나가 본사로 보냈다.




※※※




보고서가 샘플과 같이 본사에 발송되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 예원이 철문을 열고 실험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아직도 흉물스런 모습을 드러낸 벽을 배경으로 달리고 있는 태민을 발견하자마자 두 손을 모아 소리쳤다.


“김태민! 그만하고 이리로 와봐!”


거기에 반응해 고개를 돌린 태민은 그녀가 보기 드물게 상큼하게 웃고 있자 궁금한 마음이 동해 달려갔다.


“뭐 좋은 일 있어요?”

“뭔지 맞춰볼래?”

“본사에서 벽 부순 거 그냥 넘어가 주기로 했나요?”


하지만 그건 정답이 아니었는지 예원의 낯빛은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아니…. 아쉽게도 그건 아니더라. 징계위원회가 열려서 3개월의 감봉이…. 으흐흑.”

“…죄송해요. 그럴 의향은 아니었는데.”

“괜찮아. 짤리지 않았으니까 그걸로 만족해야지 뭐. 예전에는 이것보다 더 큰일도 있었지만 극복해냈다고.”


힘찬 표정으로 주먹을 쥐어 보이는 예원의 모습은 상당히 작위적이었지만 보기엔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원래 하려던 말은 뭐였어요?”

“맞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태민이 너 외국 가본 적 있어?”

“아쉽게도 전 한반도를 벗어나 본 적이 없습니다만. 제주도도 못 가봤어요.”

“잘됐네.” 예원은 태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번에 홍콩 지부에서 회의가 있는데 너도 나랑 같이 가자.”

“정말요?”

“그럼. 태민이는 이미 우리 회사에서 유명인이니까. 아마도 사원부터 간부들까지 전부 널 보러 올 걸. 하지만 영어가 안 되니까 아마도 입 꽉 다물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동물원 원숭이 신세로 스트레스 받을지도 몰라.”


이번에는 반대로 태민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 그러면 좀 고민되는데요.”

“하지만 선택권은 없어. 무조건 가야 해.”

“에엑! 제 의사여부는 안중에도 없는 거예요?”

“당연하지. 사장님이 직접 불렀는데.”


인권까지 들먹이며 어떻게든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려고 했던 태민은 사장님이란 단어 앞에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처음에는 사장이 왜 보자고 했을까 하는 질문이 머릿속에 떠오르더니 사장보다 회장이 높은지, 블랙 레벨의 계급은 어떻게 되어있는지 하는 궁금증이 차례차례 떠올랐다. 태민은 머릿속으로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냈지만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이 있어 입을 열었다.


“사장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사장님?” 눈을 반쯤 감고 기억을 더듬는 예원의 얼굴에 짜증, 경멸, 증오로 보이는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름은 마이크 패트릭. 미국인이고 올해 나이는 아마 36살 정도. 더럽게 잘났고 더럽게 부자고, 더럽게 재수 없지.”

“누나, 사장님을 굉장히 싫어하는 것 같은데요?”

“아니. 별로 안 싫어하는데?”


태민은 순간 앞으로 고꾸라질뻔했다.


“방금 험담을 늘어놨잖아요.”

“그건 그 인간이 너어무 잘난 인간이라서 그래. 그런 인간은 욕하고 질투 좀 해도 상관없어.”


태민이 말도 안 되는 궤변에 할 말을 잃었을 때 제어실에서 나와 총총걸음으로 다가온 김건진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예원씨. 나도 홍콩에 갈 수 없을까?”

“뭐야. 아저씨 제어실에 있었던 거 같은데 어떻게 들은 거예요?”

“두 사람 대화소리가 워낙 커서 듣기 싫어도 들리던데? 아무튼 나도 좀 가면 안 될까?”


김건진은 평소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게 목소리를 올렸다 내렸다하며 애교를 부렸지만 예원의 대답은 단호했다.


“안 돼요.” 그리곤 징징 소리가 들리기 전에 이유를 댔다. “난 징계 받으면서 동시에 태민이 경호로 가는 거라고요.”

“반대네. 보통은 직원이 관리자를 경호해야 하는 거 아닌가?”

“보통은 그런데 태민이야 특별하니까요.”


김건진은 예원이 어깨를 으쓱하는 모습을 참을성 있게 지켜보고 말했다.


“그래도 밤에는 놀러 갈 거잖아.”

“안 놀아요!”


예원이 발끈하자 김건진은 태민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입을 귀에 가까이 갖다 댔다.


“태민아 들어봐. 전에 일본에 출장 갔다가 비행기 놓쳤던 적이 있었는데….”

“안 논다니까요!”


얼굴이 새빨개져 있는 힘껏 소리 지르는 예원을 처음 본 태민은 도대체 일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중에 꼭 알아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작가의말

출장은 역시 해외가 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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