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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이윤후

민간군사기업 블랙 레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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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이윤후
작품등록일 :
2013.04.16 12:56
최근연재일 :
2014.02.18 12:00
연재수 :
128 회
조회수 :
838,621
추천수 :
16,202
글자수 :
790,195

작성
13.06.18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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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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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글자
12쪽

6장 [결심] -02-

DUMMY

“태민아. 누나도 같이 가면 안 돼?”


등의 상처가 제법 회복되어 병실에서 탈출한 예원은 지금, 태민의 거실 소파에 앉아 무리한 부탁을 하고 있었다. 부모님께 말쑥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옷을 고르고 있던 태민은 상의 후보를 양 손에 들고 방 밖으로 나오면서 말했다.


“오랜만의 가족 상봉을 방해 받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그래서, 이것 중에 뭐가 더 나아 보여요?”

“오른쪽.” 대답을 들은 태민이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예원은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려 기지개를 펴면서 말했다. “그건 네가 몰라서 하는 말이야.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홀로 일하고 있는데 부모님께서 얼마나 걱정하시겠니? 그럴 때 관리자인 내가 딱! 나타나서 아드님은 현재 연구소 업무를 무척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어 장래가 촉망됩니다, 라고 말하면 안심하시지 않겠어?”


과연,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누구보다도 겉모습에 많은 영향을 받는 분들이셨다. 나이가 지긋하고 겉 모습이 중후한 남자라면 모를까 행동 하나하나가 힘이 넘치는 젊은 아가씨에게는 믿음보다 의심을 주실 분들이었다. 게다가 예원이 같이 가면, 며칠 전부터 열심히 설정을 붙여 만든 가칭 멀쩡한 연구소 계획을 써먹을 수 없었다. 예원이 그 계획을 도와준다? 웃으면서 엉망으로 망치는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됐고요. 그냥 얌전히 연구소에 있어주세요.”

“우와. 태민이 너무 한다. 내가 영어까지 가르쳐줬는데.”

“가족 잔치에 끼어들려면 구성원 모두와 어느 정도 친분이 있어야 한다고요.”

“그 친분을 지금 만들려고 하는 거잖아.”

“아직은 이릅니다.”


태민은 옷을 모두 입고 지갑과 휴대폰을 챙겨 거실로 나왔다. 사실 신경 써서 입는다고 했지만 학교 다닐 때 입었던 옷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예원은 그 모습을 조용히 쳐다보다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얘는, 소매가 제대로 안 접혀있잖아.”

“이 정도는 제가 해도 되는데요.”


거리가 너무 가까워 당황한 목소리가 나왔다. 예원은 그 말에 빙긋 웃었다.


“자 됐다. 바로 나갈 거지?”

“아, 네.”

“부모님하고 좋은 시간 보내고,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알았지?”


예원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손으로 전화기 모양을 만들어 귀에 갖다 대면서 방을 나갔다. 태민은 닫힌 문을 잠시 바라보다가 창 밖을 한 번 내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인천공항 B게이트, 오후 2시.”




※※※




김포공항 때와 마찬가지로 인천공항도 지하철을 타고 가기로 했다. 인천공항은 김포공항보다 몇 정거장 더 멀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처음부터 이어폰을 준비했다. 지하철 끝에서 끝으로 가는 여정은 언제나 힘이 들었다. 태민은 휴대폰에서 평소 자주 듣는 노래를 재생시켰다. 수십 곡이 넘어가는 재생목록이 끝에 다다랐을 때는 인천공항에 도착해있었다.


인천공항은 김포공항보다 사람이 훨씬 많았고, 그만큼 활력이 넘쳤다. 생각해보면 김포공항에 왔을 때는 평일이었기 때문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을 살펴보니 딱히 비행기를 탈 용무가 없는데도 이곳의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온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았다. 어찌 됐든, 태민은 사람으로 붐비는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B게이트는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태블릿 PC나 휴대폰으로 문자를 띄워놓고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비행기 한 대가 도착했는지 사람들이 게이트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혹시 유명 배우나 가수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평소에는 보기 힘든 외국인들만 눈에 넘치게 보았다.


“리엔, 우리 부모님이 탄 비행기가 오려면 얼마나 남았어?”


태민은 아무 생각 없이 리엔에게 말을 걸었다가 아차 했지만 다행히 주변이 시끄러워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약 32분 남았습니다. 기체 사정에 의해 변동될 수 있습니다.]

“32분이라….”


태민은 배에서 들리는 꼬르륵 소리에 잠시 게이트를 떠나 뭔가를 먹기로 했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패스트 푸드 가게가 있어서 그곳에 들려 햄버거와 콜라를 샀다. 가게 안의 손님들은 대부분 일행이어서, 구석에 있는 조그마한 2인용 테이블에 앉아 먹어야 했다. 평소에는 혼자서 밥 먹는 것에 익숙했지만 아무래도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눈치가 보였다.


태민은 햄버거를 광속으로 해치우고 콜라를 손에 든 채 게이트로 돌아왔다. 급히 먹는 바람에 속이 별로 좋지 않았고, 콜라 때문에 연신 트림이 나왔다. 그래서 사람들에게서 조금 뒤에 떨어진 곳에 서기로 했다.


“우리 자기 오면 맛있는 거 사 달래자.” 친구들과 함께 애인을 기다리는 여자도 있었고,

“응. 도착하면 바로 연락할게.” 앞으로 올 사람을 기다리며 다른 곳에 전화를 하는 남자도 있었고,

“조금만 기다리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신단다.” 가족을 기다리는 가족도 있었다.


태민은 빈 콜라 컵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오면서 마지막으로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가다듬었다. 예원이 신경 써준 소매는 제대로 되어있는지 특히 신경 썼다. 아무래도 자기 자신보다는 여자의 감이 믿기 쉬웠다.


2시가 3분 전으로 다가왔을 때, 태민은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위에서부터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혹시 자신만 그것을 느꼈나 싶어 주변을 둘러봤더니 몇몇 사람들도 의아한 표정으로 위를 쳐다보고 있었다. 몸이 이상하리만큼 떨리는가 싶었지만 그건 다른 종류의 떨림이었다. 공기가 울리고 있었다. 뒤이어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을 때는 눈 앞에서 천장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공항 안에 있던 사람들의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안내방송이 나온 것 같았지만 비명에 묻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가운데, 몸이 굳어버린 태민은 움직일 생각을 조금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천장이 점점 무너지는 모습에, 크로노스가 뒤따라오던 자동차를 두 동강 내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죽을 수도 있다는 압도적인 공포가 몸을 집어삼켰다.


그때, 리엔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머릿속에서 들렸다.


[달려야 합니다.]


그 순간 강력한 전류가 몸을 뚫고 지나간 것처럼 느껴졌다. 손가락 끝이 움직이기 시작한 걸 확인한 태민은 곧바로 뒤를 향해 전력 질주하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철근이 바닥에 떨어지며 구부러지는 소리와 유리가 사정없이 깨지는 소리가 잡아먹을 듯이 쫓아왔다. 살기 위해 무거운 가방을 손에서 놓은 남자를 지나, 살기 위해 뚱뚱한 몸을 쉬지 않고 움직이는 백인의 옆을 지나갔다.


태민은 달리는 도중에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자신을 이렇게 필사적으로 달리게 하는 것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그것은 부러진 한쪽 날개를 바닥에 긁으며 미끄러지고 있는 여객기였다. 그 소리는 마치 당장에라도 두개골을 절단해버릴 것 같이 날카로웠다. 태민은 얼굴을 있는 힘껏 찡그리며 다시 앞을 바라봤다.


얼마나 달렸을까. 귀를 때리던 굉음이 멈췄을 때, 태민은 달리는 것을 멈추고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뒤를 돌아봤다. 나뭇가지처럼 구부러진 철골을 둥지로 삼은 여객기는 곳곳에 불이 붙어있었다. 그 밑으로는 사람들의 몸이 각종 물건들과 섞여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옥을 만들고 있었다. 태민은 그 광경을 자세히 보지는 않았다. 자세히 보고 싶어도 눈앞을 흐리게 만드는 땀 때문에 자세히 볼 수 없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멍하니 바닥에 앉아있거나 가족 혹은 친구를 찾기 위해 이곳 저곳에서 소리를 지르고 다녔다. 저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 소리가 비명과 울음 소리와 한데 섞여 귀를 아프게 했다.

태민은 고개를 들어 여객기를 자세히 살펴봤다. 조종석에서 불길을 솟아오르고 있었고, 그 뒤로 커다란 그림자가 보였다. 그 그림자는 얼핏 보면 사람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뭔가가 크게 달랐다.


‘저건…?’


태민은 그림자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달렸다. 사고 현장으로부터 도망치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옆으로 비켜섰다.


[사고 현장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되돌아갈 것을 추천합니다.]


리엔의 말이 머릿속에 울렸지만 무시했다. 태민은 엉망진창인 철골 위에 발을 올려 여객기를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리엔의 경고가 계속해서 울렸다.


[여객기가 폭발할 위험이 있습니다. 당장 멈추십시오.]

[혹시 사람들을 구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스캔 결과 여객기 안에서 생명 반응은 없습니다. 승객은 이미 모두 사망한 상태입니다.]

[당장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리엔이 떠드는 사이 태민은 여객기 조종석이 눈앞에 보이는 곳까지 올라왔다. 망설이지 않고 옆으로 돌아 불길 뒤에 있는 그것을 확인했다. 흰색 타일로 만든 가짜 따위가 아니라, 진짜 크로노스가 그곳에 있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도망가게 할 공포도, 싸움을 하게 할 분노도 느껴지지 않았다. 몸이 굳은 채로 크로노스의 가면 뒤에 있는 붉은 눈동자를 응시하던 태민은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




“응?”


태민은 눈을 두어 번 깜박이고 주변을 둘러봤다. 방금 전까지 분명 무너진 공항에서 크로노스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불빛이 제대로 닿지 않는 어두운 골목에 서 있었다. 눈앞에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있는 골목의 끝이 보였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생각하기도 전에 쓰레기의 산 옆에서 문이 열렸다. 밝은 빛과 함께 살이 뒤룩뒤룩 찐 남자가 한 손에 식칼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왔다. 앞치마를 배에 두른 그는 쓰레기봉투를 아무렇게나 집어 던지더니 그대로 다시 문으로 들어갔다. 문은 굳게 닫혔다.


골목에 홀로 남겨진 태민은 예전에도 이곳에 한 번 온 적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위를 올려봤다. 하늘을 막고 있는 커다란 무언가가 바로 머리 위에 있었다. 판자 사이에 일정한 간격으로 나 있는 좁은 틈이 그것이 철로라고 가르쳐줬다. 이전에 왔을 때와 달리 기차는 지나가지 않았다.


“리엔? 여기가 어디야?”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태민은 손을 들어 왼쪽 귀를 만져 보았다. 평소에는 귀걸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 마치 없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정말로 없었다. 놀라지 않았고, 당황하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이 상황을 편안하게 받아들였다.


바로 그때, 눈앞에서 문이 덜컥 열리면서 10살이 겨우 되었을 법한 꼬마가 튀어나왔다. 몸에 달라붙는 검은 옷에 검은 후드를 쓴 꼬마가 옆을 스쳐 지나가며 소리쳤다.


“죽기 싫으면 뛰어요!”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였지만 확실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그 사이 문에서 아까 전에 쓰레기를 버렸던 뚱보가 나왔다. 이번에는 양손에 식칼을 들고, 태민을 보자마자 얼굴을 심하게 일그러뜨리며 달려들었다.

태민은 곧장 반대편을 향해 뛰었다. 아까 전의 그 꼬마가 골목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쪽으로 와요!”


꼬마가 앞장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도망가는 길은 어둡고 좁은 골목의 연속이었다. 꺾고 꺾이는 골목을 달리다 보니 어디쯤을 달리고 있는지 감도 잡히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꼬마는 이곳의 지리를 잘 알고 있는지 한 번도 망설이지 않고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다가 꼬마가 벽 밑에 난 작은 구멍으로 들어갔다. 몸이 커서 구멍에 들어갈 수 없는 태민은 벽 앞에 멈춰 주변을 둘러봤다.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뚱보의 화가 난 목소리가 들렸다.


“이 망할 자식들! 잡히면 그 자리에서 죽여주마!”


작가의말

이번 화 후반은 3장 [리엔] -05- 에서 있었던 환상의 연장선입니다.

그리고 인천 공항에 악의는 없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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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6장 [결심] -05- +20 13.06.25 9,610 133 12쪽
30 6장 [결심] -04- +12 13.06.22 9,139 13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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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6장 [결심] -01- +10 13.06.15 10,636 13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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