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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이윤후

해결사 박채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완결

이윤후
작품등록일 :
2012.12.18 21:27
최근연재일 :
2013.01.09 13:44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56,919
추천수 :
560
글자수 :
112,641

작성
13.01.08 12:55
조회
1,768
추천
16
글자
12쪽

해결사 박채도(22)

DUMMY

이채원은 불에 탄 기차를 뒤로하고 주변이 나무로 빽빽한 숲 속을 걷고 있었다. 간신히 괴물들을 따돌리고 도망친 그는 지금 다른 무엇보다 물이 절실히 필요했다. 한참 동안이나 물을 먹지 못해 목이 심하게 말라서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고, 가슴 속은 불덩이를 삼킨 것 마냥 뜨거웠다.


태양도 달도 뜨지 않은 어두운 하늘 아래에서 나뭇잎 위에 놓인 이슬을 보았다. 단 한 방울의 이슬로 목을 축이기 위해 다가가서 손을 뻗었을 때였다. 나무 밑동에서 갑자기 솓아오른 불길이 이슬을 앗아가 버렸다.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치면서 나무가 불타는 모습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봤다.


사람 크기만한 나무는 맞지 않게 불에 타고 또 타도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그 모습이 신기해졌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나무에 미련을 버리고 떨어진 그것을 봤을 때 이채원의 눈이 커졌다. 그곳에는 아직 한참 젊었을 적의 아버지가 서있었다.










땅으로 내려와 갈고리를 회수한 채도는 좋지 않은 표정으로 범인을 바라봤다. 온 몸에서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인간 모습을 한 화염에 가까웠다. 안경으로 범인의 신원을 확인해보려고 해도 불꽃이 이미 얼굴을 잠식해버려 도저히 식별이 불가능했다.


채도는 범인이 바로 전에 불을 붙인 건물이 타오르는 속도를 관찰했다. 잠깐 손 끝을 댔을 뿐인데 벌써 건물의 반 정도가 화염에 휩싸이고 있었다. 근접전은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하고 가슴에 있는 칼집에서 나이프를 꺼내 들고 칼날 끝으로 범인의 몸을 겨냥했다. 다행히 범인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기만 하고 움직이지는 않았다.


나이프에서 발사된 탄환이 범인의 몸에 꽂히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불에 휩싸이며 사라졌다. 범인은 고개를 숙여 탄환이 증발한 곳을 보더니 곧바로 채도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채도는 갑작스런 상황에 놀라 뒤로 도망치며 후드 줄을 꺼내 가인에게 소리쳤다.


"소화전 위치 좀 찍어줘!"


대답은 없었지만 안경에는 빠른 속도로 소화전의 위치가 표시됐다. 그 중 가장 가까운 소화전을 향해 전력 질주했다. 다행히 채도는 범인보다 달리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때문에 달리면서 잠깐 잠깐 뒤를 돌아볼 여유가 있었는데 범인의 발이 땅에 닿았다가 떨어질 때마다 그 자리에 작은 불꽃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가인이 찍어준 소화전은 대로변에 있었다. 채도는 골목에서 빠져 나오자마자 인도 위에 설치되어있는 붉은색 옥외소화전의 모습이 보였다. 위치와 거리를 학인하고 범인이 자기를 착실히 따라오고 있는지도 확인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범인은 두 팔을 앞으로 쭉 내밀고 그를 향해 달려오는 중이었다.


일부러 방향을 트는 모습을 보여주고 옥외소화전을 향해 달려가 나이프를 이용해 밸브에 연결된 쇠사슬을 잘라버렸다.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며 달아났다. 채도 입장에서는 귀찮게 상황 설명을 하지 않아도 돼서 편리했다. 밸브에 손을 갖다 대고 범인이 골목에서 나오길 기다렸다.


'물만 뿌린다고 그 불이 꺼지나?'


마음 속에서 나오는 의문 때문에 다른 방법을 구상할 시간은 이미 없었다. 골목을 빠져나 온 사람 모습의 불덩어리를 본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그 때문이었는지 범인은 곧바로 채도에게 오지 않고 주변을 돌아보며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야! 여길 봐!"


채도는 소리를 지르면서 다시 한 번 나이프 끝을 범인에게 겨누고 탄환을 날렸다. 몸을 살짝 찌른 물체가 불에 타서 사라지자 범인은 그제서야 채도를 다시 보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채도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나이프를 집에 집어넣고 밸브를 잡은 두 손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밸브가 생각보다 뻣뻣했다. 채도는 바로 눈 앞에서 달려오는 범인을 보면서 이를 악물고 두 팔이 터져나갈 정도로 힘을 줬다. 그제서야 간신히 밸브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범인의 쭉 뻗은 팔이 채도의 코 앞에 다가왔을 때 밸브가 열리면서 물이 뿜어져 나왔다.


범인은 소화전에서 튀어나온 물을 몸에 정통으로 맞고 반대편으로 멀리 날아갔다. 하얀 물 줄기 때문에 쓰러진 범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채도는 범인의 팔을 피하려다 뻣뻣해진 목 근육을 풀어줬다. 차도 위에 있던 차들은 갑자기 사람 모습의 불덩어리가 물을 맞고 날아간 모습에 놀라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채도는 곧바로 범인에게 다가기는 두려워서 차도로 걸어가 물줄기 옆에서 범인을 확인했다.


범인은 바닥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고 있었지만 몸에 붙은 불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내심 아쉬워하고 있을 때 눈치도 없이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채도는 범인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휴대폰을 받았다.


"여보세요?"

"나다! 너 지금 뭐하고 있냐?!"


장 반장이었다. 범인과 싸우는 모습을 본 시민 중 누군가가 신고한 것이 그의 귀까지 흘러 들어간 것이다. 채도는 장 반장이 전화한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얘기했다.


"건물 몇 채에 불을 지른 범인하고 싸우고 있습니다."

"어떻게 됐어?!"

"어떻게 제압은 했습니다만 아직 위험합니다. 오실 때 소화기 좀 왕창 가지고 오세요. 여기 위치는..."


채도는 말을 하다 말고 통화를 끊었다. 소화전에서 나오던 물줄기의 힘이 약해지면서 범인이 다시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범인의 몸에 붙은 불길은 여전히 기세 좋게 타오르고 있었다. 단순히 물 만으로 저 인체 발화를 막을 수 없다는 게 확인되자 머리를 최대한 굴리면서 다른 방법을 떠올리려 애썼다.


그 때 채도의 눈에 범인의 발 아래가 들어왔다. 생각할 틈도 뭐도 없이 나이프를 꺼내서 범인의 말 밑을 향해 전기탄을 발사했다. 총 세 발의 탄환이 물이 고여있는 바닥에 박혔다. 단 한 발로도 웬만한 사람에게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전기탄이었다. 세 발의 위력을 동시에 받는다면 최소한 기절이었다. 전기가 방출되기까지 걸리는 몇 초 동안, 채도는 이 방법이 제발 통하길 간절히 기도했다.


세 개의 탄에서 전기가 한 번에 방출되었다. 물 바로 위에 서있던 범인은 갑자기 몰려온 충격에 몸을 떨면서 비명을 질러댔다. 주변 빌딩 유리창을 강하게 흔든 그 소리에 채도는 몸이 살짝 떨었다. 사람의 목소리라기 보다는 여러가지 동물의 울음을 섞어 만든 괴성같았다. 범인의 몸에서 불꽃이 사방으로 튀어나와 자리를 가리지 않고 불을 피우는 바람에 열심히 움직이며 발로 밟아 꺼야 했다. 그럼에도 범인의 몸에서 타오르고 있는 불은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아까 전보다 위세가 약해진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소화기를 든 경찰 병력을 데리고 경찰 병원 밑으로 내려오고 있던 장 반장은 여기저기서 일어난 화제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소방 병력이 미처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건물에 경찰들을 투입시키느라 채도가 있는 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장 반장을 포함해 세 명이 전부였다.


장 반장은 골목을 나오자마자 범인의 몸에서 떨어져 나간 불꽃을 처리하고 있던 채도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야! 범인은 어디 있어!"

"왼쪽에 있잖아요!"


채도의 외침에 옆으로 고개를 장 반장은 온 몸이 타오르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그는 잠시 넋 나간 듯이 범인을 바라보고 있다가 번뜩 정신을 차리고 경찰들에게 소화기를 뿌리라고 명령했다.

두 명의 경찰이 소화기를 들고 범인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본 채도가 소리쳤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마! 불이 옮겨 붙는다!"


그 말을 들은 경찰들은 소화기를 뿌리되 최대한 먼 거리를 유지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분말을 뒤집어쓴 범인의 몸에서 불꽃이 차츰 사그라졌다. 온 몸이 새하얗게 변한 범인은 바닥에 엎드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몸의 긴장을 풀면서 건물을 몇 채나 태워버린 원인이 고작 소화기에 쓰러지는 것에 어이가 없었다.

채도는 장 반장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나중에 밥 한끼 사라. 그나저나 이번 녀석은 꽤 쉬웠어. 그냥 소화기로 뿌리면 되다니."


채도는 쓴 웃음을 지으며 "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있었다. 범인의 총이 보이지 않았다. 이번 범인은 다른 능력자들같이 손이나 발로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 몸의 어디든 물체가 닿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불태워버렸다. 때문에 힘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면 어디를 손상시켜야 할 지 감이 전혀 오지 않았다.


경찰 중 한 명이 허리춤에서 수갑을 꺼내 범인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채도는 경찰을 말려야 한다는 이성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분말 가루 때문에 불이 붙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목소리를 막아 섰다.


경찰은 소화기를 옆에 내려놓고 손을 범인의 팔을 향해 내밀었다. 채도는 물론이고 주변에 있던 시민들도 그 장면을 숨죽여 지켜봤다.


아뿔싸. 경찰의 손이 범인의 몸에 닿자마자 손에서 불이 확하고 피어 올랐다. 바로 소화기를 뿌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다른 경찰은 동료의 손에 불이 옮겨붙는 모습을 보고 몸이 굳어버렸다. 불은 팔을 타고 올라가 어깨까지 도달했다.


"내놔!"


장 반장이 소화기를 낚아채 분말을 뿌렸다. 다행히 불은 금방 꺼졌지만 바닥에 쓰러진 경찰은 화상을 입고 말았다. 장 반장이 한숨 돌리면서 소화기를 내려 놓으려고 할 때 였다. 어느 새 일어난 범인이 뒤에서 장 반장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장 반장 옆에 서있던 경찰은 그 모습을 봤지만 혹시나 범인이 자신을 공격할까 봐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범인이 장 반장의 등에 손을 대기 직전에 채도가 몸을 날려 범인을 저지했다. 채도와 범인은 보도 블록 위를 뒹굴다가 차도로 떨어졌다. 근처까지 몰려와 구경하고 있던 시민들이 화들짝 놀라며 도망가며 주변을 원 모양으로 둘러쌌다. 범인 위에 올라탄 채도는 분말 가루가 중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몸에 불을 붙는 것을 직접 확인했다.


[빨리 도망가!]


가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이미 몸에 붙어 그럴 수 없다고 판단했다. 어차피 부상을 입을 거라면 조금이라도 빨리 적을 제압해야 했다. 하지만 범인의 총은 여전히 단서조차 잡히지 않는 상황이었다. 불이 손에서 팔을 타고 가슴에 옮겨 붙는 찰나의 순간 적의 목숨과 자신의 목숨 사이에서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선택한 것은 당연히 자신의 목숨이었다.


보통 사람보다 배는 크고 수 년 동안 무지막지하게 단련된 두 주먹이 범인의 얼굴을 인정사정 없이 후려쳤다. 얼굴 뼈가 부숴지는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소화기 분말이 공중에 휘날리며 시선을 가렸다. 채도는 고개를 힘껏 흔들어 분말이 잔뜩 묻은 안경을 아무렇게나 던졌다. 시야가 한층 선명해지면서 피를 흘리는 범인의 얼굴이 보이는 듯하다가 다시 솟아오른 불에 의해 가려졌다.


이제는 더 이상 시간을 끌 수가 없었다. 불이 목 밑까지 올라왔다. 채도는 왼손으로 범인의 얼굴을 부여잡고 손을 펼쳤다. 손목 아래에서 갈고리가 발사되는 감각이 느껴졌다. 갈고리가 범인의 머리를 뚫고 들어가 그 안에서 다리를 펴는 느낌도 생생했다.


장 반장이 허겁지겁 도로 위로 달려와 채도에게 소화기를 뿌렸다. 채도는 오른손으로 입과 코를 막으면서 피가 묻은 갈고리를 회수했다.


범인의 몸에서 맹렬히 타오르던 불길이 서서히 사그라졌다. 채도는 그를 가득 덮은 소화기 분말을 치워내 얼굴을 확인하려고 하다가 검게 타버린 볼살을 발견하고 손을 멈췄다. 그 동안 많은 이들의 팔과 다리를 못 쓰게 만들었지만 목숨을 빼앗은 무게보다는 훨씬 가벼운 것이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장 반장이 걱정스런 얼굴로 채도의 겨드랑이 사이에 팔을 집어넣어 몸을 일으켜 세워줬다. 다리에는 간신히 서있을 수 있을 정도의 힘만 남아있었다. 길 가에 세워져있는 자동차로 힘겹게 걸어서 등을 기대고 장 반장이 무전기로 지원을 요청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보니 막을 수 없는 피로가 몰려와 눈이 자연스럽게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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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해결사 박채도(21) 13.01.07 1,440 15 12쪽
20 해결사 박채도(20) 13.01.06 1,473 19 14쪽
19 해결사 박채도(19) 13.01.05 1,630 16 11쪽
18 해결사 박채도(18) +2 13.01.04 1,924 21 16쪽
17 해결사 박채도(17) 13.01.03 1,719 18 9쪽
16 해결사 박채도(16) 13.01.02 1,767 17 10쪽
15 해결사 박채도(15) 13.01.01 2,025 19 9쪽
14 해결사 박채도(14) 12.12.31 1,811 20 11쪽
13 해결사 박채도(13) +2 12.12.30 2,071 20 11쪽
12 해결사 박채도(12) +2 12.12.29 1,900 24 12쪽
11 해결사 박채도(11) 12.12.28 2,105 20 12쪽
10 해결사 박채도(10) 12.12.27 2,168 20 9쪽
9 해결사 박채도(9) 12.12.26 2,445 22 8쪽
8 해결사 박채도(8) 12.12.25 2,100 22 7쪽
7 해결사 박채도(7) 12.12.24 2,260 27 13쪽
6 해결사 박채도(6) 12.12.23 2,824 31 11쪽
5 해결사 박채도(5) 12.12.22 3,210 26 11쪽
4 해결사 박채도(4) +1 12.12.21 3,777 36 8쪽
3 해결사 박채도(3) +2 12.12.20 3,887 42 7쪽
2 해결사 박채도(2) +1 12.12.19 4,361 43 10쪽
1 해결사 박채도(1) +4 12.12.18 6,332 4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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