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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이윤후

해결사 박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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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이윤후
작품등록일 :
2012.12.18 21:27
최근연재일 :
2013.01.09 13:44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56,906
추천수 :
560
글자수 :
112,641

작성
12.12.31 12:33
조회
1,810
추천
20
글자
11쪽

해결사 박채도(14)

DUMMY

주변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와 온 몸에 퍼지는 고통 때문에 이 형사는 눈을 떴다. 코를 찌르는 시큼한 냄새와 함께 처음 보는 흰색 천장이 흐릿하게 보였다. 시간이 지나 소리와 시점이 점점 또렷해지면서 자신이 병원에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것도 응급실. 자기가 어쩌다가 이곳에 왔는지 생각해봤다. 채도와 다른 길로 범인에게 접근하려 한 이 형사는 공중에 떠오른 물건들 때문에 뒤에서 접근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 골목길을 이용한 옆에서의 접근이었다. 접근 직전까진 순조로웠다. 그런데 총을 겨누고 꼼짝 마를 외치는 순간 무언가에 부딪히면서 의식을 잃었다.


"부끄럽게시리..."

"뭐가 부끄러워?"


이 형사는 갑자기 옆에서 들린 말에 고개를 돌리다가 목에서 심한 통증을 느꼈다. 고통에 움직이지 못하는 그가 얼굴을 확인할 수 있게, 채도는 몸을 일으켰다.


"아, 채도씨..."

"정신이 들었으니 다행이야. 난 설마 죽는 건 아닌가 했다고."


순도 백 퍼센트의 거짓말이었다.


"바쁜 시기에 이렇게 돼서 죄송합니다."

"됐고, 몸조리나 잘해. 오른 다리가 부러지고 바닥에 쓰러지면서 가벼운 뇌진탕이 있었다니까. 총은 옆에 놔뒀으니까 확인해."


이 형사는 고개를 돌려 방금 전까지 채도가 앉아있던 방향을 보았다. 옷걸이 걸린 외투 안에 희미하게 권총의 손잡이가 보였다.


"감사합니다."


채도는 이 형사의 침대 커튼을 쳐주고 환자들로 가득한 응급실을 걸었다. 모두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사고로 실려온 환자들이었다. 가벼운 찰과상을 입은 사람부터 아직까지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 사람까지 사건 현장에 있던 모든 부상자들이 바로 옆에 있었던 경찰 병원으로 실려왔다. 다들 고통에 괴로워하지만 그래도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사건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마지막 순간 하늘에서 물체들이 떨어질 때 차 안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채도는 응급실에서 다른 환자들을 살피고 있던 혜진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이 형사, 정신 들었다."

"그래? 다행이네."

"나중에 안정되면 알려줘. 난 서로 가서 브리핑 해야 하니까."

"잘해야 돼." 혜진은 긴장을 풀라는 의미에서 가볍게 웃었다.

"당연하지."


채도는 다소 무거운 걸음으로 응급실을 나갔다. 혜진은 채도가 응급실을 나가는 모습을 말없이 보고 있다가 다른 의사가 부르는 소리에 부리나케 뛰어갔다.


병원 정문으로 걸으며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채도는 갑자기 뒤에서 울린 자동차 경적 소리에 얼굴을 찡그리며 돌아봤다. 너무 오랫동안 전국을 돌아다녀서 폐차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은 고물 자동차가 눈을 부라리며 서있었다. 아무 말없이 조수석으로 가서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탔다. 운전석에 앉아있던 앞부터 위까지 머리가 벗겨진 중년 남자는 말 없이 차를 출발시켰다.


채도는 문에 달린 손잡이를 돌려 창문을 열면서 신경에 거슬리도록 일부러 약간 거리를 두는 목소리로 말했다.


"장 반장님. 이거 대체 언제 폐차 합니까?"

"아직 10년은 더 탈 수 있다 이것아."

"거참. 요즘 같은 소비 시대에 너무 짠돌이십니다."

"우리 집안이 좀 자린고비다 임마. 그나저나 너 브리핑 내용은 생각해놨어?"

"그 까짓 거 그냥 본 대로 말만하면 되는 건데 뭘 미리 생각까지 해놓습니까?"

"서장님이 직접 듣잖아. 후우, 하긴 너는 서장님 앞에서도 그 따위로 하는 놈이지."


차 안에 잠시 동안 정적이 흐르는 동안 바로 옆 차선에 있던 스포츠카가 무리하게 끼어들려고 하는 바람에 접촉 사고가 날 뻔했다. 장 반장은 욕지거리를 뱉으면서 시끄럽게 경적을 울렀다. 채도는 얼굴을 찡그리며 귀를 막았다가 조용해졌을 때 말했다.


"그냥 가서 잡아버리시죠. 경찰인데."

"쓸데없는 일에 힘쓰기 싫다."

"제 귀 생각도 좀 해주셔야죠."


그 말에 장 반장이 무섭게 노려보자 채도는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내다봤다. 장 반장은 다시 앞을 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이 형사가 다쳤다고?"

"네. 멋모르고 범인한테 접근하려다 다친 모양입니다."

"운도 없어 정말."

"그러니까 이런 일에는 잔뼈가 굵은 사람이 와야 한다니까요. 이 형사 저거, 그 녀석들 정신 상태가 얼마나 위험한지도 전혀 모르던데 이거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아휴, 전임자가 그렇게 깽판을 쳐났으니..."

"다른 사람 탓은 하지 마십쇼."


그렇게 투덜거리며 대화하는 사이 덜덜거리는 고물 차는 중앙 경찰서 정문을 통과했다. 문을 열고 내리려 할 때 장 반장이 말했다.


"그래도 어쩌냐. 그렇게 결정됐으니까 네가 잘 좀 키워봐."


문을 열다 말고 몸을 멈췄다. 어떻게 말해야 가슴 속에 있는 느낌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잠시 뜸을 들였다가 "전 방임주의 입니다."라고 말하고 차에서 내렸다. 장 반장은 멀어져 가는 채도의 뒷모습을 보면서 코웃음을 쳤다.


"방임주의는 얼어 죽을."








브리핑 룸 문 앞에 선 채도는 코에 안경을 걸치고 가볍게 심호흡 한 다음 안으로 들어갔다. 화란시 경찰 고위 간부들이 모두 모인 자리는 몇 번을 겪어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원래 이런 일은 담당인 이 형사가 해야 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불평할 수도 없었다.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공기가 바뀌었다. 작은 실수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잡아내겠다는 듯이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는 간부들의 시선과 마주해야했다. 그 중 한 명, 중앙 경찰 서장만이 채도를 향해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박채도씨."


서장의 부름에 채도는 단상에 올라가면서 대답했다.


"예. 서장님."

"바로 전에 이번 사건으로 발생한 피해와 함께 우리 도시에서 발견된 미확인 비행물체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는데 혹시 아는 거 있나?"

"미확인 비행 물체요?"


서장은 두 손을 책상 위로 올려 손가락을 겹치면서 말했다.


"그래. 몇 시간 전 사건이 벌어지고 있을 때 도시 상공을 아주 낮게, 그리고 빠르게 날아갔다고 하는데. 레이더에는 잡히지 않았지만 시민들 중 본 사람은 몇 명 있어."

"죄송합니다만 전 보지 못했습니다. 그거 혹시 UFO 아닙니까? 어차피 뜻은 동일하잖습니까."

"이 사람아, 시대가 어느 땐데 UFO 타령인가."

"사람이 손도 쓰지 않고 차를 들어올리고 주먹으로 바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부수는 시대죠."


서장은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외줄 위를 건너는 것같이 긴장한 상태로 이어질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서장의 입이 움직였다. 그는 털털하게 웃기 시작했고 웃음은 곧장 주변으로 번졌다.


"그래 그런 시대였지. 시간만 끌어서 미안하네. 보고를 시작하지."

"예."


채도는 안경을 벗어 렌즈를 닦는 척하면서 안경테에 있던 버튼을 눌렀다. 렌즈 안쪽이 잠깐 깜박이더니 김상호에 대한 정보가 표시되기 시작했다. 안경을 다시 쓰고 마음을 다잡은 다음 경찰 고위 간부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범인의 이름은 김상호. 나이 37세. 경찰 병원 내과에서 근무하고 있던 자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시간 전 경찰 병원 앞에서 모습을 나타냈고, 흔히 염력이라 말하는 능력으로 주변의 물건들을 파손시켰으며 그 와중에 부상 52명, 사망 16명이 발생했습니다. 저는 빈틈을 노려 그에게 접근해 저지하려고 했으나 공격을 받기 바로 직전 사라졌습니다."

"사라졌다는 건 무슨 뜻이지?"


간부들 중 눈이 유난히 작은 사람이 의문을 제시했다.


"문자 그대로 사라졌습니다. 이 외에는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가 사라진 다음 공중에 떠있던 물체들이 힘을 잃고 일제히 땅으로 추락한 걸로 보아 사건 지점에서 상당히 멀리 이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순간이동인가?"

"제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채도가 안경에 표시된 정보를 읽으며 다음 얘기를 준비할 때, 어깨가 떡 벌어진 우직해 보이는 간부가 물었다.


"한 사람이 두 가지 기술을 쓴 적이 이제까지 있었던가?"

"아니요. 이번이 처음입니다."

"순간이동이라면 범인이 도망친 곳을 예측할 수 있나?"


이번에는 간부들 중 젊은 축에 속하는 남자가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채도는 간부의 눈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몇 년 전 있었던 순간이동을 쓴 범죄자와 같다면, 제일 유력한 곳은 범인의 집입니다. 시야 내에서는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하지만 멀리 떨어진 장소는 직접 가보지 않았다면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예전 사건 때 밝혀졌습니다. 또 범인이 알고 있던 기억과 실제 장소가 다르다면 이동하지 못합니다. 확실한건 이동하고자 할 장소에 다른 물체가 있을 때 입니다. 그렇지만 범인의 행동 범위가 전국에 걸쳐있다거나 해외 여행을 자주 다녔다면 이동 장소를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채도는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기다렸다 말을 이었다.


"현재 유일하게 희망을 걸 수 있는 건 아니러니 하게도 범인의 정신 상태 밖에 없습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이치에 맞지 않는 힘을 가진 이들의 정신 상태는 약에 취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상태니 범인이 이동할 장소를 제대로 떠올리지 못하게끔 기도해야겠죠."


누군가 질문을 할지도 몰라 잠자코 기다렸지만 정적만 흘렀다. 한 단계 넘어간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가슴을 답답하게 누르고있던 공기가 입으로 자연스레 빠져나왔다.


"그리고 이것 또한 좋은 얘기는 아닙니다만, 범인이 쓰는 염력은 흔한 염동력자들보다 강력합니다. 한 번에 많은 물체들을 들어올릴 수 있고 무엇보다 손을 뻗지 않은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한가지 다행인 점이라면, 제가 확인한 거지만 몸 뒤에 있는 물체만 공중에 떴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앞에 있는 물체를 못 움직인다는 증거가 되지는 못합니다."


할 말을 모두 마친 채도는 안경을 벗어 앞 주머니에 걸었다. 경찰 간부들도 질문할 것이 없는지 모두들 주위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불편한 시간이 계속해서 흐르던 도중 경찰 서장이 손뼉을 한 번 세게 쳐 시선을 집중시킨 다음 말했다.


"다들 왜 그리 고민해? 우리가 비싼 돈 주고 박채도씨를 고용한 이유를 잊었어? 골치 아픈 건 떠넘겨 버리자고."


여기저기서 웃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채도 또한 이를 보이며 쑥스럽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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