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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석 님의 서재입니다.

신을 죽이는 화신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범스톤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2
최근연재일 :
2023.08.23 14:28
연재수 :
9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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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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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
글자수 :
588,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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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9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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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3화 - 걀라혼에 관해서, 그리고 새로운 인연

DUMMY

진 무라트가 두플리칸에게 오른팔이 잘렸을 수도 있는 심각한 부상을 입고 나서 아수라 마즈다의 인간 형체를 붙잡고 있는 생체조직에 몸을 묻은 채 회복에 전념한 지도 이틀이 넘게 흘렀다.


꼼지락거리는 손가락과 힘을 주면 근육이 꿈틀거리는 느낌에서 팔의 신체조직 재생이 거의 완료되었음을 느꼈다. 그러나 이는 의식적인 행동은 아니었다.


그의 머릿속은 전날 아수라 마즈다가 해주었던 이야기들을 되새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신의 수호자라······.’


아수라 마즈다가 걀라혼에게 한 가지 중요한 일을 요청하였음을 밝혔는데 그것은 바로 ‘원신의 수호자’가 남긴 유물 파편을 수집하라는 것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천 년 전.


황폐의 숲에 있는 아수라 마즈다의 폐신전 앞에 찾아와 정중히 만남을 청하였던 고대신의 화신체가 있었다.


그는 ‘레멘탈(Lemental)’란 이름의 고대신의 존재를 밝혔고 자신이 레멘탈의 마지막 화신체임을 밝혔다.


그가 설명하기로 레멘탈은 고대신들에게 ‘원신의 수호자’라고 일컬어졌다.


원신은 고대신들이 자신들을 달리 부르는 호칭이었다.


스스로 이 땅의 근원에 해당하는 신이라 여겨 부른 이름이었다.


고대신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독립적으로 자생하는 존재들이었으나 레멘탈만큼은 모두의 의견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존중받는 존재였다.


따라서 그는 모든 고대신이 가진 근원적 힘을 조정할 힘과 자격이 있었는데 이는 주신들이 껄끄럽게 여기는 존재로 바라보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결국 레멘탈은 어떤 유물에 봉인되어 6조각으로 쪼개어 하인니스 대륙 각지에 숨겨졌는데 이것을 복원해야 망가진 이 세상을 다시 되돌릴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남기고 화신체는 사망하였고 아수라 마즈다는 확인할 필요성을 느끼고 걀라혼에게 그 일을 주문한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곱씹어보던 진이 입을 열었다.


“레멘탈의 유물에 관한 이야기가 믿을 만하다고 보는 건가?”


[“아니.”]


의외의 대답에 진이 아수라 마즈다의 인간 형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 걀라혼에게 찾으라고 주문한 거지?”


[“나는 이천 년 전에 여기에 자신을 봉인했고, 황폐의 숲에 만들어놓은 무너진 신전을 조사하려는 자들은 시대마다 있었지. 하지만, 누구도 날 찾을 수 없었어. 그런데 레멘탈의 화신체가 찾아와 그런 말을 하고 죽어버렸단 말이야. 나라고 여기에 구린 냄새가 날 거란 생각을 왜 안 했겠느냐?”]


“그럼?”


[“기회라고 여겼지. 레멘탈이란 존재나 그 역할의 진위는 알 바 아니야. 하지만, 유물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다른 화신체를 마주치거나 신들과 엮일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할 텐데 그런 걸 지금의 네게 맡길 수는 없으니 하인니스 랜드 최고 마스터에게 맡긴 것이지. 티옌마라도 그 과정에서 성장할 수 있을 테고, ······그러니 네가 거기에 뒤처져선 곤란해.”]


“걀라혼은 믿을 수 있나?”


[“믿을 수 있지.”]


“무엇을 근거로?”


[“헤인드롤은 최초의 소드 마스터 12인 중 한 사람이 새롭게 가진 성씨다. 그리고 그는 현재 마스터 유니온의 장이지. 그것으로 충분해.”]


“마스터 유니온이 그렇게 중요한 건가?”


[“지금은 어떤 상태인지 짐작하긴 어렵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다. 마스터 유니온을 세운 사람이 바로 칼리드 진이고 유니온은 최초에 그들이 이 세상으로 넘어온 진의를 잇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라는 점이야. 그것은 분명히 오늘날까지 계승되었을 것이고, 그들의 장이 된 걀라혼 헤인드롤은 그 진의를 알기에 여기에 날 찾아온 것이지.”]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 그들이 변질하였을 가능성은?”


[“그래서 걀라혼을 따로 떨어뜨려서 시험해보는 것이다.”]


그때 진은 계속해서 아수라 마즈다의 인간 형체를 바라보며 대화하고 있었는데 감긴 눈꺼풀을 따라 붉은 선이 그려지는 걸 보았다. 그것은 이내 중력을 받은 중심으로 모여 혈루를 형성하기 시작하더니 점차 그 양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볼을 타고 흐른 혈루는 떨어지기가 무섭게 공중으로 떠올랐고 거기서 모여들어서는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는 피의 구슬을 형성했다.


[“혈청이다.”]


혈청은 점차 진에게 다가오더니 그의 오른쪽 눈을 파고들었다.


“으악!”


진이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다.


혈청이 그의 오른쪽 눈을 붉게 물들였다가 흡수되었는지 점차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는데 그동안 진은 끔찍한 느낌을 감당해야만 했다.


“무슨 짓이야?”


[“신들이 세상을 재창조할 수 있는 열쇠 역할을 하는 혈청이다. 하인니스 랜드의 핵을 기폭 시킬 수 있는 물질이지. 걀라혼에게 같은 설명을 하고서 나의 피로 만든 가짜를 주었다. 진짜는 그것이다.”]


“고약하군.”


[“내 혈청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걀라혼은 티옌마라를 사용함으로써 언젠가는 딱 한 번 위험에 처할 순간이 찾아오게 된다. 나의 혈청은 그때 그를 보호해줄 것이다.”]


“시험한다는 것은?”


[“유니온이 변질할 가능성이 있듯이 그도 변절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겠지. 그때가 되면 넌 그를 죽여 티옌마라를 회수해야 한다.”]


“하인니스 랜드 최강의 소드 마스터를 죽이라니. 화신으로 트랜스폼해도 불가능한 거 아니야? 티옌마라까지 들고 있다고.”


[“그때도 나의 혈청이 역할을 할 것이다.”]


“흐음.”


투둑! 툭! 툭!


진이 생체조직의 벽에서 몸을 꺼내기 시작했다. 마치 힘줄이나 근육이 끊어지듯 떨어져 나가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진이 벗어나게 되자 벽도 원래의 형태로 돌아갔다.


“내가 얼마나 있었지?”


[“보름.”]


“나가야겠군.”


진이 대답하면서 브로드 소드를 뽑았다. 그러자 조금 떨어진 곳 천장에서 핏물이 후두두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걀라혼의 두플리칸이 나타났다.


[“네 수준에 맞춰주겠다.”]


“아니, 하던 대로 해줘.”


진의 대답에 두플리칸이 4피트 가량의 오러 블레이드를 일으켰다.


[“되겠냐?”]


타탁!


진이 두플리칸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브로드 소드에도 3피트에 가까운 오러 블레이드가 일어났다.


두플리칸이 검을 내려쳤다.


진이 옆으로 피해내자 지면에 닿기 직전에 궤도를 틀어 쫓아왔다.


그 반응이 어찌나 빠르던지 이번엔 막을 수밖에 없었다.


챙!


일전엔 부딪치는 순간, 위력에 밀려 오른팔을 베였지만, 진은 손안에 느껴지는 충격을 각도를 틀어 흘려보내면서 땅에 바짝 드러누웠다.


아니, 등이 땅에 닿진 않았다.


두플리칸의 검격을 가까스로 흘려내면서 동시에 몸을 하단에 바짝 붙여서 오히려 두플리칸의 검이 출발한 지점으로 밀어 넣으니 어느새 딱 올려치기 좋은 자세가 되었다.


진의 브로드 소드가 오러로 빛나는 반월의 검광을 그렸다.


카각!


“칫.”


두플리칸이 어느새 전신에 오러 쉴드를 일으킨 채 물러나고 있었다.


가슴부가 비스듬히 갈라져서 일렁였다가 다시 합쳐지는데 그 깊이가 그리 깊진 않아 보였다.


[“빠르군.”]


“완전히 벨 수 있었는데.”


[“널 보니 옛 생각이 잠깐 떠오르는군. ······넌 더 빨라질 수 있다. 더 날카롭게 반응할 수 있어. 스스로 한계를 규정짓지 마라. 그럼 길은 더 크게 열릴 것이다.”]


“우리 가문의 검술을 알기나 해?”


[“······너보단 훨씬 잘 알지. 무라트 가문의 검술이 아니라 ‘진가’의 검술이다. 원론적이지만, 훨씬 더 치명적이지.”]


아수라 마즈다의 말을 진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그가 고대신이기에 오만하게 군다고 이해했다.


“더 알아야 할 건 없지?”


[“걀라혼은 앵켈 제도로 향했다.”]


진은 문득 <앵켈 제도 견문록>을 떠올렸다.


“나도 거기로 갈 생각을 잠깐 하긴 했는데.”


[“일찍 만날 필요는 없다. 알아서 하도록.”]


풍경이 바뀌었다.


황페의 숲의 신전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신전을 나오는데 팔라딘의 시체가 눈에 들어왔다.


‘뭐 알아서 하겠지.’


진은 그것에 깊이 신경 쓰지 않고 곧장 걸음을 옮겼다.


진이 처음 숲을 떠났을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이전에 무라트 변경백령으로 불렸던 옛 아버지의 영지로 갈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대륙을 여행할까 하는 생각을 떠올릴 때면 결국 전 무라트 변경백령이자 현 샹마르소 공작령과 튀랑 변경백령을 지나야 하는데 생각할 때마다 그곳들을 지날 엄두가 나지 않고 있었다.


‘바닷바람이나······.’


진은 이번에도 남동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나알은 잘 지내나 궁금하군.’





* * * *





서컥!


“너, 넌 누구냐?”


동료의 목이 순식간에 달아나자 도적들이 기겁하며 물었지만, 진은 그들의 말에 일일이 답해줄 생각이 없었다.


그들이 미처 반격이나 방어할 틈도 주지 않고 가까이 파고들어 검을 휘두르니 남아있던 세 명이 순식간에 쓰러졌다.


이전에 베어 넘겼던 두 명까지 합하면 모두 다섯 명의 도적들이었다. 그리고 이런 무리를 만난 게 벌써 세 번째였다.


반즈 남작령으로 가려던 진이 더 동쪽으로 발길을 돌린 것은 도적 떼의 갑작스러운 출몰 때문이었다.


행색은 도적 떼였지만, 진은 그들을 해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왕궁에서 일어났던 참사로 인해 로페테기 국왕이 서거하고 일부 귀족들과 기사단이 휩쓸려 큰 피해가 발생하면서 라페니슈 왕국의 치안은 급격히 나빠졌다.


때마침 해안가에서 상륙한 해적들이 이 사실을 해로를 순찰하는 순시선과 해적섬에 알리면서 대대적인 침탈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해적들의 기세가 어찌나 대단했던지 라페니슈 왕국의 반도 해안선은 대부분 점령당했고 내륙까지 침투하여 영토 전체를 기준으로 동남쪽 절반가량은 이미 약탈 대상이 되어 있었다.


“가까운 곳에 마을이 있었지.”


진은 도적들이 타던 말을 하나 붙잡아 길을 따라 달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마을 하나가 눈에 들어옴과 동시에 비명도 귀에 바로 꽂혔다.


“이랴!”


진이 말에 박차를 다했다.


쏜살같이 달려서 마을 입구를 지나치자마자 바로 보이는 해적을 향하여 몸을 던져 검을 휘둘렀다.


스걱!


레더 갑옷을 뚫고 가슴을 깊이 베어버리는 브로드 소드엔 오러 블레이드가 솟아있었다.


사정 봐주지 않을 생각으로 주변을 훑어보던 진은 곧 특이한 광경을 눈에 담았다.


그가 말에서 내린 입구 쪽에 해적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반대편 입구 쪽에서 여성의 기이한 외침이 들려오더니 폭음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콰콰쾅!


지붕 너머로 불길이 화르륵 일어나는데 진은 그곳에서 요동치는 마력을 느꼈다.


‘마법사인가?’


진은 눈에 보이는 해적들을 베어 넘기면서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건물을 낀 모퉁이를 도는 순간, 정면 하늘에서 벼락이 번쩍거리는 광경을 보았다.


콰지지직-!


“으그그그······!”


“크그극!”


“큭!”


다섯 명의 해적들이 감전되다 못해 몸이 새카맣게 그을리면서 쓰러졌지만, 진은 반사적으로 오러 쉴드를 펼쳐서 막아냈다.


그런데도 라이트닝 스펠의 위력이 상당했는지 그의 오러를 뚫고 감전의 고통을 느껴야만 했다.


“오호! 오러를 다루다니. 해적들에게도 제법 실력이 좋은 녀석이 있구나.”


진이 목소리를 좇아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두 손에 불길과 번개를 동시에 일으키는 여인을 보았다.


진이 앞으로 한 발자국 내밀면서 손을 뻗었다.


“잠깐!”


“어딜!”


그 순간 여인의 몸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마력의 요동을 쫓아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리자 좀 더 먼 쪽의 건물 지붕 위에서 여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뭐야, 스펠을 마음대로······!’


그렇게 생각이 미치는 순간, 여인이 어느새 두 손을 하늘을 향해 뻗으며 외쳤다.


“코프 데 트론(cop de tron)!”


처음 듣는 시동어.


진이 머리 위로 드리워지는 그늘에 고개를 쳐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력으로 요동치는 먹구름.


쿠르르······!


“씨발.”


진은 잘못 걸렸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머릿속에 한 가지 아이디어가 빠르게 스쳤다. 그리고 곧장 브로드 소드로 오러 블레이드를 전력으로 일으켰다.


······콰르릉!


작가의말

6월 8일 연재분입니다.

6월 9일 54회차 정상 연재할 예정입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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