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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사르카 님의 서재입니다.

W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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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엘사르카
작품등록일 :
2020.05.08 22:18
최근연재일 :
2022.05.02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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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17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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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42쪽

'티끌' 30.1

DUMMY

촉발사건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무언가 눈앞에 나타나길 기대했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생각이었었다. 촉발사건은 어디까지나 능력 쪽에 작용하는 변화였지만, 지금 이건 나 자신에게 작용하는 변화였다.


능력의 범위가 절반으로 잘려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진 것과 같은 갑작스러운 단절이었다.


제어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다. 범위처럼 갑작스러운 변화는 아니었지만, 점점 제어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정밀한 명령을 내리기가 힘들어지고 있었다. 벌레들을 움직이려 할 때마다 약간의 시간차가 발생하고 있었다.


제어가 힘들었다. 마치 미끄러지는 듯이···


태틀테일이 근처에 있었지만, 그녀에게 신경을 쓸 겨를은 없었다. 지금은 벌레들에게 온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한순간이라도 변화의 과정을 놓칠 수는 없었다,


과거가 되풀이되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태틀테일도 진실을 몰랐다. 부끄러웠고, 죄책감이 들었고, 끔찍하게 외로웠다.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했던 격한 감정이었다.


이러다가 미쳐버리는 건 아닐까, 라고 나는 생각했지만, 어딘가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기억은 계속 떠올랐고 감정은 그대로 남았다. 괴로워하면서도 그게 최선이라는 것을 알기에, 소중한 사람들을 등지고 떠나 보내야 했던 기억들.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했을 사람도 많았을 것이었다. 그게 최선이라는 걸 확실하게 아는 것도 아니면서, 어째서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했냐고 묻고 싶었겠지.


하지만 아버지에게 돌아갈 수 있었던 것도 어떻게 보면 그것 덕분이었다.


감옥 안이 어땠었는지도 떠올랐다. 몸을 옥죄는 쇠창살보다도 더 두려운 것이 마음을 옥죄는 죄책감이었었다. 두려움, 다른 수감자들의 시선, 그리고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생겨난 일종의 평온함까지···


지금 이 결정도 비슷한 결과로 이어지게 되는 걸까? 지극히 이타적이면서도 끔찍하게 이기적인 선택을 내린 끝에 결국에는 어딘가 갇히게 되는 걸까?


나 자신이 생물학적으로, 정신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어쩌면 자기 몸 안에 갇히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자기 자신의 몸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맥박, 호흡, 모두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내 뒤로 펼쳐진 하늘은 밝은 푸른빛으로 나를 조롱하고 있었다. 히어로였을 때 입었던 옷의 색깔이 파란색이었지. 실패의 색. 다른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드리워진 긴 그림자가 도어메이커의 포탈에 닿으려 하고 있었다.


아니, 벌레들에 집중해야지.


범위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고, 제어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다.


두려웠다. 통제력을 잃어버릴 수는 없었다. 이성을 잃어버린다면 어떤 계획이 떠오르더라도 실행할 수가 없었다.


통제력이 필요해, 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파나시아한테 그 뜻을 전할 방법이 없었다. 입을 벌릴 수가 없었다. 벌레들에게 집중시킨 의식이 몸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몸의 감각은 남아있었지만 곳곳이 단절된 느낌이었다. 주먹은 떨리고 있었고, 고개는 숙이고 있었고, 이는 아플 정도로 꽉 악물고 있었다. 심장은 세차게 뛰었고 코로 내쉬는 호흡은 거칠어 콧물이 딸려 나오고 있었다. 눈물이 나오고 있었지만, 눈을 깜박이지 않은 탓에 눈동자 표면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모두 정상적인 생체 반응이었지만, 그 모든 것이 어떤 연속된 개체의 일부라는 사실이 더는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았다. 물리적으로 이어진 신체라는 개념이 망가진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자기 자신의 몸도 벌레들을 조종하는 감각으로 움직이게 될 것이었다. 산산이 쪼개진 신체 부위들을 제각기 움직여서 걷는다는 동작을 수행하는 게 가능할지, 그것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통제해야 해, 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순간 파나시아가 능력의 작용 지점을 바꿨는지 통제력이 점점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벌레들이 조금 더 기민하게 내 생각에 반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대신에···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지듯, 다시 범위가 뭉텅 잘려나갔다.


하나를 얻을 때마다 다른 곳에서 열 가지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잘게 쪼개진 감각이 점점 흐릿해지고 있었다.


이런 짓을 반복한다면 끝내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것이었다. 오래 이어갈수록 손해였다.


멈춰, 파나시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만, 그만, 그만, 그만···


벌레들이 파나시아를 공격했다. 의식적으로 명령을 내리지 않았는데도 말벌들이 덤벼든 것이었다. 평소와 같은 계산된 습격이 아니라 페로몬에 취한 듯 비틀거리는 움직임이었다.


파나시아는 손을 떼고 어설프게 물러나며 몸을 휘청거리다가 뒤로 넘어졌다.


“이런 미친, 시발, 시발, 시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들려오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 파나시아는 아니었다.


태틀테일이었다.


내가 고개를 들자 태틀테일은 흠칫 놀랐다. 내 움직임이 어딘가 이상했을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테일러?”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그건 나도 알고 싶었다.


벌레들은 여전히 에이미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나는 벌레들을 물러나게 했고, 그 순간 벌레들을 조종하는 게 끔찍하게 힘들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능력이 넝마가 되어 있었다. 범위는 삼 분의 일 정도에, 제어력은 엉망진창이었다. 크기가 너무 작은 벌레들은 아예 통제할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생각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벌레 떼, 변화한 능력, 패닉에 가까운 정신 상태, 그리고 조각난 것처럼 느껴지는 몸. 다른 데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손에 불꽃을 두른 커다란 누군가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다. 설마 능력이— 혹시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게 된 것이 지금까지 갖고 있었던 멀티태스킹 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일까?


다가오고 있는 건 룽이었다. 룽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몸을 잔뜩 긴장시킨 채로 팔뚝에 불을 피워올렸다.


그는 숨결로 아지랑이를 피워올리며 형형한 주황빛으로 물든 가면 너머의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내가 위험한 존재일지 가늠하려는 걸까?


“테일러···” 태틀테일의 목소리는 꼭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곧이어 그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내 주위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꼭 여러 각도에서 나를 보려는 것 같았다. 본소우는 나와 도어메이커-클레이보이언트 사이에서 몸을 웅크린 채 잔뜩 긴장하고 있었고, 어린아이보다는 야생동물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습관적으로 예전의 모습이 나온 걸지도 몰랐다. 거기서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가면이 벗겨졌을 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모든 것이 움직임을 멈춘 채 얼어붙어 있었다.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마치 공황 발작이 올 것 같은 감각을 견뎌내야 했다.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호흡을 가다듬으려 하면 도리어 꽉 쥔 주먹이 아파 왔고, 주먹을 풀려고 하면 반대로 숨이 가빠졌다. 그 와중에도 심장은 거칠게 뛰고 있었다. 그건 애초에 손쓸 도리가 없었다.


나는 외부 자극을 차단할 생각으로 눈을 감았고, 그러자 눈물이 주륵 흘러내리며 가면의 렌즈 아랫부분에 맺혔다. 나는 고개를 들어 동굴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걸 신호라고 생각하기라도 했는지 본소우는 재빨리 포탈 너머로 도망쳤다.


내가 지금 왜 울고 있는 거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두려웠다. 손이 떨리고 있었지만, 그게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몸이 망가졌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째선지 분노가 치솟고 있었다. 감옥에 갇혀 있었던 시절의 기억이 나의 의지와는 별개로 계속해서 떠오르고 있었다.


말을 안 듣는 몸에 갇혀 있다는 게 그때와 비슷해서? 아니, 그렇다고 하기에는 감정의 색이 달랐다. 왜 갑자기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거지?


패닉과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의 기복에 더해 이제는 현기증까지 나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게 원인일지도 몰랐다. 물리적인 충격을 받은 것처럼 몸이 기울어지기 시작했고, 그러자 다리가 멋대로 움직이며 균형을 다시 잡았다. 내가 의도한 움직임도, 반사적인 반응도 아니었다. 별개의 존재가 내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탑승자구나, 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무래도 서로 힘을 합쳐 움직이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네.


가빴던 호흡이 조금은 잦아들었다. 탑승자가 내 생각에 반응한 건지, 아니면 내가 탑승자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안심해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위버?” 여자의 목소리였다.


능력으로 상대의 위치와 상태를 파악하기에는 벌레들의 상태가 미덥지 못했다. 고개를 돌리자 카나리아가 포탈 옆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 태틀테일이 말했다. “방해하지 마. 몸을 추스를 수 있게 가만히 둬.”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위버?” 카나리아는 태틀테일의 말을 완전히 무시한 채 물었다.


누가 대신 대답해 줬으면 좋겠는데, 라고 나는 생각했다.


태틀테일? 하지만 그녀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본소우는 이 자리에 없었고, 카나리아는 알 리가 없었다.


탑승자야, 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쪽은 뭐 짐작 가는 거라도 있니?


내 입으로 대답을 꺼내는 것보다는 탑승자에게 말을 거는 게 더 쉬웠다. 입을 열었다간 그 순간 지금까지 잘못된 모든 것이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혼란, 공포, 걱정, 그리고 몸과 정신과 마음이 모두 산산이 조각난 것처럼 느껴진다는 사실까지. 게다가 목이 메어서 말을 하기도 힘들었다.


“필요할 때 남에게 도움을 구하는 방법을 너는 끝까지 제대로 배우지 못했구나.” 태틀테일이 말했다. 비난에 가까운 말투였다. “다른 세력들의 도움이 필요했을 때도 너는 언제나 상대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지. 그게 아니라면 도저히 거절하려야 거절할 수가 없는 개판 5분 전의 상태가 된 뒤에야 접근하거나.”


나는 파나시아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땅을 내려다본 채 숨을 몰아쉬며 제자리에서 휘청거리고 있었다.


내 모습 때문일까? 괴물 같은 것으로 변해버린 건 아닐까?


그건 아니었다. 나 자신의 모습은 이미 확인한 상태였다. 팔 두 개, 다리 두 개, 눈, 코, 입, 모두 멀쩡하게 달려 있었다. 한쪽 손이 없긴 했지만 그건 이전에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그래, 파나시아한테 부탁했겠지. 자수한답시고 나한테 뒷정리를 부탁했을 때처럼 말이야. 학교에서의 그 일도··· 굳이 과거의 상처를 후벼 파고 싶진 않으니 이쯤 하겠지만, 넌 늘 그랬어. 일이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너 혼자서 먼저 정해놓은 다음에야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서 그걸 이루려 했지. 그건 도움을 청한다고도 할 수 없는 거잖아, 안 그래?”


지금은 이런 소리나 듣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고개를 들어 태틀테일과 눈을 마주쳤고, 그녀는 룽 뒤에 서 있었다. 룽의 모습은 서서히 변해가고 있었다. 시간을 끌고 있는 걸까?


“그래도 난 그런 너를 굉장히 좋아해. 단점이 한둘이 아니지만 말이야. 내가 너를 구했던 것처럼 너도 나를 구해줬으니까. 지금 내가 불평을 늘어놓고 있는 네 그런 점들이 우리 목숨을 여러 번 살려놓았으니까.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도 언제나 널 좋아해 왔어. 천재적이고, 무모하고, 그냥 이기적으로 가만히 놔두면 될 것을 그놈의 오지랖 때문에 일을 언제나 꼬아놓은 널 말이야. 하지만 이번만큼은,”


이번만큼은?


“젠장,” 태틀테일은 말했다. “이번만큼은 용서해줬으면 해. 네가 이 짓거리를 벌이는 걸 보니까 솔직히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거든. 난 지금 너희 아버지를 향한 동정심이 들고 있어. 그동안 너 때문에 얼마나 고통받으셨을지 이제는 알 것 같거든.”


따귀를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그렇게 얻어맞더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태틀테일한테 공격당한다는 게 이런 느낌이었구나.


“좋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지만, 평소의 미소와는 어딘가가 달랐다. 사람을 안심시키는 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누군가를 안심시키기 위해 지을 법한 표정이었다. “할 말은 다 했네. 당연하지만 난 여전히 네 편이야. 이젠 이걸 어떻게 되돌려야 할지 생각해야겠지.”


나도 그 생각에는 동의했지만, ‘이것’이 뭔지 모른다는 게 문제였다.


“돌이킨다니 쉽지 않을걸.” 본소우가 말했다.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돌아온 것이었다.


마르키스와 그의 부하 두 명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상자를 호송하고 있던 이들이었지만, 지금은 빈손이었다. 옷이 조금 지저분하긴 했지만, 마르키스는 여전히 우아하고 세련되면서도 남성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고, 머리를 뒤로 묶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기이할 정도로 깔끔한 남자와 손끝부터 팔꿈치까지가 새까만 남자가 서 있었다. 세 사람 모두 당장이라도 싸움을 벌일 준비가 되어 있는 듯했다.


“시도는 해 볼 수 있잖아.” 태틀테일이 말했다.


마르키스는 냉정한 눈빛으로 상황을 살폈다.


“누가 대답 좀 해 줬으면 좋겠는데.” 태틀테일이 말했다.


마르키스는 앞으로 걸어 나왔다.


“조심해!” 태틀테일은 외쳤다.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있었다면 몸을 날렸을 것이었다. 조금만 더 집중할 수 있었다면 곧바로 피했을 것이었다. 아니. 태틀테일이 부르짖은 경고가 내가 아니라 마르키스에게 한 말이라는 사실에 순간 당황하지만 않았더라도, 분명 몸을 날렸을 것이었다.


내 편이라면서, 라고 나는 생각했다. 마르키스가 쏘아 보낸 뼈 기둥은 내 가슴 한가운데에 들이박혔다. 온전한 몸 상태로 제트팩을 쓸 수 있었더라도 피할 수 없었을 공격이었다. 흉곽에 가해진 둔탁한 충격이 나를 뒤로 밀쳐냈다.


뼈는 나를 쭉 밀쳐내는 동시에 두 갈래로 나뉘며 형태가 바뀌었고, 계속되는 압박에 나는 균형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등에 멘 제트팩이 바닥에 부딪혔고, 이내 뒤통수가 동굴 바닥에 닿았다.


움직임이 멈췄고, 내가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 마르키스는 뼈를 계속 뻗었다. 나는 동굴 입구에서 두 발짝쯤 떨어져 있는 바위까지 밀어 붙여졌고, 입구 밖으로는 벌레들로도 높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깎아지른 낭떠러지가 이어져 있었다.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뼈는 Y자 형태로 내 목을 감싸며 나를 단단히 붙잡았다.


마르키스의 반대쪽 손목에서는 뼈로 된 거대한 손이 피부를 찢고 튀어나와 있었다. 룽과 파나시아를 감싸고 있는 모습으로 미루어 볼 때 저 손으로 그 둘을 밀치거나 잡아끌어서 내게서 떨어트려 놓은 모양이었다.


“맙소사,” 파나시아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세상에, 하느님 맙소사.”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감정이었다. 나로서는 지금 이 상황의 어느 것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르키스, 그의 부하들, 룽, 파나시아, 카나리아, 태틀테일, 그리고 콜드론의 포탈 2인조가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16피트(4.9미터).” 태틀테일이 조용히 말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15.98피트지만, 16피트라고 생각하면 되겠지.”


마르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파라휴먼의 능력은 정신 상태에 따라서 편차가 생기네만. 지금 저 불안정한 상태를 고려한다면···”


“아니요.” 파나시아는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말했다. 그녀는 바닥을 짚은 자기 손, 혹은 그 손을 뒤덮은 문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했다. “변하는 게 느껴졌어요··· 이제는 아니에요. 감정 같은 걸 관장하는 부분과는 이제 연결되어 있지 않아요.”


“그렇군. 알려줘서 고맙구나.” 마르키스는 말했다. 그는 세 걸음을 다가왔고, 그가 다가온 만큼 나를 옥죄고 있는 뼈의 길이는 줄어들었다.


마르키스는 나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이십에서 이십오 피트 정도였다.


16피트라는 건 뭘 말한 거지?


“다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죠?” 카나리아가 물었다.


“그냥 불태워 버리려고 했지만,” 룽은 그녀를 무시한 채 으르렁거렸다. “아멜리아가 휘말린다면 네놈이 날뛸 걸 생각해 자제한 거다.”


“잘 생각했군.” 마르키스는 내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맙소사.” 파나시아는 자기 머리를 감싸 쥔 채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헤집고 있었다. 포니테일이 풀려나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시발, 하느님 맙소사.”


“쉿.” 마르키스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래도 그동안 발전이 있긴 했나 보네, 에이미.” 태틀테일이 말했다.


“닥쳐.” 파나시아는 쏘아붙였다. “거기서 한마디라도 더 하기만 해 봐.”


“···이번에는 사람을 완전히 불구로 만들어버리기 전에 적어도 본인의 허락은 받은 걸 보니 말이야.”


“죽여버린다.” 파나시아는 쏘아붙였다.


멀리서 땅이 뒤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어메이커가 열어둔 지구-김멜로의 통로 너머에서 전해진 충격이었다. 전투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고, 소리만 들었을 때는 사이언을 거점 바깥으로 유인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샤, 레이첼. 내 친구들은 저기서 싸우고 있었는데, 나는 여기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몸을 일으키려 하자 손이 바위에 미끄러졌고, 목을 붙잡은 V자로 된 뼈가 더 강하게 날 옥죄어왔다.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몸이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탑승자인가?


탑승자가 내 몸도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는 건가?


그건 지금으로서는 확실한 답이 나오지 않는 의문이었다. 나는 조금 더 생산적인 의문점에 주의를 돌렸다.


16피트.


다른 사람들은 모두 마르키스 뒤에서 좌우로 늘어선 채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길게 이어진 뼈의 길이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뒤늦게 그 의미를 깨달았다. 16피트라는 것은 이들이 나와 벌려야 할 거리였다.


“거칠게 대한 건 사과하겠네. 마르키스가 말했다. “딸을 안전한 곳까지 빼내기 위해 서두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네.”


“아아흐으으흐으으으음.”


정적이 흘렀고, 나는 방금 난 소리가 내 입에서 나온 소리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음절조차 구분되지 않는, 단어라고도 할 수가 없는 말이었다. 나는 손으로 가면의 천을 헤집으며 입술을 매만져 보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말이 정상적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손의 움직임도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멀리서 실을 당겨 마리오네트를 움직이는 인형사가 된 느낌이었다.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복잡한 행위였고, 이 상태로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나는 벌레들로 목소리를 내거나 글씨를 쓰려고 해 보았지만, 그것도 소용이 없었다.


도저히,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태틀테일이 흠칫 반응하며 온몸을 뻣뻣하게 굳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뒤로 한 걸음을 물러섰다.


나는 동굴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이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듯 움직이고 있었는데, 내가 일부러 그렇게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니었다.


“아,” 마르키스가 말했다. “유감이군.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겼다니, 이래서야 상대를 신뢰할 수 있을지 가늠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자네를 신뢰할 수 있을지’가 아니라 ‘상대를 신뢰할 수 있을지’였다. 내게 직접 말해봤자 의미가 없을 거라는 말투였다. 마르키스는 마치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이나 아주 어린 아이의 보호자에게 말하듯이 태틀테일에게 말하고 있었다.


내가 그 정도로 망가졌다는 건가. 보호자의 변호와 통역이 없으면 안 될 정도로.


“상태라면 내가 설명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태틀테일이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자네의 말은 믿을 수 없네.” 마르키스가 말했다. “자네와 위버의 친분 때문에 나나 가족이나 부하들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는 없겠지. 그리고 말을 늘어놓기 전에 미리 경고하겠네만, 자네에 대해서는 아멜리아를 통해 이미 알고 있네. 사람을 설득하는 솜씨가 아주 출중하다고 들었네만. 스프루스, 신더핸드, 룽? 내가 속아 넘어갔다고 판단된다면 그 자리에서 반란을 일으켜도 좋네. 아니, 오히려 그렇게 해 줬으면 좋겠군.”


“부당한 대우라고 생각하는데.” 태틀테일이 말했다.


“이 정도면 아주 공정하다고 생각하네.” 마르키스가 말했다. “우리 모두를 동시에 설득할 수 있다면 적어도 논리에 허점은 없을 테니까.”


“룽은 사람을 태워죽이고 싶어서 안달이 난 놈이잖아. 사소한 구실만 있어도 공격할 텐데.” 태틀테일은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마르키스는 그렇게 말하며 룽을 보았다.


“네놈은 여자와 어린아이 앞에서 너무 약해지는군.” 룽은 말했다. “네놈의 그 규칙을 내가 대신 깨주지. 허튼짓을 벌인다면 저년은 잿더미가 될 것이다.”


“그렇게 하게.” 마르키스는 한숨을 쉬며 태틀테일을 바라보았고, 그녀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땅이 다시 울렸다. 천 명의 사람이 동시에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소름이 끼쳤다.


“일단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세.” 마르키스가 말했다. “일정 선에서 서로 타협하도록 하지.”


“좋지, 타협.” 태틀테일은 말했다. “잿더미가 되고 싶진 않거든.”


마르키스는 고개를 돌렸다. “도어메이커. 포탈 하나를 더 열어주게. 치료소의 위치를 옮기도록 하지. 그곳을 김멜과 연결한 뒤에는 이 동굴에 있는 모든 통로를 닫아버릴 걸세.”


“그건 마음에 들지 않는걸.” 태틀테일이 말했다.


“위버는 미지의 변수일세. 여기 내버려 둔다면 적어도 안전하기는 할 것 아닌가. 사이언과의 전투가 끝난다면, 그때 돌아와서 다시 상태를 확인할 수 있을 걸세.”


침묵이 흘렀다.


여기 남으라고? 아무것도 못 하고?


몸에 힘이 들어갔다. 벌레들이 요동쳤다.


그렇지. 벌레들은 여전히 움직일 수 있었다. 통제력이 약해졌을 뿐, 오른손 대신에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 정도의 차이였다.


문제는 다룰 수 있는 벌레의 수 자체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건··· 반박하기 힘든 말이긴 한데,” 태틀테일이 말했다. “마음에 들지 않아.”


“타협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라네. 모든 사람이 똑같이 공평하게 불행해지지.” 마르키스가 말했다. “나도 마음만 같아서는 단단히 묶어두고 가고 싶지만, 이 뼈를 부수고 그사이에 알아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 두고 가는 것으로 타협하겠네.”


거미줄이 없었다. 콜드론 기지에서 발판을 만드느라 전부 쓴 탓이었다.


다른 모든 걸 희생해서 얻은 것이긴 했지만, 새로 생긴 능력도 있었다. 범위는 16피트.


어떻게 활용할지만 알아내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태틀테일은 고개를 저었다. “도어메이커가 죽기라도 한다면 여기 갇히게 될 거야. 머리가 이상해진 상태로 평생 혼자서 지내야 할 거라고.”


“도어메이커가 죽는다면 어차피 우리는 모두 비슷한 운명을 맞게 될 걸세.” 마르키스가 말했다. “이게 가장 공정한 해결책이네만. 자네도 알지 않는가.”


나는 손을 들어 올리고 손가락을 움직이고 잘린 팔을 꿈틀거리며 한 방향을 가리켰다. 태틀테일이라면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었다. 애원하는 손짓. 손 하나로 전할 수 있는 의사는 그 정도가 전부였다.


태틀테일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렇지. 한 가지만 아니었다면 말이야.”


“문제가 있는 모양이군.” 마르키스는 지친 듯 말했다.


“그래. 원래 인생이 공정함으로만 돌아가지는 않잖아? 이대로 버리고 가기에는 난 저 녀석을 너무 깊이 신뢰하고 있거든. 게다가 얼마 전에는 절대 서로를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기까지 했지.”


“유감이군. 룽, 신더핸드. 태틀테일을 내보내게. 끌고 가도 상관없지만 다치지는 않게 하도록.”


“네놈의 그 유약함이 계속해서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군.” 룽은 그렇게 으르렁대면서도 태틀테일의 팔을 발톱 하나로 붙잡았다. 신더핸드가 반대쪽 팔을 붙잡았다.


“총을 조심하세요. 손이 풀려나면 바로 쏘려 할 테니까.” 파나시아는 세 사람의 뒤에 따라붙었다.


나는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목덜미는 여전히 뼈에 붙잡혀 있었다. 나는 바닥에 앉은 채 남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저항하지 말게, 위버.” 마르키스가 말했다. “이제 그만하게. 자네는 도박수를 던졌지만 실패한 걸세. 이번에는 쉬고 있게나.”


나는 가면 뒤에서 눈가를 좁혔다.


“스프루스? 능력을 쓸 수 있겠나? 바로 부러지지는 않고 발버둥 쳐서 부술 수 있을 정도로만 뼈를 약화해야 하네.”


깔끔한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손바닥을 펼치자 그 위에는 마치 바위로 만든 양배추 같은 모양의 구체가 떠올랐다. 남자는 다시 주먹을 쥐었고 구체는 모습을 감췄다. “십 년 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그 정도로 정확히 맞힐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양옆이나 뒤로 빗나간다면 동굴 벽이 무너질 수도 있겠죠.”


마르키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자네도 나가게. 내가 나오면 곧바로 통로를 닫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스프루스는 도어메이커와 클레이보이언트를 데리고 포탈 너머로 모습을 감췄다.


“분명 쓸 수 있는 꾀가 남아있겠지. 벌레, 호신용 스프레이, 어쩌면 내가 알지 못하는 숨겨진 수단까지. 그것들을 활용할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이성도 남아있으리라고 생각하겠네. 하지만 그것들을 쓰지 말라고 하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일 정도의 이성도 남아있었으면 좋겠군. 여기 남아서 정신을 다잡고 있게. 수단이 남아있는 한 반드시 돌아올 테니. 태틀테일의 안전은 최선을 다해 보장하겠네.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나는 주먹을 쥐었다 펴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내 의사와는 관계가 없는 움직임이었다.


“흐으으으으으으으으응.”


“지나치게 낙관적인 해석이네만, 마지못해 알겠다고 대답한 거라고 알고 있겠네.” 그는 말했다.


몸의 움직임을 다잡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나는 좌우로 아주 천천히 고개를 젓기 시작했다.


“그런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슈트를 입은 카나리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자네도 들어가게. 나도 곧바로 따라갈 테니.”


그녀는 그 말대로 움직이다가 돌연 발걸음을 멈췄다. “무슨··· 무슨 느낌일지 알 것 같아요, 위버. 제가 콜드론의 약을 마셨을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었거든요. 몸이 엉망이 됐고, 미쳐버릴 것 같았죠. 삼 년이 지나고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을 때 다시 모든 게 무너져 내려 버렸고요. 마치 하늘이 네가 저지른 실수를 잊지 말라고 벌을 내린 것 같았죠. 그러니— 그러니 무슨 느낌일지 알아요. 하지만 당신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저는 너무 오랫동안 자책에 빠져 있었으니까.”


“친절한 말 고맙네.” 마르키스가 말했다. “이제 가지 않겠나?”


카나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키스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옆으로 몸을 비틀며 왼팔을 오른쪽 허리춤을 향해 뻗었다. 그러자 동시에 뼈의 줄기가 살짝 기울어지며 빈틈이 생겼다. 머리를 빼낼 정도는 아니었지만, 약간의 틈이 생긴 것이었다.


“조심하게!” 마르키스가 외쳤다.


나는 말을 듣지 않는 손가락으로 권총을 뽑아 들었고, 뼈가 두 갈래로 갈라지는 곳을 겨눈 채 방아쇠를 당겼다. 가장 두꺼운 지점이었다.


자신의 얼굴 바로 앞에 있는 단단한 물체를 향해 총을 쏘다니, 그야말로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뼈는 산산이 부서지며 깨져나갔다.


내가 풀려나기도 전에 마르키스는 이미 대응하고 있었다. 뼈로 된 갑옷이 그를 겹겹이 에워쌌고, 겉으로 보기에 정교한 장식품처럼 생긴 그 갑옷은 실제로는 벌레들이 파고들 틈조차 없을 정도로 촘촘했다. 이미 피부에 붙어 있던 벌레들은 으스러져 죽었고, 눈과 입의 가느다란 구멍으로 파고들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벌레는 내 수중에 없었다.


창처럼 쭉 뻗어 나왔던 뼈는 이곳저곳에서 갈라지며 이제는 나무 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 나와 마르키스 사이의 공간이 우거진 뼈로 뒤덮이고 있었다. 마르키스는 서서히 물러나는 동시에 뼈를 더 만들어내 나무의 밑동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더 두껍게 연결하고 있었다. 나의 다음 행동을 예측한 것이었다.


나는 일어서지 않았다.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 대신 나는 제트팩, 날개, 보조 추진기를 동시에 가동하며 그대로 동굴 벽면을 들이받았다. 강한 충격에 날개 한쪽이 구부러지며 동굴 벽을 할퀴었지만, 내 몸은 뻗어 나간 뼈가 적은 천장을 따라 계속해서 마르키스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들었다.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뼛조각 하나가 다리를 잡아채며 날 막아 세웠고, 나는 틀어진 방향을 바로잡기 위해 추진기를 접으려 했지만, 부러진 날개가 말을 듣지 않았다.


뼈가 넝쿨처럼 나를 휘어 감았다. 나는 반대쪽 날개의 추진기를 가동하며 어떻게든 길을 뚫기 위해 권총을 난사했다.


제대로 조준하지도 않은, 가만히 있었어도 맞지 않았을 총탄이었지만, 마르키스는 옆으로 몸을 피하며 자신과 카나리아 앞에 뼈로 된 방패를 만들어냈다. 결과적으로는 빈틈이었다. 몸을 움직이기 위해 갑옷을 분리한 탓에 ‘나무’의 성장이 멈춘 것이었다. 나는 가느다란 가지들을 몸으로 들이받아 부러트리며 빈틈을 파고들었다.


마르키스와의 거리는 20피트. 그는 뒤로 물러서며 ‘나무’를 움켜쥐었다.


마치 우산이 펼쳐지듯 순식간에 생겨난 뼈로 된 원반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장벽, 방해물이었다.


나는 가장자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고, 원반은 깨져나갔다.


하지만 내가 날아드는 것보다 그 틈을 새로 생겨난 뼈가 메우는 것이 더 빨랐다. 나는 다시 총을 발사했지만, 이번엔 방벽이 너무 두꺼웠다. 나는 방아쇠를 계속 당겼지만, 돌아온 것은 빈 약실의 찰칵거리는 마찰음뿐이었다. 안 그래도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은 그 허둥거리는 움직임을 마지막으로 총을 놓치고 말았다.


“정말로 미안하네.” 마르키스가 중얼거렸다.


순간 극심한 공포와 공황이 나를 덮쳤다.


여기 남아있을 수는 없어, 당신은 모르잖아. 여기 계속 있으면 미쳐버릴 거라고. 지금도 정상은 아니지만, 그 이상으로 모든 걸 잃어버리고 말 거야.


“그으으으으으으으,” 나는 그렇게 신음했다. 얼굴의 장갑판이 뼈와 닿으며 딱 소리가 났다.


공포, 공황, 아니지···


이건 내가 아니었다. 내가 느끼고 있었지만 내 감정이 아니었다. 처음에 느꼈던 공포와 마비되는 듯한 감각, 그리고 분노도 나의 것이 아니었었다.


능력이 자동으로 작동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서, 내가 직접 뭔가를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었다.


나는 그 감정에 잠겨 들며 능력에 모든 의식을 집중했다.


16피트. 마르키스는 그 범위 밖에 있었지만, 카나리아는 미처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어쩌면 눈길을 빼앗겨 미처 도망치지 못했거나 뒤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등을 돌리길 망설였는지도 몰랐다.


나는 뼈의 장벽에 가로막혀 있었지만, 그 너머에 있는 카나리아와 나 사이의 거리는 15피트에 불과했다.


감각을 집중하니 이젠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카나리아의 신체의 모든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룽의 신체, 파나시아의 신체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한 치의 미동도 없이 천천히 규칙적으로 호흡하고 있었다.


룽과 파나시아가 그랬던 것처럼.


명령 대기였다.


범위의 한계 때문에 마르키스에게 보낼 수는 없었다. 반대로 나는 그녀를 휙 돌려세웠다.


“이런··· 젠장맞을.” 마르키스가 말했다.


카나리아의 움직임은 나와 마찬가지로 엉망진창이었다. 이것 역시 새로 생긴 단점 중 하나였다. 그녀는 나를 가로막고 있는 장벽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마르키스는 뼈 여러 갈래를 뻗어 카나리아의 상체를 감싸며 그녀의 움직임을 막으려 들었다.


하지만 카나리아는 용아병들의 기갑 슈트를 착용하고 있었다. 내 명령에 따라 그녀는 다리를 구부렸다가 자신을 감싼 뼈를 모두 부수며 앞으로 뛰쳐나갔고, 주먹을 휘둘러 장벽을 후려쳤다.


두 번, 세 번, 네 번의 주먹질이 연거푸 뼈로 된 장벽에 들이박혔다.


마르키스는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와 지면에 이어진 뼈를 발로 딛고는 장벽을 계속해서 두껍게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카나리아가 부수는 속도보다 뼈가 자라나는 속도가 더 빨랐다.


그렇다면 능력을···


내게는 보였다. 카나리아의 작동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정보는 내게 낱낱이 드러나 있었다. 건강 상태, 아픈 부분, 신체적인 여건, 그리고 능력까지.


카나리아는 노래하기 시작했다.


이리로 데려와. 더 가까이 다가오게 해.


그러자 노랫소리가 바뀌었다. 슈트를 두른 주먹이 뼈를 두드리는, 거의 기계에 가까울 정도로 규칙적인 소리도 계속 울려 퍼졌고, 마르키스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뼈 줄기로부터 발을 떼고는 카나리아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전까지의 능력이 벌레들이 내는 날갯짓 소리와도 같은 웅웅거림이었다면, 지금의 능력은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했다. 복잡하고, 매혹적이었다. 나는 나의 것이 아닌 감정을 받아들이고 있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카나리아와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옥상에서 드래곤과 디파이언트에게 붙잡혀 끌려가던 기억이 떠올랐다. 알렉산드리아와 태그 지부장을 살해했던 직후의 기억이었다. 몸부림, 절망, 무의미한 저항.


그러나 그 기억은 겉으로 드러나는 표면일 뿐이었고, 그 너머에는 어떤 전체적인 감각이 있었다. 그 감각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기억이 떠오르게 된 것이었다. 그것은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못한 채 끔찍한 공포 속에서 허우적대는 감각이었고, 아직 자기가 저지른 짓이 무엇인지 제대로 자각하지도 못한 채 막연한 죄책감 속에서 발버둥을 치는 감각이었다.


그녀가 나였고 내가 그녀였다. 우리는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나의 연장선에 그녀가 있었다.


이걸 잘 풀렸다고 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정신이 흐트러져 있었다. 점점 내가 내가 아니게 되어가는 듯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더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이보다 더 나아질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이게 내가 선택한 도구였다. 몸과 마음과 범위와 제어력을 모조리 희생해 얻은 결과물이었다. 범위는 16피트에 불과했고, 파나시아의 말대로라면 감정적 동요를 통해 그 범위를 늘리는 것도 이제는 불가능할 것이었다.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고, 두꺼운 뼈를 부여잡은 채 가느다란 뼈 사이로 몸을 비집고 들어갔다. 다리가 후들거렸고 고개는 이상하게 삐뚤어져 있었다. 무언가를 붙잡고 있지 않았다면 팔은 그대로 축 늘어져 있었을지도 몰랐다. 머릿속 어딘가에서 중요한 정보 하나가 빠져 있었다. 힘을 뺀 상태에서 내 몸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였다.


뼈의 장벽에 첫 균열이 생기는 모습이 보였다.


거기에 더해 마르키스는 점점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머뭇거리고 있긴 했지만, 한두 걸음만 더 다가온다면—


—그러나 그의 능력을 쓸 수 있을까 시험해볼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통로에서 걸어 나온 룽이 사방에 불길을 내뿜은 탓이었다.


슈트를 입고 있는 카나리아였기에 불탄 건 헬멧 밖으로 삐져나온 머리카락뿐이었다. 마르키스 역시 뼈로 된 갑옷을 두르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숯덩이가 되는 꼴은 피한 것이었다.


하지만 불길 때문에 노랫소리가 들리질 않았다. 화염이 사라진 뒤에 카나리아의 귀에 처음으로 들린 것은 마르키스가 도망치는 발소리였다. 그는 투구의 귀 부분을 양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카나리아는 주먹으로 벽을 부수고 손을 뻗어서는 제트팩을 잡아 나를 장벽 너머로 끌어당겼다.


통로가 닫히고 있었다. 카나리아를 버리고 가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카나리아가 나를 집어던지게 하는 동시에 제트팩을 가동하며 전력으로 날았다.


이 초만 늦었어도 포탈이 닫혀버렸을 것이었다. 내가 바닥에 등을 대고 쓰러진 곳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끄으으으그으아아아,” 나는 분노를 담아 그렇게 웅얼거렸다. 몸을 일으키는 동안 내게 손을 건네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건 그들의 의지가 아니라 내가 내린 선택이었다.


나는 옆에 열린 다른 포탈을 바라보았다. 김멜로의 통로였다.


나는 다른 사람들은 조종하지 않았다. 스프루스가 내 앞을 막고 있었지만, 나는 그를 비켜서게 하는 대신에 몸으로 직접 밀쳤다.


싸우겠어, 라고 나는 생각했다. 사이언과 싸울 거야. 어떻게든.


나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친 모습은 모두 조금씩 왜곡되어 있었고 어딘가 위화감이 들었다. 내가 직접 느끼는 것보다 남의 눈을 통해 보는 게 더 선명한 것 같았다.


나는 파괴된 패스트푸드점으로 들어섰고, 공격이 스쳤는지 무너져 내린 입구를 넘어 그 너머로 나아갔다. 내가 앞으로 걸어나간 덕분에 맨 뒤에 있던 사람들은 내 범위에서 벗어나며 다시 행동의 자유를 되찾고 있었다.


원하기만 한다면 나를 공격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마르키스, 파나시아, 본소우··· 모두 그리 큰 위협은 아니었다.


룽은? 룽도 마찬가지였다. 룽은 나를 죽이려 들기 전에 우선 너를 죽이겠다고 선언부터 할 인간이었다.


스프루스나 신더핸드는? 어쩌면 그들이라면 자존심이나 나한테 잠시나마 조종당했다는 모욕감 때문에 나를 곧바로 공격해올지도 몰랐다.


태틀테일은 내 범위에서 벗어난 순간 곧바로 달려 나왔고, 잔해를 뛰어넘으며 내게 다가왔다. 서너 걸음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그녀는 발걸음을 멈췄다.


16피트보다 약간, 아주 약간 더 멀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사이언도 여기 있었다. 이제 놈은 야수와도 같은 흉포함으로 사람들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숨고, 방벽을 세우고, 엄폐물을 찾으려 허둥대는 모습이 온 사방에 보였지만, 사이언을 상대로는 그 모든 것이 부질없었다.


이미 진 건가?


한 무리의 망토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부상자 다수를 들쳐 멘 일행이었다. 그중에는 레이첼과 임프, 바스타드도 있었다.


나는 옆으로 길을 비켰지만, 그들은 내 예상과는 달리 치료소가 아닌 내게 곧장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날아오르며 뒤로 물러섰고, 태틀테일은 그녀에게만 보이는 듯한 범위를 피하듯 빙 돌아 뛰어나가며 팔을 휘젓기 시작했다. “돌아서 가! 위험한 능력이다!”


그들 대부분은 그 말에 따라 방향을 틀었다. 말을 듣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한 남자가 태틀테일을 그대로 지나치며 내 범위 안으로 들어왔고, 이번에는 그의 모든 것이 내 감각에 포착되는 순간을 온전히 인식할 수 있었다. 대비하고 있었던 덕분이었다. 남자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태틀테일은 곧바로 남자의 옷깃을 붙잡아서는 그를 집어 던지다시피 하며 내 범위 밖으로 끌고 나갔다.


“시발,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임프가 물었다.


태틀테일은 남자를 놓아주었고, 그는 곧바로 도망쳤다.


대답할 방법이 없었으므로 나는 벌레들을 모으는 작업에 집중했다. 한때 유용하게 썼던 자원을 이제와서 버릴 필요는 없었다.


“시스콘 정신병자한테 부탁해서 비침습성 뇌 수술을 받겠다는 놀라운 생각을 한 사람이 있다면 믿겠니? 아니, 어쩌면 미친 사이코패스한테 침습성 뇌 수술을 부탁하는 도중에 시스콘 쪽이 끼어들었을 가능성도 있겠지. 덕분에 스키터가 망가져 버렸어.”


“망가진 것처럼 보이진 않았는데,” 임프가 말했다. “아까 그 인간은···”


“흐르으으으으응,” 나는 말했다.


“흐르으으으으응,” 임프는 점잖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구나. 이해했어.”


“말을 못 하네.” 레이첼이 말했다. 질문이라기보다는 사실 확인에 가까웠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예전 같지 않은, 느리고 어색한 움직임이었다.


나는 레이첼이 바스타드의 등에서 내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녀는 길을 더듬듯이 손을 앞으로 내밀며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뒤로 물러섰지만, 레이첼은 그보다도 더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 순간 레이첼이라는 존재의 모든 것이 마치 꽃봉오리가 피어나듯 내 의식 속에서 펼쳐졌다.


나는 그녀를 다시 물러나게 했다.


“음.” 레이첼은 말했다.


“미쳤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태틀테일이 물었다.


내가 정말로 분에 넘치는 신뢰를 받고 있기 때문이겠지, 라고 나는 생각했다.


“쟤가 나보다 더 똑똑하잖아.” 레이첼이 말했다. “필요한 대로 하라고 해.”


나는 고개를 저으며 제트팩을 가동해 뒤로 물러났다.


레이첼을 조종해봤자 의미가 없었다. 휘파람이나 명령어 같은 특수한 지식은 알 수 없었고,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개에 대한 직관력도 얻어낼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마르키스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신뢰할 수 없는 미지의 변수였다. 그들에게 나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예측할 수 없는 존재였고, 내 능력도 그들에게 있어서는 유용한 도구라기보다는 언제 발목을 잡을지 모를 위험요소에 가까울 것이었다.


“가는 거지?” 태틀테일은 내가 속으로 결심하기도 전에 내 마음을 알아챈 듯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되기를 빌게.” 그녀는 말했다. “우리가 필요해진다면, 어디로 와야 할진 알지?”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거운 마음으로 반쯤 망가진 제트팩을 가동하며 다시 날아올랐다.


승리로 이어지는 길이 눈앞에 나타난다면 분명 알아차릴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되뇌었었다. 그리 오래전에 했던 생각도 아니었다. 내가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말을 할 수 없게 됐다는 게 다행일지도 몰랐다. 그럴 수만 있었다면 분명히 서로에게 절대 하지 않기로 약속했던 말을 입에 담아버리고 말았을 테니까. 도저히 속으로만 삼킬 수 없어 입 밖으로 내뱉었을 테고, 그랬다면 저들도 들을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안녕, 언더사이더.


작가의말

* 원작 번역 지침에 따른 공지사항.

“This is purely a fan project and I/we lay no claim to the ideas, characters, or story. The real author is J.C. McCrae, aka ‘Wildbow’, and the original version can be found at http://www.parahumans.wordpress.com. The final chapter of Worm was published on 2013. 11. 19. This is a fan translation.”


"이 번역본은 팬의 작업물이며, 번역자는 이 작품의 아이디어, 캐릭터, 스토리에 대한 어떠한 소유권도 주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원작자는 'Wildbow'라는 닉네임으로 알려진 J.C.McCrae입니다. Worm 원작은 http://www.parahumans.wordpress.com 에서 연재되었으며 2013년 11월 19일에 완결되었습니다. 이것은 팬 번역본임을 밝힙니다."



* 표지 출처 : Ari Ibarra (ariirf.com)

팬아트 작가의 사용 허가를 받은 표지입니다.



* 이 작품의 번역은 2인 비영리 프로젝트입니다. 번역자가 번역을 맡고, 편집자가 검수와 업로드를 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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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 '바퀴벌레' 28.x (막간) +10 21.10.25 343 13 59쪽
280 '바퀴벌레' 28.6 +4 21.10.18 303 15 54쪽
279 '바퀴벌레' 28.5 +4 21.10.11 291 16 49쪽
278 '바퀴벌레' 28.4 +7 21.10.04 334 16 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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