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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사르카 님의 서재입니다.

W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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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엘사르카
작품등록일 :
2020.05.08 22:18
최근연재일 :
2022.05.02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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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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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31쪽

'여왕' 18.x (막간 : 세계 최강의 남자)

DUMMY

“제 이름은 케빈 노턴입니다. 세계 최강의 남자죠.”


케빈의 손동작에 맞춰 듀크가 가볍게 짖었다.


“제가 구한 사람만 수백만 명입니다. 어쩌면 수십억 명일 수도 있고요.”


듀크가 다시 그의 손동작에 맞춰 짖었다.


그는 머그잔을 내밀었지만, 주위의 보행자들은 그를 무시하고 지나갔다.


케빈 노턴의 낡은 신발은 며칠 전부터 밑창의 발바닥 부분이 망가져 있었다. 망가진 밑창이 자갈 바닥에 걸려서 끼었고 그는 그대로 넘어질 뻔했다. 듀크는 경계심에 귀를 쫑긋 세운 채 옆으로 피했다.


케빈은 옆에 지나가던 여자를 붙잡아 균형을 잡았다. 그녀는 혐오감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밀치다시피 떨쳐냈다.


“이거 미안합니다, 아가씨.” 케빈이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는 그녀에게 말했다. 대답은 없었지만, 그는 상대에게 자신의 말이 계속 들리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정말 안타깝지 않나요, 저만 한 지위의 사람이 신발 하나 구하지 못한다는 게?”


케빈은 다시 넘어지지 않기 위해 절뚝거리다시피 하는 걸음걸이로 걸었다. 이곳의 보도는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이 밟은 덕에 평평해진 오래된 자갈길이었다. 하지만 주변의 풍경은 그렇게 오래된 것 같지 않았다. 개축된 상점이나 새로운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었다. 옛 영국식 건축 양식을 모방하면서도 유행을 따라가는 모습들이었다.


“오래 머무르진 못할 것 같구나, 듀크.” 케빈이 말했다. “도시에 들어가는 돈을 보니 부랑자는 원하지 않겠지. 하지만 나는 옛날 집이 어떻게 됐는지 보고 싶을 뿐인데.”


일가족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잔을 내밀었다. “세계 최강의 남자를 위해서 몇 펜스만 내어줄 수 없겠습니까?”


아이들은 그를 쳐다보았지만, 부모는 그들이 시선을 돌리게 했다. 어머니는 아이를 지키려는 듯 아이의 어깨에 양손을 올렸다.


케빈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계속 걸었다. 잔에는 한 줌 정도의 동전이 들어있을 뿐이었다. 그가 팔을 휘두를 때마다 동전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너는 여기를 기억하지 못하겠구나.” 그가 듀크에게 말했다. “널 찾았던 건 여길 떠난 뒤였으니 말이야. 도망쳤지. 네가 한 손으로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작았을 때쯤에는 여길 몇 번 지나쳤지만, 이곳으로는 오지 않았어. 그동안 조금은 그리웠지. 옛날 가게 주인 중에는 남은 음식을 주는 사람도 있었어.”


그는 손가락으로 주위를 가리켰다. “저쪽에는 빵집이 있었지. 당일 만든 것만 파는 집이었어. 하루 장사가 끝나고 남은 건 전부 봉지째로 버렸지. 소시지 빵도, 파이도 있었어. 내가 주워간다는 걸 알고 난 뒤로는 그 봉투들을 따로 옆으로 빼놔서 더럽혀지지 않게 했고, 다른 걸 같이 놓아주기도 했지. 작은 것들. 샐러드라던가, 빗, 치약, 비누, 탈취제 같은 것들. 좋은 사람들이었어.”


케빈은 손을 내밀어 듀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도시는 바뀌었지만, 그 사람들은 잘 살고 있었으면 좋겠어. 제값을 못 받고 가게에서 쫓겨났다면 그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겠지. 잘 돼야 했을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렇고말고.”


듀크는 하품했고, 하품 끝에 작게 낑 소리를 냈다.


“나도 그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케빈이 말했다. “아니. 난 그럴 자격은 없어. 큰 힘에 큰 책임이, 뭐 어쩌고 하는 대사가 하나 있지 않았던가? 난 세계 최강이니까 그만큼 거대한 책임을 져야겠지. 물론 밤마다 배고프고 이 때문에 잠을 설칠 때도 있었지만, 정말로 나를 잠에 못 들게 하는 건 내가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이야.”


케빈이 아래를 내려다보자 듀크가 그와 눈을 마주쳤다. 녀석은 고개를 기울였다.


“겁을 먹었던 거지. 겁쟁이같이. 사람이 나처럼 되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가 있어. 세계 최강 말고, 갈 곳 없고 친구 하나 없는 이 상태 말이야. 그중 하나는 의지할 사람이 없는 경우지.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견딜 수 있어. 하지만 아무도 뒷받침해주지 않는다면? 작게만 넘어져도 크게 굴러떨어질 수 있지. 아무도 붙잡아주지 않는다면.”


하늘이 낮게 울었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름비구나, 듀크. 슬슬 올 때가 되긴 했지?”


몇 안 되는 행인들은 비를 피할 곳을 찾아 서둘렀고, 일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작은 골목은 한산해졌다. 케빈은 양팔을 벌린 채 비가 자신을 적시게 두었다. 그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몇 초가 지나자 듀크가 몸을 흔들며 물을 사방으로 뿌렸다. 멍하니 있던 케빈이 정신을 차렸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었더라? 아, 그래. 두 번째 경우는 병에 걸리는 경우지. 마음의 병일 수도 있고, 몸의 병일 수도 있고, 술잔에 들어있거나 주삿바늘에 들어있는 병일 수도 있지. 그리고 세 번째 경우가 바로 나의 경우야. 겁쟁이의 길이지. 인생으로부터 도망치고,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어쩌면 술도 그것의 일부겠지. 자기 행동으로부터 눈을 돌리기 위한 거니까. 네가 있어 준 덕분에 적어도 거기에는 빠지지 않았구나.”


찬바람을 느낀 그는 새로 지어진 건물의 처마 밑을 따라 걸으며 잠시나마 비를 피했다.


“인제 와서 용감하게 살기에는 너무 삶의 방식에 익숙해져 버렸지. 여기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모든 용기가 필요했어.”


듀크는 케빈의 손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케빈은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착하기도 하지. 네 도움은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단다.”


그들은 길을 건너기 위해 다시 빗속으로 향해야 했다. 케빈은 빠르게 걸었고, 듀크는 겅중겅중 뛰었다.


그는 다시 처마 밑으로 숨어 들어갔다. “나는 정말 큰 잘못을 저질렀어, 듀크. 인정하고 살아나가는 수밖에 없지. 그래도 많은 걸 하기는 했어. 대부분의 다른 사람보다 많이 했을 거야. 하지만 그걸로는 모자란 것 같아. 내 느낌이 맞는다면, 충분하지 않았겠지. 젠장.”


조금 앞에서 상점 문이 열렸고 젊은 여자가 밖으로 나왔다. 작고 예쁘장한, 이십 대쯤 되어 보이는 여성이었다. 픽시 컷으로 자른 검은 머리카락 위에 어두운 회색의 베레모를 쓰고 있었다. 검은 타이츠, 그리고 짧은 회색 주름치마였다. 유행에 맞춘 옷차림이었다. 그녀는 우산을 든 채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는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옆으로, 빗속으로 비켜서 계속 걸었다.


“아저씨?” 그녀가 그를 불렀다.


그는 다시 처마 밑으로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왜 그러시죠?”


“여기요.” 그녀가 말했다. 지갑이 손에 들려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십 파운드 지폐를 건넸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힐끗 보았다.


그는 지폐를 받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별말씀을요.”


그는 묘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여자는 그와 눈을 맞추고 있었다. “보통은 두 부류의 사람이 있죠. 쳐다보지도 않고 돈만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제대로 쳐다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돈을 어디다 써야 한다고 설교를 합니다. 그렇게 해도 좋아요. 마약이나 술이나 담배를 사는 데 쓰면 안 된다고 말해도 돼요. 그 마음 나도 이해하니까. 적절하게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보여 드리죠.”


“쓰고 싶은 대로 쓰세요.” 그녀가 말했다. 프랑스 억양이 조금 들리는 듯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작은 행복이 필요할 수도 있겠죠. 안 좋다는 걸 알더라도.”


“그렇죠. 안심하세요. 가장 먼저 오는 게 듀크의 밥이고, 그다음이 내 밥이고, 그다음에 오는 게 아가씨가 말하는 작은 행복들이니. 나도 담배는 꽤 좋아하는 편입니다. 구할 수 있다면 말이죠.”


“그거 다행이네요.” 그녀가 웃었다. “안녕 듀크.”


“좋은 아이지만, 쓰다듬지는 않는 게 좋겠습니다.”


그녀는 손을 뒤로 뺐다.


“벼룩이 있거나 한 건 아니에요. 건강하게 기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애완동물은 아닙니다. 필요할 때 날 지켜주는 사역견이죠. 서로를 돌봐주는 거예요. 나를 지키려고 할 테니 너무 다가오면 경계 받겠죠.”


“이름은 직접 지은 건가요?” 그녀가 물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물었다. “듀크라고 한 이유가 있나요?”


“오래 생각했어요. 듀크가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우리 영국에서 제일 높은 작위가 공작(Duke) 아니겠어요? 왕 바로 아래니까요. 세계 최강의 남자를 섬기는 개한테는 그런 이름이 어울리죠.”


그는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그 말을 했고, 그녀가 슬픈 표정을 짓는 걸 보았다. “세계 최강의 남자라고요?”


“정말이에요. 방금 표정, 못 봤을 거로 생각하지 마세요. 안 믿는 모양이네요.”


“믿기 힘든 주장이긴 하잖아요, 아저씨···”


“케빈이라 불러주세요. 내 이름은 케빈 노턴이에요. 조금 횡설수설하더라도 양해해 주시고.”


“전 리제트에요.” 그녀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는 그 손을 잡았다. 빗줄기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손이었다.


“괜찮아요?” 그녀가 물었다.


“네?” 그가 손을 놓으며 고개를 들었다.


“표정이 이상했어요.”


“마지막으로 사람이랑 접촉했던 게 언제인지 떠올리고 있었답니다. 몇 년 전일지도 모르겠네요. 쉼터를 나올 때 목사가 안아줬었죠.”


“외로웠겠어요, 케빈. 몇 년을 사람과의 접촉 없이 살다니?”


“그렇게 외롭지는 않았죠. 친구가 하나는 있었으니.” 그가 듀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리제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잊지 마세요. 이런 작은 것들을. 악수 하나라도 특별한 의미가 있으니까. 매일 누리는 것들이라도 소중함을 잊지 마세요.”


“기억해둘게요.” 그녀가 웃었다.


“정말 고마워요.” 케빈이 말했다. “당신이 시간을 내준 건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필요했던 용기가 생겼을 수도 있겠죠.”


“무엇을 위한 용기가요?”

“돌아보기 위한 용기죠. 나는 오랫동안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집에 들르기 위한 용기, 지난 십이 년 동안 이 듀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한 것들을 다시 떠올릴 용기에요. 마침 필요했을 때 당신이 내게 용기를 실어준 거예요. 고맙습니다.”


“다행이네요. 잘 해결되면 좋겠어요.”


“···무거운 짐이죠. 혹시··· 잠깐만 더 시간을 내줄 수 있을까요? 몇 분만 더 같이 걸어줄 수 있을까요?”


그녀는 가려던 방향을 돌아보았다. “열차가—”


“싫다 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 늙은이의 변덕을 조금만 받아준다면, 오늘 내가 과거와 맞서는 데 큰 도움이 되겠죠. 몇 분이면 됩니다.”


“그렇게 늙지도 않았잖아요.” 그녀가 잠시 멈칫했다. “그래도 따라가 드리죠.”


“그럼 가죠. 멀지 않은 곳입니다. 우산을 펴는 게 좋겠네요.”


그녀는 미심쩍은 눈빛을 보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같이 쓰자는 소리는 아니에요. 옷을 세탁한 지 너무 오래됐거든요. 당신한테 그런 고역을 치르게 할 생각은 없어요. 그리고 듀크가 질투할지도 모르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의 옆에서 걷기 시작했다. 그녀는 몇 걸음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었고, 언제라도 도망칠 수 있도록 약간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친절한 사람이었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처음 집을 나섰을 때는 이십 대 초반이었어요.” 그가 말했다. “나는 런던에서 태어났고, 십 대 때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곁에 아무도 없었죠. 그렇게 요크로 내려와서 여자를 만났어요. 같이 살기 시작했죠. 그게 이 처지의 원인이라고는 하지 않겠어요. 그 정도 책임감은 있으니. 하지만 모든 일의 시작이긴 했죠.”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많은 실수가 있었죠. 우선 나한테 맞는 여자가 아니었어요. 관계가 진전된 이후에야 내가 여자를 안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앗,” 리제트가 말했다.


“너무 늦은 깨달음이었죠. 다들 하는 대로 따라 하다 보니 거기까지 오게 된 거였어요. 여자랑 사귀는 것도 다들 하는 것 중 하나였으니. 이야기가 거슬리나요? 재미없나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니에요.”


“하여튼, 나는 멍청하고 어린 스무 살 남자애였어요. 임대계약서에 이름도 안 올려놓고, 다른 집을 구할 돈도 없는 상태로 동거를 시작했죠. 여자는 관계가 끝장났다는 걸 알자 나를 쫓아내겠다고 협박했고 나는 그러지 말아 달라고 빌었어요. 갈 곳이 없었으니까요. 그 화를 조금만 견딘다면 다른 곳으로 갈 돈을 모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죠. 하지만 그녀가 나를 때리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나는 맞서서 때릴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죠. 점점 심해졌어요.”


“안타깝네요.”


“가정폭력을 당한 여자를 위한 보호소는 있어도, 남자를 위한 건 없더군요. 사람들은 여자가 남자를 때릴 리가 없다고 생각하나 보죠.”


“그래서 집을 나왔나요?”


“나왔죠.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그게 올바른 선택이었을지 고민했어요.” 케빈이 말했다. “도착했군요.”


길은 여기가 끝이었다. 우즈 강으로 흘러드는 작은 하천이 있었다. 작고 허름한 다리가 하천 위로 세워져 있었고, 테라스에 벤치가 늘어서 있었고, 작은 묘목들이 심겨 있었다.


“여기가 집이라고요?” 리제트가 물었다.


“여기가 그나마 집에 가장 가까웠죠.” 케빈은 다리로 다가갔다. “바뀌기 전에는 저 다리 밑에서 잘 수 있었어요. 그 아파트에서 나왔을 때 여기 왔었죠.”


“그때 이후로 계속 길거리에서 지낸 건가요?”


“너무 추울 때면 쉼터로 들어가기도 했죠. 듀크도 받아주는 곳이 있을 때는요. 여러 가지로 타협을 한 덕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마워요. 여기까지 와 줘서. 열차를 놓쳤을 거라는 걸 알아요. 당신이 없었더라면 듀크가 있더라도 여기까지 오지 못했겠죠. 이미 몇 번이고 오려고 했다가 발걸음을 돌렸었으니까요. 고맙습니다.”


그녀가 묘한 눈빛을 보냈다. “괜찮아요. 천천히 하세요.”


케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듀크를 맡아주겠어요? 잠깐이지만.”


그녀는 목줄을 받았다. 새끼줄을 세심하게 묶어서 만든 어깨에 거는 목줄이었다. 하지만 필요는 거의 없었다. 듀크는 목줄을 당기는 법이 없었다.


케빈은 다리로 다가갔다. 그는 다리를 구성하는 둥근 돌들을 쓰다듬었고, 기둥 위에 서 있는 가고일 석상의 해진 얼굴을 매만졌다. 석상에서 흐르는 빗줄기가 그의 옷을 적셨고 물기가 그의 몸통까지 파고들었다. 어쩌면 어울리는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빗줄기 탓에 별 의미는 없었지만, 그는 빗줄기와 물살로 거품 져 있는 하천 옆에 무릎을 꿇고 손을 씻었다. 그는 숨을 깊게 쉬며 희미하지만 익숙한 강물 냄새를 들이마셨다. 자연의 냄새였다.


기억들이 물밀 듯이 돌아오고 있었다.


케빈은 머리를 옆으로 넘겼고, 양손에 물을 담아 얼굴을 씻었다.


그는 일어섰다. 그리고 움직임을 멈췄다.


그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 소리는 세찬 빗줄기에 묻혀서 사라졌다.


가장 가까운 테라스 테이블과 나무 사이에 황금빛 사내가 허공에 떠 있었다. 지면으로부터 한 뼘쯤 위에 떠 있는 그가 발하는 광채가 세찬 빗줄기를 뚫고 흐린 날씨를 밝히고 있었다. 빛줄기는 빗방울을 통해 반사되며 번뜩였고 강물과 지면의 물줄기에 기묘한 상을 그렸다.


케빈은 시린 손을 주머니에 넣으며 리제트와 듀크를 힐끗 보았다. 듀크는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귀를 바싹 눕히고 있었다. 리제트는 눈을 크게 뜬 채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우산은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케빈은 사내를 살폈다. 나이를 따지는 의미는 없었다. 황금빛 사내는 전혀 변한 게 없었다. 머리카락의 길이도 같았고, 짧은 수염도 똑같았다. 그의 모든 것은 광택이 나는 금빛이었다. 눈동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숨을 쉬지도 않았고, 눈을 깜박이지도 않았다.


물방울이 금빛 남자의 몸을 따라 흘러내렸지만, 그는 젖고 있지 않았다. 비를 맞고 있었지만 그의 머리카락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고, 그의 코스튬은 수분을 흡수했지만 곧바로 건조되었다. 피부와 머리카락에 닿은 물방울은 그를 적시지 못한 채 그대로 흘러내렸다.


그의 코스튬이 깨끗하게 유지되는 것도 같은 효과 덕분이었다. 팔은 팔뚝까지, 다리는 발가락까지 가리는 단순한 형태의 하얀 전신 슈트였다. 온 세상의 온갖 오물에 의해 셀 수 없을 만큼 더럽혀졌던 코스튬이었지만, 그가 발산하는 황금빛 광채가 지금 물을 밀어내듯이 그 모든 것을 밀어내 청결함을 유지했다.


“잘 지냈나, 오랜 친구?” 케빈이 말했다.


대답은 쏟아지는 빗줄기뿐이었다. 금빛 남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여기서 볼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았지.” 케빈이 말을 계속했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잖나. 혹시 내가 그때 상상을 했던 건 아닐지 생각하려던 참이었어. 저 개 보이나? 내가 자네를 만났을 때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던 녀석인데, 벌써 명이 거의 다했어. 지금 열두 살이지.”


금빛 남자는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케빈은 그로부터 몸을 돌렸다. 빠르게 걸어간 그는 리제트의 우산을 집어서 물을 털고는 그녀에게 건넸다.


“사이언이잖아요.” 그녀가 속삭였다.


“아니요.” 케빈이 말했다. “그런 이름이 아니었어요.”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요.”


“더 가까이 오세요.”


그녀는 주저하면서도 금빛 남자의 곁으로 다가갔다. 동공 없는 눈은 계속해서 케빈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계 최강의 남자라고 했었죠.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케빈이 말했다. “그렇죠?”


금빛 남자는 반응하지 않았다.


“당신이 조종하는 거예요?” 리제트가 물었다.


“아니요. 거의 아니죠. 사실 조종하는 건 맞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닙니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이 금빛 남자가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만 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바라보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죠. 멍하니.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로. 다들 제멋대로 정체를 추측했어요. 천사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타락한 천사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좀 더 과학적인 설명을 하려는 사람도 있었죠. 하지만 슬퍼 보인다는 사실만큼은 다들 동의했어요.”


“그러네요.” 리제트가 그를 바라보았지만, 금빛 남자는 케빈만을 보고 있었다.


“아니요.” 케빈이 말했다. “속지 마세요. 겉으로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저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으니까요. 실제로는 저 얼굴 너머에 있는 무언가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드는 거예요. 슬퍼하고 있으니까 슬퍼 보이는 거지만, 그 느낌은 시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말이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은데요.”


“날아다니면서 황금 레이저로 대륙을 무너트리는 도마뱀이랑 싸우는 놈이잖아요! 앞뒤가 안 맞는 게 어디 한두 개겠습니까?”


금빛 남자는 두 사람으로부터 눈을 돌려 심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무 한 그루의 모습을 살폈다. 그는 잎사귀 하나를 응시했다.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예요?”


“그걸 지금 설명할 참이었어요. 언젠가 저놈이 한밤중에 이 근처로 내려왔어요. 순전히 운이었죠. 아직 이런 생활에 익숙해지지 않았을 때, 자기 자신이 너무 안쓰러워서 차마 다른 사람이랑 눈을 마주칠 수가 없을 때였죠. 그때 저놈을 보고 뉴스에 나왔던 그 금빛 남자라는 걸 깨달았어요. 제정신이 아니었던 나는 뛰어가서 가슴팍에 주먹질을 날렸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욕이란 욕은 다 했을 거예요.”


“왜요?”


“감히 나보다 더 비참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는 걸 참을 수가 없었죠. 사람들의 온갖 기대를 받아놓고서 여기저기 날아다니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걸 용납할 수가 없었어요. 사실 자기 자신한테 고함을 친 거나 다름없겠죠. 그렇게 비참해하지만 말고,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어디 무료 급식소에나 가서 일하면 기분이라도 나아지지 않겠냐고 말했던 것 같아요.”


“무료 급식소요?”


“진짜로 급식소에서 일하러 갈 거로 생각하지는 않았죠. 나중에는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다른 이야기고. 어찌 됐든 뭐라도 하라고, 가서 사람들을 도우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됐죠. 그때부터 계속 사람들을 돕고 다닌 거예요.”


“그것만으로 그렇게 됐다고요?”


“저거 봐요. 완전히 백지잖아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다가 저렇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저놈은 망가졌어요. 정신이 망가졌다고요. 그래서 돌아다니던 걸지도 모르죠. 답을 찾기 위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금빛 남자는 계속해서 잎사귀를 바라보았다.


“혹시 기분 나빠 하지는 않나요?” 리제트가 물었다. “못 알아들을 거라는 듯이 이렇게 이야기해도?”


“이해는 해요. 듣기도 하죠. 하지만 대답한 적이 없어요. 말을 해도 이쪽을 거의 보지를 않죠. 감정을 표현하지도 않아요. 어쩌면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 수도 있죠.”


“자폐증이라도 있는 것 같네요.” 리제트가 말했다.


“왜 그렇죠?” 케빈이 물었다.


“너무 연결되어 있어서,” 리제트가 말했다. “너무 자극이 많아서,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 수도 있죠.”


“초인적인 청각 때문에 도시 전체의 말소리가 동시에 들린다던가?”


“그럴 수도 있죠. 아니면 저희한테는 보이지 않는 걸 감지한다든가.” 그녀가 말했다. “세계 최강의 존재인데, 이렇게 보니까 꼭 어린아이 같네요.”


“그렇죠. 그리고 뭔가가 바뀐 게 아니라면,” 케빈이 말했다. “저놈이 유일하게 말을 듣는 상대가 바로 나예요. 비가 쏟아지든 한밤중이든 내가 혼자일 때면 늘 찾아왔고, 어떻게 오는지는 몰라도 아무도 따라오질 못했죠.”


“카메라나 위성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해요. 목격자 증언과 통신만으로 찾아내야 한다고 하죠.”


“아, 그랬나요.” 케빈이 말했다. “당신이 있는데도 왔다는 게 신기하네요. 어쩌면— 어쩌면 안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죠. 당신이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기분이 조금 나아졌었는데.”


“왜요? 왜 피하려는 건데요?”


케빈은 금빛 남자로부터 눈을 떼지 않았다. “난 저놈이 무서워요. 그 많은 사람 중에서 굳이 나를 선택했잖아요. 그래서 내가 세계 최강의 남자인 거예요. 단지 그것 때문에. 가장 강하고 가장 능력 있는 사람한테 명령을 내릴 수 있으니까.”


“그래서 도망쳤나요?”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아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렸죠. 소문이 들렸어요. 사람들의 말도 있었고, 신문도, 라디오도 있었죠. 금빛 남자가 섬 하나를 재앙으로부터 구하다. 금빛 남자가 전쟁을 멈추다. 하지만 그 빌어먹을 영상이 뉴스에 나왔을 때야 정말로 깨달았죠.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이해가 안 되는데요.”


“정기적으로 찾아왔다고 했잖아요? 마치 할 말이 더 있으면 들어주겠다는 듯이 들렀다 갔죠. 교통사고 피해자를 구할 때는 조심하라고 말하기도 했고, 그 뿔 달린 괴물 놈이 땅에서 튀어나왔는데 무시하고 날 보러 왔을 때는 앞으로는 그런 괴물이 보이면 싸우라고 말해두기도 했죠. 하지만 말할 게 딱히 없는 날도 있었어요. 그리고 내 말을 토씨 하나까지 완벽히 듣는 것도 아니라서, 새벽 네 시 반에 찾아왔는데 쫓아낼 수가 없어서 그저 이야기할 때도 있었죠.”


“이야기했다고요?”


“무슨 이야기든지 했죠. 최근 손에 넣은 책.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낯선 이들의 친절. 옷을 구해다 주고 옷 이야기를 했을 때도 있었어요.”


그는 말을 멈추고 금빛 남자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됐어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어요. 내가 아무리 주절주절 떠들어도 저놈은 다른 데나 보고 있었죠. 하지만 그래도 내 말을 대략적으로는 따르고 있었어요. 사람들을 도와라. 이런 걸 하고, 이런 건 하지 마라. 하지만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갑자기 흥미를 보였어요. 고개를 돌리고 눈을 마주쳤죠. 순간 겁이 나서 하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 봤지만, 새벽 다섯 시에 하던 이야기라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 겁니다. 그러다가 사흘 뒤에 가게 텔레비전에서 뉴스 보도를 봤죠. 금빛 남자가 처음으로 말을 했다는 거예요. 다들 저놈이 ‘사이언’이라고 말했다고 했죠. 실제로는 그게 아닌데도 이름이 그걸로 정해져서, 티셔츠에도 음반에도 사람들의 말에도 그 이름이 들어가게 되어버렸어요. 내가 횡설수설하면서 말 한마디 잘못 하는 바람에 세상이 바뀌어버린 거죠.”


“그것 때문에 겁을 먹은 거예요?”


“그게 계기였죠. 우습지 않나요? 별것도 아닌데.”


“아니요. 저 사람과 관련된 거라면 별것도 아닌 건 없어요.”


금빛 남자가 그들에게 등을 돌린 채 강을 바라보았다.


“사이언이 틀렸다면 실제로는 뭐라고 말했던 거죠?” 리제트가 물었다.


“나중에야 알아챘죠. 고향 이야기, 가족과 종교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어린 시절의 기억 이야기였죠. 지금은 기억도 제대로 안 나요. 하지만 저 자식이 반응을 보였던 단어는 분명 ‘시온’(Zion)이었어요.”


“히브리어죠?”


케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몰라요. 히브리어를 배운 적도 없고, 열세 살이었을 때 사촌이 혼났던 이야기를 했을 뿐이었죠. 저놈이 왜 거기에 반응했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됐고, 뉴스에서는 그 영상을 틀면서 저놈이 한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죠. 여전히 세계 최강의 존재라고 이야기했죠. 두려웠어요. 그 힘을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었으니까. 나 같은 지저분한 패배자가 말 한마디로 세상을 바꿀 수 있었으니까.”


“당신은 패배자가 아니에요. 사람들을 도우라고 말한 게 당신이잖아요.”


케빈은 고개를 엄숙하게 끄덕였다.


그녀의 표정이 변했다. “그 말을 바꿀 생각은 아니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봐, 황금 인간!”


금빛 남자가 몸을 돌려서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큰 실수를 했어. 원래는 이렇게 오래 시간을 끌면 안 되는 거였지. 하지만 이제라도 왔으니 할 이야기가 두 가지 있어.”


대답은 없었다. 부동의 응시가 있을 뿐이었다.


“나한테도 하기 힘든 이야기야. 난 내가 틀렸기를 정말 간절하게 바라고 있거든. 이게 정말로 통한다면 내 멍청함과 두려움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해를 입었다는 뜻이겠지. 훨씬 일찍 고칠 수도 있었을 테니까. 지난봄에야 새로 나온 그 인터넷이라는 걸 써 볼 기회가 있었지. 배우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도 자네에 대해 알아봤었어. 자네가 싸우는 모습을 봤는데···”


“케빈?” 리제트가 물었다.


“그 종말초래자 개새끼들 말이야. 난 자네보고 그놈들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지. 맞서 싸워야 한다고,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고 했었어. 그리고 자네는 그렇게 해 줬지.”


그는 주먹을 꽉 쥔 채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하느님 맙소사, 내가 말을 충분히 구체적으로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버렸지 뭐야. 자네가 내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고. 우린 자네가 그놈들을 죽여 주기를 원해. 먼지 한 톨도 남기지 말고 다 없애 버리던가, 우주로 던져버리던가 하라고. 죽일 작정으로 싸우라는 말이야. 제발,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였으면 좋겠어. 내가 한 말을 죽이지 말고 싸우기만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거나, 딱 막을 정도로만 싸우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던 게 아니었으면 좋겠어. 내 말 이해했나? 놈들을 막기만 하지 말고, 다시는 나타나지 못하도록 없애버리라고.”


금빛 남자는 허공에 가만히 떠 있었다. 마치 공중에 선 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제발, 황금 인간아, 제발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이 말을 할 용기를 내는 데만 일 년이 걸렸다고. 두려웠거든. 정말 그런 문제였다면, 이제부터 자네가 그놈들을 전부 죽여버린다면, 그럼 나는 수없이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한 셈이겠지. 그리고 그전까지 죽은 모든 사람의 목숨은 내 책임이 되는 거고.”


“케빈.” 리제트가 조용히 말했다. 그녀가 그의 어깨에 양손을 올렸다.


그는 그녀를 무시했다. “다른 중요한 이야기가 뭐냐고? 난 시간이 거의 다 됐어. 중년이지만 간이 망가져 버렸지. 저 개를 먹여야 했으니 술도 안 마셨고, 담배 말고는 약도 안 했지만, 어떻게 간염에 걸려 버렸어. 병원에서 수혈을 잘못 받았거나 양아치들이랑 싸웠을 때 피가 섞인 거겠지. 자네가 우연히 내 말을 들어준 건 수십억 분의 일의 확률이었으니, 이 병도 그런 걸 수도 있겠어. 자네를 만났던 게 내 인생에서 가장 훌륭하면서도 두려웠던 일이었던 것처럼, 이 병도 그런 걸 수 있겠지. 어쩌면 내가 끝내 용기를 내서 여기까지 온 것도 이 아가씨의 도움과 이 병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르지.”


비는 어느새 잦아들고 있었다. 돌바닥에 비가 떨어지는 소리도 전과는 달랐다.


케빈이 한숨을 쉬었다. “인생을 정리하려고 온 거야. 나한테 듀크 다음으로 중요한 게 자네거든. 하던 대로 계속해. 사람들을 도와. 착한 사람들이랑 좀 더 소통을 해봐. 전에 말했을 때 자네가 그 말을 무시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지금이라도 해 보라고. 그리고 문제가 생긴다면, 가끔 찾아와서 말을 듣고 갈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면, 이 아가씨를 찾아. 리제트라는 아가씨야. 좋은 사람이거든. 나보다 좋은 사람이야. 용감하기도 하지. 나 같은 노숙자 말을 듣고 여기까지 따라와 줄 정도면 얼마나 용감하겠어.”


“안 돼요.” 리제트가 말했다. “저는 못 해요.”


“미안한 짓이긴 하죠.” 케빈이 어깨너머로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런 짐을 떠넘기다니. 하지만 어째선지 당신 말을 들으라고 하는 게 슈츠나 보호국이나 레드 건틀릿 같은 조직의 말을 들으라고 하는 것보다 마음이 편하네요. 무슨 말을 할지는 당신이 직접 생각하세요.”


“정말 저한테 올 거라고 생각하나요?”


“모르죠. 하지만 올 수도 있죠. 왜 나를 선택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됐잖아요. 전에 알던 사람이랑 비슷했을까요? 아니면 그냥 친구를 사귀고 싶었을 수도 있고요. 운이 따라준다면 당신도 저 자식의 친구가 될 수 있겠죠.” 케빈이 한숨을 쉬었다. “알겠지? 이제 둘이 파트너라고.”


리제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금빛 남자도 대답하지 않았고, 리제트를 보지도 않았다.


금빛 남자는 오랫동안 가만히 떠 있다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날아올랐다. 황금빛 입자만이 그가 지나간 자리에 남아 있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사이언은 몇 초 만에 사라졌다.


“누군가한테는 말해야 해요.”


“말해볼 수는 있겠죠. 내가 받았던 취급을 받을 거예요. 미친 사람 취급 말이죠.”


“하지만— 하지만—”


“그래요.” 케빈이 말했다. “쉽지 않죠? 운이 좋다면 다른 사람이 있을 때 나타나 주겠죠. 그러면 믿어 줄지도요.”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가자, 듀크.”


“이게 뭐예요!” 리제트가 그의 등에 대고 외쳤다.


케빈은 뒤돌아보지 않은 채 계속 걸으며 목소리를 높여 빗속으로 외쳤다. “좋은 거래이지 않나요? 십 파운드로 세계 최강의 인간이 될 수 있다니.”


작가의말

* 원작 번역 지침에 따른 공지사항.

“This is purely a fan project and I/we lay no claim to the ideas, characters, or story. The real author is J.C. McCrae, aka ‘Wildbow’, and the original version can be found at http://www.parahumans.wordpres s.com. The final chapter of Worm was published on 2013. 11. 19. This is a fan translation.”


"이 번역본은 팬의 작업물이며, 번역자는 이 작품의 아이디어, 캐릭터, 스토리에 대한 어떠한 소유권도 주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원작자는 'Wildbow'라는 닉네임으로 알려진 J.C.McCrae입니다. Worm 원작은 http://www.parahumans.wordpres s.com 에서 연재되었으며 2013년 11월 19일에 완결되었습니다. 이것은 팬 번역본임을 밝힙니다."



* 표지 출처 : Ari Ibarra (ariirf.com)

팬아트 작가의 사용 허가를 받은 표지입니다.



* 이 작품의 번역은 2인 비영리 프로젝트입니다. 번역자가 번역을 맡고, 편집자가 검수와 업로드를 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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