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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사르카 님의 서재입니다.

W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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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엘사르카
작품등록일 :
2020.05.08 22:18
최근연재일 :
2022.05.02 23:5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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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963,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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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8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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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43쪽

'이주' 17.7

DUMMY

노엘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이런,” 크라우스는 그렇게 말하며 혈액 팩과 그녀의 팔을 연결하는 관에 손을 뻗었다. 그는 관을 분리하고 고정용 테이프를 떼어냈다. “누군가는 소리를 들었겠네.”


노엘의 심장박동이 빨라졌다가 멈추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모니터가 처음 수평선을 그릴 때는 그 자신의 심장도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경보장치가 반응했는지,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의자를 들어서 병실 문을 막았다. 노엘은 다시 거친 비명을 질렀다.


그 자신도 이렇게 오랫동안 비명을 질렀을까? 그는 불안감을 느꼈다.


누군가가 병실 문을 거세게 밀쳤지만, 의자는 꼼짝하지 않았다.


크라우스는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능력이 있는 만큼, 일이 잘못되더라도 결국엔—


그의 주위로 어떤 풍경이 펼쳐졌다. 지구보다 작은 행성이었다. 지평선을 바라보았을 때 행성의 곡률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여러 지평선을 동시에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 감각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작은 행성이라 해도 지평선이 보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풍경을 비추는 감각이 더 고등한 감각이거나, 이 행성의 대기가 더 옅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가장자리가 흐릿한, 어딘가 손상된 듯한 광경이었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단지 그 광경을 머릿속에서 한꺼번에 인지할 수가 없을 뿐이었다. 마치 손상된 프레임을 뺀 영화 필름 같은 느낌이었다. 여러 가지 의미로, 입체감이 느껴졌다.


땅에 집중하면 울퉁불퉁함이 느껴졌다. 땅덩어리들이 서로 부딪힌 곳에서부터 갈라지고 쪼개져 나왔다. 압축된 자갈과 바위가 깎아지른 절벽과 깊은 낭떠러지를 만들어냈다.


결정으로 이루어진 존재들에 집중할 수도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사람보다는 투명한 종유석에 가까웠고, 행성이 세 번 자전할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두 결정체가 서로를 향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 존재들은 다른 존재들과는 달랐다. 크기가 더 컸고, 달팽이의 점액처럼 지나간 자리에 ‘죽은’ 결정을 남기고 가지도 않았다. 그리고 열이 가장 풍부한 적도 부근에만 머무르지도 않았다.


두 존재가 거리를 좁혔고, 서로 닿은 순간—


그때 봤던 거야. 각도가 다를 뿐이지. 리플레이다.


한순간이 지났을 뿐이었지만,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의자가 바닥을 따라 미끄러졌다. 의자가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문이 크게 열렸다. 제복을 입은 남자가 병실에 쳐들어왔다. 크라우스는 개머리판으로 배를 얻어맞고 쓰러졌다.


“뭐 하는 짓거리야!?” 제복 입은 남자가 그에게 소리쳤다.


크라우스는 기침을 내뱉으며 배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신음을 흘렸다. 그는 눈과 능력으로 주위를 훑으며 제복이나 그의 총기와 바꿀 수 있는 물건을 찾았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질량과 크기와 부피를 가늠하며 총과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느낌과 비교했다.


제복이 그를 걷어찼다.


전등을 총과 바꿀까? 그러기에는 전등이 너무 가벼웠다.


그는 자신과 상대를 바꾸기로 마음먹고는 공기를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코디 때보다도 차이가 커서 시간이 더 걸렸다.


제복이 그를 다시 걷어찼고 그는 다시 신음을 흘렸다.


능력이 대상을 포착하는 것이 느껴졌다. 옆머리로 날아온 발차기에 그는 몸을 움츠리며 눈을 감았고—


다시 환상이 보였다. 에너지가 모이고 있었고, 두 존재가 서로 엮이고 있었다. 수많은 존재가 탄생하고 있었다. 별의 탄생과도 같은 모습이었지만, 이들은 별과 달리 살아있었다.


그만, 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집중해야 해. 이건 노엘 때문이야. 노엘이 겪고 있는 무언가에 나도 휘말렸어. 동조 반응이라고.


그는 억지로 시선을 돌리며 능력에 집중해보려 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몸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몸부림을 치며 환상에서 깨어나려고 애썼다. 폭발로부터 퍼져나오는 수많은 생물체 대신에 텅 빈 공허에 주의를 돌렸다.


그러나 환상은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멋대로 뚝 끊겼다. 다행히도 현실로 돌아왔을 때 전처럼 혼란스럽지는 않았다.


능력이 포착한 대상은 그대로였다. 크라우스는 위치를 바꿨다.


물론 상황이 그리 크게 변한 건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제복 입은 남자는 서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가 상대의 배후에 있었다.


순간이동의 혼란스러움 때문에 생긴 빈틈이 있었다. 그는 엎드린 자세로 몸을 일으킨 뒤에 경찰관의 다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몸을 날려 어깨와 옆구리로 상대의 무릎을 덮친 것이었다.


제복이 쓰러졌고, 크라우스는 서둘러 일어섰다.


총이 문제였다. 바꿀 수 있는 물체가 없었다. 이 병실에 있는 물건이라고는 너무 가볍거나 너무 작은 물건뿐이었다.


노엘이 비명을 질렀다.


나보다 오래 걸리고 있어.


크라우스는 몸을 굴려서 총을 붙잡았다. 하지만 단지 붙잡았을 뿐, 남자로부터 총을 빼앗을 수는 없었다.


경보는 계속해서 울렸고, 심장박동 모니터는 높고 빠른 음과 불길한 낮은음을 오가며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크라우스는 힘 싸움에서 밀리고 있었다. 놓친다면 그대로 총에 맞을 것이었다. 능력을 쓴 덕분에 맞아서 실신하는 건 피할 수 있었지만, 그 대신 싸움의 대가가 커진 것이었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제복 입은 남자는 자기방어를 위해 그를 죽일지도 몰랐다.


힘을 준 탓에 남자의 얼굴은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크라우스는 그만큼 강하지도, 끈질기지도 못했다. 그는 총이 자신의 손가락에서 미끄러지는 것을 느꼈고, 손의 아픔 때문에 총을 상대에게 넘기지 않으려는 의지가 약해지고 있었다. 물론 놓쳤다간 바로 총알을 맞거나 총구로 머리를 가격당하겠지만, 이 고통은···


능력을 뻗자 무언가 잡히는 것이 있었다. 지금까지 잘못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모양이 아니라 질량이었다. 노엘이 덮고 있는 무거운 양모 이불의 무게가 총의 무게와 비슷했다.


그러나 그 둘을 바꾸기 위해서는 동시에 눈에 담아야 했다. 크라우스는 총을 놓은 뒤 최대한 빠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제복 입은 남자는 일어서며 손을 방아쇠와 총열덮개로 움직였고—


—총이 있던 자리에는 이불이 나타났다. 크라우스는 무장 해제된 상대에게 몸통박치기를 날려 쓰러트렸고,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크라우스는 눈을 감고는 자신의 이마를 상대의 얼굴에 들이박았다. 그는 박치기를 한 번 더 날렸다. 상대의 이빨에 찔린 탓에 이마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고, 한 손을 풀어낸 상대는 주먹으로 크라우스의 갈빗대를 세 번 연속 후려쳤다. 크라우스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한 타격이었다.


이대로 싸우다가는 질 거야.


능력으로 총의 위치를 가늠한 크라우스는 총을 집어 들고는 총구를 제복 입은 남자의 얼굴에 대고 내려찍었다. 그는 상대가 움직임을 멈출 때까지 계속해서 총을 휘둘렀다.


눈을 깜박이며 천천히 일어선 그는 제복 입은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경찰도 군인도 아닌 듯했다. 그의 얼굴은 피범벅이었고, 벌어진 입을 볼 때 이빨이 두 개 이상은 부러지거나 빠진 듯했다.


복도의 간호사와 의사들이 그를 쳐다보았다. 크라우스는 문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그들은 도망쳤다.


노엘은 여전히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부탁이야, 노엘.” 그가 속삭였다. “제발 살아줘. 내 실수 때문에 네가 죽는다면 난 살아갈 수 없어.”


그는 잠시 행동을 멈췄다. 복도에 발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부탁하자면, 조금만 서둘러 줄 수 있을까?”


그가 현실에서 벗어나 보게 됐던 환상을 노엘도 봤을까? 얼마나 봤을까? 반쯤은 끝났을까, 아니면 아직 일 할도 지나지 않았을까?


크라우스는 의자를 밀어서 문을 막은 뒤에, 그가 때려서 기절시킨 남자의 몸을 끌어서 의자와 문을 받치게 했다.


“빨리,” 그가 말했다. “빨리···.”


그는 또다시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병실과 그 안에서 몸부림치는 노엘에 대한 모든 생각과 기억이 희미해졌고, 그는 대기권의 마찰열을 느끼며 낙하하기 시작했다.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이 환상 속에서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래로는 물도 생명도 없는 지구가 보였다. 그 모습이 점점 커지며 그의 모든 감각을 뒤덮어갔다.


지면과의 충돌도 대기권 진입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고통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병실이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넘어질 뻔했지만, 가까스로 균형을 되찾았다.


“얼마나 더 걸려, 노엘?”


그녀는 비명을 멈추고 헉헉대고 있었다.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었다.


“나··· 난··· 다 된 것 같아.”


“몸 상태는 좀 나아졌어?”


그녀는 자신의 배를 문질렀다. 곧이어 그녀는 팔로 바닥을 밀치며 앉았다. 그녀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응.”


크라우스는 얼굴 가죽이 아플 정도의 커다란 미소가 자신의 얼굴에 번지는 것을 느꼈다. “아주 좋아. 뭔가 달라진 느낌은 안 들어?”


“아니··· 그런 건 없는데.”


“반만 마셨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 능력을 얻더라도 약한 능력일 거야. 어쩌면 효능을 전부 치료에 썼을 수도 있지.”


“그럴지도.” 그녀는 환자복을 매만졌다.


크라우스는 때아닌 민망함을 느끼며 눈을 돌렸다. “옷을 입어야겠네. 이불 보관하는 서랍장에 네 옷이 있는 걸 봤어.”


그는 반쯤 차 있는 종이컵의 내용물을 다시 약병에 담은 뒤에 약병을 다시 금속 용기에 넣었다. 노엘은 침대에서 나왔고, 크라우스는 등을 돌린 뒤에 용기를 닫았다.


누군가가 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더 오네. 시간이 이렇게 걸릴 거라고는 예상을 못 했었어.” 크라우스가 말했다.


“도망칠 수 있을까?”


“저쪽이 사람을 얼마나 데려왔는지에 따라 다르겠지. 많을수록 좋아.”


“잠깐, 잘못 말한 거 아냐?”


“아니,” 크라우스가 말했다. “상대가 많을수록 유리해.”


“나··· 피부가 끓어오르는 것 같아.”


“끓어오른다고?”


“보이지는 않지만, 탄산처럼 거품이 생기는 것 같아. 너무 작아서 눈에는 안 보이지만 피부에서 흘러나와서 떨어지는 느낌이야.”


“흠. 조종할 수는 없어?”


“안 돼. 아니··· 조금은? 피부를 늘인다는 느낌으로 집중하면 흘러내리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 같아.”


거품, 그리고 피부를 늘이는 느낌이라.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이었지만, 크라우스도 그가 능력을 쓸 때 느껴지는 압력과 무게감 같은 느낌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할 자신은 없었다.


“뭔가가 닿으면 느낌이 달라져?”


“응. 피부가 옷에 닿을 때마다 거품이 일어나는 느낌이야.”


“다른 걸 만져봐. 능력이 뭔지 알아낸다면 써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크라우스는 잠자코 기다렸다.


다시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그는 긴장했다. 적어도 이번에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었다.


“별로 느껴지는 게 없어. 옷보다도 적어.”


또다시 문이 쿵쿵댔다. 크라우스는 조금 밀려난 의자를 다시 원위치에 가져다 놓았다.


“나중에 알아보자. 네 능력을 알아내기 전까지는 내 능력만으로 어떻게든 해야겠어.”


자신의 겨울옷을 챙겨입은 노엘이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크라우스는 창문을 내다보았다. 거리의 조명이라고는 구름 사이로 비치는 달빛뿐이었다. 봉쇄 지역 안에 대량의 경찰차와 소방차가 모여들고 있었다. P.R.T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 연보라색 줄무늬의 검은 승합차들도 보였다. 검은 승합차 옆에 서 있는 사람들은 그가 방금 때려눕힌 사람과 같은 제복을 입고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밖의 사람들은 헬멧을 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망토도 있었다. 갈색 망토에 지팡이를 든 사람도 보였다. 미르딘이었다. 그의 주위로는 대여섯 명의 슈퍼히어로가 모여 있었다. 그의 팀인가? 이 도시에 남아있는 히어로가 이렇게 많다는 것도 의외였다. 그들도 격리 해제 절차 같은 걸 밟아야 하는 건가?


순서가 뒤죽박죽이네. 능력을 시험해보기도 전에 전략을 짜야 한다니. 능력의 사정거리도 아직 모르는데.


크라우스는 능력을 뻗어서 상대 진형의 양 끝에 있는, P.R.T 제복을 입은 대원 두 명을 포착했다.


그들의 위치가 바뀌었다. 체형의 차이가 보일 정도의 거리는 아니었지만, 그들이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다.


“필요하다면 저기 있는 누구와도 우리 위치를 바꿀 수 있어. 혹시 미르딘에 대해서 아는 거 있어? 제스가 뭐라고 말했다던가?”


노엘은 고개를 저었다.


“젠장. 이런 형편에 미르딘의 부하에 대해서 가진 정보가 있을 리 없겠지. 적어도 내가 알기로 미르딘은 아공간을 달고 다니면서 그걸로 능력을 사용해. 처음 만났을 때는 나를 추방해서 유령 비슷한 상태로 만들었지. 움직일 수는 있었지만, 아무것도 건드릴 수 없었어.”


노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제대로 통하지는 않았어. 내가 그 자리에 그대로 나타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거든. 이미 차원을 여러 번 넘나든 물체에는 능력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고 해. 우리한테도 완전히 통하지는 않겠지.”


“대화의 여지가 있을까?”


크라우스는 밖을 내다보았다.


“아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아. 우리 둘이서 어떻게든 해야 해. 그저··· 기회가 필요할 뿐이야. 내 옆에 붙어 있어.”


미르딘은 날아오고 있었다. 그의 부하 두 명도 그의 뒤를 따랐다. 그중 하나는 양손을 앞으로 뻗고 있었고 그 손 사이에는 완전히 새카만 구체가 떠다니고 있었다. 구체는 파지직거리며 전류 같은 것을 흘리고 있었는데, 완전히 검은색인데도 마치 빛나는 듯이 어둠 속에서도 그 모습이 눈에 띄었다. 또 다른 한 명은 물감으로 칠한 가면을 쓰고 손에 커다란 등불을 든 동양인 여성이었다.


“싸우러 온다.” 크라우스가 그렇게 말하며 창문에서부터 떨어졌다.


미르딘이 지팡이를 휘두르자 창문이 산산조각났다. 지팡이를 다시 휘두르며 그는 병실 안으로 날아 들어와 둔탁한 소리와 함께 착지했다.


크라우스는 그의 모습을 다시 살펴보았다. 망토와 로브의 겉 부분은 삼베로 만든 것 같았지만, 그 아래에는 그보다 무거운 재질을 덧댄 것 같았다. 목 주변의 금속 보호구로 미루어 볼 때 로브 아래로는 갑옷이나 보호 장구 같은 것을 차고 있을 것이었다. 분명 무거울 텐데도 티는 나지 않았다. 지팡이는 낡아 보이는 울퉁불퉁한 나무 지팡이였다. 얼굴 윗부분은 금속 안면 보호대로 가려져 있었다. 방어구라기보다는 얼굴을 가리는 게 목적인 보호대였다. 그리고 그는 수염을 풍성하게 기르고 있었다. 다만 수염의 색은 흰색이 아니라 갈색이었다.


정면으로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게다가 커다란 체구에 갑옷까지 껴입은 만큼 위치를 뒤바꾸려면 가전제품 정도는 가져와야 했다.


“투항해라.” 미르딘이 명령했다.


“거절하지.” 크라우스가 대답했다. 그는 의식을 잃은 P.R.T 대원을 힐끗 보았다. “우리한테는—”


“사라져라.” 미르딘이 지팡이로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안개가 펑 터지는 것과 함께 대원이 모습을 감췄다.


“—인질이 있거든.” 크라우스가 말을 마쳤다.


미르딘이 노엘과 크라우스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둘인가.”


“하나지만 몸이 둘이야.” 크라우스가 말했다.


“무슨 뜻이지?” 미르딘이 눈가를 좁혔다.


나도 몰라. 혼란을 주려는 것뿐이지. 그는 미르딘 뒤로 보이는 풍경을 살폈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검은 구체를 다루는 남자가 뛰어올라 깨진 창문에 섰다. 동양인 여성이 등불을 들어 올리는 모습도 보였다.


“하나를 추방하죠?” 구체를 다루는 남자가 물었다.


“이미 인질을 추방했다.”


“그럼 제가 하나를 체포할까요?”


“어디 한번 해 보게, 아노말리.”


아노말리가 한 손을 들어 올리자 구체가 크라우스의 머리 높이까지 떠올랐다.


인력을 느낀 크라우스가 뒷걸음질을 치며 병원 침대를 붙잡았다.


인력이 점점 거세졌다. 그의 머리카락이 강풍에 휘말린 것처럼 날려댔다. 노엘은 구체를 향해 미끄러지기 시작하며 무언가를 말했지만, 크라우스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반면에 미르딘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등불을 든 여자는 등불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꼭 쥔 채 창틀 위에서 웅크리며 인력에 저항했다.


노엘은 미끄러졌고, 크라우스는 능력으로 그녀를 포착했다. 곧이어 그는 등불을 든 여자를 포착했고—


창틀 위에 나타난 노엘이 균형을 잃고 휘청였다. 등불 여자가 구체를 향해 미끄러졌고, 구체에 닿자 강한 인력에 몸이 휘어지다시피 하며 붙잡혔다.


노엘이 부서진 창문의 옆면을 손으로 붙잡았다.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이 보였다.


깨진 유리가 있겠지. 미안해.


그가 노엘과 아노말리를 바꾸자 그녀와 등불 여자가 동시에 바닥에 쓰러졌다. 창문에 서 있던 아노말리는 방안에 나타났다.


“넌 누구지?” 미르딘이 물었다.


크라우스는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아직이었다. 탈출 기회가 오기 전에 행동한다면 일이 크게 꼬일 수 있었다. 지금 인파의 뒤쪽으로 이동하게 된다면 그대로 갇힐 수도 있었다.


“위험한 놈은 아니야.”


미르딘은 지팡이를 꽉 쥐었고 크라우스는 몸을 굳혔다.


지팡이 끝이 움직이자 불꽃놀이가 남기는 것과 같은 실타래 같은 눈부신 빛줄기가 허공에 그려졌다.


빛은 사방으로 터져 나갔고 강력한 충격파가 크라우스와 노엘을 덮쳐 벽까지 날려 보냈다. 미르딘이 그린 빛줄기의 형태 탓에 충격파는 등불을 든 여자에게는 거의 닿지 않았다. 옷이 조금 휘날리는 정도였다.


아공간을 여러 개 가지고 다니는 거겠지. 크라우스가 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각 아공간마다 법칙이 다를 거야. 하나는 추방된 사람을 담아두고, 방금 그건 에너지나 압축된 공기를 저장했다가 통로를 작게 열어서 터트리는 걸 수 있겠어.


“차원과 차원 사이에 통로를 열 수 있나?” 크라우스가 물었다.


미르딘이 몸을 굳혔다. “아니. 하지만 그걸 묻는다는 건, 넌 그녀가 통로를 열어서 데려온 괴물 중 하나라는 뜻인가?”


그녀. 시무르그.


“아니.” 크라우스는 그렇게 대답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움직이지 마라.” 미르딘이 경고했다. 그는 또다시 허공에 빛의 리본을 그렸다. 전보다 더 섬세하고 복잡한 모양이었다. 크라우스는 충격에 대비했다.


그 순간 기회가 보였다. 뒤늦게 도착한 증원군이었다. 저 멀리서 경찰차 한 대가 합류하기 위해 달려오고 있었다.


크라우스는 고개를 돌려 노엘과 인파를 동시에 눈에 담으려 애썼다.


그는 노엘을 인파의 후방에 있는 누군가와 바꿨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그는 자기 자신을 바꿨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때리는 것 같았다. 그는 노엘의 손을 잡았다. 이 위치에서는 경찰차의 내부가 보였다. 그는 운전석의 경관과 그의 파트너를 포착하고는 다시 위치를 뒤바꿨다.


크라우스는 운전석에 거꾸로 앉은 채 나타났다. 그는 몸을 휙 돌린 뒤에 태연하게 차를 돌려 봉쇄 구역 안의 더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이 차는 최대한 빨리 버리고, 그 집으로 돌아가야겠지. 벌 받는 일만 남았네.


그는 노엘의 장갑 낀 손을 꼭 쥐었지만, 그녀는 웃지 않았다. 안도감도 보이지 않았다. 걱정하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그 이유를 깨달았다. 깨진 유리에 거칠게 베였을 그녀의 왼손에는 상처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차를 버리고 걸어서 집으로 향했다. 몇 분이 걸렸지만 서로 대화는 없었다.


크라우스는 일행이 어느 집에 있을지 잠시 고민했다. 그는 그들이 처음 뒤졌던 집으로 향했다.


제스, 루크, 마리사, 올리버가 거실에 있었다. 불을 다 켜지 않았는지 주위는 어두컴컴했다. 그렇겠지. 불이 켜진 집을 찾고 있을 테니.


“노엘,” 마리사가 펄쩍 뛰어오르며 말했다. “고쳐졌구나!”


그녀는 달려와서 노엘을 안으려 했지만 노엘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아 제지했다.


“왜 그래?” 마리사가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정말 저질렀구나, 크라우스,” 루크가 말했다. “난 처음에는 못 믿을 뻔했어. 네가 그렇게 멍청한 짓을 했다는 걸.”


“실제로는 더 멍청하겠지.” 크라우스가 말했다. “하지만 노엘은 구했어.”


“그 약을 준 거야?”


“반만,” 크라우스가 말했다. 그는 자켓 주머니에 넣어 뒀던 금속 용기를 꺼내 책장의 책과 뒤바꾼 뒤에 책을 대충 바닥에 버렸다. “치료용으로, 몸만 나을 수 있게.”


“이제 너희 둘은 초능력이 있겠네.” 루크가 말했다. “하지 말자고 했던 짓을 그대로 하고 있어.”


“시무르그의 소행이야. 내 탓이라고는 할 수 없지.”


“헛소리하지 마.” 루크가 대답했다. 코디와 달리 평소에는 과묵한 루크였기 때문에 더 강하게 와닿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 더 친하기 때문인가?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상황은 더 심각해졌을 거야. 시무르그가 원하는 게 우리가 약을 마시는 거라면, 아무리 저항하더라도 결국에는 마시게 됐겠지. 이건 협박이었어. 운명을 이용한 협박. 약을 안 쓸 수 없을 정도까지 상황이 나빠지기를 기다리느니, 차라리 내가 나서서 대가를 치르기를 선택했을 뿐이야. 탓할 거라면 나를 탓해.”


“당연히 널 탓해야겠지, 시발.” 루크가 말했다. 화가 난 기색이 완연했다. 평소처럼 침착한 말투가 아니었다.


크라우스에게는 익숙한 분노였다. 그에게 항상 이런 식으로 화를 내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코디는 어딨어?”


“여깄지.” 코디가 크라우스의 뒤에서 말했다.


크라우스가 휙 돌았다.


“너도냐?” 크라우스가 놀란 기색 없이 말했다. 약 네 병이 남아있는 집에 코디를 버려두고 갔으니 놀랄 일도 아니었다.


“그래. 나도다.”


방 전체가 뒤바뀌었다. 커튼이 휘날리는 듯하더니 위치가 미세하게 바뀌었고, 노엘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코디는 방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렇지 않아?” 코디가 물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능력을 얻었지. ‘베스티지’를 마셨어. 그리고 운 좋게도 네 능력에 완벽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나왔지.”


다시 주변이 뒤바뀌었다. 모든 게 한꺼번에 움직였고, 이번에는 코디가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순간이동인가? 그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움직일 리가 없었다.


“그만해, 코디.” 마리사가 말했다.


“어차피 본인은 몰라. 신경도 안 쓴다고.”


“그만하라고!”


다시 주변이 뒤바뀌었고 이번에는 코디가 크라우스에게 주먹을 날렸다. 크라우스가 바닥에 쓰러졌다. 얼마 전에 맞았던 곳을 다시 맞은 탓에 두개골이 통째로 울리는 것 같았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코디가 주먹이 쓰리다는 듯이 손을 문지르며 말했다. “나한테 쓰면 만족감이 없고, 저놈한테 쓰면 알지도 못한다는 거지.”


“그만해.” 마리사가 말했다.


노엘이 장갑 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지금 무슨 상황이야?” 크라우스가 쓰러진 채로 물었다.


“시간 조작이야.”


코디가 어깨를 으쓱했다. “제한적인 시간 조작이지. 과거로 몇 초 보내는 정도야. 네가 순간이동으로 도망친다면 원래 있던 대로 되돌려서 불알을 걷어차 줄 수 있지.”


“아, 그래.” 크라우스가 말했다. “이제 기분이 좀 나아졌나? 몇 번 때리고 나니까?”


“조금은 나아졌지. 하지만 그것보다 좋은 건 언제든지 이런 짓을 할 수 있다는 거야. 내가 내킬 때마다.”


“그만둬.” 루크가 말했다. “그런 건···”


“짐승 같은 짓이니까.” 제스가 작게 말했다. 그녀는 크라우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랑은 단어 선택이 조금 다르지만,” 루크가 말했다. “대충 뜻은 비슷해.”


코디는 어깨를 으쓱했다. 웃음을 참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어찌 됐든,” 크라우스가 말했다. “노엘은 이제 안전해. 1순위 목표는 이제 이걸로 해결한 거야. 이제 남은 건 여기서 나간 다음 집으로 돌아가는 거지.”


“알고 있어, 노엘?” 마리사가 물었다. “우리 지금 상황이 어떤지?”


“조금은.”


“그럼 따라와. 이건 남자들끼리 알아서 하라고 하고, 짐 싸면서 내가 상황을 설명해 줄 테니까.”


“밥부터 먹으면 안 될까?” 노엘이 물었다. “오늘 아무것도 못 먹었어.”


마리사는 그녀를 미심쩍게 바라보면서도 주방으로 데리고 갔다.


“짐을 싼다고?” 둘이 자리를 비우자 크라우스가 물었다.


방이 뒤바뀌었다.


“그만하라고 했지, 코디.” 제스가 말했다.


“다들 저놈한테 맞춰주는 것도 이제 질렸어. 먼저 우릴 엿 먹이고 규칙을 깬 건 저놈이야,” 코디가 말했다. “혼자 뛰쳐나가서 독불장군 짓을 하고 싶은 거라면 하라고 해. 대신 대가도 혼자 치러야겠지. 우리까지 엮이지 말자는 소리야.”


“너도 지금 똑같은 짓을 하고 있어.” 루크가 말했다.


코디가 루크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니. 그건 아니지.”


“너도 지금 마치 우리를 대변한다는 식으로 결정을 내리고 있잖아. 넌 지금 혼자서 나대고 있어. 네가 원하는 걸 얻겠답시고 일을 필요 이상으로 꼬아 놓고 있지.”


“상황이 달라.” 코디가 말했다.


코디를 계속 쳐다보던 크라우스는 그를 뒤에서 붙잡아 책장을 향해 내던졌다.


“크라우스!” 루크가 소리쳤다. 마리사와 노엘이 서둘러 돌아왔다.


코디가 원래 있었던 자리에 그 자세 그대로 돌아왔다. 크라우스는 똑같이 그를 내던졌다. “둘!”


다시 코디가 3초 전의 위치로 돌아왔다. 크라우스는 그를 다시 밀쳤다. “셋!”


코디가 다시 나타나자, 크라우스는 그를 다시 밀치고는 외쳤다. “넷! 이건 양날의 검인 것 같네, 코디!”


이번에는 코디가 자기 자신에게 능력을 쓰지 않았다. 그는 널브러진 잡지와 책 사이로 쓰러지고는 분노에 잠긴 신음을 내뱉었다.


“네 능력은 역효과야.” 크라우스가 말했다.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고 쓴다 하더라도 상대가 네 능력을 알고 너한테 지원군이 없다면 루프를 깰 수가 없지. 자신을 과거로 보내면 기억도 사라져. 난 똑같은 짓을 반복하기만 하면 되지.”


“그게 아니라—” 코디는 그렇게 말하려다가 말을 멈추고 눈을 가늘게 떴다. “나는 널 해친 다음 원래대로 되돌리지 않아도 돼. 네가 이런 짓을 한다면 난 널 해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만 하면 된다고. 그리고 난 능력을 쓴다고 해서 지치지 않아. 필요하다면 몇 번이든 되돌릴 수 있어.”


“그만해.” 제스가 말했다. “너희 둘이 서로 싸우지 않더라도 이미 충분히 힘든 상황이니까.”


“그러기엔 문제가 있어, 제스.” 크라우스는 코디와 계속해서 눈을 맞춘 채 말했다. “코디의 사고방식은 몽둥이가 큰 놈이 이긴다는 식의 사고방식이거든. 자기 서열이 맨 위가 되기 전까지는 큰 그림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놈이지. 자기 서열을 높이려면 날 때려눕혀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우리가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내내 그런 짓을 하게 둘 수는 없어. 그건 너무 비생산적이거든.”


“그래? 그래서 뭐 어쩔 건데?” 코디가 물었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아무것도 안 할 거야.” 크라우스가 말했다. “그런 짓을 하고 싶다면 계속해 봐.”


“그렇겠지.” 코디가 씩 웃었다.


“하지만,” 크라우스는 코디에게 가까이 다가가 귀에 속삭였다. “그러기엔 네 능력이 문제가 될 거야. 방금 말했던 약점 때문만이 아니라.”


“문제라고?” 코디가 평소 목소리로 말했다.


크라우스는 계속해서 속삭였다. “그래, 문제. 시무르그가 노엘의 목숨을 위협해서 나를 한계까지 몰아붙였을 때 내가 어디까지 갈 각오가 되어 있었는지 너도 봤겠지. 지금 이 상황도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어.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모두를 돌려보낼 거고, 네가 날 방해하거나 내 안전을 위협하거나 너 때문에 목적이 방해된다는 생각이 든다면··· 어쩔 수 없겠지. 네 능력을 없애는 방법은 널 죽이는 것 이외에는 떠오르질 않으니까.”


코디는 계속 웃음을 머금은 채로 거리를 벌렸다.


그러나 크라우스의 표정을 보자 그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졌다.


코디는 다시 억지웃음을 지었지만, 어딘가가 어색했다. “가서 짐이라도 싸지. 이 멍청이한테 상황을 설명해주도록 해.”


그는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이걸로 끝이겠지.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이야기해보자.”


그는 소파에 앉은 뒤에 노엘에게 미소를 지었다.


노엘도 그에게 맞춰 미소를 지었지만, 눈까지 닿지 않는 걱정스러운 미소였다. 그녀는 다시 주방으로 향했고, 마리사가 그녀의 뒤를 따랐다.


크라우스는 마음이 아팠다. 지금까지 쌓아온 관계가 몇 주나 몇 달 정도를 역행한 것 같았다.


그는 일부러 생각을 돌렸다. 그는 루크에게 물었다. “짐이 있다고?”


“짐이라면 짐이지. 네가 어디 갔는지도 알 수가 없었고, 네가 차를 뺄 수가 없게 해 놓고 가버렸잖아.” 루크가 말했다. “그래서 나가서 돌아다녔어. 말하자면 쇼핑이었지. 옷이나 세면도구도 챙겨왔고, 계산대에서 꺼낼 수 있는 현금은 다 꺼내왔고,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건물이란 건물은 전부 뒤졌어. 심지어 제스가 쓸 낡은 휠체어도 하나 얻었다고. 지금 앉는 부분을 빨아서 말리는 중이야.”


크라우스가 미소를 지었다. “잘했네.”


루크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도둑질이잖아. 기분이 안 좋아.”


“어차피 아무도 건드리지 않을 돈이야.” 크라우스가 말했다. “봉쇄 구역 안에 있으니까. 좋은 생각이었어. 당분간은 물건이 부족할 일은 없을 거라는 거지?”


“대충 그런 셈이지. 한번 확인해 봐. 가방에 다 들어가는지도 확인하고, 부족한 물건이 없는지도 확인하고.”


“혹시 담배도 챙겼어?”


루크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냥 두고 왔어야 했는데, 너한테 그렇게까지 해 줄 이유는 이제 없다고 생각했는데···”


“했는데?”


“그래도 챙겨왔어.”


“나의 친우여!” 크라우스가 웃으며 팔을 크게 벌렸다.


루크는 고개를 저었다. “넌 지은 죄가 너무 커.”


“그렇긴 하지. 대신에 내 능력으로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 거야. 어렵지도 않겠지. 철조망 밖에 군인들이 그리 많은 것 같지도 않았으니까, 군인이랑 우리를 바꾸면 될 거야. 코디가 협력해준다면 더 쉽겠지.”


“노엘은?” 루크가 물었다. “노엘도 능력이 있나?”


“있는 것 같아.” 크라우스가 말했다. “어떻게 쓰는 건지 모르겠지만. 남은 약을 어떻게 쓸지는 생각해 봤어?”


루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루크!” 제스가 아연실색하며 말했다.


“왜? 이미 반쯤 저질러 버렸는걸.” 그가 말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능력을 얻는 것의 이점이 능력의 잠재적인 위협보다 커. 우린 소득도 없고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어. 능력자 팀을 만들어서 용병 일이라도 한다면 자금을 모으는 게 훨씬 쉬워지겠지. 코디가 말했던 것처럼 누군가한테 돈을 주고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도 있을 거야.”


“이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 제스가 말했다.


루크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솔직하게 말할게. 노엘과 코디와 크라우스만 능력을 갖게 된다면 안 좋은 일이 터질까 봐 걱정돼. 긴장 상태가 너무 심하다고. 그렇다고 우리가 그냥 나가서 혼자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낯선 세계에 혼자 떨어진 처지가 될 테니까. 그 셋 말고도 다른 사람들한테도 능력이 있다면 적어도 싸움을 막을 수는 있을 거야.”


“난 모르겠네.” 제스가 말했다. “문제가 더 심해질 거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 애초에 초능력 용병이라는 것부터가 위험한 일이잖아. 게다가 우릴 돌려 보내줄 수 있는 팅커를 찾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겠지.”


“이 세계에는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몇백 명은 있지 않아? 우리를 돌려보낼 방법을 아는 사람도 한 명쯤은 있겠지.”


제스는 인상을 찡그렸다.


“제스.” 루크가 말했다. “초능력이야. 게다가 이 약은 노엘을 치료하기까지 했다고. 네 다리를 고칠 수 있을지도 몰라. 한번 생각해봐. 걷고, 춤추고, 뛰고··· 그것 말고도 많겠지. 남자애들이랑 평범하게 어울릴 수도 있을 거야.”


그녀의 표정이 조금 바뀌었다. 능력 이야기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그녀도 관심을 표시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크라우스를 바라보았고 크라우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세 병 반 남았어. 누군가는 반 병밖에 못 마실 거야.”


“내가 마실 거라는 전제하에 말하고 있네.”


“그래.” 그가 말했다. “시무르그는 코디를 내 적으로 만들어서 날 동요시켰어. 그리고 노엘을 상처입혀서 내가 행동하게 했지. 하지만 너희들은 어떤데? 너, 루크, 마리사, 올리버, 전부 자기 내면의 상처에만 주목하게 했잖아. 시선을 돌린 거야. 시무르그의 속셈이 뭐겠어? 나를 노리는 거야.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어. 너희한테 엄청난 능력을 줘서 대통령을 암살한다던가 하는 계획일 리는 없어. 그런 거라면 왜 올리버한테 자괴감을 줘서 괴롭히는데?”


“널 노린다고?” 루크가 물었다.


“그렇게 보이지 않아? 공격이 어디에 집중되어 있는지 생각해봐. 너희의 주의를 돌린 이유는 너희가 날 설득해서 잠재울 수 있을까 봐 그런 거겠지. 이미 일은 저질러졌어. 시무르그가 시한폭탄으로 만든 사람은 바로 나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치고는 그리 동요한 것 같지 않은데.” 루크가 말했다.


“아직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래.” 크라우스가 말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게 시무르그의 계획이야. 그리고 내 생각이 맞다면··· 너희를 원래 세계로 돌려 보내준 다음에 나만 여기 남는 게 낫겠지. 어디 틀어박히거나 해서 말이야. 남은 돈만 전부 남겨줘. 어디 방에 숨어 살면서 평생 인터넷으로 영화나 보고 게임이나 하면서 살 테니까. 그 누구랑도 말 섞지 않고 말이야. 그렇게까지 하는데 무슨 큰일이 나겠어.”


“그냥 따라오지그래.” 루크가 말했다. “설마 양쪽 세계의 미래를 동시에 예지하겠어? 시한폭탄이더라도 우리 세계를 망치기 위한 시한폭탄은 아니겠지.”


크라우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이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세 병 반.” 제스가 말했다.


크라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넘어왔군.


“네가 가져간 게 전트랑 디비전이야.”


“그럼 남은 건···”


루크는 이미 주머니에서 접은 종이를 꺼내 펼치고 있었다. “프린스, 데우스, 로빈, 그리고 네가 노엘한테 준 거 절반이 남았겠지.”


“디비전이 절반 남았어.” 크라우스가 말했다. “이상하네. 노엘이 능력을 얻은 것 같지는 않아. 피부가 끓어오른다던데,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어쩌면 효과가 불완전할지도···”


“내가 반을 마실게.”


모두가 그를 바라보았다. 올리버가 말을 이어갔다. “노엘이 마저 마실 생각이 없다면 남은 절반은 내가 마실게. 난 강하지도 용감하지도 않고, 똑똑하지도 기발하지도 못해. 히어로가 될 수는 없어. 목숨 걸고 시무르그 같은 거랑 싸우라고 하지만 않는다면, 내가 반을 마실게. 그리고 싸우는 것 말고 너흴 도울 방법이 뭐가 있을지 찾아볼게.”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지 마.” 크라우스가 말했다. “넌 충분히 좋은 사람이니까.”


“그럴지도 모르지.” 올리버가 말했다. 우울한 목소리였다. “좋은 사람일 수는 있을 거야. 하지만 대단한 사람은 아니잖아. 나한테 특별한 점 따위는 없어. 그러니까 반만 마실게.”


“그래.” 크라우스는 말했다. “다른 거 찜할 사람?”


“로빈은 내가 마실래.” 루크가 말했다. “이름만 보면 날 수 있을 것 같아.”


“마즈?” 제스가 물었다. “넌 특별히 갖고 싶은 거 있어?”


마리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내가 데우스를 마실게.”


“그럼 나는 프린스구나.” 마리사가 말했다. “남자가 되는 효과는 아니었으면 좋겠네.”


“다른 둘은 아직 옆방에 있어?” 크라우스가 물었다.


루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명씩 마셔. 그래야 혹시 모를 문제가 생기더라도 수습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 다음 해뜨기 전에 나가자.”




자동차는 차가운 비를 와이퍼로 닦아내며 기나긴 고속도로를 따라 달렸다. 크라우스는 워셔액을 뿌려 앞 유리를 닦았다.


매디슨은 이미 한참 뒤에 있었다. 한 번 더 고향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물론 실제로는 그가 아는 고향 도시가 아니었다. 복사본, 그것도 더 안 좋은 복사본이었다. 더 폭력적인 곳, 능력을 얻은 범죄자들이 훨씬 더 심한 짓들을 저지를 수 있는 곳이었다. 거기에 더해 이곳에는 종말초래자들과 시무르그도 있었고, 황량한 봉쇄 지대도 있었다.


코디는 앞차에 타서 일행을 이끌고 있었다. 크라우스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런 겉치레 같은 서열 싸움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코디가 만족한다면 상관없었다.


더 심각한 싸움을 위해 힘을 아껴야 했다. 일어날 게 분명했으니.


해가 뜨고 있었다. 안도감이 들었다. 기껏해야 이십 피트를 비추는 전조등에만 의지해 눈과 빗속에서 밤에 운전하자니 정말 고역이었다. 비는 그치지 않았고 하늘은 흐렸지만, 해가 떠오르자 흐린 하늘도 어두운 보라색과 주황색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색으로 바뀌었다.


그는 조수석에 앉아 있는 노엘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그를 보고 웃어주었다. 전보다 한층 나아진 표정이었고, 그는 확실한 안도감을 느꼈다.


뒷좌석에 탄 마리사와 제스는 졸거나 자고 있었다. 여자애들이 코디를 피해 그에게로 왔다는 건 그가 지적하려다가 말았던 사실이었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을 것이었다. 코디는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적어도 크라우스가 보기에는,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여자애들이 그와 있는 게 더 안전하다고 느꼈다는 것에는 그런 의미가 있었다.


다들 능력을 하나씩 얻었지만, 완전히 만족한 사람은 없었다.


제스는 걸을 수 있게 됐지만··· 그녀가 만들어낸 소환물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본체는 그대로인 듯했다. 그녀는 자신이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고, 심지어는 하늘을 날 수도 있었지만, 실제 몸은 휠체어에 탄 그대로였다.


마리사는 손으로 불씨 같은 걸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근처에 있던 종잇조각에 불이 붙는 바람에 중단하긴 했지만, 주변 공간에 조금 더 여유가 있을 때 다시 시도해볼 생각이었다.


가장 실망한 것은 루크였다. 비행 능력이 아니었다. 용도라고는 하나밖에 없는 단순하고 파괴적인 능력이었다. 그가 건드리는 모든 물건은 투사체로 변했다. 용병 일을 시작해서 위험한 의뢰를 받는다면 유용하긴 할 것이었다. 그건 돌아가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에 따라 결정될 일이었다.


크라우스는 기억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이었다. 최소한 일행이 모두 건강해서 다행이었다. 모두 살아있었고, 상황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좋지는 않았지만, 이전만큼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적어도 당장 위험한 일이 있지는 않았다. 주변이 조용했다. 그와 노엘이 일행과 만나 팀의 미래에 관해 이야기했던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이제 능력을 활용할 방법을 찾고, 돈을 벌어서 집으로 돌아가면 될 일이었다.


적어도 이제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대체로는.


코디가 방향 지시등을 켰다. 휴게소로 들어가려는 모양이었다. 패스트푸드점 몇 개와 주유소가 있었다.


이른 아침인 만큼 도로에는 차가 많지 않았고, 휴게소도 마찬가지였다. 코디는 휴게소 문 앞에 차를 세웠다. 크라우스가 뒤따라 차를 세우기도 전에 올리버가 코디의 차에서 내려 화장실로 뛰어갔다.


올리버도 그리 변하지 않은 듯했다. 절반만으로는 큰 효과가 없는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복용의 여파를 더 심하게 만드는 것 같기는 했다. 올리버 역시 노엘처럼 약을 마시고 나서 오랫동안 고통스러워했었다.


“누구 화장실 가고 싶은 사람 있어?” 크라우스가 물었다. “배고프다면 패스트푸드점도 몇 개는 열려 있을 텐데.”


두 여자애는 끙끙대면서도 몸을 일으켰다.


“내리는 것 도와줄까?” 그가 물었다.


“둘이서 할 수 있어.” 노엘이 크라우스에게 웃어 보이고는 휴게소 안으로 들어갔다.


크라우스는 루크를 향한 찬양의 말을 읊조리며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냈다. 그는 담배를 입에 물고는 라이터를 찾기 시작했다.


노엘이 앞 유리를 두드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왜?” 그가 과장되게 어깨를 들어올려 보였다.


“차 안에서 피우지 마!” 그녀가 사이의 유리 때문에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슬쩍 웃고는 차에서 나와 문에 기댄 채 담뱃불을 붙였다. 연기를 내뿜으며 그는 구름 너머로 보이는 해돋이의 색깔을 감사했다. 차가운 겨울비가 거슬렸지만, 이 담배는 그럴 가치가 있었다.


한 대를 피웠는데도 일행이 돌아오지 않자 그는 어쩔 수 없이 주차장을 가로질러 비를 피할 수 있는 곳까지 걸어간 뒤에 두 개비째를 피우기 시작했다.


반쯤 피웠을 때 마리사가 밖으로 나왔다. 그는 차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른 일행이 시간을 너무 오래 끄는 것 같다는 말을 어떻게 하면 예의 있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하며 걷던 그에게 그녀의 눈빛이 보였다.


마리사는 창백하게 질려서 두려워하고 있었다. 어떻게 말을 할지 알 수 없어서 입을 다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담배를 뱉으며 그녀에게 뛰어갔다. 휴게실 문을 붙잡아 열고 있던 그녀는 곧이어 크라우스를 여자 화장실로 데려갔다.


패스트푸드점 중 하나의 입구에서 덩치 큰 점장 하나가 코디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크라우스는 점장의 항의를 무시한 채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노엘이 화장실 건너편에 웅크려 있었다. 올리버와 루크, 그리고 제스가 그녀 주위에 모여 있었다. 마리사가 노엘의 곁에 다가갔다.


“만지지 마!” 노엘이 비명을 질렀다.


마리사가 손을 들며 뒤로 물러섰다. 마치 자신은 안전하다는 제스처 같았다.


“어떻게 된 거야?” 크라우스가 조용히 물었다. 노엘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만 들릴 정도의 말이었다.


그는 가까이 다가갔다. 노엘은 바지를 무릎까지 내리고 있었다. 자켓 때문에 허벅지 위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왼쪽 다리에 길이 1' 8" (51cm) 정도의 흉터 같은 것이 있었다. 심한 화상처럼 물집이 잡혀 빨갛게 부풀어 오르고 주름진 곳이 있었다.


노엘이 그를 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가리려 했다. “보지 마, 크라우스!”


그는 물러서려 했지만 제스가 손을 뻗어 그의 바짓단을 붙잡았다.


그는 다시 눈을 돌렸다. 노엘은 고개를 숙인 채 머리카락을 늘어트리고 있었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붉은 흉터 같았던 것이 갈라졌다. 다른 사람들은 놀라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이미 보았던 광경이었다.


노엘의 허벅지에 있는 붉게 부풀어 오른 피부 아래에는 눈동자가 있었다. 사람의 눈보다 두 배는 크고, 홍채가 노란색인 눈동자였다. 노엘이 자신의 청바지만을 꽉 붙잡고 있는 동안, 그 눈은 그들 한 명 한 명에게 차례로 눈초리를 돌렸다. 그러던 그 눈동자의 시선이 크라우스에게 고정되었다.


원망의 눈빛이었다.


작가의말

* 원작 번역 지침에 따른 공지사항.

“This is purely a fan project and I/we lay no claim to the ideas, characters, or story. The real author is J.C. McCrae, aka ‘Wildbow’, and the original version can be found at http://www.parahumans.wordpres s.com. The final chapter of Worm was published on 2013. 11. 19. This is a fan translation.”


"이 번역본은 팬의 작업물이며, 번역자는 이 작품의 아이디어, 캐릭터, 스토리에 대한 어떠한 소유권도 주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원작자는 'Wildbow'라는 닉네임으로 알려진 J.C.McCrae입니다. Worm 원작은 http://www.parahumans.wordpres s.com 에서 연재되었으며 2013년 11월 19일에 완결되었습니다. 이것은 팬 번역본임을 밝힙니다."



* 표지 출처 : Ari Ibarra (ariirf.com)

팬아트 작가의 사용 허가를 받은 표지입니다.



* 이 작품의 번역은 2인 비영리 프로젝트입니다. 번역자가 번역을 맡고, 편집자가 검수와 업로드를 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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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여왕' 18.6 +6 20.09.25 458 31 30쪽
197 '여왕' 18.5 +4 20.09.22 419 26 28쪽
196 '여왕' 18.y (막간 : 크루세이더) +5 20.09.22 413 26 40쪽
195 '여왕' 18.4 +5 20.09.18 417 29 36쪽
194 '여왕' 18.3 +7 20.09.15 446 30 34쪽
193 '여왕' 18.x (막간 : 세계 최강의 남자) +15 20.09.11 585 37 31쪽
192 '여왕' 18.2 +9 20.09.08 436 28 29쪽
191 '여왕' 18.1 +3 20.09.04 498 34 30쪽
190 '이주' 17.8 +5 20.09.01 491 28 50쪽
» '이주' 17.7 +4 20.08.28 417 25 43쪽
188 '이주' 17.6 +7 20.08.25 427 27 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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