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옥수수밭

흙의 노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뚱닭
작품등록일 :
2018.01.25 22:10
최근연재일 :
2022.10.23 19:57
연재수 :
52 회
조회수 :
9,195
추천수 :
73
글자수 :
423,472

작성
18.01.25 22:17
조회
1,697
추천
10
글자
22쪽

1장 - 1. 나그네

DUMMY

띵~ 띵~ 띵~ 치이익.. 꼬로록~


"껄껄~ 괜찮게 잘 나왔구먼!"


튼튼하고 예리한 검은?은 아니고.. 그냥 작은 사다리에 달 발판용 판자를 만드는 소리였다.


항상 멋있고 비싼 무기를 만들면 좋겠지만 그냥 작은 시골 마을인 특성상 주로 손님이 농부거나 상인같은 사람들이 주류이며, 평소에는 주로 생활용품을 만들거나 부서진 물건을 고쳐서 주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삐걱삐걱..


"조심조심.. 천천히.. 으악~"


쿠당탕탕~ 우르르르.. 팅~ 탕~ 푹..


2층에서 루반이 화로용 목재와 철광석을 들고 오다가 계단에서 넘어지면서 재료가 여기저기 구르거나 꽂혔다.


"원.. 녀석! 번거롭다고 너무 한꺼번에 들고 오지 말고 조금씩 가져오거라."


"으윽.. 네. 할아버지."


선선한 동쪽바람이 마을 호숫가의 코스모스들을 쓰다듬으며 잔디가 파도를 탔고, 대장간 근처 숲에서는 극성으로 울어대던 매미들이 평소와는 달리 잔잔하게 울기 시작했다.


"흐음? 오랜만에 먼 곳에서 손님이 올 것 같구나."


"네? 정말요?! 오랜만에 재미있는 일이 생기겠네!"


3일 정도 조금 지났을까?.. 통이 넓은 여름용 활동복을 입은 한 청년이 대장간 앞에서 길을 멈춰 섰다.


"으음~ 정말 기분 좋은 바람이 부는 마을이야. 이곳 사람들은 여길 추천해주던데.. 소박하고 아담하네!"


마침 그의 눈에 들어온 루반은 쉬는 시간이라서 잡동사니가 쌓여있는 창고안의 오크통 위에 도롱도롱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바람이 좀 불어오는지 떄까 탄 셔츠가 펄럭이며 배꼽이 보이기도 했다.


청년은 도움을 얻으러 왔기에 소년을 꺠우며 말을 걸었다.


"얘야 좀 일어나 보렴. 혹시 여기서 일하시는 영감님 못 보셨니?"


"음냐.. 음냐.. 할아버지는 잠깐.. 쿠울.."


"이거야 원.."


"허허~ 젊은이. 그냥 두게. 원래 저 나이때 애들은 잠이 많거든."


구석에서 노인은 목에 구멍이 여럿 생긴 수건을 목에 걸고, 한 손에는 연장통을 들고 오면서 대답했다.


"아.. 안녕하세요! 혹시 이 대장간 영감님 맞으신가요?"


"음? 그렇네만."


"하하~ 반갑습니다. 저는 코반에서 파견 나온 견습기사 '로버트 하인켈' 이라고 합니다. 이곳에는 검을 잘고치는 장인분이 계시다고 들어서 간곡히 부탁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노인은 그에게 검집을 받아 검을 꺼내보니, 검신 위쪽이 완전히 부러져서 반토막이 나있었다.


"으음.. 그것 참 별일이군. 수도기사가 이런 촌구석에 오다니.. 여기보다는 수도에 있는 대장간에서 고치는 게 더 빠르고 튼튼할 터인데?"


"아하.. 그게.. 친구 녀석이 너무 우물안 개구리처럼 수도에만 있으면 잡생각이 많아진다고 휴식과 정신 수련을 겸해서 여길 찾았습니다. 너무 갑작스럽게 오느라 검도 그 모양입니다. 하하.."


로버트는 마을에 오면서 늑대와 마주치자, 수련으로 이가 많이 빠진 롱소드를 꺼내들어 사투를 벌여 간신히 이겼다. 그러나 검은 수명이 다했는지 균열이 커져서 또각~ 하고 부러져 버렸다.


"껄껄~ 아직 팔팔한 젊은이가 고생을 사서 하는구먼~ 그 정도라면 내가 잘 고쳐줄 수 있다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네."


"네?! 조건말씀이십니까?.."


어느새 두 사람의 대화에 루반은 잠이 다 깬 얼굴로 할아버지 옆에 서서 눈동자를 반짝이며 열심히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자네는 여기 머무는 동안 나와 이 녀석의 말벗이 되어주게. 그 대신 입이 심심할 때는 내가 주전부리와 약주를 내주도록 허지. 이건 내 삶의 유일한 낙이거든!"


"으음.. 알겠습니다. 그나마 재주 없는 저에게 그나마 감사한 부탁이시군요. 저 그런데,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닌데.. 괜찮으신가요?"


"허허~ 다 괜찮으니 걱정 말게!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다 제각각이라 늘 감회가 새롭다네."


* * *


여름이 막 시작되는 6월. 이 시기에는 푸른빛을 선명하게 비추는 4개의 별이 살짝 비뚤어진 사각형을 이루었으며, 예부터 밤길을 다니는 사람들은 이때쯤 되면 수도로 향할 때 하늘을 길잡이 삼아서 길을 나섰다고 한다.


하지만 그 것과 달리 또한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다. 새벽에 해가 살짝 비치면 4개의 별중 1개의 별만이 비취빛을 발하는데, 점성술사들은 이 별을 '루만티'라고 불렀다. 여름의 상징 '루만티'에 담긴 의미는···


똑똑똑~


"손님! 주문하신 식사 가져왔습니다."


"하암~ 벌써 시간이 이렇게됬나.. 어디 야식이나 즐겨볼까!"


로버트는 기지개를 쭈욱 펴면서, 보고 있던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다음날 오후가 되자, 감색빛 하늘에 여우비가 가볍게 내리기 시작했으며, 그 때 로버트는 대장간을 다시 찾았다.


빗방울로 인해 두둥~ 두둥~ 드럼소리가 나는 대장간 양철지붕 아래에서, 노인과 루반은 마주앉아 무언가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으.. 할아버지.. 너무 잘해요! 어휴.."


"욘석! 날 이기려면 아직 10년은 이르다. 허허~"


착착 감기는 소리에 이끌려 시선을 따라가보니, 두 사람은 체스를 두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건 체스 판은 평범한데 루반의 말은 주황빛을 내었고, 노인의 말은 은은한 하늘빛을 띄며 둘 다 반짝반짝 광택이 났다.


"영감님. 체스 말이 상당히 독특하군요. 직접 만드셨나요?"


"이런건 그냥 소일거리라네. 이 일로 평생을 먹고 살다보니 빈손이 이런데 가는구먼."


"저에게도 한 수 가르쳐 주실 수 있으십니까?"


"껄껄~ 한 수까지야.. 마침 시간도 비는거 같으니 같이 두세나. 루반~"


"네~!"


루반은 간이부엌에 들려서, 작은 갈색 술병과 투박한 나무쟁반에 잘게 썰은 빵을 가득 담아서 휘청거리며 돌아왔다.


"자자~ 별로 대단한건 아니지만, 허기를 든든하게 해줄거에요!"


마침 로버트는 점심을 거르고 왔기에 무의식적으로 군침을 삼켰다.


"같이 들면서 두게. 배가 든든해야 말도 잘나오고 '수'도 잘 떠오를테니."


"하하.. 감사히 먹겠습니다!"


빗방울이 야외의 간이욕조를 반 정도 채우고 루반이 빵가루를 입에 묻히고 꾸벅꾸벅 고개를 숙일 즈음, 노인이 먼저 말을 걸었다.


"지금까지 자네를 보아하니.. 귀족 출신은 아닌가 보구만."


로버트는 체스에 집중하며 인상을 찡그리다가 갑작스런 노인의 말에 인상을 펴고 놀란듯 대답하였다.


"네? 아.. 영감님 예리하시군요. 사실 저는 보그덴트쪽 농가 태생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지금쯤 영감님같이 밭뙤기 어딘가 한 편에서, 새참이나 먹고 있을 그럴 팔자였죠.."


"크으.. 술맛이 아주 좋구먼~ 그럼 자네는 여길 오기 전에 팔자를 바꿔놓을 귀인이라도 만난 겐가?"


"으음.. 영감님 말씀이 거진 맞긴 합니다만.. 그렇게 처음부터 거창한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좀 별난놈 이었죠.."


* * *


로버트의 친구는 그럭저럭 장사가 되는 상단의 아들로 자라서 유복하게 살았는데, 성격이나 가치관이 독특했는지 사치와 향락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항상 뭔가 스스로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꿈꾸며 의지가 충만한 독불장군처럼 보였다.


둘의 고향이었던 '보그덴트'는 이 대장간이 있는 시골 '모슬렉'보다 더 밑에 있는 곳이지만 큰 수로를 끼고 있어서 농업과 무역이 동시에 발달한 독특한 지역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사와 관련된 것은 거의 없었다.


7년 전, 그 시작은 보그덴트의 초겨울이었다. 그 때 로버트는 집에서 창고를 정리하고 농기구를 간단하게 다듬은 후, 곧 시작할 보리농사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삐걱~ 끼이이..


그 때 마침 누군가 눈안개를 헤치고 와서 농가 창고의 낡은 문을 열어젖히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양털이 수북이 들어가 보기에도 따뜻해 보이는 코트와 두꺼운 머플러를 둘둘 감아서 이건 뭐.. 마치, 동장군과 싸우기 위해 중무장한 모습이었다.


"로버트~ 로버트~ 하아.. 하아.. 후욱.."


"볼튼.. 숨좀 돌리고 천천히 말해. 너, 숨넘어가겠어. 아참! 그리고 뒤에 문좀 닫아줘. 추워죽겠으니까!"


'볼튼' 그게 이 녀석의 이름이다. 태생에 어울리지 않게 무엇을 하든 열정적이며, 남들의 생각이 미처 닿지 못한 것을 찾아 내는게 이녀석의 흥미거리인 듯하다.


지금 볼튼은 여기로 뛰어와서 그런지 자신의 체온을 이기지 못하고, 급하게 외투와 머플러를 아무렇지 않게 벗어 던졌다. 이런 먼지더미에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옷가지를 내팽겨 치다니 참으로 대단한 놈이야..


"로버트~ 아주 좋은걸 찾았어. 이걸 보라구!"


"볼튼 이번엔 좀 참아줘. 곧 보리농사 시작할 준비를 해야한다구."


아아.. 전단지군. 또 무슨 황당한 일을 벌일지 걱정이지만 한 두번 이런 것도 아니니, 그냥 무덤덤하게 이야기를 계속들었다.


"우리 코반으로 가자! 기사단에서 '견습기사'를 모집하겠데. 게다가 거기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 모든 남자들의 꿈인 '정식기사'가 될 수 있다구!"


"윽.. 볼튼. 그건 그냥 매년 2번씩 정기적으로 나오는 별 의미없는 전단지잖아.. 유의사항도 잘 보라구. 최소, 응시자격이 왕족, 귀족, 전쟁유공자의 자녀 같은 사람이 아니면 안될거야."


로버트의 한심해 보인다는 듯한 눈빛에 볼튼은 아랑곳하지 않고, 음흉한 표정을 보이며 말을 이었다.


"흐흐.. 니가 그럴 줄 알았지. 하지만.. 짜잔~ 이걸 보시라! '국왕님의 국민평등법 시행에 따라 기사응시자격 항목에도 적용하여, 계급제한을 전면 폐지합니다. 기사에 대한 열정과 실력을 겸비한 사람은 바로 도전하세요.' 랜다!"


그래도 나는 시큰둥했다. 에초에 관심도 없었으며 우리 같은 평민들은 제 입에 풀칠하느라 검술 수련할 시간도 없고, 그런 장비를 살 돈이면 나만 보더라도반년동안 손가락만 빨아야..


"야야! 걱정하지마. 내가 다 알아서 할게! 날 따르라~"


"으아악~ 볼튼~ 넘어지겠어!"


갑작스럽게 볼튼은 내 팔을 부여잡고 엉덩이에 불붙은 황소 마냥 둘이서 창고에서 뛰쳐 나왔으며, 나의 엉뚱한 여정이 시작되버렸다. 부랴부랴 볼튼이 장비, 밥, 돈 등을 휙휙 던져주며 체력단련, 검술도장 방문,검술교본 독서 등 할 수있는데로 다 해보면서 2년 만에 코반의 시험장에 도달했다.


* * *


생각보다 지원자는 적었는데 대략 20명 정도?..


'기사'라는게 장교로 분류되어 있어서 문무가 둘 다 뛰어나야 하는 지휘관에 준하는 역할을 가졌기에, 보통 직업군인을 희망 하는 자는 무과만 집중하면 되는 '정규 일반군' 편성에 사람들이 주로 몰렸다.


그리고 이쪽은 '견습기사'가 되더라도 5년 안에 기사단에서 실시하는 '정식기사' 승격전에 붙지 못한다면, 정규군의 하급병과에 들어가거나 짐을 싸서 고향으로 돌아 가야하는 가혹한 조건이 있었다.


대부분의 지원자가 귀족이나 대상인의 자제인 듯 걸친 옷들이 휘황찬란하게 빛을 띄고있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수수한 레더 아머에 견습용 목검만 허리에 차고 있었으나.. 수군대거나 지적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다들 인품까지 빈틈없구나..


시험방식은 '대련'과 '면접'으로 절차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실기는 지원자들 끼리 목검 대련을 해서, '대전기술'과 '승리' 두 가지에 관해서 점수를 부여했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주먹구구식 벼락치기로 준비한 우리로서는 화려하게... 졌다.


윽.. 역시 지원자들 수준에는 너무 버거웠어..


그러나 우리들의 대련을 채점하던 교관은 매우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깃펜을 끄적였다.


대련을 마친 후 너덜너덜해진 우리는 서로 대강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주고, 면접을 위해 응접실에서 기사단장과 마주하였다.


면담일지를 정리하고 있었는지 서류를 다듬다가 우릴 보고는 사뭇 신중한 표정에서 밝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푸흡.. 자네들인가? 하나는 농가 출신에.. 또 한명은 소상인 자제라니.. 간만에 독특한 조합을 보는군!"


역시나.. 나는 내심 우리들을 하찮게 보나 싶어서 기가 죽은 채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교관님이 보시기에는 아직 저희 같은 사람들은 기사가 되기에 이른감이 있으신가 보군요."


"아냐 아냐! 전혀 그렇지 않아. 오히려 난 현재의 이 상황이 되기 전부터 이 자격제한을 폐지하고 싶었어. 기존 제도로는 얻을 수 있는 인적자원이 너무 한정되고 균일화되어 있어서 기사단의 전력이 너무 취약해 보였거든.. 특히 자네들의 특이한 검술은 보기에 매우 좋았다네."


난 괜한 말을 한거 같아서 머쓱해져서 고개를 숙이고 볼튼은 더욱 의기양양해져서 한 마디 했다.


"하핫.. 단장님의 과찬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그저 벌처럼 날아서 나비처럼 상대방을 쏘았을 뿐입니다!"


볼튼이 너무 당당하게 말실수를 하자 교관님은 평정심이 깨지셨는지 크게 소리내며 웃으셨고, 쉽게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으셨다.


* * *


어느새 여우비는 잦아들더니 날이 개면서 노인은 경쾌하게 외쳤다.


"이번에도 잘 풀렸구만. 젊은이, 마무리라네."


"하하~ 져버렸네요. 즐거운 승부였습니다. 으음.. 그 후에 저희는 개편된 제도의 시범 사례인지 천운인지도 모르게 덥썩 붙어 버렸습니다. 그 땐 꿈인지 진짜인지 분간도 안되더군요. 그러다가 5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시험은 진전이 없었기에, 이번엔 기사신분으로 가지는 마지막 휴가가 되었습니다."


"자네의 이야기도 재미있었다네. 그런데 어지간히도 어려운가 보구만.. 그렇게나 차도가 없으니 말일세.."


"부끄럽습니다만...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친구 덕분에 평생에 다시는 못 겪을 귀중하고 즐거운 추억이 생겼거든요."


실기 시험방식은 서로 원하는 사람들끼리 2~5명 정도 모여서 팀을 만들고 기사단장과 대련하여 그에게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면 승격을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긍정적인 경우는 드물었고, 보통 3년에서 5년 주기로 합격자가 2~3명정도 나올 만큼 합격률이 매우 저조했다.


이번에도 성공하지 못하면 이전에 말한대로 다른길을 찾아야 하는데, 두 사람은 올해가 마지막 시험이었다.


"이 늙은이의 보잘것없는 부탁을 들어주었으니, 별건 아니네만 맡긴 건 튼튼하게 만들어주겠네. 시간은 좀 걸리니 푹 쉬다가, 3일 정도 지나면 찾아오게나."


"영감님, 정말 고맙습니다!"


* * *


로버트는 그 후 중앙 광장 근처의 도서관에서 책을 몇 권 더 빌려 여관에서 읽거나, 자신을 찾아오는 루반과 가벼운 이야기를 나눴다.


"자, 검은 여기 있네. 어서 받게나!"


"음? 영감님, 검이 뭔가 좀... 평소에 보던거랑 많이 다른것 같습니다."


"나와 손자가 자네들의 좋은 미래를 기원하며 특별히 신경써서 만들었다네. 그리고 손자가 재미있는 장치를 달아뒀으니 떠나기 전에 꼭 물어보게나."


갑작스럽게 노인이 던져준 것의 외견은 평범했으나, 전체적으로는 더 크게 보이며 손에 쥐었을 땐 더욱 가벼워지는 기묘함이 일었다.


특히 검신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금이 간 듯 패인 홈과 손잡이 끝에 달린 조악한 뭉치 장식은 대략 루반이 맡아서 만든 느낌이 물씬 났다.


그는 검을 받은 후 루반을 찾아갔고, 검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후 수도에 편지 한 통을 보내 볼튼을 급하게 불렀왔고, 마지막 시험을 준비하면서 한 동작만 죽어라 연습했다.


볼튼은 왜 이것만 집중하냐며 투정을 늘어놓았지만, 웬일로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같은 간곡한 설득에 볼튼은 흥미를 보이며 흔쾌히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 * *


한 달이 지나 두 사람은 모슬렉에 작별인사를 하고 성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마지막 시험에 앞서 서로 합을 맞춰보거나 건강상태를 재확인하고 대련장으로 나섰다.


"자네들은 지칠 줄을 모르는군. 불리했던 환경에 비해 다른 사람들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그 모습이 기특하군. 결과가 좋지않더라도 괜찮게 보답할 생각이니 걱정은 말게!"


"위로는 감사히 받겠지만, 쉽게 떨어질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로버트! 고생 많았다. 마지막까지 실패 한다고 해도 아쉬움 없이 돌아 갈 수 있겠어."


"으윽... 볼튼, 니가 그런 소리를 하면 어떡해!"


로버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호각이 울리고, 둘은 동시에 번개같이 뛰어가 단장에게 파고들었고 최대한 가깝게 검을 붙였다.


그렇게 세 줄기의 선은 서로의 빈틈을 찾아서 곡선을 그렸다.


챙~ 채앵! 팅~ 팅! 카앙~ 깡!


두 사람의 수많은 타격이 단장에게 유효하게 도달하긴 했으나 단장은 이 정도는 다 예상했다는 듯, 전혀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고 여유롭게 방어했다.


"여전히 대단하지만... 여전히 자네들의 잠재력이 터져 나올 기미는 안보이는군. 이만 여기까지 할.."


"크윽... 아... 아직... 이대로 끝낼 수는 없습니다. 으윽.. 볼튼!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들이 준비한 그걸 쓰자!"


그들은 온 몸에 베인 상처와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 거의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으.. 그 황당한 기술 말이야..? 그럼 지금 바로.."


"볼튼, 잠깐만 기다려. 이걸 쓰도록 해!"


로버트는 도흔과 물집으로 걸레짝이 된 손으로 자신의 검에 달린 조악한 폼멜을 돌려 뽑았다.


달칵.. 철컹.. 탁!


그 검은 가운데 금을 따라 검신 끝에서 손잡이 끝부분까지 두 개로 나누어졌다. 그리고 갈라진 검신 틈 사이로 두 검에 한쪽씩 안쪽에 은은한 초록빛이 반짝이며, 두 개의 어구가 나타났고 하나의 문장을 만들었다.


'서로 다른 꿈이 만나 황혼속 미지의 벽을 부수고 광야로 나아가리라.'


볼튼은 순간 당황했으나 로버트의 말을 다시 떠올리며, 천천히 걸어가 반쪽이 된 검 하나를 움켜쥐곤 세게 힘을 주었다.


"자, 마지막이야. 가자, 볼튼!"


"이... 정신 나간 놈... 푸하핫~ 그래야 내 친구답지! 그래, 뭔진 모르겠지만 대단원의 막을 내려보자고~"


농부와 상인은 땅을 박차고 날아갈 듯 높게 도약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똑같이 검을 최대한 가슴에 붙이고, 전신을 회전시키며 단장에게 뛰어들었다.


그땐 단장도 본능적으로 위기를 직감한 듯, 양손으로 든 자신의 검을 꺾어 들며 기마 자세를 취하곤 방어를 시도했다.


양쪽에서 휘몰아치던 두 개의 섬광은 하나의 회오리가 되어 단장의 검신을 강타했고, 가운데에선 주위의 공기를 압축했다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짧은 정적이 흐른 후... 서로 시간이 멈춘 듯한 그 순간.


쩌저 - 적... 쩌적... 후두둑... 챙그랑~!


단장의 검은 서서히 금이 가더니, 이내 그것은 파편이 되어 흩어졌다.


두 사람은 자신의 가장 깊숙한 곳에 담아두었던 무언가가 터진 것인지, 서로를 바라보곤 눈물을 글썽이며 크게 웃어버렸다. 단장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다가 흐뭇한 표정으로 손잡이를 버렸다.


* * *


한 달 전, 로버트는 노인에게 특별한 검을 받은 후 루반을 찾아다니다가 광장에서 엉성하게 깎은 팽이로 노는 걸 발견했다.


"루반!"


"형, 무슨 일이라도? 아, 검을 받아오셨군요."


"영감님이 널 찾아가 보라는구나. 이 검의 특별한 비밀인가...? 알려주다던데.."


"아, 검 끝에 달린 게 있잖아요. 돌려서 뽑아봐요!"


"이... 이렇게?"


그가 그것을 돌려서 뽑았더니 커더란 나사같은 모양이 되어 달칵~ 소리를 내며 뽑혔고, 검이 반으로 갈라졌다.


물론, 로버트는 경악했다.


"내가 잘못 만진건가?! 검이 부러져 버렸어..."


"그게 제 선물이에요! 두 사람이 언제나 꿋꿋이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모습이 사라지지 않길 바라며 만들었답니다.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경우가 생기면 그 검을 나눠서 쓰시면 돼요. 구조도 간단하니 평소에는 다시 조립하면 된답니다."


"그렇구나... 그나저나 검신 안쪽엔 무언가 새겨져 있구나."


"아! 그게 뭐냐면요..."


* * *


두 사람이 만나기전 노인은 기지개를 펴면서 루반을 불렀다.


"노에 슬슬 불을 올리고 창고에 가서 재료들을 가져오거라."


"네~!"


기본적인 준비를 마친 후, 노인은 마당에 널브러져 있던 놀이용 말들을 쓸어왔다.


그 후, 시차를 가지고 같은 색을 가진 말끼리 모아서 노에 따로 녹이곤 두 통의 쇳물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 정도 식어서 조금 단단해질 즈음, 노인은 콧노래를 하면서 덩어리를 천천히 두들겼다.


"할아버지~ 이번 재료는 뭐에요? 이렇게 찬란한 초록빛은 처음 봐요!"


"허허~ 녀석. 루만티늄은 기억하고 있느냐? 그리고 지금 넣은 새로운 녀석이 '플라티나'라고 부른단다. 이건 좋은 특성이 많긴 하지만 강도는 물러서 그냥 무기로 만들긴 어렵단다. 하지만 두 친구를 서로 만나게 해주면 무엇보다 강인한 녀석이 튀어나오지. 둘 다 특별한 것이라 그에 걸맞은 인연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좋은 일이 생겼구나!"


"저도, 두 사람이 이번 일을 무사히 해냈으면 좋겠어요!"


두 사람은 주먹을 만들어 가볍게 맞댔다.


* * *


모슬렉에도 겨울이 찾아왔고, 함박눈이 내리며 마을의 아이들은 해맑게 뛰어다녔다. 루반은 잔가지로 눈사람을 만들었고, 노인은 화로에 불을 피워 감자와 고구마를 구웠다.


"이거~ 할아버지에요!"


"예끼! 난 이렇게 못 생기지 않았다. 껄껄껄~"


그때 대장간 앞에선 작은 마차가 섰는데 짐칸에는 간단한 먹거리와 다양한 색이 감도는 원석들이 실려 있었다. 그것의 안에선 갑옷의 가슴팍에 연꽃 문양이 선명한 사람이 힘차게 뛰어내렸다.


뽀드득~ 뽀드득~


그리고 그는 눈을 밟으며 두 사람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호오.. 운명에 묶여있던 영혼이 결국, 눈부신 새가 되었구먼!"


그 때 불어오던 약한 눈보라는 마차안을 뒤적이다가 '계절과 별자리'라고 적힌 책을 펼쳤고 어느 쪽에 다달아 멈춰버렸다.


···여름의 상징 '루만티'에 베미보아의 점성술사들이 담아놓은 특별한 의미는 다음과 같다.


[그것은 변화를 바라는 평행한 두 길을 이어서 새로운 이정표를 알려주는 마법의 순간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8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흙의 노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퇴고록 20.05.01 57 0 -
공지 *기본 설정 20.05.01 72 0 -
공지 *표지 모음집 +2 18.01.29 319 0 -
공지 *안녕하세요~! 뚱닭입니다. 18.01.26 192 0 -
52 11장 - 52. 작은 날갯짓, 큰 손으로 22.10.23 21 0 22쪽
51 11장 - 51. 낡은 봇짐 21.01.05 19 0 18쪽
50 10장 - 50. 떡잎의 시대 +2 20.10.24 38 1 19쪽
49 10장 - 49. 어스름한 항해 20.10.23 26 0 15쪽
48 10장 - 48. 높은 바다가 보이는 자리 20.10.21 25 0 19쪽
47 10장 - 47. 뭉뚝한 뿔과 부리 20.05.01 25 0 15쪽
46 10장 - 46. 금가루 잔향 19.09.30 36 0 18쪽
45 10장 - 45. 묵은 말 19.09.26 32 0 13쪽
44 9장 - 44. 볕 속에서 18.11.07 83 0 18쪽
43 9장 - 43. 하얀 뜰 18.11.05 72 0 26쪽
42 9장 - 42. 소금꼬리밟기 18.11.03 93 0 15쪽
41 9장 - 41. 거푸집 벗 18.11.01 80 0 15쪽
40 9장 - 40. 길잡이의 취향 +2 18.08.05 111 1 20쪽
39 9장 - 39. 차갑게 마시는 독 18.07.19 83 1 14쪽
38 9장 - 38. 밤비단 열매 18.06.21 96 1 24쪽
37 9장 - 37. 갈퀴와 숲밥 18.06.15 100 1 16쪽
36 9장 - 36. 뿌리둥지 나들이 +2 18.06.09 119 1 20쪽
35 9장 - 35. 풀잎향 풍경 +6 18.05.28 138 2 13쪽
34 9장 - 34. 우는 뱀 18.05.21 160 1 13쪽
33 9장 - 33. 거미와 손난로 18.05.18 101 1 22쪽
32 9장 - 32. 숨고르기 18.05.16 83 1 14쪽
31 9장 - 31. 솜송이 18.05.05 99 1 14쪽
30 9장 - 30. 시큼한 쇠수레 18.04.30 123 1 18쪽
29 9장 - 29. 푸른 등불 18.04.28 143 1 15쪽
28 9장 - 28. 허름한 자루 18.04.26 102 1 18쪽
27 8장 - 27. 안개를 걷는 손길 18.04.22 107 1 25쪽
26 8장 - 26. 별 헤는 밤 18.04.16 112 1 16쪽
25 8장 - 25. 변덕스러운 전야제 18.04.13 138 1 14쪽
24 8장 - 24. 콩과 여우 18.04.08 127 1 15쪽
23 8장 - 23. 마녀의 요람 18.04.03 109 1 25쪽
22 7장 - 22. 꿈꾸는 일기장 18.03.28 120 1 17쪽
21 7장 - 21. 말괄량이의 부탁 18.03.23 119 1 15쪽
20 7장 - 20. 불나방패 18.03.07 165 1 26쪽
19 7장 - 19. 돌풍선 18.03.04 124 1 14쪽
18 6장 - 18. 기다림의 끝 18.03.01 143 1 17쪽
17 6장 - 17. 울지 않는 두꺼비 18.02.25 150 1 16쪽
16 6장 - 16. 테라바시아 18.02.23 153 1 15쪽
15 6장 - 15. 찻잔 너머 그 무언가 18.02.21 139 1 14쪽
14 6장 - 14. 가득 담긴 사탕과 버섯 18.02.19 168 1 15쪽
13 6장 - 13. 붉은 장막 18.02.16 154 1 14쪽
12 5장 - 12. 무지개 정원 18.02.14 142 1 20쪽
11 5장 - 11. 구름바다 18.02.10 167 1 22쪽
10 4장 - 10. 빛보라 18.02.06 204 1 17쪽
9 4장 - 9. 안짱걸음 18.02.01 160 3 14쪽
8 4장 - 8. 모래집 왕자 18.01.28 225 3 22쪽
7 3장 - 7. 얼음치레 18.01.27 250 3 15쪽
6 3장 - 6. 뜨거운 길 +2 18.01.26 262 5 14쪽
5 3장 - 5. 보라색 날개 18.01.26 329 4 26쪽
4 3장 - 4. 추운 날 18.01.26 397 4 26쪽
3 2장 - 3. 밤비단꽃 18.01.25 527 3 20쪽
2 2장 - 2. 의뢰 방식 18.01.25 751 5 17쪽
» 1장 - 1. 나그네 +8 18.01.25 1,698 10 2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