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뚜근남 님의 서재입니다.

게임 속 무법자가 되었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뚜근남
작품등록일 :
2023.12.01 09:37
최근연재일 :
2024.03.18 03:51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6,649
추천수 :
475
글자수 :
198,079

작성
24.02.25 18:10
조회
246
추천
20
글자
13쪽

6화. 벌거숭이 공주님 2

DUMMY

사죄하겠다.

보통 높으신 분들은 잘 안 하는 말이다. 왜냐면 그럼 자기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엄청나게 높으신 분은 대단히 양심적이며, 대단히 책임지는 자세가 훌륭한 참된 용사님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높으신 분들이 이 말을 안 하는 이유가 있다. 책임을 지겠다는 말은 그대로 약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틈, 절대 놓치지 않는다.


나는 비릿하게 웃었다. 속으로는 쾌재를 부리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참다보니 이런 미소가 저절로 나오더라.


“황태녀. 나는 적어도 파티를 맺고 같이 마신과 싸운다면 서로가 동등한 관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그렇다.”

“그렇지. 그게 당연하지. 난 말이지, 적어도 돈 받고 남의 부하가 되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남이 돈이나 신분이 높다고 저자세로 나가기도 싫어.”


세계 최고의 도적 루드리스한테도 찍찍 반말해대는데. 뭐.


“······그렇지만 실제로 그건 불가능하지. 네가 아무 생각없이 나를 모욕한 것처럼, 다른 이들은 아무 생각 없이 나를 ‘용사의 동료’로 여기지 절대 도적 냅터 잭으로 여기진 않을 것 아닌가?”

“그건. 음······.”


반박할 수 없는 얘기다. 해결책도 없고.

그러니까 여기서는 한 발 물러나준다.


“물론, 남들이 그렇게 보는 거야 어쩔 수 없어. 실제로 네 신분은 황태녀. 나야 빈민 출신의 일개 각성자······. 아무리 그래도 세상이 이런 건데 너에게 책임을 묻기에는 너무하지. 그렇지만 적어도 내 파티원이라면 적어도 나를 동등한 동료로 봐줘야 할 것 아니야.”

“그렇지. 당연한 일이야.”


황태녀는 즉답했다. 나는 비틀린 미소를 다시 지어주었다.


“그러니, 감히 네 동료를 모욕한 처분으로 네 옆의 호위에게 당장 자결을 명령해주지 않겠나?”

“?!” “!!!”


황태녀도 놀랐지만 당연히 호위가 더 놀랐다.


“왜 그렇게 놀라지? 너와 내가 동등하다면, 저 호위가 나를 모욕한 건, 다시 말해 너를 모욕한 것과 같다. 적어도 너의 판단과 안목을 모욕한 것과 같지. [신디케이트]를 모욕했다고는 안 해주마. 아무튼······. 그런 무례한 호위는 당연히 사형이 적절한 형벌 아닌가?”

“그, 그건. 아니야. 도를 넘지 않은 이상 그래도 근신 처분 정도를······”

“도 넘었어. 왜 도를 넘었느냐 안 넘었느냐를 네가 정하나? 내가 그렇게 느꼈다는데. 우리 관계는 네가 내가 느낀 감정조차 정할 수 있을 정도로 일방적이었던 모양이군?”

“······.”


반박할 말 없죠? 응? 지금 죄책감과 폭압적인 논리 사이에서 갈등하고 계시지?

결국 내 말을 따를 수는 없을 거다.

그야 천민 도적에게 무례했다고 기사의 목을 자르는 건 황태녀의 심성상 불가능하기도 하고, 나라의 법도 상으로도 말도 안 되거든.


난 그래서 장난스레 미소지고는 상냥하게 말을 건넸다.


“장난은 이 정도면 됐고. 이제 문제가 뭔지 알겠지?”

“······그래.”

“이게 네 한계다. 결국 너조차도, 사실 네가 아니라 세상 그 누구라도 다른 사람을 자신과 동등하게 여길 수는 없는 법이지. 그러니 조금 다른 방식의 존중을 제안하고 싶은데.”


이 고절한 대화의 수법을 이른바 가스라이팅이라고 한다. 38번째 플레이 만에 내 새로운 재능이 개화됐다.


“조금 다른 방식?”

“가장 알기 쉬운 방식의 존중이지.”


나는 품속에 손을 넣었다. 호위가 경계했지만 설마 내가 황태녀를 쇠뇌로 쏘기라도 하겠냐. 어차피 선지자라 예지하고 피해.


짤랑.


내가 탁자에 올려놓은 것은 은화 5개였다. 황태녀가 그게 뭔가 하고 물끄러미 쳐다봤다.


“나는 각성하기 전에 소매치기였고, 각성한 이후 던전을 털어서 그곳의 도적들의 호주머니에서 턴 돈이 ‘도적’으로서의 첫 수입이었다. 원래는 가히 소매치기의 5달 정도 되는 수입을 하루만에 번 거지. 원래라면 이 정도 돈을 준다면 난 그 사람 발을 핥거나 사람을 죽일 수도 있었을 돈인데 말이야.”

“······.”

“그렇지만, 거기 황태녀는 얼마를 줘도 사람 발을 핥진 않고, 죄 없는 사람을 죽이지도 않겠지.”

“그야 사람이라면. 그런 짓은 할 수 없······.”

“아니, 그건 네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어차피 원하면 뭐든 손에 넣을 수 있는 신분이라 그래. 아무리 많이 써도, 그냥 아랫것들에게서 갈취해서 지불하면 그만이니까.”


황태녀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냉정히 반문했다.


“그래서?”

“어쨌든, 황태녀에게 간다는 이유로 무기도 챙길 수 없었고, 장비야 돈 주고도 안 받을 이 넝마가 전부니까. 이 은화 5개가 말하자면 나라는 사람의 가치인 셈이지. 적어도 우리가 동등하다면, 적어도 사람의 가치 자체는 동등하게 셈해야 하지 않겠나.”


나는 용사를 쳐다봤다. 그녀는 드레스 같은 것이 아니라, 용사로서 완전히 새것이나 다름없는 장비로 전신 무장하고 있었다.

선지자는 딜러도 서포터도 할 수 있지만, 보아하니 신통력을 통한 물리-정신 하이브리드 딜러로 육성한 쪽인가.


“지금 걸친 모험가 복장······. 당연한 얘기지만 1레벨 장비긴 해도 최고급품이군. 물론 투구나 무기도 있겠지만, 지금 걸친 것으로만 셈하지. 한 금화 25개 정도일까.”


미쳤구만. 금화 25개. 2500만원짜리 장비라고. 금화 1개=은화 10개라는 심플한 게임 환율을 생각하면 나보다 50배는 비싸군.


“뭐, 사실 황태녀의 몸값으론 말도 안 되지. 그 천 배는 되어야 마땅해. 하지만 너는 이제 황태녀가 아니라 용사이며, 동시에 모험가잖아? 말하자면 그 금화 25개는 모험가로서의 네 가치인 거라고 치면 되겠군. 인정하나?”

“인정한다.”


인정한다고 말했다. 좋았어.


“그럼 좋군. 우리, 더 나아가 너와 파티원들의 관계가 동등하다면, 그리고 서로 존중하는 게 당연하다면. 네가 내게 보인 두 번의 무례. 그리고 네 호위가 내게 보인 무례. 이렇게 세 번의 무례로 나에게 금화 75개를 주길 바란다.”

“금화 75개?”

“뭐, 당연히 나도 너를 비꼰 두 번, 호위보고 자결을 명령한 한 번. 이렇게 해서 은화 15개 내지. 내가 받을 몫에서 거슬러 주면 되겠군. 서로의 가치만큼 지불한다. 가장 간단한 방식의 사죄지. 어떤가? 당장 내지 못한다면, 하루 정도는 기한을 주지. 못 갚으면 빌려서라도 갚아라.”


그러자 황태녀의 표정이 묘해졌다. 표정이 묘해진 황태녀 대신 말을 꺼낸 건 호위였다.


“풋내기 도적 따위가······. 결국 돈 받으려고 이러는 거냐?”

“100개.”

“전하께서 자비로우셔서 살아있는 거지 너 따위는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는 쓰레기인데 감사하지는 못할 망정.”

“125개. 저기 호위는 참 셈을 못하는군. 어이쿠. 나는 은화 20개.”

“전하.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저 무례한 자를 왜 내버려둬야 합니까. 이건 자비를 보일 필요도 없습니다. 저 권리는 전하를 모욕할 권리를 은화 다섯 푼에 사겠다는 얘기 아닙니까.”

“150개다.”

“당장 그 입을 닥치지 않으면 네 몸을 갈기갈기 찢어주겠다.”

“175개.”

“전하!”

“200이다.”


사실, 냉정히 보면 호위가 맞는 말 하고 있다.

신분제 국가에서 왜 이런 걸 참아주냐? 참아주면 바보, 호구, 머저리다. 말마따나 무례함을 이유로 내 목 잘라버리면 그만이다.


황태녀라도 금화 25개는 큰돈이다. 약 2500만원.


그런 거금을 모욕을 줄 때마다 낸다니 말도 안 되는 짓이다. 그것도 그 모욕의 기준은 내가 마음대로 정하고.

그것보다도 호위의 말마따나 황태녀를 모욕할 권리를 은화 다섯 개에 사겠다는 얘기와도 같고. 이것도 50만원이지만 황족이 은화 다섯 개 벌려고 모욕을 듣겠나.


그러나, 역시 우리의 호구 황녀님 생각은 달랐다.


“방에 가서, 내 금고를 가져오세요.”

“전하!”

“경. 당신이 내게 주는 모욕의 값어치는 얼마죠? 알고 싶지 않다면 당장 가져오세요.”


호위는 분노하면서 나갔고, 이내 황녀의 개인 금고를 가져왔다.


작은 크기였지만 애초에 금화도 더럽게 작다. 황녀가 금고를 열자 안에서 수천 골드는 될 법한 액수가 나왔다.


“모욕에 사죄하지. 냅터 잭. 금화 200개를 가져가라.”

“거스름돈 제하고 198개다.”

“······그래. 198개. 가져가. 너는 분명 훌륭한 도적이고, 내게 많은 걸 깨쳐줬지만 동료가 될 수는 없을 것 같군. 유감이다.”


난 자루에 정중히 198개의 금화를 세서 자루에 담고 물러났다.

이게 작전 끝이냐고? 설마. 말마따나 이거 쟤가 가진 재산의 1/1000도 안 돼. 애초에 황태녀는 원한다면 얼마든지 아랫것들에게서 돈 긁어올 수도 있고.


“그럼, 다음에 볼 때는 음식을 남기는 버릇이 고쳐졌으면 좋겠군.”

“이 자식.”

“이건 모욕이 아니다. 진심이지. 그럼. 이만.”


난 그리고 밖으로 나갔다.

자. 여기서부터 중요하다.

왜냐면 난 금화 198개 받으려고 여기 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이 【벌거숭이 공주님】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난 밖에서 대기하던 루드리스에게 금화 자루를 바로 넘겼다.

루드리스는 안의 상황을 정탐하고 있었기에 바로 장신구를 던졌다.

내가 준 198개의 금화. 그것으로 산 것은 [은신]의 탐지를 더 어렵게 해주는 <특별>등급 귀걸이 장신구. 무려 금화 100개 어치다.

사전에 준비시킨 그 귀걸이를 차고 난 다시 내부로 들어갔다. 용사도 아예 신경을 꺼버린 호위도 나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리고 빠르게 안으로 잠입했다. 선지자인 용사의 사이킥이 어느 정도인지는 이미 확인했다. 아마도 나보다 아슬아슬하게 높은 정도. 이것 하나만 껴도 그 신통력을 돌파할 수 있다.

호위의 감각 역시 마찬가지다. 이걸로 충분히 돌파할 수 있어.


“전하.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어째서 그런 날강도에게 금화를······.”

“당신은 생각이 없나요? 저자는 [신디케이트]에서 추천한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 미지의 조직이 당당히 추천한 저자를 죽이는 건 지금도 제국의 각지에서 모략을 꾸미는 [신디케이트]에게 전면전을 건다는 이야기······. 그걸 감당할 수 있나요?”

“윽.”


뭐, 실제로 내가 죽으면 세상은 초기화됐을 테니 얘네들이 감당할 일은 전혀 없지만 말이다. 역시 조직을 등에 업으니 좀 다르군.


“그리고. 실제로 배운 게 없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래요. 이 음식은 다 먹지 못하고 남겼겠죠. 밖에는 굶주린 사람이 있고, 나는 저자가 빈민가를 기어다닐 때 퍼레이드에서 손이나 흔들었어요.”

“······.”

“그 정도 교훈이면 금화 200개는 싼 거죠.”

“전하······.”

“지금은 하늘의 선택을 받았다고 한들 힘없는 후계자에 불과하지만. 반드시 힘을 얻어서 부패하고 타락한 대공들에게 놀아나고 있는 제국의 폭정을 멈추겠어요. 반드시 이 나라를 썩은 귀족들뿐만 아니라 모두가 살기 좋은 나라로······.”


오. 고결한 목적. 아주 훌륭하십니다.

그래도 나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건 틀림없는 듯하다. 나는 황태녀를 따라 그녀가 문을 열고 나갈 때 천장에 달라붙어서 옆방으로 들어갔다.


옆방에 있던 것은 용사의 원 파티로 보이는 자들 셋. 도적 냅터 잭과는 달리 명문가의 기재들로 모아온 것 같은 세 명이었다.


“[신디케이트]의 도적을 영입할 수는 없었다. 함정 파훼를 위해서는 필수였지만, 그래도 괜찮아. 함정은 내가 보고 파악할 수 있으니, 원래도 영입할 수 있었던 가문에서 한 명 더 데려오면 돼.”


그러자 귀족 자제분들의 반응은 참 예상할 수 있는 그대로였다.


“하. 어떻게 보면 다행이네요. 그 비천한 출신의 도적 놈이 우리 동료랍시고 행세하는 꼴을 보긴 싫었거든요.”

“솔직히 나도. 헤헤.”

“그놈도 일찍 각성했다지만 우리들과는 신분 자체가 다르니까.”


이것도 어차피 나중에 다 받아낼 걸 생각하면 기분 좋게 들리는군. 욕 들을 때마다 이득이라고 생각하면 말이다.


용사가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건 무슨 이유일까.

내 주변에 이런 이들밖에 없다는 한탄?

그게 아니면 거절당한 건 오히려 자기라는 것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안도?

알 게 뭐야. 쟤들 다 호구잡혔는데.


“그럼. 다시 설명하겠다. 우리 목적은 서북쪽. 이 변방에 가까운 고블린 산채를 토벌하는 거다. 단순히 마왕의 하수인들이 자리잡은 곳이라 공격하는 게 아니다. 이곳은 원래부터 영산(靈山)으로 유명했는데, 마침 얼마 안 가서 이곳의 영초가 피어날 시기가 다가온다. 고블린들이 그걸 채취하기 전에 먼저 가서 토벌하는 게 우리 목적이다. 다들 알아들었지?”


그래. 잘 알아들었다.


용사의 첫 퀘스트는 고블린 산채 토벌, 그리고 영약 획득이라는 거군. 아마 100% 성공할 운명이었겠지. 100% 피어난 영초는 얘가 써먹을 수 있는 것이고.


난 오로지 용사의 다음 계획을 엿듣기 위해 여기 찾아온 거다.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앞지를 수는 없으니까.


정보를 들을 걸 전부 들은 나는 은밀하게 빠져나가 루드리스를 통해 황태녀의 별궁을 빠져나가는데 성공했다.


진짜 도적질 시간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게임 속 무법자가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6화. 벌거숭이 공주님 2 +2 24.02.25 247 20 13쪽
5 5화. 벌거숭이 공주님 +3 24.02.25 310 21 16쪽
4 4화. 신디케이트 +4 24.02.25 373 27 14쪽
3 3화. 튜토리얼 2 +3 24.02.25 471 30 17쪽
2 2화. 튜토리얼 +4 24.02.25 644 37 14쪽
1 1화. 가장 형편없는 고인물 +11 24.02.25 909 42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