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 공학자는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린다
"하아, 그래서 앞으로 어쩌실 계획입니까?"
테이트는 결국 밀크쉐이크를 한 잔 더 시킨 그리니언을 보고 한숨을 쉬며 물었다.
"어쩌실 계획이냐니?"
행복하다는 듯 밀크쉐이크를 마시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리니언이 영락없는 어린애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테이트는 지금까지보다 조금 더 진지한 태도로 물었다.
"무엇을 위해 움직일 생각이시냐는 겁니다."
"무엇을 위해라...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애초에 나는 의뢰를 수행할 뿐이야. 아직 서쪽 정찰 임무가 정식적으로 완료된 건 아니니까 그 근방을 돌아다니겠지. 어차피 네가 찾는 그 아가씨도 거기에 있는 모양이니 너도 따라올 거고."
"마왕 쪽에 대한 단서를 발견 했는데, 함께 조사하실 생각은...?"
테이트의 질문에 그리니언을 고개를 저었다.
"나는 어디까지나 의뢰를 받고 움직이는 용병이니까 말이지. 서쪽 평원 정찰 중에 단서를 발견하는 거면 모를까 일부러 계약 내용에도 없는 걸 조사하고 다닐 생각은 없어."
단호한 그리니언의 태도에 테이트는 어쩔 수 없다는듯 의자에 몸을 기대고 말했다.
"기대는 안 했지만 조금 실망하게 되는군요. 조금 전까진 꽤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분수에 안 맞는 짓을 하다보면 몸이 성치 않은 법이거든. 매년 나이를 먹어가며 더 뼈저리게 느끼고 있지. 게다가 용병은 건강한 몸이 장사도구니까 말이지.
뭐, 그래도 네가 틈틈이 다른 걸 조사하는 것까지 막을 생각은 없으니 안심하라고. 다만 서쪽 평원에 들어갈 떄는 함께 간다. 그 정도는 해줘야겠어. "
"뭐, 당신 말처럼 저도 서쪽 평원에 볼 일이 있긴 하니까 걱정마십쇼."
"자 그럼, 말 나온김에 서쪽 평원으로 가볼까."
그리니언은 밀크쉐이크를 보며 입맛을 다신 후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테이트가 쫓았다.
"라스베트는 안 들렀다 가실겁니까? 체크아웃은 하고 가는 편이 좋아보이는데요."
"뭐 하룻밤 정도는 그냥 공실로 두자고. 어차피 제국에서 숙박비 정도는 지원이 나오니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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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서오세요. 레드럼 씨."
카키는 화가 난건지 기분이 좋은 건지 애매한 레드럼의 기색을 살폈지만, 레드럼은 카운터 위에 반지를 올린 뒤부터는 평소의 레드럼으로 돌아와 쉼없이 말을 이었다.
"주인장! 내가 조사해보니까 말이야. 이 반지들 상상 이상이더라고! 하나는 용언 마법, 하나는 신성 마법이 들어있어. 반지끼리는 서로 위치 추적이 가능하도록 설계가 되어있고. 혹시 이 반지 어디서 구했는지 물어봐도 될까? 정보료는 지불하지."
"아, 아뇨. 여관에 가끔 들르는 모험가분꼐 부탁드렸던 거라서 어디서 구했는지까진 잘.."
카키는 자신도 말해주지 못해 아쉽지만 역시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관 주인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가장 자주 짓게 되는 표정이었기 때문에 막무가내인 레드럼에게도 효과가 있었다.
"끄응...그 모험가의 이름이나 신분에 대해서 말해 줄 수는...?"
카키의 표정에 마음이 약해졌음에도 레드럼은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지만, 그 말을 들은 카키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레드럼씨가 저희 여관에 오시는 이유를 아는데, 제가 그런 실수를 범할리가 없죠."
레드럼은 역시나 만만치 않은 주인장이라고 생각하며 투덜거렸지만, 곧바로 자신이 카키를 찾아온 이유를 자각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크흠. 뭐 말이 그렇다는거지. 나도 남의 뒷조사나 하고 다닐 생각은 없네! 어쨌든 반지에 대해서 조금 자세히 설명하자면, 우선 신성 마법이 담긴 반지. 이건 짐작대로 회복마법이 담겨있어. 그것도 꽤나 상위의 것이라 아마 거의 다 죽은 사람을 한 두번정도는 살릴 수 있겠지. 신성마법 특성상 개량을 하게 되더라도 회복용 공학품이 되겠지. 여관에 비치해두는 구급상자나 비상약이라는 개념으론 나쁘지 않아보이는군.
그리고 용언 마법 반지. 이건 마나회복마법이 담겨있어. 마나를 못다루는 주인장으로선 쓸모없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개량을 하게된다면 이쪽이 전투에선 조금 더 유용할 거야. 아예 마나를 모으는 쪽으로 개량해서 호신용 무기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다만 이쪽은 신성마법보다 개량과정이 복잡해서 시간은 조금 더 오래 걸릴 것 같군. 어느 쪽으로 할텐가?"
카키는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말했다.
"원래 목적이 호신용 공학품이었으니 용언 마법 쪽으로 하겠습니다."
카키의 결정이 예상대로여서 마음에 들었는지 레드럼은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뭔가가 생각났는지 평소와는 다른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지. 그런데 그...지금 개량에 조금 차질이 생겨서 말이야. 기술적인 문제는 아니지만 내가 아무리 대단해도 만능은 아니니 그...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걸리긴 할거야. 괜찮겠나?"
카키는 드물게도 안절부절 못하는 레드럼을 보고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어차피 하쉬가 정보를 모아온 뒤에 움직일 생각이었기 때문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급한 것도 아니니까요."
"크흠. 내가 원래는 이런 물건을 만들 때 기한을 미루거나 하는 성격이 아닌데 말이지. 나참. 최근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물건을 제때 못 전해주는 경우가 생긴다니까. 하여간 도움이 안되는 녀석들이 왜 이렇게 많은건지 원."
카키는 민망함을 숨기듯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레드럼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괴상한 사람이지만, 확실히 자신의 일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보다 열심인 사람이야. 실제로 그 분야에선 정점이라고 불리는 분이니까.'
"뭐, 아무튼 개량이 끝나는 대로 바로 주겠네. 그리고 그것 떄문에라도 여기서 묵는 기간이 좀 늘어날 것 같으니 그렇게 알고 있게."
"네. 알겠습니다. 아 레드럼 씨 혹시 공학품 중에 불에 닿으면 글자가 떠오르는 잉크같은 것도 있나요?"
카키는 문득 브론드에게 받은 편지가 떠올라 가벼운 마음으로 레드럼에게 물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반응은 카키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응? 주인장도 그런게 필요한가? 연애편지 뭐 그런거야? 하여간 요즘 사람들은 비밀이 뭐가 그렇게 많은 건지. 얼마 전에 수도에서 그런 물건을 만든 적이 있었는데, 물건 자체는 만들기 어렵지 않았어.
그런데 의뢰인 녀석이 물건은 직접 받을 수 없으니 지정된 장소에 숨겨놓으라는 둥 개같은 심부름을 시키는거야. 그래서 그냥 만들던 잉크를 쓰레기통에 버려버리고 의뢰는 파기했었지."
"...혹시 의뢰인이 누군지 기억하시나요?"
"응? 누구냐고? 글쎄. 뭐 딱히 자기가 누구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괴상한 가면을 쓰고 있었어. 처음엔 미친놈이어도 돈을 엄청나게 준다길래 의뢰를 받아들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얼굴도 드러내길 싫어하는 녀석의 의뢰같은 건 바로 거절했어야 했던거지.
혹시 주인장이 필요하다면 만드는 거야 어렵지 않겠지만, 그만큼 반지의 개량이 미뤄질테니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은데. 어이 주인장. 듣고 있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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