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 그들은 용사들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리니언은 그대로 자신의 방에 남은 테이트와 피곤하다며 쉬러 돌아간 하쉬를 뒤로하고 카운터로 내려왔다.
"아, 그리니언 씨. 시안 씨가 복귀하시게 됐다고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응? 아, 하긴 그쪽 의뢰는 일단 끝났으니 지원을 나온 그 녀석도 복귀하는 게 맞겠군. 특경 쪽 이야기도 좀 듣고 싶었는데... 뭐, 괜찮겠지. 알려줘서 고맙네. 그리고 우리끼리 정보를 모아서 앞으로의 조사 방향을 정했는데 말이야."
그리니언은 두 사람과 나눴던 이야기를 간략하게 전했다. 원래대로라면 그리니언도 그냥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쉬려고 했지만 '이런 보고는 보통 가장 어른이 하는 것'이라는 테이트의 말에 넘어간 탓이었다. 묵묵히 그리니언의 이야기를 듣던 카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군요."
"뭔가 석연치 않은 모양이구만? 주인장. 마음에 걸리는 것이라도 있는 건가?"
"아뇨.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주인장. 나는 주인장을 꽤 높이 사고 있어. 손님들을 대하는 태도 하나만 봐도 머리 회전이 빠르다는 건 알 수 있으니까. 물론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인지 가끔 실수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지만. 아무튼. 우리가 놓치는 것이 있다면 확실하게 짚어 줘."
카키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그리니언에게 감사를 느꼈다.
"그...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만, 세 분 모두 용사 일행에 대해서는 너무 평가가 박하신 것이 아닌가 하고..."
"음... 주인장의 친구들 말이지. 나도 전쟁 당시 몇 번 볼 기회가 있었어.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가짜라는 하쉬의 의견은 꽤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해. 친구들에 대해 험담을 하는 것 같아 조금 미안하지만 말이야."
그리니언의 말에 카키는 손사래를 쳤다.
"아뇨.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세 분 모두 살인 사건의 조사보단 더 큰 것들을 보고 계신 것 같아서요. 의뢰비도 못 주는 입장에서 건방진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세 사람의 죽음에 대한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카키의 말을 들은 그리니언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음... 확실히. 나도 의뢰비를 안 받아서 의뢰라는 감각이 무뎠던 모양이군. 주인장의 의뢰는 어디까지나 친구들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밝히는 것이니까. 그런 점에선 '박하다'라는 표현이 정확할지도 모르겠군.
나도 경찰 꼬마도 서쪽 평원에서 겪은 일들이 신경이 쓰이다 보니 기본적인 걸 놓쳤어. 내 사과하지. 다른 녀석들은 방금 이야기한 것을 조사하더라도, 나는 그 세 사람의 죽음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친구들에 대해 궁금하신 게 있으시면 뭐든 답해드리겠습니다."
"좋아. 그럼 말 나온 김에 몇 가지 확인해 둬야겠군. 그 세 사람이 죽은 건 서튼 마을 외곽의 교회라고 했었지?"
"네. 원래는 그 교회에서 결혼식이 진행될 예정이었습니다만... 그 근처의 숲에서 발견됐다고 들었습니다."
"세 사람이 죽은 것이 결혼식 당일이었나?"
"아뇨. 제가 아직 루브린을 출발하기도 전이었습니다. 결혼식을 기준으로 하면 3일 정도 전이군요."
"음... 듣고 보니 조금 이상하군. 결혼식 3일 전에 세 사람이 교회에서 만났다라... 결혼식 예행연습을 했다고 하기엔 다른 시종들이나 사람들이 없었던 모양이고. 세 사람만 거기에 갔다는 건데..."
"촌장님 말씀으로는 세 사람이 마을에 온 것도 몰랐다고 하더군요."
카키의 말에 그리니언의 의문을 표했다.
"응? 주인장이 그걸 어떻게 알아?"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며칠 뒤에 촌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었거든요. 타지에 있는 제가 걱정되셨던 모양이에요. 촌장님도 세 사람이 마을에 들어온 것을 몰랐다고 하시더군요."
"서튼 마을에는 따로 관문이 있다거나 경비병이 서있지 않은 모양이군?"
"네. 한적한 시골이니까요. 자경대가 있긴 하지만, 멧돼지들이 밭에 내려올 때 몰아내는 정돕니다. 몬스터들이 나타나면 피므루 시에 지원을 요청하고요."
카키는 15살 남짓의 소년소녀가 용사단을 결성했던 근본적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그리니언에게 설명하지는 않았다.
"흠... 그나저나 촌장님인가. 용사 일행의 부모님들은...?"
"그분들은 저를 별로 좋아하시지 않거든요. 따로 연락을 받거나 드린 적은 없습니다."
그리니언은 싹싹한 카키가 용사 일행의 부모님에게 미움받는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굳이 자세히 캐묻지는 않기로 했다.
"일단 조사를 하기 위해선 서튼 마을로 가야겠군. 혹시 거기에 묵을 곳이 있나?"
"글쎄요. 인적이 드문 시골이라 여관은 따로 없습니다. 제가 살던 집은 여관을 사기 위해서 처분을 했었고요. 촌장님께 미리 말씀을 드려봐야겠군요."
"그래 주면 고맙지. 숙박비는 든든하게 드릴 테니 걱정 말게."
"하하. 촌장님은 원체 사람을 좋아하셔서 숙박비 같은 건 안 내셔도 흔쾌히 허락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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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은 클린트가 수도에 있다는 정보를 전해 듣고 곧장 수도로 향했다. 허울뿐인 감시역이지만, 명령인 이상 수행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어쩌면 그리니언 님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고 말이지.'
그런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재촉한 시안이 클린트가 머물고 있다는 여관에 도착했을 때, 시안은 여관의 문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클린트를 마주했다. 이미 감시 사실을 들킨 적이 있었던 시안은 클린트에게 다가가 정중하게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감시는 없애달라고 말했을 텐데."
낮게 가라앉은 클린트의 목소리를 들은 시안은 자신도 모르게 손에 땀이 흘렀다. 하쉬정도의 강자가 뿜어내는 기운에도 기가 죽지 않는 시안이었지만 어째서인지 클린트의 시선에는 주눅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자신에게 머리를 숙이고 있는 시안을 바라보던 클린트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 녀석이 자네를 죽이기 위해 일부러 보냈을 것 같진 않고, 다시 감시를 붙인 데는 이유가 있을 텐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
"아마 나한테 일을 맡길 때는 일에 대해 정확히 파악을 못하고 있다가 최근에야 무슨 일인지 알게 된 거겠지.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해서 감시를 붙이지 않겠다고 했지만, 실상은 꽤 큰 건이었겠고."
담배 연기를 내뱉은 클린트는 아무 말하지 않고 있는 시안을 향해 말했다.
"그 녀석에게 전하게. 자네를 죽이지 않을 테니 잉크에 대한 정보를 더 내놓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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