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 공학자는 경찰의 눈을 피한다
카키는 현관을 고치고 있는 레드럼을 도와주려 했지만, 물을 건네받은 레드럼은 카키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작업을 이어갔다. 덕분에 여관으로 들어오려던 손님들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레드럼을 힐끔 쳐다보며 들어왔다. 조금 피곤한 기색의 테이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 사람이었지? 루브린 관문에서 봤던 공학자.'
테이트는 공학품을 의뢰할 생각으로 코트 주머니에 넣어 온 파편을 잠시 만지작 거리다 고개를 저었다. 언젠가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긴 하지만, 공학품의 가격을 생각하면 혼자서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용병 형씨가 지원금이라도 받아내면 모를까. 내 월급으론 무리겠지. 생각해보니 그 형씨나 나나 지금은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받는 돈이 다르다는 건 조금 억울하군.'
자신의 지갑 사정을 생각하며 쓰게 웃은 테이트는 레드럼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카운터에 앉아있는 카키에게 말했다.
"주인장. 혹시 용병 형씨 아직 안 왔나?"
뭔가 생각에 잠겨있던 카키는 테이트의 목소리를 듣고 일어나 대답했다.
"아, 테이트 씨. 그리니언 씨라면 아직 안 오셨는데..."
"그렇군. 아직 안 돌아왔나... 알겠네. 그럼."
말을 마친 테이트가 다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카키는 급하게 테이트를 불렀다.
"저 테이트 씨! 오늘은 여기서 묵으시나요?"
카키의 질문을 받은 테이트는 아직 체크아웃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리고 잠시 고민했다.
"음... 아마 그렇게 될 것 같군. 그 용병 형씨도 저녁엔 여기로 온다고 했으니까. 아! 청소는 어제 했을 테니 따로 하지 않아도 되네."
"네. 알겠습니다."
카키의 배웅을 받으며 나가던 테이트는 다시 한번 현관을 고치고 있는 레드럼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루브린 관문에서 봤을 때는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조금 자세히 살펴보니 레드럼이 풍기는 분위기가 조금 신경이 쓰였다.
'역시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란 말이야... 마나의 흐름이 조금 독특해. 이런 마나를 내가 어디서 봤더라? 흔한 머리색도 아니고 빨간 머리라면 내가 기억을 못 할 리가 없는데...'
테이트는 나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레드럼을 바라봤다. 생각해보니 루브린 관문에서 그리니언과 드잡이질을 하던 소리로 미뤄봤을 땐 꽤나 시끄러운 사람이었는데, 조금 전부터 한 마디도 없이 조용한 것도 이상했다.
그러게 한참 레드럼을 쳐다보고 서 있자 카운터에 있던 카키가 테이트에게 다가와 물었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테이트는 그제야 자신이 너무 오랫동안 입구에 서있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카키에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 뒤, 루브린 서로 향했다.
'뭔가 찜찜하지만, 나중에 용병 형씨한테라도 물어봐야겠군. 일단 서장님의 이야기부터 들어봐야 하니까.'
--------------------------------------------------------
한창 열심히 현관을 고치던 레드럼은 허리를 펴고 몰을 풀다 여관을 향해 걸어오는 테이트를 발견하고 기겁했다, 여관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을 쳐다보는 테이트의 시선을 모르쇠로 넘기며 현관 수리를 이어가던 레드럼은 이어지는 대화에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주인장. 혹시 용병 형씨 아직 안 왔나?"
"아, 테이트 씨. 그리니언 씨라면 아직 안 오셨는데..."
'빌어먹을! 저 놈! 대체 꼬맹이 하고는 어떻게 아는 사이인 거야?! 아니 그것보다 저 놈이 대체 왜 여기 있는 거야?'
이미 루브린 관문에서 스쳐 지나갔던 두 사람이지만 테이트는 곧바로 헤이나르의 기척을 느끼고 서쪽 평원으로 달려갔고, 레드럼은 황혼 매개의 설명에 몰두했던 터라 테이트를 발견하지 못했다.
잠시 패닉에 빠졌던 레드럼은 숨을 고르고 천천히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뭐... 물론 벌써 몇 년이나 지난 일이고, 이름도 얼굴도 바꿨으니 들킬 일이야 없겠지만... 저 놈은 마나에 민감하니까 마냥 안심할 수는 없겠는데...'
레드럼의 불안한 마음을 모르는 테이트가 카키와 대화를 마치고 다시 한번 레드럼을 바라보자 레드럼은 혼신의 힘을 다해 수리에 몰두하는 척했다.
'들킨 건가? 젠장! 어떻게 해야 하지?'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레드럼이 하는 수 없다는 듯 총을 꺼내려고 할 때, 카키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카키의 말을 들은 테이트가 아무것도 아니라며 여관을 나가자 레드럼은 소리가 들릴 정도로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아, 레드럼 씨. 마실 거라도 좀 가져다 드릴까요?"
레드럼은 걱정이 된다는 듯 자신에게 묻는 카키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카키는 그런 레드럼이 웃기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가게 뒤편으로 나갔다.
'내 기억으론 저 꾸질꾸질한 코트 놈은 테비르 서의 서장으로 갈 예정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왜 루브린에? 가만! 어쩌면 꼬맹이 녀석 임무에 동원된 것일지도 모르겠군! 빌어먹을! 하여튼 평생에 도움이 안 되는 꼬맹이 녀석!'
한참 그렇게 속으로 그리니언의 욕을 하던 레드럼은 카키가 내민 시원한 차를 단숨에 들이켜곤 카키에게 물었다.
"방금 그 경찰 양반. 여기 언제까지 머문다고 하던가?"
카키는 레드럼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놀랐지만, 곧 어리둥절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네? 아, 테이트 씨 말이군요? 그런데 테이트 씨가 경찰인 건 어떻게 아셨어요?"
"뭣?! 아니 나.. 나 정도 되는 공학자들은 원래 눈썰미가 좋아! 그래야 그 사람에게 맞는 공학품을 만들 수가 있는 법이니까. 크흠..."
카키는 눈에 띄게 당황하는 레드럼이 이상했지만, 원래도 괴상한 행동을 많이 하는 레드럼이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음... 글쎄요. 저도 정확히 언제까지 머무실지는 모르겠네요. 그리니언 씨의 일행이니까 직접 물어보시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그 꼬맹이는 그런 거 대답 안 해주는 성격인 거 잘 알잖나! 끄응... 안 되겠군. 주인장. 현관 수리가 끝나면 나는 체크아웃하겠네. 반지 개량은 다른 곳에서 해야겠어!"
"아, 네. 알겠습니다."
카키는 허둥대는 레드럼을 보고 테이트와 레드럼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궁금했지만, 테이트는 루브린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이고 레드럼은 레드럼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카키의 대답을 들은 레드럼은 되도록 테이트가 돌아오기 전에 현관 수리를 마쳐야겠다는 생각에 작업을 더 서둘렀다.
'아까 그놈의 반응을 봐선 아직 확실하게 알아챈 건 아닌 것 같으니 다시 마주치지만 않으면 들킬 일은 없겠지.
뭐, 어차피 화로도 필요하던 참이니 그 영감쟁이네 대장간에서 지내면 되겠군. 그 노친네가 떠났다면 거기 감시하던 놈들도 사라졌을 테니까 말이야.'
- 작가의말
38화에서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리던 남자라는 표현을 수정했습니다.
원래 계획보다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이 빨라지게 됐네요.
시간 상으로는 이번 화가 38화의 서장실 씬보다 앞이라서 나중에 수정할 때 사이에 들어갈지도 모르겠는데, 이 부분은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습니다.
공지에 쓴 것처럼 다음화는 2월 3일에 올라갑니다.
주말 잘 보내시고 좋은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Comment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