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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잉낙엽 님의 서재입니다.

무명장야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완결

플라잉낙엽
작품등록일 :
2017.03.12 16:39
최근연재일 :
2017.06.21 01:29
연재수 :
87 회
조회수 :
97,591
추천수 :
798
글자수 :
434,864

작성
17.06.12 00:04
조회
685
추천
8
글자
11쪽

77. 이이제이(以夷制夷) (1)

DUMMY

눈이 좋은 무명이 덤불 우거진 평지 저 편을 뚫어지게 살펴본다. 틀림없이 홍찰 일행으로 보이는 무리가 덤불에 가린 평지에서 반 시진(1시간) 동안이나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아마도 어두워지길 바라는 모양이었다. 이곳은 워낙 높은 산이라 그런지 해가 빨리 지지는 않았다.


‘놈들이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 다 알고 있구나.’


무명이 눈짓을 보내자, 장야가 창문 사이로 활을 들어 시위를 당겨 가늠해보더니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어쩌죠?”


홍찰의 무리가 가까이 온다면 활을 쏘아 하나씩 제거할 계획이었지만 거리가 너무 멀다. 그들은 평지 끝에 무더기로 모여 쉬면서 전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해 지고 나서 그들이 움직인다면 활을 쏘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어둠이 그들의 모습을 감춰줄 것 아닌가. 그렇다고 지금 와서 몰래 저들을 따돌리고 백야장 뒷길로 가기는 어렵다. 어두운 데다가 산장 뒷 쪽 산세가 워낙 험해서 잘못하면 추락사를 당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든 저렇든 간에 홍찰 일행과 이곳에서 결전을 벌일 수 밖에 없다. 이쪽과 저쪽 중에 한쪽이 사라져야만 이 도망과 추격은 마침내 끝날 것이다.


어쨌든 백야장을 뒤로 두고 싸우게 된다면, 단연 수비의 위치가 유리했다. 그러나 두 명이서 홍찰의 패거리를 다 상대하기는 벅찬 감이 있다.


“오라버니··· 홍찰이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알아챈 것 같아요. 가까이 오질 않아요.”

“독사 같은 놈이 모를 리 없지.”


홍찰은 수하들이 충분히 휴식을 취했다고 생각하자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날이 어두워진 이후에 움직인다면 더 유리하겠지만 지금 상태로도 불리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동해라.”

“넵. 이동한다!”


자리에서 일어난 홍찰을 보자마자, 운비가 어느 새 그의 옆으로 다가와 명을 받들었다. 슬쩍 백야장을 올려다보는 홍찰을 옆에서 몰래 그리고 그윽하게 바라보는 운비. 사실 그녀에게 있어서 무명과 장야 따위는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홍찰의 마음에 그녀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걱정이 가장 크다.


수 년 전부터 그를 연모하고 있는 운비의 마음을 홍찰이 고양이 털끝 만큼도 몰라준다면 그것보다 더 무서운 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홍찰은 운비를 그저 자기 구미에 맞게 재빠른 행동을 할 줄 아는 충직한 심복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연정 따위에는 전혀 관심 없는 홍찰의 냉정함이 운비는 가장 두렵다.


그리고 오늘은 아직 치열한 싸움이 남아있다. 저 산장 속에 두 남녀가 그들과 싸울 태세를 갖추고 기다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요 몇 달의 세월 동안 홍찰 무리를 애태우며 이곳 까지 도망쳐 왔으니, 그저 어린 남녀라고 치부하기엔 무리수가 있어 보인다.


어쨌든 조선에서 국경을 넘어 이 먼 덕암산까지 도망쳐 온 둘에게 비범한 능력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분명코 오늘은 사생결단의 싸움이 일어날 것이다.


하늘이 노을로 인해 붉게 물들어가자 홍찰의 무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홍찰 무리들을 주시하던 장야가 다급히 무명을 불렀다.


“오라버니! 움직입니다.”

“···!”


그러나 무리들의 움직임을 바라보던 무명의 얼굴이 굳어졌다. 무리들은 일렬로 다가 오는 것이 아니라 각각 떨어져서 반원형의 형태를 유지한 채 백야장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두두두! 두두두두!

말에 올라탄 그들이 백야장을 향해 학의 날개처럼 양 옆으로 퍼진 모습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기습 공격으로 활을 날려보았자, 한두 명 정도만 피해를 입을 것이란 걸 장야는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상대방은 숫자도 많고 한양 최고의 칼잡이라는 홍찰이 저들의 우두머리이다. 그렇더라도 저 무리에게 아주 조그만 손상이라도 입힐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


학익진의 왼쪽에서 맨 먼저 달려오고 있는 수하의 몸뚱이에 집중하고 있던 장야가 마침내 활시위를 당겼다.

팽! 쉬익!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가 소리를 내자, 화살이 빠르게 날아갔다.

퍽!


“윽!”


기세 좋게 달려오던 홍찰의 수하 하나가 무릎에 활을 맞고 말에서 떨어졌다. 분명 장야의 화살이 날아올 것이란 예상을 했건만, 그저 시간을 끌기만 할 수는 없는 홍찰이었다. 홍찰의 의중을 일찌감치 눈치 챈 운비가 그저 더욱 몸을 낮추라고 부하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뿐이었다.


“기습이다! 몸을 더 낮추고 갈 지(之) 자로 움직여라!”


장야의 두 번째 화살이 이번에는 맨 오른 쪽 끝에서 달려오고 있던 사내의 가슴에 명중했다.

쉬익! 퍽!


홍찰과 운비의 정도의 실력을 가졌더라면 날아오는 화살도 쳐냈을 테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다행히 화살을 맞는 찰나 몸을 틀어서 치명상을 면하긴 했지만, 말에서는 떨어지고 말았다.


털썩!

죽진 않았지만, 중상을 입은 그 사내는 더 이상 싸움에 뛰어들 수는 없을 것이다.

스릉!

다른 사내들이 칼을 뽑아 들며 싸울 준비를 했다. 홍찰이 눈가가 꿈틀대더니 빠르게 지그재그로 말을 몰면서 미친 듯이 백야장을 향해 달려 나갔다.

쉬익!

또 다른 화살이 홍찰의 어깨로 날아들었지만, 아슬아슬하게 비껴나갔다.


“치잇!”


활을 겨눈 장야가 다시금 활시위를 당기더니 이번에는 각도를 더 좁혀서 아까 보다 아래 쪽을 향해 쏘았다.

쉬익!


“히이잉!”


빠른 속도로 날아간 화살이 꽂힌다. 이번에는 사람이 아닌 말이다. 화살을 맞은 말이 휘청하는데도 타고 있던 홍찰이 바닥으로 안정감 있게 착지했다.


장야가 연거푸 세 발의 활을 날렸지만, 모조리 쳐낸 홍찰이 빠르게 달리며 백야장으로 다가왔다. 움직이는 표적은 맞추기 어려운 데다 빠르게 엉겨드는 땅거미도 한몫 했다.

이제 화살도 열 발 밖에 남지 않았다.


“화살을 아껴라··· 내가 나서마.”


상황을 지켜보던 무명이 칼을 움켜쥐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창문 뒤에 몸을 감춘 장야가 활을 겨눈 상태로 밖의 상황을 주시했다. 곧 벌어질 마지막 싸움의 결과에 대해 장야는 확신할 수 없었다. 어쨌든 두 편 중 하나는 오늘이 마지막 삶의 날일 것이다.


무명과 장야 모두 그 마지막 회오리바람 속에 휘말려 있다. 살아나올 길은 끈처럼 뒤엉켜 있는 회오리바람을 모두 잘라 힘을 끊어낸 뒤, 그 속에서 뛰쳐나오는 방법뿐이다.


호랑이 장식이 반짝이는 백야장 문을 열고 나온 무명의 얼굴이 비장했다.

며칠간의 요양이 그의 전력을 배가 시켰는지 둥실한 어깨에서 올라오는 아지랑이 같은 힘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때 맞춰 백야장에 도착한 홍찰 일행도 무명 앞으로 몰려들었다.

호랑이처럼 잡아먹을 듯 매섭게 무명을 쳐다보는 홍찰이 실눈을 뜨며 지껄였다.


“땅 끝까지 도망가봤자, 어디든 내 손바닥 안이란 걸 이제 알겠느냐?”

“헛! 네 손바닥이 이토록 넓다더냐?”

“시끄럽고, 이제 넌 파장에 엿장수 같은 신세다! 한 마디로 끝난 인생. 자, 오늘 네 놈 명줄을 완전히 끊어주마!”

“내 어찌, 내 명줄 끊어지는 걸 그저 보고만 있으리오!”


무명이 웃으며 대답했지만 긴장감에 다리부터 떨려오기 시작했다. 이 떨림은 무서워서 떠는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다시 싸움을 시작하게 된 것에 대한 피의 끓어오름이었다. 여태까지 무명은 홍찰과 두 번을 싸웠다.


그러나 두 번 다 패했다. 오늘이라도 해서 이긴다는 보장은 없을 것이다. 칼을 겨누고 있던 무명이 평소보다 크게 다리를 벌려 무게 중심을 낮게 잡았다.


그러고 보니 넷 인줄 알았던 홍찰 일행이 다섯으로 늘어나 있다. 아까 말에서 떨어졌던 사내가 슬갑에 박혔던 화살을 뽑아냈는지 어느 틈에 합세해 있었다.


“후우!”


몸의 기운을 최상으로 끌어올린 무명이 호흡으로 숨을 들이마시며 자세를 잡았다. 오랜만에 졸개들 앞에서 거나한 한판승을 보여주고 싶은 홍찰이 한 발 앞으로 나오며 선심을 썼다.


“선수는 양보하지.”


홍찰이 여유로운 태도로 도발하자 무명이 힘껏 앞으로 내달렸다. 둥근 공처럼 몸이 가벼워진 무명의 발이 땅에서 한 뼘 정도 뜬 것처럼 달려갔다.


한양을 떠난 무명이 너른 들판을 달리고 패수를 건너고 덕암산 줄기를 오르는 동안, 사실 그의 무예가 파죽지세로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끝없이 머릿속으로 앞으로 있을 싸움을 상상해온 무명이다.


머릿속에서 수백 번의 싸움을 치열하게 싸우고 또 싸웠다. 수백 번을 이기고 졌으며 홍찰을 베었고 운비를 쓰러뜨렸다. 굳이 칼을 들고 싸우지 않아도 골똘히 골몰하면 할수록 홍찰의 무리와 장강의 패거리가 가진 단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종내에는 어떤 식으로 싸워서 이겨야 할지도 또렷이 알게 되었다.


“하압!”


차캉!

단호함을 담은 무명의 일격이 홍찰의 장검에 일단은 가로막혔다. 멈춘 검 사이에서 백야장의 시간도 그 찰나만큼 잠시 멈췄다. 불꽃 튀는 검합을 본 졸개들이 슬금슬금 공간을 터주기 시작했다.


몸을 돌리며 방어하던 검을 다시 높이 들어올린 홍찰이 운비를 향해 턱짓을 했다. 언제나 홍찰의 구미에 맞게 움직일 줄 아는 운비이므로 빠르게 눈치를 챈다. 살아남은 세 명의 수하들에게 백야장 안으로 뛰어 들라고 명령한다.


“안에 있는 계집부터 잡아!”


단련된 홍찰의 세 명의 수하들과 운비가 백야장의 현관문을 열고 1층의 너른 공간으로 뛰어드는 그 순간,

슉! 퍽!


“크헉!”


2층에서 화살이 날아와 수하 중에 키가 큰 녀석의 이마에 박혔다.


“조심해! 아직 계집에게 화살이 있어!”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는 운비와 다른 수하가 서둘러 중국식 탁자 밑으로 굴러 가더니 모란꽃이 새겨진 낡은 장식장 뒤로 날렵하게 몸을 숨겼다. 몸의 모든 촉각을 곤두세워 이층에서 언제 또 화살이 날아올까 하며 아주 예민한 소리도 놓치지 않기 위해 실눈을 뜨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백야장 안이 고요 속에 빠져들자, 오히려 밖에서 들려오는 칼이 부딪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아무리 귀를 세우고 들어봐도 여관의 어느 방 안에서도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한참을 숨어있는 것도 지겨워진 운비가 몸을 살며시 장식장 앞으로 내밀어 본다. 더 이상 화살이 날아오지 않는다.


‘그래, 화살이 다 떨어진 것인가?’


그렇다면 이제 장야가 들어 있는 방만 찾아내면 된다. 약간 의기양양해진 운비의 눈짓을 본 수하 하나가 계단 쪽으로 몸을 날렸다.


퍽!

순간, 화살이 날아와 사내의 가슴에 박혔다.

쿠당탕!

사내의 몸이 계단을 굴러 떨어졌다. 그 사이 운비가 계단 뒤쪽으로 굴러 들어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수하 한 명도 운비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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