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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잉낙엽 님의 서재입니다.

무명장야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완결

플라잉낙엽
작품등록일 :
2017.03.12 16:39
최근연재일 :
2017.06.21 01:29
연재수 :
87 회
조회수 :
97,588
추천수 :
798
글자수 :
434,864

작성
17.05.22 21:22
조회
772
추천
9
글자
12쪽

64. 가자! 대륙으로 (2)

DUMMY

싸움이 시작될 걸 감지한 돌석이 재빨리 장강이 앉을 만한 바위 위에다 자신의 겉옷을 덮었다. 그럴 필요까지 없는데 어쩌구 하면서 장강이 바위로 간다.


이윽고 헛기침을 하는 장강이 돌석의 겉옷을 깔고 앉아 본격적으로 담배를 피워댔다. 마치 재미난 구경이라도 보려는 듯이 말이다. 그런 장강을 본 개양이 의기양양해서 소리쳤다.


“이 멧도야지 같은 놈아! 어디 한번 가지고 갈 수 있으면 가지고 가보등가!”

“네 이놈! 감히 누구에게 망발을 하느냐?”

“누구라니? 누구가 누구야! 꼭 털 빠진 멧도야지 같이 생겨 먹었구만!”


오랜만에 가장 좋은 기분에 도달해있던 명중인지라 약간 당황했다. 웬만한 싸움꾼들치고 의주와 천마 지역에서 자신의 존재를 모르는 이들은 없었다.


더구나 이들 중에 유색인 한 명만 칼을 꺼낼 뿐, 그 뒤에 있는 다른 놈들은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이 빙글빙글 웃고만 있었다. 정신이 나간 놈들이 분명했다.


게다가 제일 덩치 큰 놈은 숫제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팔짱을 끼고는 담배만 피워대고 있었다.


“형님. 얼마나 걸릴까요?”


제일 나이 어린 사내놈이 체격이 왜소하고 피부가 하얀 사내에게 묻는 소리가 명중의 귀에 들려왔다.


“일각(一刻)이면 충분하지.”


눈을 껌벅이는 명중이 자신이 방금 들은 목소리 때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계집의 목소리다. 그렇다면 저 놈은 계집애가 남장을 한 것인가. 계집애 주제에 사내놈들하고 어울려 다니며 패거리를 이루다니.


“헤헤. 볼 만 하겠는데요.”


명중은 그들이 하고 있는 말의 뜻도 파악해낼 수 없었다.


설마 시커먼 피부의 이 사내놈 혼자서 자신을 포함한 산적들 열 명과 싸우는데 겨우 일각이 걸린다는 뜻일까? 아니면 이 사내놈이 버텨낼 수 있는 시간을 말하는 것인가? 헌데 이들의 표정이 너무 평온한 것이 아닌가?


잠시 명중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수하들이 하나 둘 씩 멀리 날아가 도루악 계곡 쪽으로 메다 꽂히기 시작했다.


“으아악!”


퍽! 휙!

옷자락을 잡힌 졸개 둘이 순식간에 뒤로 짐짝처럼 날아갔고 멱살이 잡혀서 버둥거리던 녀석들은 옆 쪽 전나무 숲으로 날아갔다.


오늘 같은 대목은 명절날이 오기 전에 다시 안 올 거라며 무방비상태로 마음을 놓고 있었던 명중은 잠시 꿈을 꾸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하지만 졸개들의 몸이 골짜기에 차례로 처박히는 것을 보자, 그나마 가지고 있던 운동신경을 끌어모아 두 발에 힘을 주고 개양을 노려보았다.


자신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던 유담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걸 보고서야 겨우 정신줄을 잡은 명중이 칼을 뽑아 들고 개양을 향해 달린다.


그러나 괴물 같은 힘을 가진 개양이 철곤으로 그의 칼을 쳐서 계곡으로 떨어뜨렸다. 순식간에 무기를 잃은 산적 두목을 한 손으로 높이 들어 올린 개양의 웃음소리가 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이미 절반 이상 힘이 빠져버린 명중이 공중에서 허우적거렸다.


마치 어린아이를 두어 바퀴 공중에서 돌리듯 가지고 놀던 개양도 이제 재미없다는 듯이 그를 높이 날려버렸다.


부웅! 퍼억!!

공중으로 날아간 명중이 계곡을 향해 구부러져 자라고 있던 소나무에 머리를 정통으로 부딪치고는 바로 기절을 하고 말았다.


“에이! 싱겁구만. 이런 것들이 무슨 산적이랍시고.”


계곡의 경사면과 전나무 숲 한 켠에 너부러져 신음하고 있던 산적들이 사태를 간파하고 눈치를 몬다. 몇몇은 서로 눈으로 신호를 보내더니, 재빨리 기절한 명중을 업는 둥 마는 둥 줄행랑을 치기 시작한다.


“일단 튀어라!”

“멍청한 놈들아. 어디 가서 도적떼라고 호패는 내밀지도 마라! 크하하하.”


그들 뒤로 괴상한 외모를 뽐내는 개양의 웃음소리가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오랜만에 자신의 힘을 맘껏 쓴 것이 즐거워진 개양이 아래 깊에 패인 거대한 계곡을 향해 시원하게 오줌을 누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하하.”


물줄기를 쏟아내는 개양을 본 웅방이 눈살을 찌푸렸다. 걸핏하면 아무데나 방뇨하는 개양이 꼴불견이다. 아무리 깊은 산 속이고 제 혼자 산적들을 물리쳤기로서니 보는 눈이 몇 개인데 저러고 오줌을 누다니!


하지만 열 명 남짓한 산적들을 쫓아버리는 데 한 시간도 채 안 걸린 개양은 거리낌이 없었다. 가래침을 탁 뱉더니 장강을 쳐다봤다.


“보자기에 있는 것들을 거둬라!”


바위에서 일어선 장강이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명중과 졸개들이 사라진 곳에는 사람들에게 빼앗은 재물들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바위 옆에는 산적들에게 재물을 빼앗긴 이들이 고개를 숙이고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하품을 늘어지게 한 장강이 바위 뒤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손가락을 들어 쌓여 있는 재물들을 가리켰다.


“이건 네놈들 것이냐?”

“네. 저희들 것이 맞습니다. 나리. 고맙습니다. 도적놈들을 물리쳐주셔서···”

“우리가 아니었으면 너네는 죽은 목숨이었으리.”

“네. 그렇고 말고요.”

“암튼 너희들의 목숨을 구했으니 목숨 값으로 받아가마.”

“목숨 값이라뇨? 나으리. 제발 도와주세요.”

“뭐 래는 거야. 난 나으리가 아니야.”

“어떻든 저기. 그··· 그건··· 저희 목숨이나 마찬 가지옵니다. 그것마저 없으면 저희는 굶어 죽습니다.”


그때 웅방이 나서며 냉소를 지었다.


“그래? 목숨이나 마찬가진데··· 저놈들 한테 빼앗길 동안 아무도 반항을 안 했어. 그건 이거 없어도 사는데 지장이 없다는 말이잖아. 내 말이 틀려?”

“그··· 그건··· 반항해봤자지요. 우리 미약한 힘으로 산적떼들을 어찌 당하오리까?”


사람들은 장강 일행이 나타나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주었을 때와는 달리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다.


“야야. 네놈들 목숨 값 치고는 오히려 싸다고 생각하는데... 나 혼자만의 생각인가? 그냥 여기 계곡에다 대가리부터 다 처박아 줄까? 앙?”


이번엔 개양이 털이 북슬대는 팔로 철곤을 휘두르며 으름장을 놓자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돌석이 얼른 보자기 위에 놓인 돈과 패물을 챙기기 시작했다.



* * *



두두두! 두두두두!

어느새 장밋빛 노을이 가득한 서쪽 하늘이다.

노을을 배경으로 갈색으로 누렇게 말라가는 덤불과 갈대 가득한 들판이 그림과도 같다.


들판 한 가운데를 미끈한 말 두 마리가 신나게 달려가고 있었다. 들판의 옆으로 보이는 산줄기는 높고 남쪽 지방과는 판이하게 다른 청록색의 침엽수림이 빼곡하다.


초겨울의 쌀쌀한 바람이 차갑게 무명과 장야의 몸을 에워싼다. 두 사람을 태운 말들은 하얀 연기와도 같은 숨을 몰아쉬며 천마 지역의 산길과 들길을 끝도 없이 달렸다.


날이 더 저물기 전에 마을에 도착해야하기에 둘은 더욱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럇!“

“히이잉!”


두두두! 두두두!

한결 안정되어 보이는 무명과 장야였다. 둘을 태운 말들이 노을 지는 들판이 끝나는 지점을 향해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북녘 땅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려온 무명과 장야의 눈에 압록강 옆에 자리 잡은 마을에서 가물거리는 불빛들이 보였다.


몇몇 굴뚝에서는 연기가 솟는다. 어딘선가 갈잎을 끌어 모아 태우는 냄새가 두 사람의 코끝을 간지럽힌다.

익숙한 냄새 때문일까. 둘은 이제 그만 달리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다. 마을에 하나둘 켜지기 시작한 불빛을 바라보던 무명이 잠시 말을 세우자, 장야도 그 옆에 멈춰 섰다.


“다행히 그렇게 늦지는 않게 왔구나.”


무명의 말에 장야는 그저 미소를 지었다.

덤으로 사는 인생에는 ‘늦는다’ 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말인지 순간적으로 알 수가 없는 장야였다. 사실 장야에게는 이제 무엇을 하던 늦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그냥 하루하루가 선물일 뿐이니까.


장야의 속마음을 어느 정도 눈치 챈 무명인지라 아 참, 하는 미소를 지었다. 둘은 천천히 말을 몰아 마을로 들어갔다. 무명과 장야가 탄 말들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졌다.


압록강변에 여러 포구를 거느린 이 마을도 꽤 규모가 있어서 나루터 근처로 주막이 여러 개 있고 근처에는 갖가지 물건을 파는 장터도 자리 잡고 있었다.


해가 졌지만 불을 훤히 밝힌 장터로 들어선 무명과 장야가 마치 알고 있다는 듯 허름한 점포 사이 골방과도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손바닥만한 점포 안에서 한 사내가 작은 나무 조각에다 무언가를 새기고 있었다. 무명과 장야가 옆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뾰족한 칼로 글자를 급히 새긴 사내가 잠시 불에다 나무 조각을 굽는다. 모서리를 칼로 벗겨내며 몇 차례 옻칠을 하고 다시 무두질한 가죽으로 문지르며 신중하게 작업을 이어갔다. 그동안 무명은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오기도 하고 장야는 그저 앉아서 화롯불만 바로보고 있었다.

마침내 사내가 숨을 내쉬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이! 이보라우. 고저 이제야 끝이 보이는구만. 하도 빨리하라 재촉해대는 통에 손에 피까지 봤디 않니?”


손에 약간 상처를 입은 사내가 천으로 피를 꾹 누르더니 무명에게 반질대는 나무패를 건넸다.


그것은 다름 아닌 호패였다. 오늘날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것이다. 호패 앞면에는 이름, 문과에 합격한 이력과 출생 년이 새겨져 있었다. 뒷면에 태어난 해의 십이지간을 새겨 넣는 갖바치가 말이 많다.


“요즘은 이렇게 토깽이를 새기고 기러지는 않디. 묵은 호패에는 이런 열두 띠가 하나씩 새겨져 있고 기래.”


당시 조선에는 호패를 위조하는 사람, 호패가 없는 사람, 호패를 차고 다니지 아니하는 사람 등 호패법을 위반하는 자에 대해서 일정한 벌을 주었다.


불심검문에 걸렸을 때, 호패가 없으면 꽤 무거운 벌을 받았다. 당연히 가짜 호패를 만들어 파는 일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돈이 필요한 솜씨 좋은 갖바치들이 몰래 위조호패를 만들어 주고 뒷돈을 챙겼다. 만일 발각된다면 커다란 벌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이만큼 짧은 시간에 두둑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일도 드물었기에 장터 허름한 뒷방에서 몰래 가짜 호패를 만드는 사람들이 어디나 허다했다.


무명이 호패를 불빛에 비추며 꼼꼼히 확인하더니 돈을 건네준다.


“패수라도 건너가려 기러는 기야?”

“네. 그렇긴 한데... 참, 어르신. 보룡 나루를 지키는 관군의 대장나리가 좋아하는 게 무엇입니까?”

“응? 보룡 나루에서 배를 타려구?”

* * *


골방을 나온 무명과 장야는 하룻밤을 주막에서 묵었다.

신 새벽이 밝아오자, 비단 옷을 입고 부잣집 양반 부부인 것처럼 잘 차려입은 무명과 장야가 떠날 채비를 마친 상태였다.


반질대는 새 갓과 반짝이는 옥색의 비단옷을 입은 두 사람이 주막에서 나와 압록강 보룡 나루 쪽으로 말을 몰고 갔다.


나루 포구에 닿기 전, 막사를 치고 있는 관군들이 마지막 검문을 하고 있었다. 귀티 흐르는 양반처럼 보이는 무명이 쓰개치마를 뒤집어 쓴 장야를 이끌며 행상의 무리와 선비처럼 보이는 두 사람 뒤로 가서 줄을 섰다.


죽창을 든 여러 명의 관군들이 떠나는 사람들의 보퉁이를 찔러보기도 하고 호패를 일일이 살펴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대장급의 관군이 소리쳤다.


“틀림없는 가짜 호패렷다! 여봐라. 이놈을 포박하라!”

“아이구, 제발 살려 주십시오! 대륙 땅에 오마니가 있어서 기럽니다. 도와주시라요. 오마니가 위독하신답니다.”


꿰맨 자국이 역력한, 솜으로 누빈 두루마기를 입은 선비 하나가 포방당하고 있다. 금세 보룡 나루 끝에 임시로 지은 관청으로 끌려간다. 줄을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웅성대며 혀를 찬다.


그러나 그것을 본 무명과 장야는 태연한 척 그대로 줄 안에 서서 강만 쳐다본다.

앞에 섰던 한 무리의 보부상들이 검문을 끝냈는지 웃는 낯으로 나루터로 향했다. 그들 뒤에 섰던 심각한 표정을 한 두 명의 선비도 청나라 유람에 대해 나라에서 허가한 서명서를 보이고는 무사히 나루터로 이동한다.


드디어 무명과 장야의 차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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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84. 최종화(2) 17.06.21 698 7 11쪽
83 83. 최종화(1) 17.06.21 714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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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75. 백야장(白夜莊) (1) 17.06.12 711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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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73. 단동을 벗어나는 방법 (2) 17.06.11 675 7 12쪽
72 72. 단동을 벗어나는 방법 (1) 17.06.11 754 8 11쪽
71 71. 소년 토야 (2) 17.06.11 687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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