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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잉낙엽 님의 서재입니다.

무명장야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완결

플라잉낙엽
작품등록일 :
2017.03.12 16:39
최근연재일 :
2017.06.21 01:29
연재수 :
87 회
조회수 :
97,590
추천수 :
798
글자수 :
434,864

작성
17.05.22 21:23
조회
673
추천
6
글자
12쪽

68. 떠나거나 남거나 (2)

DUMMY

가지고 있는 돈과 오늘 벌어들인 돈을 합친다면 객주로 떠도는 아들놈을 불러 나루터에 조그만 점포라도 낼 수 있으리라. 요즘 사람을 가려가며 배를 태운 관계로 꽤나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다.


역시 아무나 배를 태워줘서는 안된다고 혼잣말을 하던 노인이 자기 말이 맞다며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그때였다.


쉬익! 퍽!

한 발의 화살이 날아와 노인의 등에 그대로 명중했다.

가슴에 엽전 꾸러미를 안고 있던 노인이 아픔을 무릅쓰고 있는 힘을 다해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한 마장은 멀어진 줄 알았던 홍찰의 배가 그새 스무 보 쯤 앞에 와 있었다. 홍찰의 뱃전에 서있는 패거리들이 화살 맞아 덜덜 떨고 있는 늙은이를 보고 비웃기 시작했다.


“크크크. 미련한 놈··· 그러게 욕심은 왜 부러?”


웃고 있는 젊은 놈들을 향해 욕을 퍼부어 주고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화살에 맞은 노인이 누구를 원망하는 듯한 슬픈 눈동자를 치뜨더니, 패거리를 향해 아무 말도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풍덩!

결국 비명 한번 시원스레 지르지 못하고 자신이 평생 벌어먹고 살아온 패수로 떨어지고 말았다.

노인이 물에 빠지자, 길고 날씬한 다리를 배고물 위에 얹고 있던 운비가 졸개 몇몇을 이끌고 늙은이의 배로 뛰어든다. 그들은 순식간에 노인이 오늘 종일 벌어들인 엽전을 모두 거둬들인 다음, 자신들의 배로 잽싸게 돌아갔다.



* * *



조선쪽에서 패수로 들어가는 포구의 서쪽에는 상인들과 선비들, 그리고 백성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포구 입구에 붙여둔 무명과 장야의 얼굴 몽타주가 보였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고 있던 사공이 잘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웅방이 지나가던 다른 상인에게 무명과 장야의 몽타주를 보여주며 물어 보지만 역시나 알지 못하는 듯 고개를 가로 젓는다.


“이 포구가 아닌가?”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아무도 무명과 장야를 본 사람이 없었다. 잠시 생각에 잠기던 웅방이 담배연기를 뿜는 장강에게 다가갔다.


“형님, 아무래도 여기가 아닌가 봅니다.”

“니가 그랬잖아. 놈들이 틀림없이 배를 구할 거라고?”

“네. 그랬을 겁니다.”

“근데? 이 포구가 아니야?”

“사실 여긴 너무 공개된 곳이지요. 아마 은밀히 움직였을 겁니다. 아니면 좀 더 상류에서 배를 구했을 수도 있고···”


그리고 웅방이 포구의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장강은 눈알을 굴리더니 웅방이 보고 있는 오른쪽으로 말을 몰았다. 패거리들이 말을 탄 채, 그의 뒤를 우르르 따라 갔다.


잠시 후, 장강 일행들이 도착한 곳에는 폐선을 부순 나무 쪼가리 얼키설키 지은 움막 같은 집이 강변에 서 있었다. 폐품으로 지어진 움막 옆의 벽에는 글자가 적힌 조그만 나무 알림판이 박혀 있었다.


패거리들이 말에서 내려 알림판 앞에 모여들었다. 모여 들어봤자 글을 아는 이는 웅방 뿐이다. 모두는 방을 한번 쳐다보더니 늘 그래왔다는 듯이 웅방의 입에 집중했다.


“이제 보니 아까 그 포구는 관에서 공인된 대가(大家)들이 하는 곳이구요. 여긴 관허를 못 받은 소가(小家)들이 하는 곳입니다.”

“얘가 뭐래니? 쉽게 말해라, 응?”

“즉, 여긴 포졸 눈을 피해 배를 빌려주는 곳이다, 이런 말입죠.”

“허락도 없이?”

“네. 허가도 없이.”

“헤. 딱 그 놈들이 왔을 곳이네.”


웅방이 알림판 옆에 달린 끈을 길게 잡아당기자, 어디선가 시끄럽게 딸랑이는 방울 소리가 들려온다.


끼익! 끼익!

잠시 후, 긴 돛을 단 나룻배 하나가 천천히 다가왔다. 여태 본 나룻배 중에는 가장 커다란 배였다. 저렇게 큰 배에는 세금도 많이 붙을 텐데, 몰래 운행하고 있다니 간이 큰 놈이다.


선체의 공간을 봐도 말도 두 어 마리 넉넉히 실을 수 있는 크기였다. 배 후미 쪽에서 두 발을 굳게 딛고 서 있는 한 젊은 남자가 노를 젓고 있었다.


턱!

나룻배가 부두에 닿자마자, 돌석이 달려갔다. 뱃사공에게 다가간 돌석이 무명과 장야의 얼굴 그림을 보여주며 물었다.


“이보시오, 혹시 이 사람들 본 적 없수?”


밧줄로 배고물을 크게 돌려 묶던 젊은 사공이 가만히 그림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웃 거렸다.


“기러니께니... 요 에미나이래 생각이 날듯 말듯 합네다. 아침 나절에 본듯 싶디만, 아닌 듯도 하고···”


눈치 빠른 웅방이 뛰어와 사공의 의도를 바로 알아차리고 돌석에게 엽전 꾸러미를 던진다. 돌석이 얼른 꾸러미에서 닷냥을 꺼내 사공의 손에 쥐어 주었다.


“보다시피 요즘 대목이지 않습네까? 교역하는 품목이 많아지다보니··· 태우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래야디요. 어데 보자···”

“천천히 잘 살펴 보시오. 아마 어제나 오늘 이곳에 당도했을 것이오.”

“어제나 오늘... 이라.”


밧줄을 잠시 내려놓은 젊은 사공이 그림을 한참 보더니, 무릎을 탁 하고 쳤다.


“아, 기억이 납네다. 얼굴만 보여주니까 가물가물 했구만. 고저 요 부부가 꽤나 옷을 잘 차려 입구서 다닙디다.”

“그럴 수도 있을 거요.”

“꽤나 돈 있는 양반 같던데 아침부터 배를 구하러 다녔지비. 기렇지만 못해두 아마 두 시진 전에는 패수를 건너갔을 거라우.”


뱃사공과 이야기를 끝낸 돌석이 패거리 쪽으로 왔다.

어느 정도는 무명과 장야가 대륙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패수를 앞에 두고 있으니 웅방은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긴장된 얼굴을 한 웅방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장강에게 물었다.


“형님, 어떻게 할 깝쇼?”

“후. 패수 건너 청나라라··· 야, 니들 생각은 어때?”

“놈들을 잡으려면 당연히 건너가야죠.”

“건너가다니? 저 패수 건너 대륙으로?”

“거긴 우리 땅이 아니야.”

“그걸 누가 모르니?”

“형님, 우리 땅을 벗어나는 건 좀 무리가 아닐까요?”


장강의 담뱃대를 들고 있던 삼복이 근심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건너는 게 뭐가 무리니? 동해 바다도 아니고 말야.”

“삼복아. 너 그런 말 들어봤니? 패수를 건넌 자, 다시 패수를 건너지 못하리···”

“야, 재수 없는 말 좀 그만하라.”

“암튼 패수를 건넌다는 건 국경을 넘는다는 것이야.”

“형님. 허면 우리는 저 강을 건너갔다가 이내 다시 돌아오는 것이지요?”


누구보다 얼굴에 걱정 가득한 삼복이 물어보자 잠시 생각에 잠기는 장강이었다.


‘이내 돌아온다?’


패수를 건너 대륙으로 넘어간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장강의 생각이 점점 바뀌고 있다.


금괴도 아직 다 찾지 못했으니 당장은 한양으로 돌아가긴 틀렸다. 금괴의 일부를 먹고 마시는데 써버렸다. 금괴를 몇 개 더 찾아 돌아간대도 죽을 때까지 양반들의 견마로 살아가야 하는 건 변함이 없는 사실이다.


그러다가 늙어서 힘 빠지면 가죽신 깁는 갖바치나 하면서 비루한 한 인생이 끝날 것이다.

왠지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사는 것보다 대륙에서의 삶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그리고 만약 일이 잘 풀려 무명과 장야까지 덤으로 잡게 된다면 금괴가 더 생길 것이다.


지금 가진 금에다 몇 자루의 금이 더 생긴다면, 타국에서도 돈 때문에 무시당할 일도 없을 것이다. 물론 지금 가지고 있는 금괴로도 얼마든지 집을 사고 세간을 사고 몇 가지 일도 벌일 수는 있다. 그런데 장강의 패거리는 다섯 명이나 된다.


다섯 명 모두 청나라에서 자리 잡고 떵떵 거리며 살려면 금괴가 좀 더 필요하다. 그리고 머리를 잘 굴리는 웅방이 곁에 있다. 그 뿐인가. 힘이라면 앉은 자리에서 곰 세 마리도 때려잡을 정도의 개양이 있는 한 무슨 일을 벌리든 성공하지 않는 게 도리어 이상할 것이다.


“들어봐. 우리가 대륙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 될 수 있어. 그렇게 되면 우리가 힘들게 뺏은 금괴를 돌려주지 않아도 되고 말이야. 지긋지긋한 양반님네들도 평생 안 봐도 되고. 더 이상 양반들 밑씻개 노릇은 하고 싶지 않아.“


장강의 말을 들은 개양과 돌석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그들이 늘 보던 양반님네들과 하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일까. 한양 사는 양반들이건, 나리들이건, 백정들이건 이제는 다 똑같은 사람으로 느껴진다.


하긴 사람은 누구나 하루 세끼를 먹고 잠을 잔다. 누구라도 배고프면 먹고 싶고 졸리면 자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데도 양반님네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특별나다고 생각한다. 일반 백성이나 천민이라면 자신들이 부리고 싶은 대로 부렸다가 쓸모없어지면 버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대륙이라... 이제 나도 한번 낯선 지방에서의 모험을 시작해볼까?’


푸른 눈을 가진 색목인(色目人) 개양이 오랜만에 가슴에서 새로운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마 대장 장강 역시 개양과 같은 마음이 드는 모양이다.


멀리 패수를 바라보는 장강의 눈에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호연지기 비슷한 기백이 어려있어서 동생들은 그가 조금 낯설었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늘 붙어 살아왔던 장강과 개양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챘다. 두 사람은 언제나 같은 곳을 바라본다. 즉, 대장 장강이 원하는 게 바로 개양이 원하는 것이다. 이내 그들은 동시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패수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대륙을 쳐다본다.


장강과 개양의 머리 속에 별의 별 생각이 다 떠오른다. 그간 조선에서 살아온 많은 날들이 먹구름떼처럼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 많은 날들을 아무리 부챗살 들여다보듯 펼쳐보아도 대부분이 개돼지 보다 못한 천민의 일상으로 점철 되었다.


권력 있는 양반들에게 업신여김 당하고 잦은 실수에도 주리가 틀리던 지난 날의 별의별 모욕적인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그들의 머리를 스친다.


그런데 어두웠던 조선에서의 삶을 패수 이쪽에서 죄다 끝내라고 시퍼런 강물이 말해준다. 이제 저 강을 넘으면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강한 확신이 뚜렷이 보인다.


“저 쪽이 더 살기 좋을 것이야.”


묵직한 장강의 말이 실로 오랜 만에 개양과 돌석의 가슴 깊은 곳을 건드렸다.


“패수 건너 큰 대륙은 조선땅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넓고 큽니다.”

“대체 얼마나 큰 건데...”

“아마 니 놈 머리로는 평생을 생각해도 다 못할 거야.”


잠시 강을 보며 코를 실룩대던 개양이 한 마디 던진다.


“사실은 이놈의 나라가 지겹게도 지겨웠습죠··· 흐흐..”

“마찬가집니다.”

“그렇다면 형님. 말 나온 김에 우리 후딱 저 패수를 넘어갑시다. 말인즉슨 금괴 몇 개로 그 곳에서 홍패 백패를 사서 양반 행세를 하구 떵떵 거리며 살자 이 말입니다.”

“콩떡처럼 말해도 역시나 너는 찰떡처럼 알아 듣누만. 이 조선 땅은 우리가 살기에 너무 좁아, 안 그래?”


셋이 떠드는 동안, 하얀 얼굴의 웅방은 패수 건너기 전과 후의 삶 중에 어느 것이 좋을지 치열하게 저울질 하고 있었다.


이들과 함께라면 조선에서 살 때보다는 훨씬 편할 게 분명하다는 쪽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웅방이 이 패거리에서는 모사가로 인정받을지 몰라도 한양으로 돌아가면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중인 계급의 최하층 관리에 불과할 뿐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찢어지게 가난했던 웅방이기에 새롭고 호화로운 삶에 대한 동경이 누구보다 더 컸다. 맘껏 책을 읽고 나름의 책도 써보고 싶은 웅방으로서는 장강의 이 제안이 이제는 누구보다도 반갑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과는 달리, 삼복의 표정은 젖은 나무를 땐 굴뚝 옆에서 검은 연기라도 뒤집어 쓴 것처럼 어둡다.


“가자꾸나! 대륙으로 가서 재미지게 살아보자!”

“명명백백히 바라던 바입니다요.”

“에잇. 한양 사는 비단옷 쳐 입은 배불뚝이 놈들은 다신 내 이 푸른 눈에 담고 싶지 않수다.”

“패수 건너 살아보는 건 분명 의미가 있습지요. 사나이로 태어나 큰물에서 놀아보지 못 한다면 어찌 한 평생 장부로 살았다 하겠소? 하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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