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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잉낙엽 님의 서재입니다.

무명장야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완결

플라잉낙엽
작품등록일 :
2017.03.12 16:39
최근연재일 :
2017.06.21 01:29
연재수 :
87 회
조회수 :
97,587
추천수 :
798
글자수 :
434,864

작성
17.05.22 21:24
조회
744
추천
7
글자
12쪽

70. 소년 토야 (1)

DUMMY

입송선상경중제우(入宋船上京中諸友)


천지하강계(天地何疆界)

산하자이동(山河自異同)

군무위송원(君毋謂宋遠)

회수일범풍(回首一帆風)


송나라로 가는 배에 오르며 서울에 있는 여러 벗에게


하늘과 땅에 어찌 경계를 그으랴만

산과 강은 스스로 어디나 같지 않은가.

그대는 송나라가 멀다고 말하지 말고

고개를 돌리면 한차례 부는 돛대 바람인 것을.


- 최사제(崔思齊), 입송선상경중제우(入宋船上京中諸友) 中에서




한편, 한층 바람이 쌀쌀한 패수를 거의 건너고 있는 큰 배가 하나 보였다. 조금 전 욕심스런 늙은 뱃사공을 베어버린 홍찰 일행이 위화도를 지나 단둥 포구에 닿은 것이었다.


히이잉!

포구에 내린 홍찰 일행들이 빠르게 말을 내리더니 그 위에 올라탔다.


“가까운 의원부터 샅샅이 뒤져라.”

“넵”


배를 심하게 다친 무명이 갈 곳이라곤 의원뿐일 것이다.

두두두두!

홍찰 일행들이 탄 말이 빠르게 포구를 벗어나 마을 쪽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 * *


군락을 이룬 금빛 갈대밭의 하얀 갈대들이 손을 흔들자, 단둥 포구마다 새카맣게 앉아 있던 멧새떼가 낮은 하늘로 뿌옇게 날아올랐다.

금세 대륙의 저물녘이 가까워오자, 포구 가까이 떨어진 낟알이며 풀씨로 배를 채운 멧새들이 갈대밭 가운데에 비밀스럽게 만들어둔 둥지로 날아들고 있다.


부둣가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에도 저녁 짓는 연기가 하나둘 씩 굴뚝마다 하얗게 솟고 있다. 포구에서 오른쪽으로 시작된 마을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저자거리에는 가지각색의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다.


국경에 위치한 곳이라서 일까. 이곳에서는 청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색목인, 흉노족, 게다가 심심치 않게 조선 상인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별의별 인종의 사람들이 제각각의 옷차림을 하고 물건을 사거나 팔며 저잣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런 다양한 사람들의 입맛에 맞춤한 길거리 음식도 꽤나 다채로웠다. 꼬치구이에서부터 통구이류, 만두나 빵류, 튀김과 국수 종류 등 먹음직한 먹거리들이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꿀꺽!

열 살이 겨우 되었을까 말까 한 소년이 만두가게 옆 판자 뒤에 숨어서 자기 얼굴만한 왕만두를 바라보고 있었다. 땟국물이 절어 반질대는 소매로 콧물을 훔치는 소년은 한참 동안 가장 큰만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출출해진 저녁 상인들이 한꺼번에 몰아닥치는 바람에, 정신없이 만두를 빚는 주인이 커다란 솥뚜껑을 연다. 구름 같은 허연 김이 한보따리 올라왔다.

하얗게 끓어오른 김 때문에 잠시 시야가 가려진 그 틈을 타,

덥썩! 다탁!

배고픈 소년이 잽싸게 점 찍어둔 왕만두를 훔쳐 줄행랑을 쳤다. 그러나 이내 도둑을 발견한 주인의 입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얏! 저기 도둑놈 새끼 좀 보라우! 도둑 잡으라!”


소년 토야는 발이 안 보이도록 잽싸게 도망치는 와중에도 커다란 만두부터 베어 물었다. 잡히면 만두고 뭐고 다 뺏길 테니 일단 뱃속에 넣고 보자는 심산이었다.


“앗 뜨거! 후아! 후아!”


뜨거운 만두를 입에 넣은 소년이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몰아쉬었다. 한두 번 훔쳐 먹은 게 아닌지, 달리면서도 용케 입김으로 식혀 가며 만두를 삼키고 있었다.


허기진 데다가 갑자기 입에 넣은 만두 때문에 목이 멘 소년이 눈물인지 콧물인지를 소매로 닦다가, 뒤따라온 주인에게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코끼리 다리 같이 두꺼운 팔뚝을 지닌 주인이 소년을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쿵!

소년은 바닥에 부딪히면서도 부서져 형체를 알 수 없는 나머지 만두 부스러기를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화가 난 주인은 팔소매를 둥둥 더 높이 걷어 올리며 씩씩댔다.


“내래 오늘은 반드시 간나 새끼래, 요 더러운 버릇을 꼭 고쳐주고 말갔어.”


덩치 좋은 만두 가게 주인이 바닥에 쓰러진 소년을 향해 무자비한 발길질을 날리기 시작했다.


퍽! 퍼벅!

아이가 흠씬 두들겨 맞고 있는데도 익숙한 풍경인 듯 장터 사람들은 말리지도 않았다. 어쨌든 소년은 매를 맞으면서도 계속해서 입 속의 만두를 삼키고 있었다.


“어린 종간나 새끼래, 감히 누구 만두를 훔치네? 이런 놈은 다시는 못하도록 된통 맞아야 되디 않간?.”

“지@#$요. 배가 고&#@# 구래써여.”


소년이 용서를 빌었지만 입에 있는 만두 때문에 무슨 말인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시끄러워! 만두를 먹으려면 돈을 내야디! 세상에 어디 배고픈 사람이 한 둘이간!”


만둣집 주인의 매질은 좀처럼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소년의 코에서 코피가 터지고 입술에 든 피멍도 터지기 시작했다.


마침 저잣거리를 들어오다가 이 광경을 목격한 무명과 장야가 말을 세웠다. 특히 장야의 눈이 커다래졌다.


“오라버니, 잠시만요.”


피투성이 얼굴이 된 소년을 본 무명 역시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매를 맞고 있는 소년 쪽으로 장야가 황급히 다가갔다.


팍! 퍼벅!

좀도둑 때문에 성질이 날 대로 난 주인은 서른 발짝 너머의 자기 만둣집에서 끓고 있는 만두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저 만두를 두 개 훔친 소년만 족치느라 바빴다. 사실 이렇게 좀도둑 어린 아이를 족치다보면 뜻하지 않는 횡재를 만나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저 놈은 만두를 팔아서 돈 버는 거보다 토야를 패서 버는 돈이 더 많을 기야.”

“아무렴. 글쎄 지난 번에도 누가 스무 냥을 주고 갔대지?”


주변 장사치들은 만둣가게 주인이 어떻게 부수입을 얻고 있는지 다 알고 있었다.

코피가 나고 입술이 터져버린 소년을 더 이상 때린다면 광대뼈나 코뼈가 골절 될 수도 있었다.


오늘 따라 더 심하게 뭇매를 맞고 있던 소년이 만둣집 주인에게 눈을 찡끗하지만, 이미 때리는 데 이골이 난 주인은 눈치 채지 못했다. 바로 그 순간 누군가가 주인의 팔을 낚아챘다.

탁!


“뭡니까?”

“어린애가 뭘 그리 잘못했길래, 이리도 심하게 때립니까?”


만둣집 주인이 짐짓 성난 얼굴로 장야를 쳐다봤다. 아주 잡아먹을 것 같이 날선 표정으로 숨을 몰아쉬는 주인의 팔을 장야가 꽉 잡고 있었다.


“요놈의 간나새끼래 우리 만두를 자꾸 훔쳐 먹지 않갔어? 내 오늘 다리 몽댕이를 부쏴 뜨려 버릴테야. 에미나이래 말리지 말라.”

“제가 배상 할게요. 만둣값이 얼맙니까?”

“당신이 뭐라도 되간? 앙? 뭔데 갚는다는 기야? 그리고 요 간나 새끼가 여태 훔쳐 먹은 만두가 백 개도 넘어야. 당신이 그 값을 다 물 수도 없디 않간? 좋은 말할 때 비키라.”

“대체 얼마나 먹었길래···”

“은자로 치면 세 개도 넘어야.”


잠시 입술을 깨물던 장야가 은자 세 개를 쩔렁하고 내놓았다.


“여깄어요. 그러니 그만해요.”


만두 육백 개도 넘는 값을 한 번에 치르는 장야를 본 주인의 입이 자기도 모르게 귀까지 찢어졌다. 그는 순간적으로 어제 자기가 돼지꿈을 꿨던가 더듬어보지만, 아무런 꿈도 생각나지 않는다.

번쩍이는 은자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뜬 토야가 피투성이 된 얼굴을 일으켰다.


“에에? 이렇게나 많이 주기요?”


저절로 존댓말이 나오는 주인이 교활하게 웃음을 흘렸다. 그는 입이 떡 벌어진 줄도 모르고 이제는 숫제 존경한다는 얼굴로 장야를 쳐다본다.

피투성이 토야를 일으키려고 장야가 허리를 숙이자, 잽싸게 먼저 아이를 일으키더니 자기 소매로 피가 묻은 얼굴을 쓱쓱 닦아주었다.


“앞으로도 저 아이가 배고플 때면 언제나 만두를 주세요. 내 얼마 뒤에 다시 들러 또 값을 치를 테니까.”


은자 두 냥을 더 내놓는 장야를 본 만둣집 주인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토야 역시 어안이 벙벙하다. 일면식도 없는 여자가 나타나 자기를 위해 앞으로의 만둣값까지 치르려 한다. 코피가 대충 멈춘 토야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장야를 빤히 쳐다본다.


‘이 아줌마가 누구더라...?’


이상하기는 주변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다른 장사치들도 마찬가지였다. 만둣집 주인이 토야의 도둑질을 일부러 묵인했다가, 소년이 도망칠 때 쫓아가 치도곤을 날리는 건 저잣거리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장터 한복판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매질 하다보면, 가끔 부잣집 부인네나 동정심 많은 벼슬아치들이 어린애가 두들겨 맞는 것이 불쌍하다며 몇 푼 주고 말렸다. 어떤 날은 만두를 팔아 버는 돈 보다 그렇게 뜯어낸 돈이 짭잘할 때도 많았다.


저잣거리에서 몸으로 구르며 어떻게든 굶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살아온 토야이기에, 장터에 사람들이 와글와글 많아질 때 한 번씩 만두를 훔치고 죽지 않을 만큼 맞곤 했던 것이다.


오히려 주인은 가끔 하루가 지나 굳어버린 만두를 토야에게 주면서, 큰 배가 많이 들어오는 날 만두를 훔치라고 귀뜸해 주기도 했다. 배고픈 토야는 그와의 은밀한 거래를 마다할 수 없었다.


만둣집을 연 이래로 이렇게 많은 돈을 한 번에 받아 보기는 처음인 주인은 자꾸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어색하게 웃음을 참다못한 주인이 이제는 장야를 향해 허리까지 조아렸다.


“아이가 배고플 때 찾아오면, 언제든 만두를 주실 거죠?”

“당연히 그래야 되디 않갔시요. 만두를 주구 말구.”

“어린 아이가 배곯지 않게 부탁합니다.”


어리둥절해있는 토야를 본 장야가 다짐을 받으려고 한 번 더 강조를 했다. 그제서야 토야가 만둣집 주인을 보고 살짝 눈을 찡끗한다.


뜨끔한 주인이 토야의 얼굴에서 얼른 시선을 뗀다.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난 소년이 야무진 얼굴로 만두 주인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아저씨! 앞으로 저 좀 그만 때리시라요!”

“오냐. 그래야디. 배고플 때는 무조건 만두를 먹으러 오라우.”


그 말에 안심을 했는지 그제서야 장야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그리고 소년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본다.


“얘. 괜찮니? 코피가 나는데···”

“네. 이까짓 것 별 거 아닙네다.”


토야의 몸이 부러진 데 없이 괜찮다는 것을 확인한 장야가 다시 무명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몇 번이고 뒤로 고개를 돌리며 토야를 쳐다보던 장야가 마침내 무명과 함께 포목점 저 편으로 사라졌다.


만둣집 주인은 그 쪽을 향해 허리를 약간 구부리고 있다가 장야와 무명이 사라지자, 콧방귀를 끼더니 자기 가게로 향했다.


그때, 토야가 당당하게 만두 가게 주인의 앞으로 다가갔다.


“보시라요. 만두 스무 개 주시라요!”

“고저 뚫린 입이라고 뭐라고 지껄이는 기야?”

“저 아주마이가 은자를 줬디 않아요? 돈이면 만두 이백 개도 넘잖아요. 앞으로 석 달 넘게 매일 만두를 일곱 개씩 먹어도 다 못 먹겠시오.”

“도둑놈의 간나새끼래 그 입 닥치지 못하간?”

“아, 진짜.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봤는데, 이럴 기야요? 에이, 내래 저 아주마이한테 뛰어 가서 다 이르고 말기야!”


왁자지껄한 장터에서 나고 자란 토야인지라 열 살 소년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목청이 컸다. 포목점 쪽을 향해 떡메 깨지는 소리로 고함을 지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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