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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잉낙엽 님의 서재입니다.

무명장야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완결

플라잉낙엽
작품등록일 :
2017.03.12 16:39
최근연재일 :
2017.06.21 01:29
연재수 :
87 회
조회수 :
97,589
추천수 :
798
글자수 :
434,864

작성
17.05.22 21:22
조회
843
추천
7
글자
12쪽

63. 가자! 대륙으로 (1)

DUMMY

정인상견의여존(情人相見意如存)

수도황룡불사문(須到黃龍佛寺門)

빙설운용안수관(氷雪雲容顔雖觀)

성음방불상능문(聲音彷佛尙能聞)


고운 님 보고픈 생각이 나신다면

황룡사 문 앞을 향해 좇아 오소서

하얀 눈 같은 얼굴이야 비록 볼 수 없어도

그 목소리는 오히려 어렴풋이 들린다오


- 민사평(閔思平), 옛님 생각 中에서



웅방은 봉팔에게 잡혀 있는 동안, 무명과 장야가 도식을 살해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정보를 얻기 위해 삼복을 그 기와집으로 보낸 것이다. 발이 재빠른 삼복이 구경꾼들에게서 멀어져 다른 골목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장강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다.


몇 시간 전에 봉팔을 때려눕힌 장강과 그의 패거리들은 벌광에서 빠져 나오자마자, 금괴를 찾느라 홍루관을 거의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봉팔의 부하들을 족쳐 뒤뜰 항아리 속에 감춰둔 금괴를 챙긴 패거리들은 다시 본관의 다락이며 벽장을 다 들쑤시고 부수어서 나머지 금괴 하나까지 알뜰히 챙겼던 것이다.


“늦었어요. 놈들이 떠난 자리는 이미 꿩 궈먹은 자리처럼 횅 하더라니까요.”

“빨리도 해치웠네. 할 수 없지, 뭐.”


삼복의 보고를 받은 장강이 담배연기를 뿜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묵직한 금괴 자루를 쳐다보고 있으니 이젠 그 어떤 큰 일도 별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에잇,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술을 더 빨리 퍼마시는 건데···”


개양은 술은 마신 것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마시지 못한 후회를 하고 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앞에 놓인 술은 한 방울도 남김없이 깡그리 마셔야 한다는 게 어떤 좌우명도 없이 바람처럼 살고 있는 개양의 올곧은 한 가지 주관이었다.


“그럼 이제 어쩐다? 웅방! 계획이 있느냐?”


갑자기 할 일이 없어져버린 장강이 웅방을 향해 물었지만 들려오는 목소리는 개양의 것이었다.


“일단 한 잔 해야지 뭐!”


일도 없겠다, 금괴도 찾았겠다 다시 해장술을 하고 싶어진 개양이 입맛을 다셨다. 그 말에 웅방이 도끼눈을 뜨고 개양을 노려봤다. 마치 잔소리 많은 마누라가 눈이라도 흘긴 듯 머리를 긁적이던 개양이 한 마디 갖다 붙인다.


“그럼, 뭐? 뭐 하자고? 할 거 있어? 물도 트는 데로 흐른다고 될 만한 일이라면 알아서 되어 갈 거라니까! 우리도 할 만큼 했어.”

“개양이 형. 우리랑 다니더니 조금 머리가 트이셨나보네. 물이 트는 데로 흐른다니, 그런 말도 쓸 줄 알고. 하하.”

“시끄러, 인마.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예전에 우리 둘째 외삼촌이 두륜산에서 도를 닦으실 적에···”

“조용해! 그리고 당분간 술은 금지야.”

“뭐?”

“술 때문에 우리가 갇혀 있었던 거 몰라? 우리 모두 싹 죽을 수도 있었어. 이제 술타령은 그만 둬. 어젯밤 그렇게 퍼마시고도... 참.”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생각을 정리한 웅방이 핀잔준다.


“그래. 웅방아. 아무렇게나 씨부려봐라. 내 입에 술 한 방울 안 넣고 내가 너랑 같이 일할 성 싶으냐? 앙?”

“조용해봐. 일단 웅방이 계획부터 들어보게.”

"들어보고, 뭐?“

“들어봐야 우리가 놈들을 쫓을지 술을 먹을지, 밥을 먹을지 정할 거 아냐.”

“그래, 개양이 형. 좀 가만히 있어봐.”

“웅방 말해라.”

“지금 삼복의 얘기를 들어보니, 도식의 집에서 무명과 장야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답니다. 오직 도식과 도식이 매복해 둔 놈들만 죽었다는 얘기지요. 그렇다면 아직 잡히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 연놈들이 도식을 죽였으니, 이제 조선 땅에서 더는 할 일이 없습니다. 아마도 대륙으로 넘어가지 않을까요?”

“오홋. 넌 어쩜 내 생각하고 토씨 하나도 안 틀리고 똑같니?”


그 말에 돌석이 핏 웃었지만 이내 옳거니, 하고 손으로 무릎을 쳤다. 사실 웅방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장강은 자신과 같은 의견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지략을 세울 줄도 새로운 계획을 도모할 줄도 모르는 장강이기에 언제나 웅방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대륙이라면?”

“아마도 일단··· 패수(浿水)쪽으로 향할듯 합니다.”


패수(浿水), 염난수(鹽難水), 마자수(馬訾水) 또는 청수(靑水) 등의 이름으로도 불리는 그 곳은 바로 오늘날의 압록강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국경을 넘는다는 뜻이군.”


오랜만에 웅방이 장강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정식 관문으로 향하지는 않을 겁니다. 패수에는 여러 개의 나루가 있어서 몰래 도강할 수 있지요. 그 곳에 먼저 도달해서 기다리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그래. 당장 출발 하도록 하자!”


장강 일행들은 웅방이 가리키는 북쪽 길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시나 예민한 웅방의 예측은 언제나처럼 그대로 들어맞았다.



* * *



관청으로 들어온 운비가 자기 숙소로 들어간다. 세수를 하고 먼지 묻은 옷을 갈아입는다. 비단결 같은 긴 머리를 다시 풀어서 빗는다. 능숙하게 반으로 땋아 묶어 올리더니 거울을 보면서 살짝 화장을 한다. 각선미 좋은 다리가 드러나는 치파오 비슷한 옷을 입은 그녀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향낭을 품에다 찬다.


향낭의 냄새가 몸에 퍼지도록 몇 차례 두드리더니 빠른 걸음으로 홍찰의 처소로 향한다.

차를 마시고 있는 홍찰 앞으로 간 운비가 긴 속눈썹을 깜박이더니 얼른 운을 뗀다.


“북쪽으로 이동 중입니다. 천마현을 거쳐 의주나 삭주 쪽으로 국경을 넘을 셈인 것 같습니다.”

“삭주라···”


옆으로 길게 찢어진 홍찰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금괴를 훔쳐 달아난 두 놈들이 이제는 폭탄까지 동원해 자신의 부하를 다섯이나 죽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굳이 조선을 떠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무명과 장야가 대륙으로 가기로 결정을 했다는 것은 지금쯤 금괴의 비밀을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도저히 살려둘 수도 없고 가지고 있는 금괴도 반드시 빼앗아야 한다.


“나리. 그런데 어째서 두 연놈들이 대륙으로 가려할까요? 그 많은 금괴라면 얼마든지 조선에서도 떵떵 거리며 살 수 있을 터인데...”

“방법이 없지 않느냐? 이미 이 땅에 남아 있어 봤자 도망자 신세를 면할 수 없을 테니. 여기서 걔네가 볼 수 있는 건 평생 갇혀 있을 감옥의 더러운 벽뿐이야. 추측컨대 이미 상당히 국경 쪽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그럼. 떠날 준비를 시킬까요?”

“그래. 되도록 빨리 출발하도록!”

“저··· 근데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어제 홍루관에서 최객주가 보낸 패거리들이 소란을 일으켰다 합니다.”

“최객주 패거리? 아, 그 백정 놈들 말인가?”

“네. 장강이라는 자와 그의 수하들이옵니다. 근데 이상한 것은 놈들이 금괴를 가지고 있었다는 은밀한 소문이 있나이다?”

“금괴를? 씁. 그렇다면 우선 홍루관으로 가자.”


웬만해서는 부하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 홍찰이 오랜만에 운비를 쳐다본다. 자신의 얼굴에 무엇이라도 묻은 양, 아까부터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운비가 좀 낯설다. 그녀에게서 무슨 향기가 풍기는 것도 같지만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홍찰은 좀처럼 알 수 없다.


머뭇대며 홍찰의 눈빛을 한 번이라도 더 받으려는 운비는 잠시 기립해 서있다. 그런 운비를 보던 홍찰이 눈썹을 올린다.


“야, 뭐하니? 빨리 홍루관으로 가자니까.”

“아. 네.”


잔뜩 홍찰의 시선을 받길 기대하며 그윽한 미소까지 준비한 운비였지만, 목석 같은 홍찰이 전혀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에 화가 난다.


김 빠진 기분이 된 운비가 할 수 없이 밖으로 나가자, 홍찰은 장강의 무리가 왜 여기까지 왔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눈가가 일그러졌다.


어쨌든 그 패거리들이 금괴에 대한 비밀을 알아선 안 된다. 놈들이 금괴를 가지고 있다는 게 소문인지 아닌지 그것을 밝혀볼 필요가 있다. 만약 장강 패거리들도 금괴를 쫓고 있다치자, 그렇다면 놈들을 잘 이용해서 무명과 장야를 잡아야겠다는 속셈을 세워본다.


홍찰이 마지막 찻잔을 입에 털어 넣고 벌떡 일어났다.



* * *



“으아악!”


한 사내가 공중으로 들어 올려 진 채 비명을 지르고 있다.

산발이 된 머리는 대충 빗자루처럼 묶어 올린 사내다. 꽤나 멧돼지처럼 거칠어 보이고 덩치가 커다란 사내였다. 그런데 무서울 것이 없을 것처럼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내에게서 돼지 멱 따는 듯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높이 들고 있는 그 사내는 평북 천마군 일대에서 악명이 자자한 산적 두목, ‘명중’ 이었다. 사실 명중은 오늘 마수걸이부터 기분이 좋았다.


도루악 계곡을 아슬아슬 지나가고 있는 맨 처음 덮친 반질반질 새까맣게 옻칠된 가마에서 수백 냥의 엽전과 금붙이를 빼앗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열 냥도 안 되는 노잣돈을 가지고 고을에서 고을을 다니는 장돌뱅이며, 보퉁이 달랑 들고 친정을 가는 아낙네에게서 고작 은 가락지 따위를 털었던 요 며칠과는 비교도 안 되는 수확이었다.


고가의 패물을 마수걸이에서 얻어내었기에 입이 귀 밑까지 찢어진 명중이 졸개들을 향해 몇 차례나 호탕하게 웃어댔다.


오늘은 확실히 명중에게 대목의 날이었다.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한 번 이런 행운의 날이 오곤 한다. 바로 그날이 오늘이라고 그는 믿었다. 그런데 마수걸이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도 돈이 많아 보이는 일행들이 보였다.


명중이 산채를 꾸리고 있는 용문산의 깊은 골짜기 쪽으로 그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마도 놈들은 조선에서의 모든 재산을 싸들고 청나라로 가는 일행이 분명했다.


아침부터 재수가 길하다는 기분에 사로잡힌 명중이 이들을 놓칠 리 없었다.

부하들을 데리고 그들의 앞을 가로막은 명중이 좋아진 기분을 사뭇 감추지 못하고 소리쳤다.


“하하! 이것들아. 거기 꼼짝도 마라! 있는 거 없는 거 가진 거 싹 다 내놓아라!”


험하다는 용문산의 도루악 계곡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벌벌 떨면서 쭈그려 앉았다. 덩달아 신이난 명중의 졸개들이 가져온 보자기를 바닥에 넓게 폈다. 그리고 졸개들이 보자기를 향해 손짓하더니 바로 칼을 빼들었다.


“자! 목숨이 아깝거든, 가지고 있는 거 여기 다 싹 담아!”


서슬 퍼런 칼을 보자마자, 정신이 번쩍 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돈과 패물들을 보자기 위에 늘어놓기 시작했다.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크하하하하.”


명중은 참으려 해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사실 명중은 그때까지만 해도 근 오년 사이 최고로 운수가 좋은 날이 도래했노라, 생각했다. 잠시 뒤에 수상한 무리들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연이어 나타난 다섯 명의 무리가 명중의 눈에 들어왔다.


그 중 우두머리 같은 놈은 구름에 휩싸인듯 연신 담배 연기를 뿜고 있었고 털이 부스스하고 눈이 파란 놈은 힘깨나 쓰게 생겼다.


“야야, 거기도 꼼짝 마! 가진 거 모두 내놓아라!”


그들을 본 명중이 산적의 존재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리기 위해, 번쩍거리는 칼을 휘두르며 떡메 깨지는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자 다섯 명의 무리들 중 털복숭이 유색인으로 보이는 한 사내가 자신이 메고 있던 기다란 괴나리 봇짐을 내려놓더니 고개를 틀어 목부터 풀었다.

두둑! 뚝!


“얘네들 뭐야? 안 그래도 심심했는데!”

“역시 이렇게 험한 산줄기라면 산적떼가 없는 게 되려 이상하지.”

“근질근질 좀이 쑤셔서 못 견디겠다야!”


봇짐을 내려놓은 이는 바로 개양이었다. 하지만 개양이 꺼낸 것은 돈이나 값비싼 물건이 아니라 커다란 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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