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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싸신 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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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ndCircle
작품등록일 :
2023.04.11 20:07
최근연재일 :
2023.05.18 10:27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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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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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90,232

작성
23.05.18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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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제 30화: 광룡光龍

DUMMY

헤이즈와 이무기 임퓨어가 한창 공방을 벌이고 있을 때.

슈라우드는 한창 자기 나름대로의 책무를 수행하는 중이었다.


그는 여러 가지 약을 조합하여 때로는 바르고, 때로는 먹였으며,

그것을 남매에게도 거들도록 하였다.


그러나 정체도 모를 약을 다 죽어가는 환자들에게 먹이는 행위.

그리고 그들 중 몇은 약을 먹다 토혈까지 하는 상황 속에서,

루미엘의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렇기에, 그녀는 한창 약을 조합중인 슈라우드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역시 이대로 한번 피프로 돌아가 더 집중적으로 치료를 받는 게...”


그러나 슈라우드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단호하게 말했다.


“좋은 생각이지만, 지금 하고 있는 건 시간을 벌기 위한 응급조치 단계입니다.

빠른 조취도 취하지 않고 그 먼 길을 돌아간다면 이중 절반도 넘는 사람이 죽을 겁니다.”


그 말에 오싹함을 느끼며, 루미엘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말에 공포를 느낀 것 뿐만이 아니었다.


사람을 치료하는 슈라우드에게서는, 범접할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적을 상대하는 헤이즈의 살기와는 다른 종류의 분위기였다.


‘..언더테이커는 모두 돌팔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틀렸던 걸까, 아니면 이 사람이 유별난 걸까?’


그렇게 그녀가 생각하던 도중....바로 옆에서 벼락이 떨어진 듯한 큰 소리와 함께,

지금까지 중 가장 큰 지진이 땅을 진동시켰다.


그 영향으로 남매는 펄쩍 뛰어올랐으며,

슈라우드마저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굉음에, 무심코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슈라우드와 남매는 모두, 이 소리의 원인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헤이즈가 검을 휘두를 때 나는 찢어지는 듯한 소음.


그것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마치 폭풍이 휘몰아치는 듯한 굉음처럼 들렸다.

거기에 그 불길한 소리의 안에는 무언가 울부짖는 괴성도 섞여있어,

루미엘은 소름이 끼쳐 절로 귀를 막았다.


‘마치, 괴물 두 마리가 싸우고 있는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던 도중, 마지막 환자에게 약을 먹이고 붕대를 감은 슈라우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치료도 끝났으니, 저는 저쪽을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네?!”


어느새 평소처럼 능글맞게 웃고 있는 그의 말에 남매는 놀라 소리를 높였지만,

슈라우드는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그야, 저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하거든요.”


그 말에, 잠시 망설이던 루미엘은 이내 결심을 굳힌 듯 말했다.


“..그럼, 저희도 데려가 주세요.”


그녀의 말에 로웬은 놀란 듯 ‘누나?!’라고 소리쳤고, 슈라우드는 한쪽 눈썹을 치켜떴다.

그런 두 사람의 반응을 앞에 두고, 루미엘은 말을 이었다.


“이곳에 저희 둘만 있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고,

당신이 언제 돌아올지도 알 수 업으니까, 차라리 저희도 따라갈게요.”


그렇게 말하는 루미엘의 말은 언뜻 이성적으로 느껴졌으나,

실은 그녀의 마음속에도 약간의 감성적인 부분이 존재했다.


그것은, 헤이즈에게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물론, 루미엘은 그의 실력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할 정도로 확인하여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다른 부분은 멀리서 들어도 격렬하게 느껴지는 싸움 속에서

자신들의 은인이 심각한 상처를 입었을지 모른다는 걱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루미엘은 용기를 내어, 격전의 장소에 자신들도 함께 가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런 누나의 심정을 헤아렸는지, 옆에서 ‘저도 부탁드릴게요’라며 로웬이 의사를 더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시선을 받던 그는, 곤란한 듯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흠, 헤이즈 씨에게 혼날 것 같은데.”


하지만 잠시 후, 그는 활짝 웃음지으며 입을 열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죠.”


그 말의 뒤로, 그는 아이들을 인솔하는 교사처럼 남매를 뒤에 붙인 채,

소름 끼치는 소리가 겹쳐들리는 위험 속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들이 있는 곳은 절벽의 뒤를 돈 곳에 위치한 샛길이었는데,

그곳을 나오자, 그들에게도 전투의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

“.............”

“.............”


-그 광경을 처음 본 순간,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루미엘은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입만 뻐끔거릴 뿐이었고,

귀를 괴롭히던 소리조차, 한순간 사라진 것 같은 착각마저 느꼈다.


그런 와중에, 슈라우드가 겨우 첫말을 내뱉었다.


“세상에.”


그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그것은 분명,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시야에 있는 것은, 은색의 용 한 마리가 검은 이무기의 몸을 단단히 휘감고 있는 광경이었다.


‘..용은, 멸종한 것 아니었나...?’


헤이즈는 어디갔는지, 어째서 용과 이무기가 싸우고 있는지

그런 것들을 모두 잊을 정도로, 은색 용의 위엄은 엄청난 충격을 가져왔다.


그렇기에 아무런 생각도 못할 정도의 당황스러운 심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던 남매의 옆에서,

정신을 차린 슈라우드가 헛웃음과 섞인 말을 꺼냈다.


“설마, 참격으로 용을 만들다니..!”


그 말을 듣자, 루미엘 또한 눈앞의 광경을 제대로 살펴볼 여유가 생겼다.


그러자 그녀의 눈에 다시 비친 그 용은,

마치 붓으로 그린 것처럼 여러 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선의 정체는, 여기저기에서 번쩍이는 섬광.

검의 움직임에 생긴 검광이 빛의 띠처럼 이무기에 휘감긴 모습이,

마치 용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그 안에서, 헤이즈가 어디에 있는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마치 용이 적을 찢어발기는 듯한 노도의 공격이,

슈라우드와 남매의 눈에는 아름다운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빛의 고리에 휘감겨있는 듯한 그 아름다운 검무의 실상은,


적의 몸을 엉망진창으로 찢고 부수면서 종횡무진하는

야만스럽기 짝이 없는 파괴적인 행위였다.


그럼에도 일격 일격이 급소만을 가격하는 그 모습은

모든 행동이 적을 죽이기 위해서인 짐승의 본능과,


그것을 응축하여 생명체를 효율적으로 죽이기 위한 것으로 승화시킨 기술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슈라우드는 알고 있었다.


‘이것이 워드의 힘이라고 해도, 이런 공격이, 인간에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그렇게 경악하는 슈라우드의 시야 안에서, 그 몸에 퍼부어지는 연속된 검격에,

이무기 임퓨어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암벽의 여기저기에 몸을 부딪혔다.


그럼에도 맹공은 끝나지 않았고,

이무기의 거대한 몸에서는 육중한 살점들이 계속해서 떨어져 내렸다.


적을 물어 찢는 용의 송곳니처럼,

임퓨어의 몸은 계속해서 깎여나가듯 살이 발라내어지고 있었으며,


아무리 불을 뿜고, 비늘을 발사해도,

점점 커져가는 상처는 임퓨어 본인의 회복력보다도 빠르게

그 몸 곳곳에서 병처럼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저 괴물같은 이무기 임퓨어의 회복력을 웃도는 속도로

몸 이곳저곳을 타고 다니며 공격을 퍼붓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방식.


허나 그 과정이 끝난 뒤 마침내 땅에 내려온 헤이즈의 앞에,

이무기 임퓨어는 뼈에 붙어있는 살점들을 제외하면 거의 골격만 남은 채

전시된 화석과 같이 꼿꼿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검무를 마치고 튕겨나오듯 땅에 내려온 헤이즈는,

그 정도 위력의 공격을 퍼부은 반동인지 잠시 바닥에 손을 짚은 채 숨을 헐떡였다.


그 모습은 남매가 처음 봤을 정도로 지쳐 있었으며,

물줄기가 쏟아지는 기세로 땀을 흘리며 가슴을 쥐어뜯고 있는 그에게,

슈라우드가 걸어가며 말했다.


“..참 나, 이래서야 누가 괴물인지 모르겠-”


-하지만 그렇게 말하며 다가오는 슈라우드를, 헤이즈는 한 손을 내밀어 제지했다.


“?”


그 손짓에 의아해하던 슈라우드를 뒤로, 그는 절뚝이는 발걸음으로, 어디론가 향했다.


’..어디로 가는거지?‘


그 모습을 루미엘과 로웬 또한 멀뚱히 바라보던 와중,

그는 자신이 박제하듯 뼈만 남기고 발라버린 이무기 임퓨어의 뼈 아래로 이동했다.


그대로 땅에서 돌 하나를 주운 그는,

순식간에 팔을 움직여 그것을 이무기 임퓨어의 턱뼈에 맞췄다.


그러자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이무기 임퓨어의 뼈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거대하고 수도 많은 뼈들은 순식간에 뼈의 봉우리를 만들었으며,

헤이즈의 모습은 그 뒤로 사라졌다.


-그런데 그 중에서, 뼈 이외에 추락하는 것이 있었다.


하나는 거대한 리파인타이트, 광석이 어린아이의 전신,

보석 부분이 그몸통 정도로 거대한

붉은 색의 리파인타이트가 바닥을 떨어져 굴렀다.


’지금까지 본 것 중, 아니,

평범한 사람이라면 일생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다..!‘


그 엄청난 크기를 본 루미엘과 로웬은

그가 리파인타이트를 회수하기 위해 오지 말라고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슈라우드의 시선은, 그 외의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서밖에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것은 분명-


’..인간의 상반신? 아직 마무리를 짓지 못한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러한 의문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은 채,

슈라우드는 그저 거대한 뼈무더기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이무기가 남긴 잔해더미의 뒤편에서는-


“................”


'몇 번이나 생각하지만, 역시 많이 약해진 건가.'


낭일의 형 중 파괴력으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낭룡연무를 사용한 것으로, 그의 몸은 한계에 봉착했다.


가슴은 터질 듯 요동치고, 호흡을 가다듬는 것이 어렵다.

물에 들어갔다 나온 듯 온몸에서 땀이 분출하여, 전신에서부터 뚝뚝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지여로 신체를 정돈하는 것보다, 내게는 더 급한 일이 남아있다.

그것은 이 전투에서의 부산물을 챙기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남겨놓은 토커의 상반신을 바라보았다.

그 또한, 마찬가지로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기술, 구전으로 들은 적이 있었지.”


먼저 입을 연 것은 그였다.

비늘이 반쯤 벗겨져 땅에 흩날리고 있는 그는,

다시 인간의 모습과 이성을 되찾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 뿐, 그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자에게는 자폭할 힘조차도 남아있지 않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그저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아니, 이것은 질문이 아닌, 확인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나는 내 짐작이 틀렸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알고 있다.


“..너희들.”


대개 이런 종류의 예감은, 짜증이 솟구칠 정도로 잘 맞는다는 것을.


“..’스텔라‘의 잔당이로군.”


그 말에,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크게 뜬 눈과 작게 벌린 입, 그 반응은 확실한 당황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는 그대로 눈을 떼지 않고,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마치 나와 마주하는 그 시선에서,

어떤 것을 읽어내려는 것처럼 보였다.


“.........”


그 시선을 받으며, 나 또한 침묵했다.

그 놀람이, 내 예상이 맞았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기 때문이었다.


“너희는 분명, '내'가 이대륙에서 지워버렸을 텐데.”


그 말에, 그의 입가가 천천히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분노, 황당, 여러 가지 감정을 담은 그 입의 끄트머리는, 이내 미소로 바뀌었다.


그 뒤로, 그가 메마른 웃음소리를 흘렸다.


“이건 걸작이로군, 설마 그때 댔던 이름이 정말이었을 줄이야...”


죽어가는 와중 마지막 힘을 쥐어짜낸 듯한 웃음소리는, 허공에 공허하게 흩어졌다.

그 뒤로 그는, 나를 다시금 바라보았다.


“..영광입니다. ’묵월랑墨月狼‘,

설마 본인을 뵙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름을 듣자, 그들 중 몇 명이 나를 그렇게 불렀다는 사실이 희미하게 기억났다.

그와 동시에, 불쾌한 과거도 함께 머릿속에서 소생했다.


스텔라, 마신의 팔, 마신의 종, 마신을 섬기는 광신교도들.

교회의 고위사제들에게까지 스며들어 있었던 그들은,

한때 보이지 않던 곳에서 대륙을 위협하던 악이었다.


그런 그들과 전투를 벌인 나는 그들이 세운 기지를 움막 하나에 이르기까지 모두

부수고, 그 광신교도들을 마을 주민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죽였다.


그 모든 것들은...

스텔라가, 그 빌어먹을 놈들이, 용사였던 내 스승을 죽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떠오르자, 정보를 얻는다는 목적은 희미해지고,

그저 눈앞에 있는 인간을 죽이고 싶다는 살의만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크림슨 세이버라는 이름 뒤에 숨어 있지만,

내게 있어 이놈은 그저 스텔라의 잔당이다.


그들을 죽이기 위해 체허의 형까지 만들었던 나는,

한때 나를 휩쓸었던 그 분노에 다시금 집어삼켜질 것 같은 감각에 빠지고 있었다.


“............”


그때, 피부를 훑는 격통이 전신을 타고 돌아다닌다.

감정이 격해져, 예의 전격이 다시 의식을 잠재우려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오히려 이 고통이, 이성을 유지하는 진정제가 되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쉬자, 어느 정도 몸에 가해지는 부담이 완화되었다.


이 상태.

분노로 인해 말을 할 수 있게 되고,

정신을 집중하여 의식이 차단될 위험을 줄인 이 순간,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가 딱 적절하다.


그렇기에 나는 심호흡으로 감정을 조절하며, 그에게 물었다.


“어째서 스텔라의 문장 중 하나만을 사용하고 있는거지?”


스텔라의 문장은 본래 원형이다.

그 원은 각자 7개로 분할되어 있으며,

그 안에는 한 가지씩의 도형이 새겨져 있었다.


검, 동전, 늑대, 사슬, 반지, 시계, 왕관.


그 중 검의 표식이 크림슨 세이버가 사용하고 있는 붉은 검의 문양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더 일찍 눈치채지 못했다고 반성하는 것은 언제 해도 늦지 않으니,

지금으로서는 그 문장이 분할된 이유에 대해 알아야 했다.


’어째서 마신의 문장이 7개로 분할되었는지, 셉타그램 웨지란 무엇인지,

이 놈이 살아있을 때 더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와중, 그가 내 질문에 다시금 웃으며 말했다.


“그렇군요, 묵월랑께서는 저희 주신께 처리되었었으니,

이 세계에 관해서는 잘 모르시겠군요?”


그 말이 거슬리기는 해도 냉정하게 해석하면,

내가 마신에게 패배했었다는 것은 스텔라의 잔당들에게 이미 알려진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이 일에 대한 일을 알고 있는 자를 스텔라의 잔당으로 추려내도 좋은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토커의 대답을 기다렸고,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럼..”


거의 사라져 가는 몸뚱이는, 더 이상 유예를 바랄 수 없어 보였다.

그렇기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받으며, 그는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말해줄 것 같습니까? 등신아.”


그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나는 사라지고 있는 그 몸뚱아리를 밟아 완전히 부숴버렸다.


’역시, 대답은 들을 수 없나.‘


그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들은 입 하나는 무거웠으니까.


“...............”


계속해서, 과거의 기분나쁜 기억들이 떠오른다.

냉정함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고자 한숨을 내쉰 다음, 입을 열어 말을 하려 했다.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것으로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확인한 뒤,


나는 주변에 떨어져 있는 리파인타이트를 집어들고

남매와 슈라우드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선을 돌려 완전히 무너져내린 크림슨 세이버의 기지를 바라보았다.

크림슨 세이버,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추한 악이었으며, 그렇기에 모두 부쉈다.


용에 이르려는 소원은 자신의 방해로 이무기에서 그쳤고,

그 불완전한 결과마저 꺾어버렸다.


그 모든 행동의 이유는, 저들을 한 사람 남기지 않고 베어가른 동기는,

’인간들의 행복에 있어 저들의 희망이 방해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옳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다만, 이 행동으로 누군가의 행복이 방해받지 않는다면,

이 정도의 죄는 얼마든지 짊어질 수 있다.‘


스승의 가르침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제는 없는 그 사람의 소망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 과정에서 죽인 이들의 원한이나 증오를 집어삼킬 각오는 이미 되어 있었다.


’나와 저들의 이상 사이에 있는 종이 한 장 차이를 벗어나면,

나 또한 저들과 다를 바가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던 와중, 뒤에서 슈라우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헤이즈 씨! 빨리 오세요!”


그 말과 함께 손을 흔드는 슈라우드는, 새벽녘의 빛을 등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스스로가 빛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착각에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그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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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30화: 광룡光龍 23.05.18 15 0 17쪽
29 제 29화: 이무기 23.05.18 21 0 15쪽
28 제 28화: 검劍 23.05.18 11 0 18쪽
27 제 27화: 자각, 각성 23.05.18 9 0 16쪽
26 제 26화: 불길한 발견 23.05.18 9 0 15쪽
25 제 25화: 위기, 다시 한 번 23.05.18 9 0 13쪽
24 제 24화: 원치 않았던 조우 23.05.18 9 0 13쪽
23 제 23화: 잠입 23.05.18 9 0 12쪽
22 제 22화:뜻밖의 위기 23.05.18 9 0 14쪽
21 제 21화:돌입 23.05.18 10 0 15쪽
20 제 20화: 입구에서(2) 23.05.18 9 0 12쪽
19 제 19화:입구에서 23.05.18 13 0 13쪽
18 제 18화: 도착, 그리고 진입 23.05.18 7 0 10쪽
17 제 17화: 옛날 이야기(2) 23.05.18 8 0 15쪽
16 제 16화: 옛날 이야기 23.05.18 8 0 12쪽
15 제 15화:여정(3) 23.04.25 14 0 16쪽
14 제 14화: 여정(2) 23.04.24 13 0 15쪽
13 제 13화:여정 23.04.23 16 0 13쪽
12 제 12화:출발(2) 23.04.22 17 0 11쪽
11 제 11화: 출발 23.04.21 19 0 13쪽
10 제 10화: 의뢰(3) 23.04.20 22 0 12쪽
9 제 9화:의뢰(2) 23.04.19 22 0 15쪽
8 제 8화: 의뢰 23.04.18 22 0 12쪽
7 제 7화:만남(3) 23.04.17 23 0 14쪽
6 제 6화: 만남(2) 23.04.16 25 0 13쪽
5 제 5화: 만남 23.04.15 24 0 15쪽
4 제 4화: 부활(4) 23.04.14 28 0 17쪽
3 제 3화 부활(3) 23.04.13 30 0 16쪽
2 제 2화 부활(2) 23.04.12 40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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