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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모음L 님의 서재입니다.

노년에 맛본 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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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모음L
작품등록일 :
2020.11.14 17:52
최근연재일 :
2020.12.06 02:54
연재수 :
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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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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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글자수 :
67,930

작성
20.11.24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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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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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적지않은 시간이 흘렀다(1)

DUMMY

적지않은 시간이 흘렀다(1)


1


눈앞에 판데라 영지의 성벽이 보였다. 처음 고블린의 습격 이후 별다른 일은 없었기에 편안하게 도착했다. 성벽은 다행히 자신이 알던 모습이었기에 걱정한 수십, 수백 년은 지나지 않은 거 같았다. 문지기가 자신이 알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춘식 할아버지. 죽은 거 아니었어?”


내가 사교도 토벌을 하러 갈 때 3년 차 병사인 ‘제인’은 내가 모험가 일을 하면서 자주 만난 지인이다. 그는 나를 보며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긴. 실제로 죽은 사람으로 처리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든 살아 돌아왔다. 아직도 클리아나에게 고백하고 있냐?”


그 말에 제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장갑을 벗었다. 그의 약지에는 반지가 끼워져 있다.


“이미 결혼하고 애까지 낳았어. 올해 2살이야.”

“오! 축하할 일이군. 결혼식에 못 간 게 아쉬워.”

“하하, 할아버지가 있었으면 분명 더 행복한 결혼식이었을 거야.”


그 말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제인과 대화하니 시간이 얼마 흘렀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제인에게 물었다.


“그래서, 내가 얼마 만에 복귀한 거지? 죽을뻔해서 날짜 감각이 사라졌어.”

“확실히 사교도 토벌을 하려고 했다가 동굴에 깔렸다고 했지···. 할아버지는 4년 만에 복귀한 거야.”


4년이라···. 터무니없는 시간은 아니지만 적잖은 시간이다.


2


제인과의 대화가 끝난 후에 나는 판데라 영지에 들어갔다. 여전히 물류가 오가는 중심부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그리움을 느끼며 모험가 길드로 들어갔다. 들어가니 시끄럽게 웃고 떠드는 모험가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런 그들 중 나를 아는 사람은 말을 끊고 귀신이라도 본 듯 끔뻑끔뻑 눈을 깜빡인다. 주위 동료들은 왜 그러는지 궁금해 시선을 향하고 같은 얼굴이 된다. 모험가를 상대하고 있던 르미나도 같은 얼굴이 되었다.


“...춘식 실버 모험가님?”


나는 웃으며 말했다.


“모험가 등급은 말소되었소?”

“어떻게 살아 돌아오신 것에요? 분명···. 의뢰를 같이 받은 실버 모험가님들이 동료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버렸다고···.”

“운이 좋아 살아 돌아왔소.”


나는 소환 해제를 했던 노움하고 이프리트를 불렀다.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귀여운 소녀들이 나타나자 르미나는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이내 두 소녀가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정령!”

“다행히 정령과 계약해 살아남을 수 있었소. 하지만, 부상이 심각해 지금 돌아왔지.”


올라운더와 결합해 초월자가 된 진실은 너무 이질적이라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거짓말을 했다고 오해받거나 사교도에 의해 되살아났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럴 바에야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능력을 보이는 게 나았다. 르마나는 끔뻑거리며 두 정령을 보았다. 나에겐 이능력이 없었다는 것을 접수원인 그녀가 누구보다 잘 알았으니까. 그 기분은 장학금 받고 학교 다니던 애가 가난한 집 아들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대기업 부장의 아들인 기분일 것이다. 이내 현실을 받아들이고 르미나가 경악하며 소리를 질렀다.


“말도 안 돼! 춘식 모험가님이 로리콘이라니!”

“..........?”


순간 르미나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로리콘? 어째서? 그러고 보니 일반인에게 정령은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잘못된 상식이 떠올랐다.


“오해다!”


정령은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게 아니다. 정확히는 정령사가 싫어하지 않는 모습으로 나오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 어린 소녀가 나온 이유는 내가 무능력자로 오랜 기간 모험가 일을 했기 때문이다. 이 세계는 10살만 넘어가도 이능을 쓰는 애들이 있다. 그 말은 내 생명을 위협하는 게 가능한 커트라인이 10살 이상인 것이다.


노움과 이프리트가 처음에 하급 정령일 때 그렇게 어린 나이로 소환된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이대로면 꼼짝없이 사회적으로 말살이 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르미나를 설득했다. 르미나는 언짢아 보이는 얼굴로 대답했다.


“,..일단 믿어 볼게요.”

“고맙소.”


절대로 믿고 있지 않은 얼굴이다. 허허···. 내 50이 넘어가는 걸 인지하자마자 이런 시련을 내리다니. 말할 신. 내 허탈한 얼굴과는 다르게 노움과 이프리트는 뭐가 좋은지 웃으면서 내게 안기며 얼굴을 비비고 있었다.


어느 정도 상황이 끝나자 모험가 등급이 말소되었기 때문에 재발급을 위해 나는 모험가에서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물론 옆에 이프리트하고 노움에 앉아 있었고 모험가들은 숙덕숙덕 나를 힐긋 보면서 대화하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짐작이 가지만 나는 일부러 무시했다. 그때 모험가 길드 문이 벌컥 열렸다.


“할아범!!!”


리즈티나의 목소리가 들려서 나는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여전히 붉은 머리를 가진 리즈티나가 보였다. 수유 중에 뛰쳐나왔는지 리즈티나의 가슴에 아기는 여전히 모유를 먹고 있었다. 아이가 있는 것을 보니 리즈티나도 결혼한 모양이다. 응? 잠만···.


“리즈티나? 설마 그 상태로 온 거야?”


르미나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아무리 아마조네스라도 이건 좀 위험하지 않나?


하지만, 리즈티나는 상관없다는 듯이 나에게 다가왔다. 무언가 많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 듯한 얼굴이다. 이때 르미나가 슬픈 목소리로 소리쳤다.


“리즈티나! 춘식 할아버지가 로리콘 이였어!”

“응? 무슨 소리야?”


르미나야···. 내 말 믿는다며. 르미나는 내 싸늘한 눈빛은 무시하며 열심히 리즈티나에게 설명했다. 증거로 내가 소환한 정령을 보면서. 다 들은 리즈티나는 말했다.


“그거 일반인들이 잘못된 상식이야. 정령은 정령사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 거부감이 안 느끼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거야.”


역시 리즈티나! 실버 모험가 짬밥은 잘못 먹은 게 아니구나! 하지만, 나는 알았어야 했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는 것처럼 알테라의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


“그리고 의뢰하면서 내 가슴과 엉덩이를 힐긋힐긋 보면서 언제 덮칠까 고민했던 할아범인데 로리콘이 아니지.”


이건 뭔 또 개소리야! 주위의 분위기가 다시 싸늘해진다. 두 정령만 빼고 나에게 보내는 눈빛 온도가 2도는 낮아진 느낌이다. 물론 의뢰를 하면서 리즈티나의 가슴과 엉덩이를 보긴 했다. 하지만, 그건 성적인 느낌이 아니라 그 나이에 발랑 까진 모습으로 거의 벗고 다니는 리즈티나한테의 못마땅한 시선이였다. 내가 미쳤다고 딸뻘인 여자한테 욕정을 품겠는가! 나는 이 어리석은 문제에 이의를 제기했다.


“오해다!”

“흐응? 그럼 그 뜨거운 시선은 뭐였는데?”

“네가 반 벗고 다니기에 걱정되어서 본거지! 아녀자가 그렇게 입고 다니면 큰일 난다고!”

“에이, 그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할아범은 어린양을 잡아먹으려는 늑대 같은 시선을 내게 보냈었다고. 하지만, 사실 그때 할아범이 날 덮쳤어도 난 받아들였을 거야. 그때 난 할아범 정도면 괜찮은 남자라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미안. 보다시피 난 이미 결혼한 여자라서 정조를 지켜야 해. 그러니까 미안해?”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리즈티나를 보고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천장을 보며 나직이 말했다.


“개판이네.”


3


실버 모험가를 재등록한 뒤 나는 혼돈 같은 모험가 길드를 빠져나왔다. 계속 그곳에 있다가는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른다. 모험가 길드를 나간 뒤에 예전에 무기를 구매했던 대장간과 잡화점에 들려서 생환 소식을 전했다. 다들 내가 오는 것을 반기는 듯했다. 뒤에 들리던 ‘이제 지갑이 저번보다 풍족해지겠군’은 무시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연금 공방이다.


점주는 날 보고 놀란 얼굴을 지었다.


“죽었다고 들었는데 살아 있었군요.”

“다행히 그대가 추천한 호신부가 제값을 해줬기에 무사할 수 있었소.”


내 말에 점주는 웃으면서 말했다.


“다행이네요. 제가 추천한 물품이 쓸모가 있었다니. 오늘은 무엇을 사려고 오신 건가요?”

“이번에는 딱히 사러 온 게 아니오. 그대 덕분에 살아 돌아왔다고 말하고 싶어서 온 것뿐이지.”

“그렇군요. 정령의 향기가 나는 거 보니 정령과 계약한 건가요?”


점주는 그러면서 내 양쪽에 있는 노움과 이프리트를 본다. 역시 마법사. 단번에 둘이 정령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아이들 덕분에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소.”


나는 두 정령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정령들은 너무나도 기뻐서 어쩔 줄 모른 표정이다. 점주는 그런 정령을 신기하게 보았다. 정령과 정령사는 어디까지나 계약관의 관계다. 서로 필요하기에 계약하는 것이다. 정령과 저렇게 친하여지려면 어마어마한 정령력을 가진 존재여야 한다. 하지만, 박춘식은 실버 등급을 달 동안 비능력자로 살았다. 그런 그가 갑자기 정령력이 넘쳐난다?


“기연을 얻으셨군요.”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진실과 허구가 섞인 말을 점주에게 말했다.


“운이 좋았소. 사교도들은 ‘유지의 신’의 성물을 이용해 무언가 하려고 했소. 나는 그걸 막기 위해 몸을 날려서 일회용인 5급 마법기를 썼지. 당신이 추천해준 호신부가 아니었으면 그때 죽었을 거요. 눈을 뜨니 난 무너진 동굴에 있었고 이 두 정령이 날 지키고 있었소. 아마 그 동굴에 이 두 정령을 봉인했던 물품이 있었고 마법기의 충격에 이들이 나왔던 거 같소. 그 뒤 이들의 도움을 받아 나는 살아 돌아온 거요.”


나 자신의 능력을 각성한 게 아니라 미지의 물건으로 정령을 얻었다는 쪽으로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느 능력에 재능이 없던 실버 능력자가 갑자기 능력이 생기는 건 말이 되지 않으니까. 내 말에 점주는 놀란 얼굴로 두 정령을 보았다.


“정령을 봉인해둔 물품은 처음 듣는데···. 학회에 보고해야겠군요.”


응? 처음 듣는다고? 나는 순간 뒤가 섬뜩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15인의 기억 중에 정령 군주의 적들이 그런 무기를 썼었는데 이 알테라에 오기 전에 싹 조졌고 기록을 말살했다. 그래도 각 차원이 전이해 오는 이곳 알테라의 특성상 비슷한 물품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처음 듣는다고?


내 당황한 모습과는 달리 점주는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뱀처럼 슬금슬금 다가왔다. 노움과 이프리트가 내 불안감을 눈치챘는지 점주의 앞을 막았다. 하지만, 점주에게는 그 모습이 마치 실험용 쥐가 자신 앞에 나타난 느낌!


“학회의 보고를 위해 잠시 저랑 같이 이야기 나눌까요? 거기 귀여운 정령님들도?”


고블린들과 차원이 다른 박력에 두 정령의 의지가 순식간에 꺾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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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골드 등급 모험가 시험.(1) +1 20.11.29 54 2 10쪽
10 적지않은 시간이 흘렀다(2) +2 20.11.28 53 4 12쪽
» 적지않은 시간이 흘렀다(1) +2 20.11.24 54 2 11쪽
8 나는 박춘식이다 +2 20.11.22 40 4 11쪽
7 올라운더(3) +1 20.11.22 47 3 9쪽
6 올라운더(2) +1 20.11.17 66 3 12쪽
5 올라운더(1) +1 20.11.16 58 3 16쪽
4 사교도 토벌작전(2) +1 20.11.15 51 3 13쪽
3 사교도 토벌작전(1) +1 20.11.14 66 3 12쪽
2 쥐뿔도 없는 노년의 모험가. +2 20.11.14 117 5 12쪽
1 프롤로그 +2 20.11.14 108 4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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