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도 임시정부 산하 인도국민군 숫자와 무장 정도는 차이가 있긴 하겠죠. 이전에 독자들이 다룬 임팔 전투에 대한 시나리오를 보더라도 인도국민군이 크게 싸울테고 동족과 가족간 비극이 클테니깐요.
힘러와 하이드리히는 우크라이나 알지만 이들 모두 인내심에 한계가 달했죠. 하이에도 본보기는 필요하다 느낄것이고 명분을 밀면서 아예 점령하는 것으로 굳힐거예요.
이런 움직임이 여러곳에서 신호가 나오고 우크라이나 국민정부 내에서도 충분히 고민이 되겠죠. 이들은 이미 소련과 파국인건 알지만 독일에 의존한 현실에 부담이 되는건 마찬가지입니다. 소련은 고엽제등으로 더이상 자비가 없음을 밝혔고 독일이 군침 흘리는데 선택할 카드가 없으니...
어찌되든 우크라이나 합병시도는 늦어도 1941년 대공세 이후 1년뒤 벌어질 것이며 폴란드 합병과 봉기토벌이나 군부 쿠데타는 1943년으로 생각 됩니다.
이때면 독일의 공세가 막히고 소련이 대반격을 하니깐요. 소련은 대규모 랜드리스없는 한계가 있기에 드네프르강 동안과 스몰렌스크 탈환이 한계지만 이정도면 독일 패망이 인식되며 군부 쿠데타가 날것이니깐요.
거기다 폴란드는 계속된 독일수탈에 인내심 바닥나고 민족주의 운동이 터져나오기에 봉기도 그때쯤에 터질수 밖에 없죠. 조금만 봉기가 1942년에 터지고 1943년 군부쿠데타 뒤인 1944년에 터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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