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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최근연재일 :
2024.09.18 18:00
연재수 :
15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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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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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글자수 :
723,372

작성
23.08.0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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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바빌론 대혁명 (3)

DUMMY

“제대로 온 거 맞죠?”


[옥황이니 뭐니 그런 신 말은 안 들어도 된다고 한 게 누구더라?]


“아니, 이게 상식적으로 올바른 상황은 아니잖아요? 게다가 여긴 마계라고요!”


이찬 일행은 자신들의 앞에 펼쳐진 경색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계, 바빌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평화로운 세상.

형형색색의 마을 입구의 표지판이 그들의 시선을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Babylon Town.


직역하면 바빌론 마을.

즉, 그들은 가타부타할 것 없이 마계로 너무도 잘 찾아온 것이었다.

심지어는 마을을 지키는 문지기 하나 없이 환하게 열린 대문을 보며 네 명은 멍하니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때, 가스페르가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고는 일행에게 말했다.


“이······· 일단 들어가보죠?”


마을의 입구로 발걸음을 옮긴 네 사람은 마을 내부로 돌입했다.

네 사람 모두 아직까지 의심을 풀지 못하겠다는 듯 조금은 낮은 보폭으로 마을을 거닐었다.

마을의 내부는 당연 외부와는 차원이 다르게 번화로웠다.

빼곡히 들어찬 주거지역과 더불어 곳곳이 보이는 상인. 듬성듬성 보이는 동물들까지.

어디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완벽한 마을의 형태였다.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요?”


게다가 마계의 상징이라 불리는 성마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입구는커녕 어두운 기색 하나조차도 찾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모든 주민들이 그들에겐 시선도 주지 않고 제 할 일만 알아서 한다는 것.

마치 그들이 없는 존재인 양 눈치를 주지도,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지도 않았다.


“내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삼십 분 뒤에 이곳에 다시 오겠습니다.”


가스페르는 한마디를 남기고는 그들이 서 있던 마을의 왼쪽으로 달아나듯 움직였다.


[여기서 갈라져야겠네. 난 이노 데리고 오른쪽으로 갈게.]


순찰을 위해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찬이 향한 앞쪽, 그러니까 북쪽에는 마을의 입구와 다를 것 없이 평화롭고 화목한 공기뿐이었다.

심지어 모든 주민들이 이곳을 바라보지 않는 것까지도.


[여긴 어디냐?]


이찬의 몸에서 바람처럼 스르르 빠져나온 풍백이 이찬에게 물었다.


“아니 여기가 마계래요!”


이찬이 풍백에게 호소하듯 일렀다.


“여기가 어떻게 마계냐고! 그리고 더 어이없는 건 여기 사람들은 저한테 관심이 없어요. 저를 없는 사람 취급한다니까요?”


[확실히······· 이상하긴 하네.]


“그쵸? 여기가 아닌가?”


그때, 전 마을 주민들이 일제히 이찬을 바라보았다.

물건을 팔던 상인도, 빨래를 널던 여인도, 공을 차고 놀던 아이도, 모두가 똑같이 소름 돋는 무표정으로 이찬을 바라보았다.


“이거 엿 된 거 같은데요?”


[튀어.]


“예?”


[빨리!]


풍백의 일갈과 동시에 이찬이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타닷!


그와 동시에 이찬을 바라보던 주민들이 이찬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뭔데?”


이찬의 옆에서 날아 다니던 풍백이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엿 됐군.]


“으아아아아아아!”


거의 날듯이 달리는 이찬의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폭발하는 흙먼지.

그리고 저 멀리 사이로 한 점이 드러났다.

그 점은 점점 이찬에게 가까워지더니 이내 사람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차아아아아아아안!”


“가스페르?”


서로의 바로 앞에서 멈춘 이찬과 가스페르가 말도 않고 서로 등 뒤를 맞댔다.


“제압만 할까요?”

“아뇨, 죽여야 합니다.”

“그래도 무고한 주민들을·······.”

“아뇨. 저건 무고한 주민들이 아닙니다.”


순간 가스페르의 안광이 빛나며 주민들의 진면목을 파헤쳤다.


“괴물·······.”

“괴물?”

“저것들은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들입니다. 흔적도 남기면 안 돼요.”


가스페르의 눈은 남들과 다른 면목이 있었다.

그런 가스페르를 잘 알고있는 이찬은 일도 주저하지 않고 검을 뽑았다.

공중에서 뽑혀 나온 기도가 웅장한 검명을 토해냈다.

이에 질세라 가스페르의 인시터애로우가 가스페르의 뒤에서 황금빛을 내며 그의 손에 들렸다.


“시작하죠.”


동시에 왔던 길을 박차고 나간 둘이 무쌍난무를 펼쳤다.

이찬의 기도가 자비없이 주민들의 목을 베었다.

베인 목에서 울컥울컥 피가 솟구쳤고 인간의 형상이던 주민들은 목이 잘리자마자 보라색의 붉은 괴물로 화했다.


‘이래서 죽여야 한다고 했던 건가.’


목이 잘린 주민의, 아니 괴물을 보자 가슴속 남아있던 일말의 자비마저 사라졌다.

검을 다시 잡은 이찬의 눈에 보기 힘든 귀기가 서렸다.

그 격을 마주한 괴물들이 한발짝 물러섰고, 이찬은 그 틈을 놓지 않았다.


촤악!


하나의 목을 더 베자 괴물들도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결국 그들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곤 이찬을 향해 달려들었다.


키에에에엑!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괴물을 단칼에 썰어버린 이찬의 위로 붉은 피가 엎어졌다.

진한 피비린내를 풍긴 사체의 피가 여전히 뜨거웠다.

입에 들어온 고인 피를 뱉어낸 이찬이 다시 한번 괴물들과 맞붙었다.

일대 다수의 싸움은 겪어 본 적 없는 이찬이었지만 이 상황이 더없이 익숙했다.

괴물의 날카로운 발톱과 이찬의 기도가 파찰음을 내며 부딪혔다.

꽤나 단단한 듯 발톱은 쉽게 잘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이내 이찬의 뒤에서 같은 발톱을 뽑아 든 괴물 하나가 더 달려들었다.


화아아아.


이찬의 몸이 순식간에 바람으로 화하며 날아드는 발톱을 여유롭게 흘려보냈다.

풍백이 이찬에게 전해 준 회피에 특화된 격.

「풍화」였다.

순식간에 괴물들의 뒤를 잡은 이찬이 재차 기도를 쥐었고 광개토대왕의 모든 격을 발현하여 일 검에 괴물의 사분지 일을 멸절시켰다.


“흐앗!”


기합을 내지른 이찬이 여러 차례 검을 내질렀고 순식간에 괴물들이 피를 토하며 반으로 갈라졌다.


“크웨에에엑!”

“그아아아악!”


개중에는 비명까지 토해내며 고통을 호소하는 괴물들도 있었다.

얼마 남지않은 괴물들이 서로를 바라보더니 확신하는 듯 다시 이찬에게 달려들었다.

오히려 다수일 때보다 더 강하고 확신에 찬 공격이었다.

빠른 속도로 날아든 발톱을 왼쪽으로 몸을 움직여 피하고는 단칼에 검을 아래에서 위로 치켜올리며 목을 베었다.

머리가 공중을 날았고, 이찬은 괴물들이 당황한 일 초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중력장」이 발현되자 괴물들이 피하거나 타격하는 속도가 늦어졌다.

「중력장」을 맞은 이들이 괴물이 아니라 인간이었다면 자신이 느려진 것을 확연히 직감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찬을 상대하는 이들은 멍청한 괴물들이었다.


“키에?”


이들은 자신이 느려졌다는 것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채 이찬의 속도가 빨라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덕에 이찬은 느려진 괴물들의 머리를 차례차례 썰었다.


“후.”


해치운 괴물들을 일별한 이찬이 혹시나 힘들 가스페르를 향해 전력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이찬의 우려와는 달리 도착한 곳에는 쓰러진 것들의 가운데 우뚝 서 있는 가스페르와 꽂힌 여러 발의 화살만이 가스페르를 장식하고 있었다.


“가스페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문득 뒤를 돌아 본 가스페르가 미소를 지으며 이찬에게 다가왔다.


“무사히 끝내셨군요.”

“예, 그나저나 이것들은 다 뭘까요?”


인간 형상의 영혼인 척을 하던 괴물들을 힐끗 일별한 이찬이 자신의 턱을 매만졌다.


“아무래도 벨리알의 수작질이겠죠? 마계의 본거지에 이런 평화로운 마을이 있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니까요.”


동의하는 끄덕임을 표한 가스페르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세히 보니 급조한 마을이라는 것이 군데군데 티가 났다.

맞지않게 쓰러진 집들이라거나, 팔리지도 않을 것 같은 쓰레기들을 진열대에 전시해 놓는다거나.


“일단 주변을 더 수색해 보죠. 위험하니 동행으로.”


문득 이찬은 무언가 생각났다.


“어 근데······· 우사는·······.”


“어?”


불현듯 생각난 우사의 존재가 이찬을 혼돈에 빠뜨렸다.


“이······· 일단 우사부터 찾죠.”


고개를 여럿 끄덕인 가스페르가 약 20분 전 우사가 나아간 방향으로 날아가듯 뛰었다.


“근데 이찬은 상상력 소모가 많지 않습니까? 언뜻 위력만 봐도 보통 상상력이면 몇 번 쓰지도 못할 것 같은데요.”


이찬은 고개를 갸웃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프로필을 켜 봐도 상상력은 표기가 안 되어 있더군요.”

“잘 알지는 못하지만 상상력이 굉장히 높은 것만은 확실하네요.”

“이렇게 시간 끌 때가 아닙니다. 한시라도·······.”

“빨리 가죠.”


다시 바닥을 박차고 나아간 둘은 피비린내가 나는 어딘가에서 멈춰 섰다.

역시나 그곳은 우사가 간 마을의 거의 외곽 방향.


“크와아아앙!”


범상치 않은 짐승의 울음소리를 들은 둘은 이노와 우사가 근처에 있음을 확인하고 소리의 방향을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마침내 도착한 곳에는 역시나 찰박이는 피로 이루어진 웅덩이들이 곳곳에 포진했고 역시나 목이 잘리거나 무언가에 물어 뜯긴 듯 상반신이 없는 괴물들의 사체가 널부러져 있었다.


“들어가죠.”


북받치는 역겨움을 참은 가스페르가 묵묵히 걸어가는 이찬의 뒤를 따라 걸었다.


촤아아악!


어디선가 물이 흩날리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무언가의 울음소리도 겹쳐 들려왔다.

빠르게 발을 옮긴 이찬과 가스페르의 앞에 납득할 수 없는 장경이 재생되고 있었다.


[크허억.]


고통스러운 듯 신음을 내뱉으며 가까스로 무언가의 손아귀에서 뿌리쳐 나온 우사. 그리고 품 안에 잠든 듯 쓰러진 이노.

옆에는 여러 공룡이 쓰러져 꿈틀대는 진풍경이 그들을 맞이했다.


“우사!”


다급히 우사를 부르며 달려간 이찬의 앞에 집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모습이 드러났다.

마을과 불과 3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는 황폐화된 듯 썩어가는 식물과 텁텁한 흙바닥. 완전히 무너져 형태를 알아 보는 것이 진귀할 정도의 집.

그야말로 지옥도가 따로 없었다.

그리고 지친 듯 거친 숨을 연신 내뱉는 우사의 앞엔 마침내 이찬에게서 아윤을 앗아간 장본인이자 대 마계의 마신이라 불릴 자격을 갖춘 마신 벨리알이 우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이찬·······?]


“금방 갈게요! 그러니까 조금만—“


[오지마!]


달려나가려던 이찬이 일순 멈췄다.


[달아나. 어서!]


그토록 겁에 질린 우사의 표정을 본 적이 없었다.

입술을 짓이긴 이찬이 또 한번 처참한 광경을 목도했다.

이찬을 바라본 벨리알의 광포한 미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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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백룡 (2) 23.08.28 37 0 10쪽
61 백룡 (1) 23.08.27 40 0 10쪽
60 바빌론 대혁명 (9) 23.08.26 28 0 9쪽
59 바빌론 대혁명 (8) 23.08.20 32 0 10쪽
58 바빌론 대혁명 (7) 23.08.19 38 0 13쪽
57 바빌론 대혁명 (6) 23.08.14 3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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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바빌론 대혁명 (2) 23.08.06 3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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