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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앤피자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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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소파앤피자
작품등록일 :
2022.12.25 16:12
최근연재일 :
2023.05.26 06:00
연재수 :
150 회
조회수 :
6,173
추천수 :
158
글자수 :
804,680

작성
23.03.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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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84화

DUMMY

마랑가뚜의 묘한 표정을 보니, 이미 그의 내적 갈등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족장은 여전히 아무 말도 없이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서있었다. 그와 달리 뒤에 모여 있는 다른 부족민들의 얼굴은 분노에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만큼 위협적인 분위기가 흘렀다.


그때, 마침내 침묵을 유지하던 마랑가뚜가 입을 열었다.


“굳이 그렇게 알려주지 않아도, 슬쩍 흘려내기만 했어도 알아서 그 미끼를 물어버렸겠지. 그렇지 않은가?”


처음에 자신이 했던 생각을 그대로 읊는 족장에게, 로단은 묵묵히 대답했다.


“그럴 수도 있었겠죠.”


그는 족장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것이 이곳으로 몸소 찾아온 이유였으니까. 그리고 담담한 목소리가 그대로이기를 바라며 말했다.


“그래도 마지막 예의와, 조금 남아있는 양심으로 왔습니다. 이 말을 듣고도 당신이 그곳에 가서 죽는다면 그건 당신의 결정이겠지만, 제가 그렇게 의도했으니까요.”


생각했던 것보다도 평온히 나온 말투는 싸늘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본인도 조금 놀랄 정도로. 그러나 도리어 이것이 나았다. 무엇이든 간에 어설픈 동정심에 기댔다가는 양쪽모두 좋지 않게 끝날 것이다.


그 후로 잠자코 족장의 답을 기다렸다.


그는 한참동안이나 조용했다. 주름진 얼굴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그의 마음 한 구석은 충분히 그를 기다려주고 싶었지만, 혹시 모를 사건을 대비해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가야 했다. 그렇게 생각한 로단이 다시 물었다.


“갈 겁니까?”


길어지던 침묵과 달리, 이번에는 바로 즉답이 날아왔다.


“그리 할 것이다.”


담백하기까지한 대답에 로단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구겼다.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본인이라는 걸 생각하면 다소 모순적인 반응이었다.


그는 그 감정을 ‘답답함’이라고 정의했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때로 잔인한 융통성은 필요한 법이었다. 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고 그 이치를 따르려고 노력해왔다.


“어째서입니까?”


그의 침착한 목소리가 미세하게 거칠어져 있다. 하지만 그렇게 반응하도록 만든 당사자는 전보다도 평온하게 답할 뿐이었다.


“사람들은 안정을 되찾았지. 굶주림과 고통밖에는 없었던 그 시절을 잊어버리고 없었던 일로 만들고 싶어 했고, 그러면서 ‘과거’는 그저 아픈 기억을 되새기는 매개체가 되어버렸다.”


그의 시선에 씁쓸한 빛이 스쳐지나갔다.


“이미 모든 것을 헤쳐 나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무시하고 조롱할지도 모른다. 또 전통을, 과거를 중요시하며 그것에 눈이 멀어 모두가 힘을 합칠 때에 어리석게 굴고 있다고 비난할지도 모르지.”


반박하기 위해 들썩였던 로단의 입술은 결국 떨어지지 않았다. 그의 뒤에 서있는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듣는 것밖에 없었다.


방금 전까지 위협적인 태도를 유지하던 부족민들은 어느새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그들의 족장이 결정을 내렸다. 그 사실은 그들이 무기를 들었던 손을 도로 내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러나 과거 또한 현재와 미래만큼이나 중요하다. 사람들은 그 중요성을 잊고 현재와 미래에서 살고 있지만, 그러니 과거에 살고 있는 사람들 또한 있어줘야 하지 않겠나?”


노인은 그 나이대의 사람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강인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로단의 바로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아직 건강한 근육은 붙어있었지만, 나이가 들어 마른 체형인 남자가 주는 위압감은, 신체의 크기와 상관없이 강력했다.


“우리는 전사다. 싸우다 죽기위해, 지키다 죽기위해 살아가는 자들이지. 비록 자네가 포르테 민족과 동맹을 맺어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후회는 없다. 그곳에서의 죽음이 우리의 전통에 대한 집착의 결과라면 받아들여야겠지.”


프레스코가 설립하면서 가장 먼저 사회적으로 고립시켜야 했던 세력은, 새로운 시대를 거부하는 이들이었다. 아무리 과거에 머무르고 있다고 한들, 그들은 이미 그 부당함에 대한 분노를 지니고 있었다.


평온한 목소리로 자신의 죽음을 말하는 마랑가뚜를 보면서, 로단은 속에서 또 무언가가 끄물끄물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슬픔도 죄책감도 아니었다. 그저 방금과 같이 지독한 답답함이었다.


생존할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지 간에, 그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는 하필 그 중에서도 가장 비참하고, 의미 없는 선택을 했다.


그럴 것이라 예상했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 이곳에 왔지만 오히려 앞에 서있는 로단이 대신 씁쓸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동안 대화가 끝냈다고 생각한 족장은 등을 돌리고 멀어지려는 기색을 보였다.


로단은 그가 왜 그렇게 미련하게 행동하는지를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들이 계획대로 하지 않을 가능성을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여기서 질문을 더 한다고 해서 족장의 마음이 바뀔 것 같진 않았다. 그래서 물었다.


“그곳에 가겠다는 건, 그렇게 지키고 싶다는 과거를 끝내겠다는 겁니다. 죽여 달라고 그 앞에 가서 손을 흔드는 꼴이죠. 그래도 갈 겁니까?”


로단의 목소리에, 족장은 멈추어 섰다. 에이스는 잘 되어가는 통에 안심하고 있다가, 갑작스런 돌방행동에 미세한 인상을 썼다. 그와 달리 클로이는 걱정과 애정이 섞인 눈을 하고 있었다.


애초에 그녀가 반란군에 가담을 했던 것은 세상의 변화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로단이 하려는 일은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조금이라도 그에게 유용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은인이었으니까.


그러나 로단은 대부분 냉정한 선택을 하면서도, 때로는 그 선택에 흔들렸다.


부자연스러운 침묵을 유지하다가 뒤늦게 뒤돌아 본 노인은 말했다.


“무엇이 묻고 싶은 겐가?”

“이해하고 싶은 겁니다.”


바위처럼 무겁게 떨어지는 말투에 에이스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에는 이성을 잘만 차리던 놈이, 요새 피곤해보이더니 정신을 놓은 모양이다. 계획에서 일탈해버린 로단을 말려야하나 고민하다가, 문득 클로이와 눈이 마주쳤다.


클로이는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그대로 둬요.


짙은 올리브색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에이스는 떨떠름했지만 그녀의 말을 듣고 나쁜 꼴을 본적은 없으니 잠자코 기다렸다.


“난 욕심이 많은 인간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의 사회를 또 흔들고 있는 자네를 이해하는 것도 힘들지.”


족장은 잠시 조용해졌다. 그 후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쩌면 그것도, 자네가 우릴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겠지.”


그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로단은 서서히 멀어지는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봤고, 그것이 그들이 나누었던 마지막 대화였다.


성공적으로 원하던 결과를 유도했음에도, 그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 때문에 푹 가라앉은 분위기는 그대로 남아서 폴트로 돌아오는 동안에도 오고가는 목소리가 없었다.


그 와중에 서로 포개고 있는 로단과 클로이의 손을 발견한 에이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들의 관계를 축하했지만, 마냥 좋지도 않았다. 두 사람은 각자 중요한 위치에 있었고, 방금의 일로 그들은 서로의 결정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보여줬다.



***



폴트에 도착한 후 에이스와 클로이를 돌려보내고, 로단은 홀로 그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의 발걸음은 망설임 없이 침실로 직행했다.


폴트에서 가장 크고 보안이 잘 되어있는 방이다. 원래는 이대로 쓰지 않고 공사를 해서 방의 수를 늘리려고 했지만, 그들이 모두 뜯어말리고는 반강제로 집어넣어버렸다. 앞으로 고생을 많이 할 테니까 그 보상을 지금 미리 받으라며.


가족이 늘어났다고 생각했다.


절대 그들 앞에서 하지 않는, 하지 않을 말이었다. 그냥 낯간지러우니까. 로단은 원래 애정표현에 약했다.


잠시 후 그는 탁자 위에 있는 술병을 열어서 몇 모금을 들이마셨다.


가끔 잠에 쉽게 들지 않을 것 같으면 이렇게 했다. 생각이 많아지거나 신경 쓸 것이 많아지면 어쩔 수 없었다. 스트레스가 수면제를 먹을 정도는 아니고, 애초에 약을 먹으면 몽롱한 기분이 싫어서 피했다.


무엇보다 약 하나하나가 물보다 중요할 때에 자신을 위해 낭비할 수는 없었다.


마침내 침대에 누운 그의 눈꺼풀에 서서히 무게가 더해지기 시작했다. 곧 깊은 잠기운이 그를 집어삼키는 것을 느꼈다.


로단이 평온한 숨소리를 내며 잠에 빠져들었을 때, 방문 앞에 클로이가 서있었다. 그녀는 한참 문을 두드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몇 번을 들어 올렸던 손을 내리고 되돌아갔다.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혹시 그가 잠에 들었을 지도 몰랐다. 아무래도 피곤해 보이던 얼굴을 생각하면 그럴 확률이 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심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도와주고 싶었는데.


클로이는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



후두드를 포함한, 현재 에이스의 지휘 하에 대기하고 있는 ENM은 마카누두가 적진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저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이곳에서 2 마일만 더 전진한다면 프레스코로 이어지는 길을 볼 수 있었고, 그들이 할 일은 어렵지 않았다. 마카누두가 전투를 벌이는 동안에 미리 알아둔 옆길로 새어나가 안으로 들어간 다음, 미리 대기하고 있는 존슨박사와 카터를 데리고 빠져나오는 것이 전부였다.


그들에게 폭탄과 같은 시선을 끌 수 있는 무기들도 잔뜩 주어줬으니 성공적으로 끝낼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마카누두에게는 결국 좋은 결과가 되지 못할 터였다.


“......”


묵묵히 주변을 관찰하던 에이스는 문득 마랑가뚜와 눈이 마주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겨우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거리였으니, 착각일 확률이 컸다.


에이스는 요새 자신 또한 감성적이 된 것 같다는 생각에 혀를 짧게 찼다. 그 후 떨떠름한 얼굴로, 두 눈을 잠시 가렸던 망원경을 내려서 옆 사람에게 내밀었다.


곧 마카누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을 확인한 에이스는 뒤에 있던 대원들에게, 몸을 숨기고 그의 신호를 기다리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시작을 알릴 소리를 잠자코 기다렸다.


그렇게 때를 기다리던 사람들 사이로, 어느 순간 거대한 굉음이 공기를 뚫고 날아왔다.


쿠쿵-


폭탄 소리였다.


앤드류는 명령을 기다렸고, 에이스는 여전히 신호를 주지 않았다.


콰쾅-


그리고 또 한 번의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을 때, 에이스가 수신호를 내렸다. 그와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그 신호를 따라 체계적으로 이동했다.



***



옆길로 몸을 숨기고 천천히 지나가면서, 원치 않아도 마카누두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자세히 목격할 수 있었다. 그건 싸움이 아니었다.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아무리 강한 무기들을 손에 쥐어줬다 한들, 프레스코에게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전통을 고집했던 그들은 그런 무기에 익숙하지 않다.


에이스는 로단이 이곳에 있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로단은 이 광경에 흔들리진 않아도, 확실히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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