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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앤피자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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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소파앤피자
작품등록일 :
2022.12.25 16:12
최근연재일 :
2023.05.26 06:00
연재수 :
150 회
조회수 :
6,175
추천수 :
158
글자수 :
804,680

작성
23.03.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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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76화

DUMMY

그 말에 순식간에 눈빛이 흔들리던 에이스의 목소리는 곧 엄청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연기에 재능이 있었지만, 의외로 한번 걸리면 무너지는 타입이었다.


“...아아아니? 전혀 아닌데?”

“고른다기보다는 관찰하고 있던데?”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온힘을 다해 머리를 굴리느라,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 사이에 앤드류는 말했다.


“걱정 마. 나만 알아차린 것 같으니까. ‘아직’은.”

“‘아직’을 강조하는 것 보니 뭔가를 원하고 있는 것 같네. 보통 바로 죽이거나 감금시키지 않나?”


결국 그는 연기를 때려 쳤고, 그 말투는 입장에 맞지 않게 아주 당당했다. 뻔뻔하게 나오는 에이스를 잠시 노려보던 앤드류가 금방 원래의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그 후에도 경계심을 숨기지 않은 채 물었다.


“대체 이곳에는 왜 온 거지?”

“그건 우리 보스가 정할 일이고. 보스가 사겠다고 정한다면 사야지.”

“네 보스를 꽤 믿는 모양이군?”

“뭐, 그렇지. 뭘 원하냐니까?”


그때, 가만히 서있는 그들을 의아하게 보는 시선이 몇 있었다. 그 시선은 앤드류가 에이스의 팔을 잡아 끌어당기며 다시 걷기 해서야 거두어졌다.


시간이 조금 지나 또다시 둘이 남았을 때, 에이스는 그 손을 거세게 뿌리치면서 삐딱하게 말했다.


“뭘 원하냐고.”


보통 누구에게나 능글거리며 여유로운 미소를 보여주는 편이지만, 이렇게 동료가 아닌 누군가에게 주도권을 잃었을 때에는 때로 날카롭게 대응했다.


그런 에이스의 성향을 빠르게 눈치 챈 앤드류는 묵묵히 뒷걸음질을 쳐서 그들 사이에 공간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어진 질문은 좀 의외였다.


“돈이 필요해?”


에이스은 미간을 좁힌 채로 되물었다.


“왜?”

“네가 사줬으면 하는 애가 있어.”


이건 또 뭔 개소리야?


갑작스러운 제안에 어이가 없어진 에이스를 무시하고, 그는 제 할 말만을 이어갔다.


“사무엘이란 아이야. 10살짜리 어린놈이지. 그런 어린애들은 빌리는 게 아니라 아예 살 수도 있어.”

“잠깐만, 지금 뭔 소리 하는 거야?”

“나도 네놈을 처음 봤고, 솔직히 말해서 못 믿겠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없어. 바이러스 때문에 다른 의뢰인은 다 끊겨버려서 어린애를 데리고 나가줄 사람이 없어.”


이런 부탁을 할 사람은 또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에이스가 사무엘을 떠나보낼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돈이 필요하다면 주고, 군대를 빌려갈 때 더 싸게 살 수 있도록 최대한 힘을 빌려주지. 원한다면 둘 다 해주겠어.”


반은 당황해서 나머지 반은 경계심으로 이상한 표정을 하고 있는 에이스에게, 그는 조용히, 하지만 힘을 실어 경고했다.


“물론 대장이 이것에 대해 알게 되는 경우에 난 죽게 되겠지만, 그전에 네 목은 같이 물어뜯고 죽을 거다.”


하.


그 섬뜩함에 에이스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지금까지 협박은 셀 수도 없이 많이 들었다. 로단을 만나기도 훨씬 전부터. 그건 굳이 저 말에 두려움을 느낄 만큼 어리숙하지 않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진심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에이스는 일단 앤드류를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난 결국 보스 말을 들어야 돼. 뭔가 착각하나 본데, 선택권은 나한테 없어.”

“그럼 네 보스한테 그렇게 전해. 나쁜 거래는 아닐 거야.”


점차 흥분하던 그가 이제야 진정했다. 그것을 확인한 에이스가 바로 반박했다.


“얘가 누군 줄 알고? 그 사람도 허락 안 해줄걸?”


도저히 제대로 된 설명 없이는 도와줄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그는 혀를 짧게 차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멍청한 놈이 걸리면 좋았을 텐데.”


그 이후로도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을 하고 있는 에이스를 향해, 결국 자세한 사정을 털어놓았다.


“이미 눈치 챘겠지만 여기는 강한 사람만 살아남아. 약한 애들은 죽거나 훈련용 인간이 될 뿐이지. 사무엘은 태어나자마자 이곳으로 와서 어렸을 때부터 내가 돌봐주었던 아이고.”


안쓰러운 처지긴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도와줄 수는 없었다. 이 세상에 그런 아이는 한 둘이 아니었다. 그렇게 죽어나가는 건 위험지역이나 버려진 곳에서도 몇 번이고 봤던 광경이다.


에이스 본인도 그런 위험에서 살아남았고, 그의 여동생인 엘리너는 살아남지 못했다.


강한 자가 살아남고 약한 자가 희생하는 것은, 어디든 똑같다는 소리였다.


“사정은 딱하지만, 그럼 네가 훈련시켜주면 되잖아? 아니면 너처럼 살게 하고 싶지 않은 건가?”


한 편으로 결례를 범하는 말이지만, 온갖 일을 다 겪어본 앤드류는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그저 심각하게 가라앉은 기색으로 대답했다.


“얘한테는 미안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야. 이 삶은 확실히 자유와는 멀고 잔인하지. 그래도 그래서 살아남을 수 있어. 게다가 차라리 내 앞에서, 내 눈에 띄는 곳에 있는 게 더 마음이 편해.”

“그럼 대체 왜?”


그는 생각하기 싫은 것을 떠올린 듯 험악하게 인상을 썼다. 분노나 싫증이라기보다는 소중한 사람에 대한 속상함에 가까웠다.


“얘가 아파. 바이러스가 터지기 전에 C지역으로 넘어가 검사를 받게 했는데, 천식이 심하다고 했어. 여기서 몸이 약하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해.”


어느새 에이스는 조용해졌다. 앤드류는 묵묵히 말을 이어갔다.


“지금까지는 군용이 아니라 잡일용으로 숨기고 데리고 있지만, 얼마 전에 비슷한 아이가 걸렸어. 곧 전체적으로 수색을 한다고 했고, 만약 들키게 된다면... 그 아이는 죽어.”


우울하게 쳐진 두 눈에는 가족의 애정이 담겨있었다. 그 시선을 마주하는 에이스의 눈이 덩달아 미세하게 흔들렸다. 당황도, 그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아니었다. 과거의 여동생이 그의 머릿속을 조금 어지럽혔다.


게다가 10세라니? 그녀의 생전나이와 똑같았다.


과거에서만 살아가는 여동생이 갑자기 생생히도 떠올랐다. 엘리너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앤드류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갔지만, 개인의 감정을 결정에 스며들게 해서는 안 됐다.


“그냥 네가 여기서 함께 나가면 되잖아? 몰래 데려갔었다며?”


복잡한 속과 달리 에이스의 얼굴에는 아무런 티가 나지 않았다. 그가 내적갈등을 할 때에 나오는 행동이었다. 로단과 처음 마주했을 때처럼 능숙하게 표정을 관리하며, 머릿속으로는 온갖 생각이 마구잡이로 부딪혔다.


앤드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내 인생 전부를 이곳에서 지냈어.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은 죽이고, 고문하고, 명령을 듣는 것뿐이지. 이제 와서 밖에 나가서 잘 살아갈 자신도 없고. 게다가 어린애는 그렇다쳐도 나는 절대 놓치지 않으려고 할 거야. 그리고 배신자를 본보기로 처형시키겠지. 그럴 때 그 아이가 내 옆에 있다면, 나와 함께 죽게 될 거다.”


결국 에이스는 두 눈을 크게 굴리며 중얼거렸다.


“돌겠네.”


그 행동에서 앤드류는, 그가 적어도 나름대로 시도해줄 거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조금 전 그의 얼굴에 스쳐지나간 표정은 누군가를 잃어본 적이 있는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다행이도, 그 생각대로 에이스가 입을 열었다.


“한번 말은 해볼게.”

“고마워.”


기다렸다 듯이 피어난 앤드류의 짙어진 미소에 에이스는 벌써 후회가 됐다. 그러나 그 고통과 공허함을 아는 사람으로서 아예 모르는 척 할 수는 없었다. ...사실 모르는 척이야 할 수는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다만 속으로 다짐했다. 앞으로는 절대 이런 동정심을 개입하지 않기로.


앞으로는 더 잔혹하고 무자비한 모습을 많이 보게 될 터였다. 위험지역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 버려진 곳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 한 발자국 뒷걸음쳤다가는 뒤에 절벽이 있을지, 함정이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이런 선처를 베푸는 여유도 곧 끝이 날거라고 예상했다.



***



결국 긍정의 대답을 해준 후, 이곳에서 삼일을 더 보내며 주위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눈에 띄게 좋은 실력을 가진 이들도 많았고, 유독 그의 마음에 드는 부대도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중에, 두 명의 남자가 서로를 향해 주먹질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그 주변을 다른 용병들이 둘러쌓고 있다. 평범한 싸움구경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저게 뭐야?”


의문을 가지며 앤드류에게 묻자 그가 담담히 말했다.


“‘비다 매치’(vida match)야. 새로 만든 부대에 대장자리를 두고 가끔 저렇게들 싸우지.”

“그럼 진 사람을 어떻게 되는데?”

“죽어.”


자비로운 결말라고 볼 수 없는 대답에, 에이스는 부러 가볍게 물었다. 조금 더 쉽게 답을 얻기 위함이었다.


“살벌하네. 그럼 그쪽 대장도 그렇게 올라온 거야?”


대답하기 불리할 때 마다 입을 다물던 그는,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조용해졌다. 그는 이미 몇 번의 실패를 맛보았기에 이번에는 재촉을 하거나 되묻지 않았다.



***



이제 모든 것을 살펴보았으니,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고 느꼈다.


처음의 넓은 방으로 돌아간 그는 그곳에서 벌써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남자를 볼 수 있었다. 에이스는 의자에 엉덩이를 대고 앉자마자, 먼저 입을 열었다.


“난 그 서른 명으로 구성돼있는 부대도 괜찮았고, 처음에 봤던 얘들도 좋은데, 보스한테 가서 확인해봐야 될 것 같네. 내가 방금 말한 놈들은 전체적으로 얼마 정도지?”


이곳 대장이라는 인간의 입에서는 그가 예상치도 못한 어마어마한 금액이 튀어나왔다. 아무래도 줄어든 수입에 이때다 하고 달려드는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열 받을 뻔한 에이스는 진심으로 따져 묻고 싶었지만, 최대한 겉으로 티를 내지 않으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물론 속으로 온갖 욕을 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꽤 비싸네.”

“뭐, 요즘 시세라는 거지요.”


구라 까네. 에이스는 그가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시 갔다 오는데 아마 시간이 좀 들 거야. 알고들 있으라고.”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것이지만, 꼭 여기서 며칠 지내고는 돈을 못 낼까봐 연락이 끊기는 분들이 있어서요. 확실하신지?”


기름진 얼굴로 누런 이를 보이며 섬뜩하게 웃는 모양새에 구역질을 하고 싶어졌다. 에이스는 조용히 토기를 참아냈다. 언제나 비위가 좋은 편이라고 자신했지만, 그 말을 이제는 못할 것 같다.


방의 뒷문으로, 누군가가 테리를 포함한 이들을 들여보내는 것이 보였다. 그들의 멀쩡한 상태를 확인한 에이스가 말했다.


“물론, 돈은 충분히 있어.”

“아, 그럼 이것도 아무문제 없겠군요.”

“뭐가?”


의아스럽게 되묻는 에이스를 향해, 남자의 미심쩍은 웃음은 전보다도 더욱 짙어졌다.


“처음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보증인은 거래하실 때에 돌려드린다는 것이요.”


에이스는 그들을 두고 가야한다는 말에 잠시 고민했다. 끝까지 역할을 다하기 위해 외면해야 하는가, 혹은 조금 의심을 얻더라도 시도는 해봐야하는가.


“음? 문제있으신겁니까?”


하지만 금방이라도 그가 실수를 하기를 바라는 시선에는 이미 조금의 의심이 들어있었다. 작지만 금방이라도 터트릴 준비가 되어있는 의심.


미안.


누구도 듣지 못하는 두 번째 사과를 하며 그가 담담히 말했다.


“전혀.”


물론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이제는 익숙하기까지 한 따가운 눈빛들은 덤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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