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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기연 독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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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1.12.19 13:02
최근연재일 :
2022.01.18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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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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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9,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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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0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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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001 첫 번째 기연(1)

DUMMY

001 첫 번째 기연(1).



마왕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 정의가 이겼다! ]


저스틴이 검을 높이 치켜들며 외쳤다. 동시에 하늘을 덮고 있던 검은 장막이 무너졌다. 무너진 틈 사이로 새어 들어온 햇빛이 저스틴을 비추었다. 그의 금빛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고귀하게 빛났다.


저스틴은 평화가 도래한 세상을 보며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정의는 개뿔, 쯧.”


나는 화면 속 저스틴을 보며 혀를 찼다. 그리고는 엔딩을 다 보지 않고 게임을 종료했다. 익숙해지지 않는 허탈감이 나를 감쌌다.


“이 짓도 그만하자.”


고저 없는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읊조렸다. 그리고는 방금까지 플레이했던 [저스틴 사가]를 삭제하기 위해 마우스를 조작했다.


- 저스틴 사가를 삭제하시겠습니까?

- [예] | [아니요]


수백 번은 클리어했기에 더는 어떤 재미도 느끼지 못했고. 한때나마 저스틴을 선망했던 마음은 식은 지 오래였다. 오히려 정의 운운하는 게 거슬렸다.


······다만, 부모님과의 마지막 추억이 어린 게임이란 사실이 나를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아니요]를 눌렀다.


그리움에 이끌려 게임을 켜고.

게임을 하며 추억에 잠기며.

엔딩 화면에 허탈함을 느끼는 이 무의미한 일련의 과정을 나는 오늘도 끊지 못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 지갑을 집어 들었다. 지갑 안에 고이 보관된 사진을 바라봤다. 사진에는 저스틴 분장을 하고 있는 앳된 내가 있었고. 그런 나를 뿌듯한 얼굴로 바라보는 부모님이 담겨 있었다.


“정의롭게 키우고 싶었으면 ······그렇게 떠나지 말았어야지.”


쓴웃음이 입에서 새어 나왔다. 기댈 곳 하나 없는 고아가 정의롭게 자라기엔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니, 악독하게 살지 않으면 사람대접조차 받기 힘들었다.


“하-.”


괜스레 한숨을 내쉬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천장을 보며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다 창문을 바라봤다. 어느새 하늘은 어두컴컴했기에,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도.”


오후 7시. 자기에는 애매한 시간.


한동안 검지로 책상을 두들기다 어깨를 으쓱하고는 저스틴 사가를 실행시켰다. 참 한결같은 몸뚱이였다.


[업데이트 1%]

▼내용

- 스토리 확장

- 기존 스토리 일부 개편


“업데이트?”


저스틴 사가를 접한 이후 처음 보는 문구에 나도 모르게 갸웃거렸다.


[업데이트 30%]

[업데이트 52%]

[업데이트 72%]

[업데이트 100% 완료]


내 사고가 좇아가기 힘들 정도로 업데이트는 순식간에 완료되었고. 그 순간 시야가 어둠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때 낯선 천장이 보였다.



***



“하나, 둘, 세에······.”


풀썩.


무릎을 꿇은 채임에도 팔 굽혀 펴기 세 번을 다 채우지 못하고 몸이 무너졌다. 나약한 몸뚱이에 환멸이 느껴졌다.


“후-.”


숨을 고르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거울에 비친 내 몸뚱이에 시선을 두었다.


고기 육수 같은 뿌연 땀을 쏟아내는 지방 덩어리. 반들반들 기름기 짙은 피부. 흑발과 흑안 외에는 나와 닮은 구석이 없는 얼굴.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저스틴 사가 속 캐릭터가 되었다.


베르망 리트마인.

영웅 양성 기관 '룬 아카데미'에서 악행을 저지르는 문제아.

이론 수석과 실기 꼴등이란 2개의 타이틀 소유자.

플레이어가 동료로 만들 수도 없는 조연.

저스틴에게 모든 악행이 저지당하는 삼류 악당이 나였다.


2주 전.

베르망의 본가에서 눈을 떴을 때 잠시 동안 꿈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 생각은 3초 만에 기각됐다. 꿈이라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선명한 고통이 머리에서 느껴졌다.


그제야 몸이 과하게 무겁다는 걸 인지하고는 거울을 찾았다. 낯선 환경과 달리 익숙한 얼굴이 머리에 붕대를 감고는 거울 속에 있었다. 그렇게 나는 게임 속 캐릭터가 되었다는 현실을 자각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고민했다. 다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일에 긴 시간을 할애하는 건 성미에 맞지 않았다.


같은 의미로 현실 세상으로 돌아갈 방법도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길게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현실 세상에 큰 미련도 없었다.


끝내 사고의 흐름은 주어진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갈 지로 이어졌다. 내게 너무나 익숙한 삶의 방식이었다. 그렇게 2주라는 시간 동안 나는 이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나, 둘.”


털썩.


이번에는 팔굽혀 펴기 2개를 끝으로 몸뚱이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다이어트는 노력 중 하나다. 숨쉬기도 힘들뿐더러 나약해 보이는 인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바닥에 드러누웠다. 이제는 조금 익숙한 천장을 보며 휴식을 취했다.


똑-. 똑-.


“아들, 엄마란다.”


노크 소리와 함께 낯선 단어가 문틈으로 흘러들어왔다.


“들어오시지요.”


나는 몸을 일으켜 옷매무새를 정돈하고는 답했다. 가짜 가족이지만, 최소한의 예는 갖추었다. 가짜라도 가족이란 단어는 날...... 조금은 무르게 만들었다.


방에 들어선 중년의 여성은 꿀 떨어지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땀에 찌든 나를 거리낌 없이 안았다.


이 세상에 적응하면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베르망이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나는 정중하도록 노력하며 그녀를 떨어트렸다. 그녀는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엄마가 아들 보러 오는데 이유가 필요하니?”

“그건 아니지요. 다만, 볼일이 없으시다면 자리를 비켜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이제 씻고 모자란 학식을 채울 계획이 있습니다.”


그녀의 애정은 내 것이 아닌 베르망의 것이기에, 단호히 말하는 것이 껄끄럽지는 않았다.


“아들 기억도 온전치 않은데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니니? 어머. 지금 보니 얼굴이 반쪽이구나.”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고 했었나? 좋게 포장해도 포동포동한 나를 그녀는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정작 그녀 자신은 군살 하나 없으면서.


“여름방학은 이제 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고로 기억을 대부분 손실했으니, 부지러니 지식을 채워야 하지요. 아카데미의 학기가 시작되면 따로 공부할 시간이 적을 것입니다.”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베르망은 계단에서 굴러 한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고. 아마도 내가 빙의되면서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그 덕에 과거의 기억이 없는 건 기억상실로 흐지부지 넘어갈 수 있었다.


내가 저스틴 사가를 게임으로 플레이했을 때도 베르망이 사고를 당했는지는 모른다. 베르망은 아카데미 밖의 이야기까지 다루어 질만큼 비중 있는 캐릭터가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알겠단다. 자~."


그녀는 불쑥 볼을 들이밀었다. 나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정말 싫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저를 어린아이 취급하지 말아 주시지요. 열일곱은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알, 알겠단다."


그녀는 울상을 지으며 방을 나섰다. 나는 그녀가 나선 문을 한동안 지켜봤다. 방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만족스러웠다.


잠시 의자에 앉아 방을 훑었다. 고가의 가구로 가득 차 있었다. 부유한 가문, 가족의 사랑, 베르망의 삶은 분명 나쁘지 않았다.


"마왕."


세상을 피로 물들이려는 마왕만 막는다면 그랬다. 솔직히 큰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저스틴을 믿어서는 아니었다.


마왕을 직접 막아설 생각이다. 누군가에게 기대어 사는 건 내 방식이 아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목숨이 달린 일이기에 더욱이 그랬다. 이용이라면 모를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왕 따위는 고인물의 상대가 아니었다.



***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위에서 달빛이 세상을 환하게 밝혔다. 나는 검은색 리무진을 타고 도시 입구로 향했다. 입구에 다다랐을 때 익숙한 갈색 머리의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사용인들에게 입구 주변에 방을 잡고 기다리라 일러두고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베호닉, 나는 의뢰인 베르망 리트마인이다.”


나는 그녀를 알지만, 그녀는 나를 모를 테니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 통통이! 나는 모험가 베호닉이야.”


베호닉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게임 후반에나 동료로 만들 수 있는 네임드 캐릭터다. 다만, 저스틴이 아닌 베르망의 몸에 빙의 된 나는 다르다. 게임 초반에도 충분히 동료로 만들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부유했다.


“베르망이라 불러라.”


나는 베호닉을 한 번 흘기고는 품속에서 5,000만 린이 적힌 가문 수표를 꺼내 건넸다. 한화로 치면 약 5억 원의 가치였다. 그녀는 수표를 품속에 집어넣으며 입꼬리를 한껏 올렸다.


"예이예이. 출발하자고 통통아!"


베호닉은 장난스레 대답했다. 그리고는 도시 밖으로 앞장서 나아갔다.


“혼자 나아가지 말고 업어라.”

“응?”


베호닉은 물음표가 가득한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네가 들은 게 맞다.”


목적지로 향하는 길은 상당한 험지기에, 도보 외에 이동수단이 없었다. 내 체력을 생각하면 이동시간만으로 꽤 많은 시간을 잡아먹을 터였다. 부끄러움 좀 겪고 허송세월을 덜 버리는 게 이득이었다.


“내 임무는 호위와 안내지 짐꾼이 아닌데?"


베호닉은 고개를 뻣뻣하게 들며 굳센 거부 의사를 보였다. 은근하게 똥 씹은 표정도 보였다.


“서둘렀으면 좋겠다만.”


나는 5,000만 린짜리 수표를 한 장 더 건넸다. 그리고는 두 팔을 넓게 벌렸다.


베호닉의 두 눈은 부드러운 호를 그렸다. 그리고는 서슴없이 등을 내밀었다.


달빛을 등대 삼은 첫 번째 기연을 향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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