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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기연 독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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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1.12.19 13:02
최근연재일 :
2022.01.18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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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10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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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019 라골(3)

DUMMY

019 라골(3).



가을의 향취가 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교정은 붉은 단풍으로 만개했다.


"대장! 이 아줌마는 누구야?"


레렌은 내 뒤에 붙어 있는 베호닉을 향해 삿대질해댔다. 행동거지와 달리 표정은 호기심에 어려 있었다.


"아줌마? 내가 어딜 봐서 아줌마니? 누님이겠지!"


베호닉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녀는 쿵쾅거리며 레렌 앞에 섰다.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큰 레렌을 부릅뜬 눈으로 쳐다봤다.


"누님? 몇 살인데요?"


레렌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베호닉을 얼굴을 샅샅이 살폈다.


"꽃다운 서른이다!"


베호닉은 머리카락을 한 번 튕겼다. 갈색 머리카락이 찰랑거렸다.


"엥? 그럼 아줌마 맞잖아요! 누님은 무슨."


레렌은 질색 어린 표정을 지었다. 베호닉의 주먹을 쥐었다. 얼마나 강하게 쥐었는지 손등 위로 핏대가 곤두섰다. 나는 그 둘을 지나쳐 강의실로 향했다.


"대장! 저 아줌마는 누구야?"


리린이 따라붙었다. 그녀는 불만스런 투로 물었다.


"아-."


나는 리린의 이마에 꿀밤을 먹였다. 요즘 들어 불만스럽다는 표정을 자주 짓는 게 거슬렸다. 나는 이마를 어루만지며 불만스러운 얼굴을 유지하는 그녀를 날카롭게 흘겼다. 그제야 그녀는 머리를 긁적이며 표정을 풀었다.


강의실에 발을 들였다. 북적북적하던 강의실은 일순간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학생들은 내 눈치를 보는 듯 힐끔거렸다.


대체 모의 전투 이후 바뀐 분위기였다. 내 두 눈은 부드러운 호를 절로 그렸다. 그만큼 만족스러웠다.


"오늘 새로운 실기 교수님이 오신데. 어떤 분이실까?"

"모르긴 몰라도 엄청나게 대단한 분이실 거야. 우리 아카데미 실기 교수님들은 다들 유명한 모험가시잖아. 지금 현역으로 나서도 한 자리씩은 차지하실걸."

"그치. 아-. 드디어 눈칫밥 안 먹겠다. 다른 반에 껴서 수업 들으니 견제도 살벌하고, 교수님도 은근 차별도 하더라."

"너희 반도 그랬어? 3반 교수님도 은근 차별 하시더라. 드디어 우리 담당 실기 교수님이 생겨서 그게 제일 좋아."


베호닉을 밖에 세워 놓고, 익숙한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학생들이 조용하게 소곤거렸다.


라골이 사라진 탓에 우리 반은 아홉 그룹으로 갈라져 다른 반에서 실기 수업을 들었다. 차별이 꽤 있긴 했었다. 그 탓인지 학생들의 기대는 더욱이 타올랐다.


베호닉의 멍청한 얼굴이 뇌리를 스쳤다. 학생들이 몹시 불쌍했다.


"공부는 열심히 하셨나요?"


푹 쉬었는지 생기가 조금은 돌아온 플로토였다. 그의 뒤에는 두툼한 중간고사 시험지가 두둥실 따라왔다. 염동으로 띄운 듯 보였다.


그와 달리 학생들의 얼굴에는 어둠이 드리워졌다. 탄식도 여럿 들렸다.


"요즘은 입 대신 얼굴로 대답하는 게 대세인가요?"


플로토가 혼자 재밌다는 듯 웃었다. 강의실에 살짝 추워진 듯했다.


"으흠-. 자 다들 떨어져 앉으세요! 다 보신 분은 먼저 나가셔도 됩니다."


플로토는 칠판에 시험 시간을 적었다. 그리고는 여느 때처럼 염동으로 시험지를 분배했다. 금세 강의실은 사각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나는 느긋하게 문제를 풀어나갔다. 플로토와 베호닉 둘의 이중 보호에서 굳이 빠르게 벗어날 필요는 없었다.


나와 떨어져 앉아 있던 호즈는 구태여 빙빙 돌아 내 옆에 섰다. 그리고는 코웃음을 치고는 시험지를 제출하고 강의실을 나섰다.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저 마음속 데스 노트에 오늘 일을 조용히 기록했다.



***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오랜만에 전투관 11층에 발을 디뎠다.


"언제 오시는 거지?"

"그렇게 모의 전투 필드도 전개 안 되어 있고. 설마 오늘이 아닌가."


뭐가 그리 급했는지 학생들은 아직 점심시간임에도 실기실에 몰려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걱정으로 물들어 있었다.


"베르망."


베호닉이 뜰든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허락을 구하는 듯 보였다.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베호닉은 팔을 걷어붙이며 지변을 박찼다. 그 넓은 실기실이 흔들렸다. 베호닉은 하늘을 날 듯 학생 무리를 뛰어넘었다.


"안녕! 오늘부터 너희를 담당할 실기 교수 베호닉이야!"


베호닉은 벌처럼 날아서 나비처럼 내려앉았다. 그녀는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던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짝짝짝-.


학생들이 박수로 환대했다. 다만 머리에 혹을 달고 있는 레렌은 덜덜 떨더니, 슬그머니 리린 뒤로 숨었다.


"교수님! 교수님! 모험가 맞으시죠?"


학생 하나가 손을 번쩍번쩍 들었다. 그의 얼굴은 호기심으로 가득 차이었다.


"당연하지."


베호닉은 가슴팍에 달린 배지를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모험가 길드 소속을 증명하는 은으로 된 나침반 모양 배지였다.


"히잇! 내가 모르는 모험가라니."


질문을 던진 학생은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적었다. 상당히 흥분한 듯 보였다.


"뭐야? 모험가 덕후 람이 모른다고? 그러면 얼마나 별 볼 일 없는 거야."

"흔하디흔한 모험가 중 하나란 뜻이겠지. 쯧."

"하-. 학생한테 짓밟히고 도망친 교수 제자라고 다른 반이 은근 무시하던데. 더 무시하겠네."


질문을 던진 녀석과 달리 몇몇 학생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들에게는 모험가 타이틀이 중요한 게 아닌 듯했다.


"오늘 온종일 베르망 뒤를 따라 다니던데? 무슨 사이인 거지?"

"그게 문제가 아니야. 나 어젯밤에 교수님이 베르망의 방에 들어서는 걸 봤어."

"뭐? 오늘 아침에 베르망의 방에서 같이 나오시던데. 그러면 밤새 같이?"

"그럼 그렇고 그런 사이! 악! 망측해."

"혹, 혹시 실력으로 교수가 된 게 아니라 베르망이 꽂아준 게 아닐까?"

"말이 돼! 다른 아카데미도 아니고 룬 아카데미인데."

"하지만, 베르망은 라골 교수님을 짓밟고도 징계 하나 없었잖아. 아무리 그 일 때문에 라골 교수님의 평판이 떨어졌어도. 람이 좋아 기절할 정도로 유명한 모험가셨잖아."

"그렇긴 하지. 뭐, 뭐야. 그럼 라골 교수님이 사라진 거 베르망이 설계한 거야?"


몇몇 학생들이 머리를 맞대고는 소곤거렸다. 그러다 입을 막으며 나를 힐끔거렸다. 나쁘지 않은 추리였다. 라골의 태도 때문에 앞당겨졌지만, 어차피 라골을 치우고 베호닉을 집어넣을 계획이었다.


녀석들을 보다 보니 명성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플로토는 마법계에서 꽤나 유명인사라 그런지 일주일간 나와 붙어 있어도 별 잡음이 없었다.


베호닉을 향한 힐난이 딱히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다만 나와 베호닉을 엮는 건 가히 불쾌했기에,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나를 힐끔대던 무리로 나아가려던 순간이었다.


"교수님한테 무슨 막말이야! 미쳤어!"


람이란 녀석이 나보다 먼저 삐약거렸다. 녀석에게 중요한 건 모험가인가 아닌가 같아 보였다.


"뭐! 내 입으로 말도 못해!"

"왜 지랄이야!"

"너도 모험가 아니면 관심도 안 보였을 거면서!"


힐끔 무리는 기세를 죽이지 않았다. 금세 투닥거릴 듯 보였다.


"애들아!"


베호닉이 목청을 높였다. 목소리에 힘을 실을 수 있다면, 이런 느낌일 듯싶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그녀에게 시선이 절로 옮겨졌다.


그녀는 자신을 힐난하던 무리도. 자신을 옹호하던 람도 인자한 얼굴로 바라봤다.


"후-."


그녀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는 정권을 내지르려 준비했다. 그 상태에서 숨을 깊숙이 들이마셨다.


"씨발."


나는...... 짜증이 차올랐다. 베호닉. 그녀가 감히. 너무 멋있었다. 그녀가 느릿하게 그리고 강하게 주먹을 내질렀다. 내가 본 그 무엇보다도 밝은 빛이 그녀에게서 보였다.


긴 시간 동안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가장 먼저 입을 뗀 건 베호닉이었다.


"애들아! 수업 시작하자."


베호닉은 제어 장치에 손을 올려 모의 전투 필드를 조성했다. 그리고는 손을 저으며 서두를 것을 종용했다. 학생들은 자신의 조와 함께 필드로 달려들었다.


"대, 대장! 우리도 빨리 출발하자! 나 말이지. 아줌...... 아니 누님한테 빨리 조언을 듣고 싶어. 우리 조가 말이야! 처음으로 조언을 들으면 좋겠어."


레렌이 들뜬 그리고 초조함이 뭍은 목소리로 재촉했다.


"쯧."


나는 혀를 한 번 찼다. 그리고는 레렌을 따라 걸어줬다.




***



라골은 피폐한 얼굴로 바닥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바라봤다. 그림자 안에는 학생들 앞에서 정권을 내지르는 베호닉이 투영되고 있었다.


"제길. 조금은 따라잡았나 했는데. 저년이랑 붙으면...... 무조건 죽겠네. 베르망은 어떻게 내 비밀을 안 거지. 쯧."


라골은 혀를 찼다. 그리고는 허공을 한 번 휘저었다. 그러자 영상을 투영하던 그림자가 한곳으로 모였고, 개의 대가리로 변했다.


월-.


머리만 있는 개는 한 번 짖었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통통 뛰어갔다. 머리만 있는 개가 뛰어간 곳에는 머리 둘 달린 개가 인간의 시체를 먹고 있었다.


머리 둘 달린 개는 원래는 머리가 셋이었는지 몸통에는 머리가 빈 목이 달려 있었다. 머리만 있는 개가 제자리를 찾든 머리통이 빈 목 위에 안착했다.


비로소 머리 셋 달린 케르베로스가 되었다.


"하필 에드 새끼가 베호닉의 연인일 줄이야. 그럼...... 다른 녀석을 죽였을 텐데."


라골은 룬 아카데미를 학생 신분으로 거닐던 때를 떠올렸다. 그의 미간이 구겨졌다.


"베호닉이 이성을 유지하는 걸 보면 아직 내 얘기를 들은 거 같진 않은데. 베르망 녀석 증거가 없는 건가? 하긴, 증거가 있었으면 마법 경찰에 바로 신고했겠지."


라골은 턱을 문지르며 고민에 빠졌다.


"그럼. 아직 평범하게 살 기회가 있는 건가? 베르망. 그 녀석만 죽이면."


라골은 비릿한 웃음을 내뱉었다.


작가의말

아레나가 얼마 안 남았네요. 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쉬운 부문을 남겨주시면 경청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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