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ρ( ̄ヘ ̄ メ)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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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
작품등록일 :
2024.09.13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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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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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DUMMY

실론은 유진이 가져온 조각케이크를 먹고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 케이크가 달았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


그럼 디저트가 달지 안 다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아르도니아의 디저트들은 죄다 그런 식이었다.


다소 강박적일 만큼 자연 그대로의 맛을 추구하는 풍토!

좋게 말하면 건강한 맛이고, 나쁘게 말하면 심심한 정도를 넘어 미각이 느껴지지 않는 수준의 맛이 바로 아르도니아 식문화의 특징.


그렇다.

크로크의 오해와 달리, 드루이드가 딱히 거창한 이유가 있어 채식을 하는 건 아니었다.

물론 숲의 수호자, 자연의 사랑을 받는 자 같은 수식어가 덧붙는 종족에게 잘 어울리는 선입견이긴 하지만······.


실론이 디저트를 좋아하지 않는 건······ 그냥 맛이 없어서였다.


‘뭘 넣은 거지?’


아르도니아에도 케이크는 존재한다. 부드러운 빵을 원형 틀에 찍어낸 후 생과일을 올려먹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건······ 지금껏 실론이 맛본 그 무엇보다도 진하게 정제된 단맛이었다.


‘귀한 선물을 받았구나.’


실론이 바로 앞에 앉아 무언가 침울한 기색의 유진을 바라보았다.

어린 친구답게 표정이 그대로 읽혔다.


‘내게 잘 보이려고 무리를 했구나. 그럴 만도 하지······.’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 정도로 진한 단맛을 구현할 수 있을 정도라면······ 필히 몇 푼 정도로 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닐 터.


실론이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죽박죽 섞인 감정을 담아 유진에게 눈인사를 지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감정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유진은 편의점에서 급하게 집어온 싸구려 조각케이크를 한 입 먹더니 갑자기 감성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실론을 보며 의문을 속으로 삼켰다.


‘역시 실수······ 였나?’


일단 될대라 집어온 후 눈치를 봐 괜찮다 싶으면 꺼낼 생각이었는데, 실론이 먼저 콕 집어 궁금해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유진의 표정이 어두웠던 것도 그런 걱정 때문이었다.


“정말 맛있네요.”


실론이 케이크를 음미하며 던진 말에도 유진의 얼굴은 쉽게 밝아지지 못했다.

누가 봐도 그냥 예의상 하는 이야기로 들렸던 것이다.


정말 맛있었다면 저렇게 작게 한 스푼 떠먹는 게 아니고 팍팍 다 먹었겠지!


‘······ 어, 혹시 진짜였나?’


놀랍게도 한 스푼을 아주 조심스럽게 떠먹었던 실론이 다시 한 스푼, 또 한 스푼 반복하며 케이크를 먹었다.

유진이 슬쩍 눈치를 보며 운을 띄웠다.


“제가 오기 전까지 월세가 5년 정도 밀렸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관리인 분이 직접 받아가셨는데, 저희가 먼저 갈 방법이 없어서 기다리고만 있었죠.”

“······ 혹시 이전에는 월세를 어떻게 받았습니까?”


실론이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잠시 갸웃거리더니, 방으로 들어가 종이 한 장을 들고 나왔다.

두 장이었는데, 놀랍게도 그중 한 장은 유진이 읽을 수 있는 글자였다.


“임대계약서예요. 천천히 읽어보세요.”


원래 임대계약서는 임대인과 임차인이 나눠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유진이 가벼운 의문을 속으로 삼키며 종이를 천천히 읽었다.


이런저런 미사여구를 빼고 나면 요지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나, 갑과 을 중 한쪽이 임대계약을 종료할 의사를 밝히기 전까지는 어떠한 제한 없이 무기한 갱신된다.

하나, 을은 갑에게 달에 한 번씩 월세를 지불해야 하며, 그 값은 은화 12닢 혹은 상당의 가치를 지니는 현물로 대신한다.

하나, 새 거주자가 입주하더라도 월세는 변동이 없지만, 대신 최소 한 달 전 미리 고지해야 한다.


“이런 게 있었군요.”

“구속력을 가지는 계약서예요. 이래뵈도 나름 마법 부여가 된 물건이거든요.”

“······ 혹시 계약서 조항을 수정하거나 추가할 수도 있을까요?”

“그럼요.”


안 그래도 고민하던 부분이었는데, 구두 계약보다는 문서상으로 남기는 게 여러모로 유리하다.

유진은 계약서를 수정해 아예 원두 공급 계약을 못박아둘 생각이었다.


‘대충 밀린 월세를 원두 kg당 조금씩 탕감해준다는 식이면 되겠지. 다시 생각해보니 이쪽에서 먼저 찾아오지 않으면 지불할 방법이 없는 건 사실이라 이자를 붙이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고······.’


유진이 카페를 차리려는 계획과 거기에 쓸 원두로 이곳의 원두가 마음에 쏙 들었다는 이야기를 잘 정리해 전달했다.

어차피 사정을 굳이 숨길 이유는 없었다.


“음······.”


실론이 이야기를 전부 듣고는 잠시 고민하다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사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염치가 없는 짓이었지만, 그래도 말조차 꺼내보지 않는다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그만큼 잊기 어려웠던 단맛이었다.


“혹시 밀린 월세는 따로 지불하되, 방금 먹었던 케이크를 다시 맛볼 수 있을까요?”

“······ 네?”

“그러니까, 원두와 케이크를 물물교환하는······ 아, 아니에요. 역시 이건 좀······.”


뒤늦게 부끄러움을 느낀 실론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녀의 머리에 달린 새싹이 단풍잎처럼 붉게 물들었다.


“어······ 그건 어렵지 않죠? 케이크는 더 구해다드릴 수 있습니다.”

“정말요?”

“그럼 그렇게 갈까요?”

“그럼 저도 원두를 구해드리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네요. 필요한 양은 어떻게 되시나요?”


이미 귀한 디저트를 대접받은 뒤다. 이만한 대우를 받고도 모르쇠 시치미를 떼는 건 드루이드로서 도리가 아니었다.

실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 의사를 표했다.


어차피 커피는 구하려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필요로 하는 양에 따라 그녀가 직접 구하는 것보다 아예 커피를 취급하는 상단과 연결해주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고.


‘역시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구나!’


유진 역시 실론의 태도에 감명받았다.


분명 크로크가 말하기로 왕실에서나 취급하던 귀한 커피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흔쾌히!


‘선물이 효과가 있었나?’


물론 그 커피의 가치를 말한 게 크로크라는 데에서 신뢰도가 깎일 수는 있지만······ 크로크는 그냥 어설프게 아는 척을 할 뿐이지, 생뚱맞은 거짓말을 할 난쟁이는 아니었다.

유진은 그의 말에 허풍이 섞였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역시 왕실은 좀 무리수고, 그냥 고급품인 모양이네. 하긴 이런 맛인데 하품이라면 그게 더 의심스럽긴 하지.’


어찌 되었든 고작해야 조각케이크 좀 가져다 주는 대가로 커피를 꾸준히 공급받을 수 있다면 손해볼 게 전혀 없었다.

좋은 원두를 들여와 상가에 들어온 도현의 카페가 잘 나가는 만큼 건물이 활성화될 거고, 그렇게 상가가 꽉 들어찬 후 월세 수입이 안정화되면 비로소 은퇴까지 이어지는 원대한 계획.


‘계속 케이크를 먹을 수 있다니.’

‘고작 케이크로 때울 수 있다니.’


두 사람이 서로를 보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모두가 만족하는 거래였다.




*




“······ 그건 뭐냐?”

“내 애착인형. 나 이거 안고 자거든.”


도현이 제 몸뚱이만한 뿔 달린 기린 인형을 들고 붕붕거리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야, 근데 여기 진짜 넓다. 100평 정도 돼?”

“아마 넘을걸.”


성사된 원두 공급 계약.

크로크에게 받았던 것처럼 볶은 원두가 아니라 생원두를 그대로 들여오기로 했다.


원래 계획은 밀린 월세를 일부 현물, 즉 원두로 충당하려는 것이었지만.

왜인지 조각케이크 같은 디저트류를 가져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기에 그러기로 했다.

유진이야 원두도 받고, 월세도 따로 받는 게 당연히 이득이었으니까.


물론 디저트 값은 도현이 부담하기로 했다.

사실 그대로 설명할 수는 없어 그냥 원가가 그렇다고 대충 얼버무렸지만······.


“네 방은 어디야?”

“아직 안 정했어.”

“그럼 나 먼저 골라도 되나?”


아무튼 그런고로, 들어올 상가라도 먼저 둘러보라고 할 겸 건물로 초대했는데······.

왜인지 5층으로 올라와 집구경을 하다, 자연스럽게 여기에 눌러앉는 쪽으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나야 상관없긴 한데······.’


어차피 유진이 직접 살려던 층. 방만 5개라 다 쓰기도 힘들었다.

그렇다고 생판 모르는 남을 월세 좀 받겠다고 입주자로 들이는 건 꺼림칙하고······.

결국 친구 할인가로 조금 깎아 보증금 없이 월세를 받는 조건으로 도현이 함께 살기로 했다.


그리고 나름 합리적인 이유도 있었다.

건물과 지금 거주지가 가깝지는 않은 편이라, 계속 드나들며 준비하려면 아예 같은 건물에 눌러앉는 편이 이롭다고.


도현이 꾹꾹 눌러담아 가져온 이삿짐들을 그나마 깨끗한 방에 몰아두고는 밖으로 나왔다.


“카페를 당장 열 수는 없잖아?”

“아무래도 그렇지.”


준비할 게 태산이다.

빈 상가를 정리한 후, 필요한 기계와 가구들을 들여오고, 인테리어까지. 하루이틀로 될 일은 아니었다.


“가게도 그렇지만, 나도 아직 준비가 안 됐고.”


외적으로는 건물이 준비가 안 됐다면, 내적으로는 가게의 컨셉이나 메뉴가 준비되지 않았다. 도현도 고민을 급하게 끝낸 탓.

타겟 소비층은 어떻게 잡을 것인지, 회전율을 높여 많이 파는 쪽과 감성적인 인테리어로 여성 손님들을 사로잡고 디저트 메뉴로 마진을 올리는 쪽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고민 같은 것들.

특히 도현이 지금 가장 고민하고 있는 건 바로 원두의 배전 정도였다.


원두를 얼마나 볶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전문용어로는 로스팅.

커피의 맛은 보통 구수한 맛과 신맛, 쓴맛으로 나뉘어진다. 여기서 로스팅 정도가 강할수록 쓴맛이, 약할수록 신맛이 나타난다.

바리스타의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가진 원두의 종류에 따라 그 본연의 맛과 특징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배전도를 시행착오를 거쳐 알아내야 하는 것!


지금 도현이 바로 그 시행착오의 중심에 있었다.

매일 원두를 조금씩 다른 정도의 배전도로 커피를 내려보고 그 미묘한 맛의 차이를 기록해두는 것.

이것만큼은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유진도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없었다. 그냥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어차피 원두 맛이 워낙 좋아서 실패는 안 할테고.’


거기다 굳이 걱정할 이유도 없는 것이, 지금의 시행착오는 좋은 맛과 더 좋은 맛의 기로에서 후자를 고르기 위한 여정일 뿐.

아직 초보인 유진이 도현의 재촉에 한번 내려본 커피조차 충분히 먹을 만했다.


“원두는 생으로 받아오기로 했지?”

“응. 일단 네가 부탁한 대로 가게 오픈한 뒤에는 1kg씩.”


1샷에 원두를 몇 g 쓰는지, 또 커피 한 잔에 샷을 얼마나 넣는지 등에 따라 소비량이 조금씩 달라진다.

도현의 경우는 말하기로 1kg에 60잔 내외가 나온다고.


“그게 맞을 거야. 처음부터 손님이 몰아치진 않을 테니까. 차근차근 나가야지.”

“손님 들어오는 거 봐서 나중에 양을 늘려나가는 식으로?”

“맞아.”


도현이 끄덕였다.


“일단 견적을 좀 내봐야지. 손님이 얼마나 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그녀가 직접 내린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일단 커피를 좀 나눠드리자고.”


오픈을 앞둔 도현의 계획은 굉장히 간단했다.


무료 시음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커피를 한 잔씩 무료로 주는 거다. 돈을 받지 않고.

어차피 오픈 전까지 연습 삼아서라도 커피는 계속 내려야 했고, 그걸 둘이서 다 마실 수도 없으니 꽤 합리적인 소비.


물론 진짜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일단 한번 맛보고 나면 쉽게 잊지 못할 거라는 게 도현의 계산이었다.


맛과 향만큼은 정말 자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너도 손 좀 거들어.”

“응?”

“내 카페가 빨리 자리 잡아야 좋은 거 아니야?”

“아, 그랬지. 알았어.”


유진이 도현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때로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한 걸음 물러날 필요도 있는 법.

이건 백수가 되기 위한 고귀한 여정의 시작일 뿐이었다.


‘그냥 일하는 걸 좋아하는 거 아닌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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