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ρ( ̄ヘ ̄ メ)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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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
작품등록일 :
2024.09.13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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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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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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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화

DUMMY

- 넌 나중에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

- 백수요.

- 응?


유진은 어릴 때부터 심지가 굳은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 으레 치르던 장래희망 조사.

다른 아이들의 답이야 뻔했다. 대통령부터 시작해 경찰, 소방관, 연예인, 축구 선수 같은 그럴듯한 직업들만 이야기했던 것이다.

심지어 가진 돈을 전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고 싶다는 슈바이처 2세도 있었다.


- 똥 싸는 소리 하네.

- 으아앙!

- 선생님, 백유진이 철수한테 나쁜 말 해요!


유진은 부모님이 교무상담에 불려가는 수모를 겪고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시련과 역경이 유진을 더욱 굳세게 만들었다. 여러 번 담금질한 쇠가 더 단단해지는 것처럼.


학년이 오르고, 세상이 변하며 친구들의 대답도 점점 현실적으로 변했다.

공무원, 대기업 직원, 전문직······.


유진은 달랐다.

처음부터 진정 원하는 바를 꾸밈없이 드러냈으니까.


- 19번 지원자, 인생의 목표가 뭡니까?

- 백수입니다.

- 예?


대학교를 졸업해 번듯한 회사에 취직하고, 어느덧 서른을 앞둔 나이가 되고도 그 꿈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건 유진에게 삶의 이정표이자, 빛이고 어둠이요, 오늘을 살아가는 이유였다.


백수!

이 얼마나 아름다운 울림인가. 평생 놀고먹을 돈을 바짝 벌어둔 후 은퇴해 집에서 과자 한 봉지를 까먹으며 멍하니 하루를 허비하는 인생.

유진은 그걸 위해서라면 신이라도 믿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값비쌀수록 갖기 어려운 법.

당연하게도 백수가 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 야, 그렇게 따지면 나도 백수가 꿈이야.

- 과장님도 백수가 꿈이셨습니까?

- ······ 그런 말이 아니고,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거지.


먼저 내 집을 마련해야 했고, 변변한 일 없이도 삶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수입원이 있어야 했다.

거기다 이른 은퇴를 꿈꿨던 유진에겐 그 돈이 더 많이 필요했다. 남들이 오십, 육십에 퇴직할 때 사십이 되기 전 백수가 되려면?

그만큼 돈을 더 많이 쌓아둬야 했다. 혹시 모를 사고나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백수, 요즘 애들 말로는 파이어족이라고 하는 것이 되려면 이렇게나 착실한 준비가 필요했다.

그렇기에 그 준비를 마칠 때까지는 직장을 그만둘 수 없었다.


달리 말하면─

유진은 준비를 마치는 즉시 사표를 쓰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




“그만두겠다고?”

“네.”

“······ 아니, 도대체 왜?”


김 부장이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 백 대리님이요? 완전 워커홀릭이시죠. 정시에 퇴근하시는 날이 거의 없으시잖아요.

- 유진 씨, 일 열심히 하지. 근데 잘하기까지. 진짜 없으면 안 되는 인재라니까?

- 내가 보기에, 백 대리는 정말 이 일을 사랑하는 거야. 난 오후 5시부터 일이 손에 안 잡히는데, 쟤는 꿈쩍도 안 하잖아.


모두가 그렇게 말했다.

일에 미친 놈!


오죽하면 매 분기 재무팀에서 찾아와 백 대리의 성과가 부풀려진 건 아닌지 직접 확인할 정도였다.

아무리 그래도 상식 밖이었던 것.

물론 유진은 매번 회사에서 가장 많은 성과급을 당당히 가져갔다.


시키지 않은 일도 저 혼자 일파만파 벌려놓더니, 나중에 보면 또 그걸 깔끔히 처리하고는 새로운 일에 몰두하고 있다.

처음엔 혼을 내다가도, 이젠 어련히 잘하겠거니 싶어 그냥 둘 정도.

덕분에 관리자인 김 부장도 함께 고과가 높아지면서, 요즘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임원들이 식사나 골프 제안을 할 정도였다.


······ 그런 복덩이가 떠나겠다니!


‘애사심이 투철하던 것 아니었나?’


본인이야 파이어족이라나, 뭐라나 떠들어대며 은퇴자금을 모으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거라고 하지만······.


- 그냥 핑계죠.

- 핑계지.

- 쑥스러우셔서 그런 거 아닐까요?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진심으로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고선, 절대 저렇게 미친 듯이 일할 수 없을 테니까.


······ 그런 녀석이 갑자기 일을 그만둔다고 하니, 걱정하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혹시 사장님의 숨겨둔 아들?’


김 부장은 유진의 얼굴과 사표를 번갈아 쳐다보다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요.”

“으음······.”

“부장님?”


대답을 재촉하는 유진의 얼굴. 오히려 하라는 일은 안 하고 대화를 엿듣고 있던 팀원들이 난리였다.


“어? 혹시 예술, 뭐 그런 쪽으로 나가시는 거 아니에요?”

“느낌 있네. 유진 씨 좀 힙한 느낌이 있잖아.”

“백 대리가 young하고 MZ하긴 하지.”

“······ 과장님, 요즘 애들은 그런 말 안 써요.”

“뭐? 정말이냐?”


김 부장이 원래 격의를 따지는 사람이 아니었던 덕에, 팀원들도 서로 허물없이 잘 지내는 편이다.

일 잘하고, 성격 좋고, 외모도 깔끔한 백 대리가 회사를 떠난다니 다들 한 마디씩 보태기 시작했다.


“백 대리 아침에 한 시간씩 일찍 출근해서 외국어 공부하던데, 혹시 외국계로 가나?”

“와, 진짜요? 멋있다······.”

“아니, 그냥 그런 거 아니냐고······.”

“사업을 하시려는 걸 수도 있죠.”

“맞아, 요즘 젊은 친구들이 요식업 쪽으로 많이 나가긴 하더라. 유진 씨 요리 좀 하나?”

“대리님은 못 하는 게 없으세요.”

“······ 팬클럽이냐?”


말려야 할 김 부장마저 흥미진진하다는 듯 대화를 지켜보는 상황.

보다 못한 유진이 헛기침을 하며 나섰다.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궁금증이 가득한 팀원들의 시선.

유진이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백수 하려고요, 저.”

“······ 응?”


잠깐의 침묵. 그리고 이어지는 누군가의 얼빠진 되물음.

그걸 기점으로 분위기가 확 느물느물해졌다.


“아, 그냥 쉬시는 거구나······.”

“난 또. 백 대리 뭐 다른 길이라도 하나 뚫어놓은 줄 알았네.”

“어차피 부르는 데는 많지 않겠어?”


다들 피식거리며 웃는다. 김샜다는 듯이.

하지만 추리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고 과장이 박 주임을 타박하며 유진에게 농을 던졌다.


“백 대리, 이거······ 로또라도 당첨된 거 아니야? 갑자기 일까지 그만두고 말이야.”


그가 비밀을 꿰뚫어 봤다는 듯 낄낄거렸다.


“어? 맞지?”

“맞긴 뭐가 맞아요. 로또가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왜? 어디 그런 놈 하나 있을 수도 있지.”


로또.

분명 로또가 인생 역전의 상징 같은 존재이긴 하다.

고작 번호 6개 맞추는 걸로 평생 만지기도 어려울 큰돈을 쥐여주니······.


하지만, 글쎄. 그것도 이젠 옛말이다.


“에이, 요즘 로또 가지고?”


매주 월요일 출근길에 로또를 오천 원어치 사와 모니터에 붙인 후 기도를 올리는 방년 35세 유 계장이 찬물을 끼얹었다.


“그거론 은퇴 못 하지. 세금 떼고 실수령액이 10억 좀 넘는 수준인데.”

“10억이면 엄청 큰돈이잖아요.”

“서울에 작은 아파트 하나 사면 땡이다, 요년아. 일은 계속해야지.”

“······ 그럼 계장님은 왜 당첨만 되면 회사 때려치고 만다고 말하고 다니세요?”


틀린 말은 아니다.

서울에 내 집 한 채 마련하려면 자그마치 10억을 들고 와야 하는 시대.

집 하나 사고 빈털터리가 돼버린다면, 로또 1등에 당첨된다 한들 일을 그만둘 수는 없다.


“요즘은 로또보다 주식이 대세입니다.”


두 사람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30세 박 주임이 안경을 검지로 슥 밀어 올리며 말했다.


“돈은 불리는 게 중요하죠.”


주식.

확실히 뜨거운 감자다. 주부들이 모임을 나가도 아들딸, 드라마 이야기 대신 투자 종목에 대한 심도 높은 토론을 나누는 시대가 아닌가.

자고로 돈은 일해서 벌어야 한다는 생각의 유진조차 주식에는 관심을 가졌었다.


음.

과거형인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점심시간마다 눈이 빠져라 차트만 보고 계시는 우리 박 주임님, 수익률이 어떻게 되시죠?”

“······ 그건 왜 물어?”

“왜긴요. 엊그제 화장실 칸에서 누가 혼자 울고 있던 게 생각나서 그렇죠.”

“······ 나 아닌데?”


문제는 정작 투자에 성공해 한탕 크게 끌어모은 사람은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는 거겠지.

고점에 물려, 하염없이 찬란했던 과거를 추억하는 사람이나 많지······.


“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응?”


결국, 팀원들이 김 부장을 찾았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역시 연장자의 지혜. 연륜에서 나오는 그 통찰력을 쉬이 봐서는 안 된다.

모두의 기대 어린 눈빛. 김 부장이 목을 가다듬으며 고민하다, 한 마디를 툭 던졌다.


“백수로 돈 걱정 없이 살려면, 역시 건물주만 한 게 없지.”

“어? 이번엔 진짜 그럴듯한데요?”


평소 웹소설 보기를 참 좋아하던 25세 홍 사원이 눈을 반짝이며 호응했다.


“그런 거 아닐까요? 사실 백 대리님은 재벌가의 숨겨진 자식이었고, 상속을 포기하는 대가로 강남 한복판에 커다란 건물 하나를!”

“저거, 저번에 하던 드라마에서 아직도 못 빠져나왔구만.”

“그래도 일리가 있긴 한데요? 건물 하나 있으면 월세도 따박따박 들어오고, 방 하나 빼서 실거주해도 괜찮고요.”

“······ 그런가?”

“이야, 역시 부장님이십니다!”


이젠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에서 즐거움을 얻는 건지 저들끼리 떠들기 바쁜 팀원들.

유진이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며 속으로 피식 웃었다.


‘뭐, 확실히······.’


괜히 갓물주라고 부르겠는가? 조선 땅에서 건물만큼 든든한 자산, 절대 많지 않다.


······ 근데, 그게 쉽냐 이거지.


“그렇긴 한데, 차라리 로또 1등에 당첨됐다거나 주식 대박이 났다는 쪽이 훨씬 현실적인 것 같은데?”

“그건 그래요. 길 가다 100원 하나 줍기 힘든 세상에, 갑자기 하늘에서 건물이 뚝 떨어졌다는 건 좀······.”

“대리님이 월급을 모아서 건물을 샀다는 것도 아무래도 너무 비현실적이고요.”

“흠. 그런가?”

“아니지, 백 대리?”


가볍게 툭 던지는 물음.

고 과장이 장난기 어린 얼굴로 유진을 바라보았다.


“에이.”


유진은 뭘 그런 것까지 묻느냐는 듯, 한껏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그럼 뭐 설마, 갑자기 존재도 몰랐던 외할머니가 갑자기 오래전 연을 끊었던 딸은 참 밉지만 그 자식까지 미워할 수는 없다며 저한테 서울 한복판에 있는 100억 남짓한 건물을 통째로 떼서 넘겨주셨을까 봐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세요. 지나가던 개가 비웃겠어요.”

“하하하! 역시 그렇지?”

“어휴, 그럼요. 하하하하!”

“으하하하하!”




*




- 월월!


“어휴, 로또야. 그만 짖어!”

“괜찮아요. 저도 강아지 좋아하는데요.”

“그래도······ 미안해요, 총각. 얘가 원래 안 이러는데, 오늘따라 말썽이네.”


유진이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지.’


오늘만큼은 하늘에서 개똥이 떨어져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없던 자애심도 생겨나는 기분이랄까.


“여기 사인해주시면 됩니다.”

“아, 네!”


그를 부르는 목소리에 유진이 고개를 돌렸다.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변호사.

유진은 그가 넘겨준 서류 마지막 장을 내려다보며, 짧게 심호흡을 했다.


“이게 끝인가요?”

“네. 거기 사인하시면─”

“알겠습니다.”


이미 종이가 닳도록 읽고, 또 읽었던 계약서. 내용 검토는 차고 넘치게 했다.

유진은 뒷말을 기다리지도 않고 종이에 제 이름 석 자를 휘갈겼다.


그걸로 끝이었다.


연면적 1239㎡, 매매가 추산······ 약 95억.

서울 한복판에 있는 5층 상가 건물을 얻는 데에는, 고작 사인 한 번이면 충분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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