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ρ( ̄ヘ ̄ メ)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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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
작품등록일 :
2024.09.13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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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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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화

DUMMY

물론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분명 원두가 든 통에 큼지막하게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희한하게도 글자를 읽을 수 없음에도 누구 이름인지 짐작이 갔다.


‘그럼 도둑질이 맞군.’


공유경제 사회였다면 이름표가 굳이 필요하지 않을 터.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다. 이세계의 문화를 잘 모르는 이방인의 입장 아닌가.


유진이 조심스레 운을 띄웠다.


“크로크 씨.”

“말하게.”

“여기에 네 분이 함께 거주하고 계신 거죠?”


셰어하우스.

이젠 꽤 유명해진 개념이다. 방 여러 개가 딸린 집에 파티가 들어와 함께 사는 것.

주방, 화장실 등 공용시설은 공유하되 월세와 방은 분담하는 신개념 주거 형태.


척 보니 이곳이 바로 그랬다.

방은 총 다섯 개. 한 방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전부 문패가 달려 있었다.


“맞네.”

“크로크 씨는, 처음에 저기 왼쪽 끝방에서 나오셨고요.”

“그것도 맞네.”

“그리고 방금 들어가셨던 방은 화장실이 붙어있는 주방 옆 방이네요.”

“도대체 무슨 소릴 하려는 겐가?”

“······ 이건 그럼 크로크 씨 돈이 아니지 않나요?”


크로크가 당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그런 사소한 문제를 왜 진지하게 따지고 드는지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어차피 월세는 모아서 내야 하는데, 누구 돈인지가 중요한가?”

“그럼 안 중요합니까?”

“까다롭구만. 그럼 도로 주게.”


크로크가 툴툴거리며 가죽 주머니를 챙겼다.

그마저도 수염 안에 집어넣으려는 걸 눈을 부릅뜨고 노려봐 저지했다.


‘양심이란 게 없는 난쟁이군.’


유진이 크로크를 짜게 식은 눈으로 쳐다봤다.

크로크도 유진을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그의 상식으로는 준다는 돈도 마다하는 머저리로 보였기에 그랬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준다는데 왜 안 받는 거지?’

‘왜 남의 돈을 마음대로 준다는 거지?’


유진은 굳이 상식 밖의 난쟁이를 설득하는 대신,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사실 첫인상부터 별 기대가 없긴 했다.


‘실론이라고 했나?’


크로크에게 커피를 구해준다는 사람.

적어도 눈앞의 난쟁이보단 나을 듯했다. 대화가 통하는 상대가 절실했다.


“그냥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밀린 월세는 안 받아가나?”

“안 받겠다는 게 아니고······ 천천히 받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꼭 받을 겁니다.”


유진이 지나가듯 말을 흘렸다.


“괜찮은 게 있다면 현물로 받아도 괜찮고요.”


문득 홍 사원의 이세계 클리셰가 다시 떠올랐던 것이다.

지구에서 흔한 물건은 이세계에서 귀하고, 반대로 이세계에서 싼 물건은 지구에서 값비싸게 팔린다는 규칙!


정말 그렇다면 오히려 돈보다 물건이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가져가서 처분하면 되니까.

아무래도 은화나 금화를 월세로 받기엔 좀 그렇기도 하고······.


“물건? 그런 거야 넘쳐나지.”

“정말입니까?”

“내가 발명가라는 사실을 그새 잊었나?”

“······ 음, 기억하고 있습니다.”


유진이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그 뒤에 내가 만든 건 전부 쓰레기라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던······ 아닌가?’


잘못 들었나?

그렇게 헷갈릴 만큼 크로크의 태도가 몹시 당당했다.

그냥 물건이 아니라 괜찮은 물건이 필요한 건데······.


‘아니야. 생각해보니 그럴듯하다.’


유진이 차분히 의심을 바로잡았다.


원래 뭔가를 창작하거나 만드는, 그러니까 예체능 계통에 종사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성격이 평범하지 않고 통통 튀는 편이다.

좋게 말하면 그렇고, 나쁘게 말하면 괴짜!

그렇게 생각하면 꿀밤 유도자 크로크가 꽤 유능한 발명가라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원래 인성과 실력이 항상 정비례하진 않지.’


막말로 인성이 개차반인 난쟁이라 해도, 손재주 하나만큼은 견줄 자가 없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저 성격도 견줄 자가 많지 않을 것 같기는 하지만······.


“한 번 보죠. 그럼.”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단이라는 사람이 보는 눈이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어.’


어차피 잃을 건 없다.

일단 구경해보고, 별로면 그냥 말면 된다.


······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이세계의 문물이란 것이.


‘혹시 대단한 마도구라도 있으려나?’


마법이 흔한 세계에서는 마도구가 귀중품으로 여겨지지 않을 수도 있는 것!


유진이 기대 어린 얼굴로 크로크를 따라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




“전부 쓰레기밖에 없네요.”


유진이 딱딱한 얼굴로 일갈했다.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 라고 에단이라는 분이 말씀하셨다고 하셨죠?”

“아, 그랬지.”


유진은 잠시나마 에단이라는 사람을 의심했던 과거의 자신을 질책했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분명 귀한 집안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고 자랐을 게 분명했다.

이걸 보고도 쓰레기 정도로 순화해 표현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인격자라 할 수 있었다.


- 이건 어떤가? 내 역작 중 하나인데, 자네가 감탄할 거라고 확신하네.

- 뭡니까?

- 수염용 우산이라네. 자네는 그런 경험이 없나? 비가 오는 날 우산을 써도 꼭 빗물이 안쪽으로 파고들어 수염을 젖게 만드는! 그럴 때 수염이 젖지 않게 막아주는 획기적인─

- 다른 건 없나요?

- ······ 이걸 보고도 놀라지 않는 건가?


잠시라도 기대했던 게 바보같이 느껴질 지경.

크로크의 발명품이라는 것들은 하나같이 이런 쓰레기들이었다.


난쟁이의 덥수룩한 수염이 비에 젖지 않게 해주는 수염용 우산, 난쟁이의 엉킨 악성 곱슬 수염을 부드럽게 정리해주는 수염용 빗, 번거롭게 외출할 때마다 가방을 챙기는 대신 쓸 수 있는 수염용 만능 수납장······.


‘혹시 수염 패티시라도 있는 건가?’


쓸모없는 잡동사니로 가득한 크로크의 방.

유진이 기대와 다른 결과에 큰 실망감을 드러내며 거실로 나왔다.

그런 유진을 보며 크로크 역시 실망했다는 듯 혀를 찼다.


“역시 자네는 견문이 부족한 듯하군.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라고······.”

“아아, 그렇군요.”

“그럼 이거라도 받아가게.”


유진이 대충 대답하며 돌아가려 하자, 크로크가 망설이다 주방으로 향했다.

아무리 그래도 정말 맨손으로 보내는 건 체면이 상했던 것이다.

그가 다시 난쟁이용 의자를 가져와 원두가 든 통을 꺼내더니, 작은 통에 조금 옮겼다.


“아무래도 자네가 여기 와서 마음에 들어했던 건 이거 하나뿐인 것 같군.”

“······ 제가요?”


언제 그랬지?

유진이 곰곰이 기억을 더듬는 동안, 크로크가 진중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아끼는 것이라도, 가끔은 베풀 줄 알아야 하는 법이겠지······.”

“아, 그렇네요. 이거 비싼 거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왕실에서나 취급하던 원두라는 게 사실이라면 분명 상등품. 이쪽 물가는 잘 모르지만 절대 가볍지는 않을 터.

크로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그렇게 귀한 걸······.”

“뭐, 어차피 다 떨어지면 실론이 다시 사오지 않겠나?”

“······.”




*




정말 마법에라도 걸렸던 걸까.


“어처구니가 없네.”


조금씩 현실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유진이 멍하니 볼을 꼬집어보며 중얼거렸다.


‘이게 말이 되나?’


문을 열고 넘어가면 다른 세계가 나타난다니?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다.

하물며 그렇게 넘어간 곳에 현실과 똑같은 구조의 방이 있고, 이세계인이 세입자로 들어와서는 살고 있기까지······.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


‘그럼 전 관리인은 누구지?’


거기다, 정황상 최소 5년 전부터 크로크를 비롯한 이들이 건물에 들어와 산 모양.

그럼 그동안 문 너머의 방은 누가 관리했다는 말인가? 월세는?


떠오르는 사람이 하나 있긴 했다.


‘······ 분명 외할머니가 직접 관리하시던 건물이라고 했지.’


실거주는 아니었지만, 종종 찾아와 며칠 머물다 가실 정도로 애정이 깊으셨다고.

사실 이 이야기를 변호사에게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다소 의문이었다.


‘한강뷰도 아니고, 그냥 골목길에 있는 건물을 굳이 별장처럼?’


그게 영 이해가 가질 않았었는데······.

퍼즐이 하나씩 들어맞는 기분이다.


‘전 관리인이 외할머니셨던 건가?’


그렇다면 전부 설명이 가능하다.

5년 전부터 소식이 없으시다는 외할머니와 5년 정도 월세가 밀렸다는 크로크. 시간이 딱 들어맞는다.


‘······ 그럼 지금은 어디 계신 거지?’


유진이 제자리에 서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포기했다. 당장 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대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오후 6시 38분······ 시간은 저쪽에서도 똑같이 흐르나 보네.”


규칙 하나. 지구와 이세계의 시간은 동등하게 흘러간다.


“원두도 그대로고.”


규칙 둘. 물건을 가지고 나올 수 있다. 반대도 가능할 것 같았다. 확인은 해봐야겠지만.


그리고 규칙 셋.

키는 열쇠다. 왼쪽으로 돌리면 이세계가 나온다. 이젠 정말 잘 간수해야 했다.


“열쇠는 들어올 때만 꽂을 수 있으니까, 저쪽에서 넘어오지는 못하는 것 같네. 통행은 나 혼자만 가능한 건가?”


유진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깊게 숨을 내뱉었다. 이건 천천히 정리하는 게 낫겠어.

오히려 진짜 고민거리는 이쪽이다.


“이건 어떡하지?”


얼떨결에 받아온 원두.

솔직히 처치곤란이다. 홈 커피는커녕 그냥 카페에도 잘 안 가는 사람한테 이 무슨······.


‘팔아볼까?’


원두의 향 하나만큼은 진짜. 맛이 그 반만 따라가더라도 충분히 수요가 있을 법했다.

물론 그러려면 일단 제대로 내린 커피를 한번 맛보기는 해야겠지만······.


문제는 유진이 직접 커피를 내릴 줄 모른다는 것!


“아, 꼭 내가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유진이 잠시 고민하다 손뼉을 쳤다.

마침 떠오르는 인재가 있었다.


정도현.

벌써 20년도 넘은 소꿉친구.


괜히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중학교까지는 같은 학교에 다녔고, 이후엔 같은 재단의 남고와 여고로 떨어지고도 점심시간마다 만나 수다를 떨곤 했다.

워낙 친했던 만큼 남녀가 유별하다며 눈에 쌍심지를 켜던 학주조차 우릴 보고는 혀만 한 번 차고 넘어갈 정도.


‘다른 친구들도 보고 싶네.’


사실 두 사람만 함께 다니던 건 아니었다. 총 다섯 명의 친구들.

다만 이제는 유진과 도현을 제외하고 다들 각자 인생을 살게 되었다.


‘동규랑 지훈이는 한 번 크게 싸운 후로 멀어졌고, 혜라는 아직 미국인가?’


한의사인 한동규.

가업을 물려받는다던 차지훈.


‘혜라는 뭘 공부하러 간다고 했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어쨌든.


그렇게 다섯 중 둘이 고개를 돌리고.

또 하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버렸다.

가운데에 낀 두 사람도 각자의 일로 바빠지면서, 자연스럽게 서로 연락이 드문해진 것.


‘언제 한 번 모이긴 해야 할 텐데.’


어릴 적에는 모두 같은 동네에 살던 사이. 그만큼 각별했기에 이대로 뿔뿔이 흩어지기엔 아쉬웠다.

옛날처럼 모여 살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적으로 힘들기야 하겠지만······.


“아무튼, 얘 카페에서 일하잖아.”


몇 년 전부터 대형 카페에 취직해 정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도현.

언젠가 독립해 가게를 차리겠다며 자격증까지 따둔 것으로 알고 있다. 바리스타에, 최근엔 베이커리까지 배우는 중이라고.

커피 정도는 내릴 줄 안다는 소리다.


‘그리고, 만약 맛도 괜찮다면······.’


돈 냄새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맡고 잡아채는 영업의 귀재, 백유진! 그가 잠시 잠들어있던 후각 세포의 꿈틀거림을 느꼈다.

불패 신화의 그가 아니던가. 한국 주식시장만 빼고······.

유진이 순식간에 그림 하나를 완성했다.


“홍 사원, 고맙다.”


대원칙 하나.

여기서 귀한 건 이세계에서 흔하고, 이세계에서 귀한 건 여기서 흔하다.


바로 이 원두가 그랬다. 커피는 흔해도 이 정도 향을 품은 커피는 흔하지 않거든.

작은 특별함 하나. 그게 차이를 만든다.

유진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손님이 줄을 서 마시는 카페가 1층 상가에 입점해 매달 두둑하게 월세를 상납하는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조만간 은퇴할 수 있겠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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