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ρ( ̄ヘ ̄ メ)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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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
작품등록일 :
2024.09.13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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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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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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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7화

DUMMY

유진은 방으로 돌아와 약속시간을 기다리며 청소를 시작했다.


물려받은 건물의 5층은, 1층부터 4층까지와 달리 상가가 아닌 거주용 공간이다.

비록 지금은 실거주의 흔적도 거의 사라지고 곰팡이와 먼지에 점령당했지만······.


그런고로 원래 회사 근처에 계약했던 원룸을 조금 일찍 빼고 이사하려던 유진의 계획은 잠깐 보류된 상태였다.

일단 방 컨디션을 어떻게든 정상으로 끌어올려야 누울 자리라도 생길 테니까.


“이건 벽지부터 다 뜯어내야 뭘 시작이라도 하겠네.”


유진이 괜히 툴툴대며 손에 목장갑을 꼈다.


이런 말이 있다. 시간은 돈보다 귀하다!

하지만 유진은 그 말에 전부 동의하지는 않았다.


‘물론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시간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지만, 같은 밀도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쉽게 말하면 생산성의 차이.

그리고 그런 면에서 가장 밀도 낮은 시간을 보내는 건 단연 백수였다.

하루를 별다른 일 없이 허비하는 것이 미덕인 이 시대 최고의 직업!

어차피 하루를 48시간쯤 던져줘봐야 그걸 몽땅 낭비하는 게 일인 백수에게 시간보다는 돈이 훨씬 귀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지금 유진은 굳이 따지자면······ 계약직 백수 즈음 되었다.

물론 건물이 굳이 그가 손을 대지 않아도 알아서 잘 굴러갈 즈음은 되어야 진짜 백수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아무튼, 그런 이유로 유진은 굳이 돈을 주고 시간을 사기 위해 청소 업체를 부르는 하책을 선택하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을 때울 일이 필요했던 것이다.


‘도현이라도 부를까?’


잠깐 그의 소꿉친구에게 소중한 인생 경험을 안겨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금방 철회했다.


‘그러다 안 오면 어떡해?’


건물 상태가 메롱인 걸 보고 도현이 들어오지 않겠다고 버티면 그거야말로 큰일이었다.

건물의 정상화를 위한 첫 단추가 바로 도현의 개인 카페를 입점시키는 일이었으니까!


결국 유진은 약속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혼자서 100평이 넘는 방의 벽지를 떼어내며 끙끙댔다.


‘그냥 업체 부를걸 그랬나?’




*




유진은 샤워를 하며 몸에 전 땀을 닦아내고 나서야 중대한 실수 하나를 깨달았다.


“이런.”


영업의 기본이 무엇일까?

사람들마다 대답은 제각각일 것이다. 누군가는 상대를 현혹시키는 화려한 언변을, 또 누군가는 호감을 사는 깔끔한 인상과 태도를, 다른 누군가는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짚어낼 수 있는 눈치를······.


하지만 유진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일단 잘 보여야지.’


사람은 첫인상이 중요하다.

첫 만남에서 낙인이 찍혀버리면 그 낙인을 지우기 위해 정말 상상 이상의 노력을 동원해야 한다. 그러고도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고.

반대로 좋은 이미지로 기억된다면, 그만큼 앞으로의 만남에서 대화가 수월하게 이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첫인상을 안겨주기 위해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은 바로 선물이었다.


“실론 씨가 뭘 좋아하시는지 물어봤어야 했는데!”


유진이 무릎을 탁 치며 아쉬워했다.

크로크에게 지구의 발전된 문물을 보여주겠다는 얄팍한 생각에 사로잡혀, 정작 챙겨야 할 것을 놓치고 만 것이다.


물론 선물은 주는 사람의 성의와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이 전해지는 것으로 충분하다······.


‘헛소리지.’


유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고로 선물이란 상대방이 그 스스로도 모르던, 하지만 분명 어딘가에 쓸모가 있을 만한 물건을 콕 짚어 건네주는 것이 중요했다.

덤으로 돈이 아까워 싼 물건을 적당히 선물해준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지 않게끔 겉으로 보기에 그 값어치가 적지 않은 듯 느껴지도록 포장에도 신경써야 했고······.


아무튼 이렇게 선물 하나를 전해주는 것에도 그 물밑에서 셀 수 없이 많은 계산과 고민이 이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유진이 선물을 고민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는 데 있었다.

벽지 뜯을 시간에 이런 걸 생각했어야 하는데!


‘어쩔 수 없지.’


모른 척 빈손으로 찾아가는 것과, 대충 뭐라도 손에 들고 가는 것.

유진은 후자를 선택했다.


근처에 있던 편의점에서 급하게 조각케이크 하나를 사 온 것이다.




*




“저 왔습니다.”


벌써 세 번째 방문.

유진이 이젠 제집이라도 된 것처럼 익숙함을 느끼며 이세계로 넘어왔다. 물론 정말 제집이 맞긴 했다. 정확히는 건물이지만.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정확히는 그런 사람이 있었다.


‘어······ 사람은 아닌가?’


유진이 마침 주방에서 풀떼기를 씻고 있던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머리에 나뭇가지가, 어깨와 팔에는 작은 새싹과 꽃이 달려있었다. 유진은 처음에는 그게 꽃 머리띠처럼 악세서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나비 한 마리가 그녀의 어깨 위에 앉아 쉬어가는 것을 멍하니 보고 있던 유진에게, 그녀가 씻은 풀을 털어 바구니에 놓으며 말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새 관리인 분이시죠?”

“아······ 네. 유진이라고 합니다.”

“실론이예요.”


그럴 것 같긴 했다.

크로크가 난쟁이였듯 실론도 평범한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 정도는 했지만, 여기까지는 예상하지 못해서 당황했을 뿐.


유진의 눈빛을 읽었는지 실론이 웃으며 말했다.


“역시 그쪽 세상에는 저 같은 사람이 없나 보네요.”


그녀가 살포시 어깨에 앉은 나비에게 손가락을 내밀었다.

놀랍게도 나비는 한 번 날개를 펄럭이더니 순순히 그녀의 손 위로 넘어갔다.

실론이 다정한 손길로 나비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전 드루이드예요. 낮에는 직접 키운 허브를 팔고 있고요.”

“아!”


유진이 깜짝 놀라 입을 작게 벌렸다. 그 모습을 본 실론이 그럴 것 같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드루이드를 처음 본 사람이라면 놀라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유진이 놀란 건 다른 부분이었다.


‘직접 키운 허브를 판다고?’


크로크는 백수. 그를 먹여살리는 건 여기 있는 실론이다.

······ 그리고 그 와중에 값비싼 원두까지 챙겨줄 수 있을 정도라면, 아무래도 벌이가 상당할 수밖에.


‘역시 이쪽과 친해져야 했다!’


돈 많은 사람과는 일단 친해지면 좋다! 만고불변의 진리였다.


처음부터 크로크가 아니라 실론이 자리에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유진이 아쉬움을 굳이 숨기지 않은 채 크로크의 이야기를 꺼냈다.

곧바로 원두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는 것보다는, 이렇게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쩍 운을 띄우는 것이 중요했다.


협상의 대원칙 중 하나는 이쪽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노출하지 않는 것이니까!

거기다 비싼 물건을 적당한 값에 가져오려면 이런 치밀한 밑작업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고 보니 여기 커피가 참 맛있더라고요. 크로크 씨가 대접해주셨는데······.”

“그런가요?”

“제가 먹어본 커피 중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기쁘네요. 그런데 손님이 오셨는데 크로크는 얼굴도 비추질 않네요?”

“······ 지금 나가려고 했다.”


실론이 다정한 목소리로 크로크를 불렀다.

놀랍게도 그렇게 말 안 듣고 고집불통인 크로크가 기다렸다는 듯 방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 왜인지 유진을 바라보며 살살 눈치를 보았다. 뭐라도 잘못한 것처럼.

물론 유진은 짚이는 게 없었다.

지금까지 개차반으로 굴었던 지난날을 갑자기 반성하고 들 위인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어, 어어······ 자네 왔나.”


크로크가 기름칠을 하지 않은 기계처럼 삐걱거리며 다가왔다.

왜인지 유진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유진이 잠시 고민하다 실론에게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크로크 씨.”

“······ 거긴 귀가 아니네.”

“아, 그렇군요. 여기 맞습니까?”


어떻게 되먹은 유전자인지 얼굴을 옆까지 덮어버린 수염 속에서 작고 귀여운 귀를 찾은 유진이 다시 속삭였다.


“똥 마려우십니까?”


아무리 봐도 크로크의 행동거지가 영······ 똥 마려운 개새끼마냥 부자연스러웠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친구들 중 화장실이 급한 녀석들이 꼭 이랬다. 왜인지 그 나이대에는 학교에서 용변을 보는 게 놀림거리였다.


그렇다고 크로크가 개라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난쟁이한테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지!


“······ 아니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크로크는 둘이 속삭이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물론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원래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하지 않던가.

사람이 부끄럽게 여기는 치부를 굳이 억지로 들춰내려 하는 건 성격 나쁜 녀석들이나 좋아할 짓이었다.


“그렇다고 해드리겠습니다.”

“크로크, 손님에게 언성을 높이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예요.”

“······.”


얼떨결에 2연타를 맞은 크로크가 현기증을 느꼈는지 휘청거리려 하자 유진이 다급히 팔을 붙잡아줬다.

생각해보니 확인할 게 하나 더 있었다.


“참, 여쭤볼 게 하나 있는데요.”

“······ 뭔가?”

“선물을 좀 가져왔는데, 혹시 실론 씨가 디저트를 좋아하시는 편입니까?”


상대방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물건을 예의상 억지로 받는 것만큼 최악이 또 없다.

정말 그렇다면 조각케이크는 그냥 도로 가져가서 유진이 먹는 게 나았다.


크로크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실론은 육식을 하지 않네. 야채만 먹지. 디저트를 먹는 것도 본 적은 없는 것 같군.”

“왜죠?”

“드루이드니까. 아니, 자네는 도대체 아는 게······.”


크로크가 뒤늦게 당황하며 얼버무렸다.


“······ 좀 없더라도 이렇게 매사에 지식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것이 참 건설적이군.”

“?”


그게 아니었던 것 같은데······.




*




크로크를 자연스럽게 화장실로 보내주고.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며 스리슬쩍 주제를 본론으로 이끌려던 찰나.


“간략히 전해 들으시긴 했겠지만, 오늘 제가 온 건 밀린 월세와 더불어 원두 공급─”

“아, 그런데 들고 계신 건 혹시 제게 주려고 챙기신 선물일까요?”

“······ 하하! 그렇죠.”


안타깝게도 조각케이크를 빼돌리려던 유진의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실론이 직접 탄 허브티를 한 잔씩 들고 자리에 앉자마자 그녀가 먼저 콕 짚어 이야기를 꺼냈던 것이다.


“와! 예쁘네요.”


그녀가 초콜렛 코팅에 동그란 알 초콜릿이 하나 올라간 조각케이크를 보며 손뼉을 쳤다.

하지만 화사한 목소리와 달리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유진이 그 미묘한 간극을 눈치챘다.


‘이런.’


예의상 한 입만 먹겠다는 듯.

그녀가 동봉된 일회용 포크로 케이크를 아주 작게 한 조각 떠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우물거렸다.


“······.”


말없이 케이크를 먹던 실론이 다시 포크를 들었다. 이번에는 조금 전보다 훨씬 크게 케이크를 떠 입으로 가져갔다.

그녀의 얼굴이 무방비하게 허물어졌다.


“흐으음······.”


예상과 다른 반응에 유진이 잠시 당황하다 재빨리 틈을 파고들었다.


“실론 씨, 일단 이쪽의 원두를 주기적으로 공급받고 싶은데요. 혹시 계약을······.”

“그거야 어렵지 않죠. 길 가다 발에 채일 만큼 많은 게 커피인데요. 얼마든지 도와드릴 수 있어요.”

“정말입니까?”

“그럼요. 그것보다······.”


실론이 포크를 고상하게 내려놓으며 물었다.


“혹시 케이크는 더 없을까요?”

“······.”


유진은 다음부터 크로크에게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기로 굳게 다짐했다.

저 난쟁이는 이것저것 다 아는 척하면서 정작 제대로 아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근데 커피가 길에 채일 만큼 많다는 건 무슨 소리지?’


분명 왕실에서나 취급하던 고급 커피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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