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ρ( ̄ヘ ̄ メ)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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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
작품등록일 :
2024.09.13 00:56
최근연재일 :
2024.09.19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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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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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4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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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화

DUMMY

“정말 아닙니다!”

“그럼 도둑이 아니라는 증거를 내놓게.”

“아니······.”


유진이 상대의 추궁에 입을 다물었다.


‘그런 게 어딨어?’


세상에 아닌 걸 증명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또 없다. 그냥 아닌데 어떡하란 말인가.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꼼짝없이 도둑으로 몰릴 판.


‘······ 아!’


순간 유진의 머리가 번뜩였다. 곤경에 몰리면 두뇌 회전이 빨라진다고 하던가?

정말 그랬다. 놀랍게도 절체절명의 위기를 돌파할 묘책이 떠올랐던 것이다.


“이걸 보시죠!”


유진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아주 엘레강스하고 지적인 방법을 꺼내 항변했다.

체급 차이를 노리고 덤벼 그래플링을 걸거나, 수염을 잡고 매달리거나, 강도인 척 겁박한다거나 하는 저열한 수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정규 교육을 전부 이수한 교양 넘치는 현대인으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대신 유진은······ 그냥 들고 있던 열쇠를 보여주었다.

집주인이라는 걸 증명할 방법. 왜인지 독특한 장식이 달렸던 열쇠가 떠올랐던 것이다.


사실 그것 말고 마땅히 보여줄 만한 게 뭐 없기도 했고······.


“흠.”


놀랍게도, 난쟁이 씨는 열쇠를 보자마자 짐작 가는 부분이 있었는지 금세 수긍했다.


“아, 자네가 새 관리인인가?”

“······ 바로 보셨습니다!”

“으음. 월세를 안 낸 지도 좀 되긴 했지. 5년 정도 됐나?”


······ 뭐라고?


“월세라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깜짝 놀란 유진이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이건 정말 중요한 문제였다.

반드시 대답을 들어야만 하는 상황!


난쟁이 씨는 그거야말로 무슨 소리냐는 듯 어이없다는 얼굴로 답했다.


“월세가 뭔지 모르나?”

“압니다! 제가 여쭤본 건, 월세를 안 낸 지 5년 정도 됐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원래 다달이 관리인이 찾아와 월세를 받아갔는데, 요즘은 통 안 오기에 잊고 있었지.”

“······ 그럼 그동안 월세를 내지 않고 여기 사셨던 겁니까?”

“음. 그렇다만?”


맙소사.

하루이틀도 아니고, 자그마치 5년이나 공짜로 살았다니? 이건 절대 허투루 넘겨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월세를 떼인 집주인의 정당한 분노!


‘이 정도면 그냥 도둑 아닌가?’


누가 누구보고 도둑이라고······.


유진은 이 문제를 따지려다 말고 뒤늦게 이상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들어오자마자 도둑으로 몰렸던 탓에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 않았는데······.


“······ 근데, 여긴 어디죠?”


일단 대한민국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난데없이 별세계에 떨어지고도 이렇게나 차분하게 대응했던 게 이상할 지경.


‘혹시 무슨 마법에라도 걸렸었나?’


난쟁이 씨가 참 빨리도 물어본다는 듯 한심한 눈빛을 보냈다.




*




- 여긴 아르도니아 왕국령 로잔이네.

- 왕국이요?

- 자넨 도대체 아는 게 뭔가? 전 관리인이 그런 것도 설명 안 해줬나?

- 아니, 모른다는 게 아닙니다!

- 그러시겠지. 그럼 내 이름은 아나?

- 그걸 어떻게 압니까?

- 이것 보게.

- ······.


간신히 되찾은 안정.

억울한 누명을 벗고 나자 비로소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유진이 거실에 멍하니 서 방을 둘러보았다.


한눈에 봐도 이색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공간.


방문마다 문패가 달려 있었는데, 유진이 읽을 수 없는 글자였다. 아마 방마다 주인이 다른 모양.

주방에는 냉장고와 가스레인지 같은 현대적인 문물 대신 갖가지 채소가 담긴 바구니가 몇 개씩 찬장 아래 매달려있었다.


화룡점정은 거실이었다.

중세 소설에서 뛰쳐나온 듯한 풍경.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진 양탄자, 벽에 걸린 빗자루, 빛을 뿜어내는 흰 오브······ 용도조차 모르겠는 물건들이 대부분이었다.


‘정말 다른 세계가 맞긴 하구나.’


자세히 보니 건물의 구조도 큰 틀에서는 같지만,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었다.

가령 이곳에는 창문이 따로 없었다. 큼지막한 그림이 원래 창문이 있어야 할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인가?’


유진이 초상화를 더 보려던 참에 크로크가 말을 걸었다.

아, 이름은 방금 들었다.


“커피라도 한잔할 텐가?”

“커피요?”


유진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커피라니?’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었다. 이세계라고 해서 커피가 없으란 법은 없으니까.

그럴 수 있지!


“커피 모르나? 음료라네.”

“아니, 모른다는 게 아니라······.”

“기다리게.”


아주 제 할 말만 하네.

크로크가 의자를 가지고 와 밟고 올라서 찬장에서 통 하나를 꺼냈다. 난쟁이 전용인 듯했다.


‘오.’


볶은 원두가 가득 든 통.

크로크가 통을 열자 금세 거실까지 향이 퍼졌다.

커피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유진이지만, 저절로 눈을 감고 후각에 집중하게 될 만큼 매력적인 향이었다.


어떻게 보면 달콤하고, 어떻게 보면 쌉싸름하고, 어떻게 보면 고소하면서도 부드러운 탄내가 느껴지고······.

풍부한 향에 침이 고일 지경.


‘그라인더는 없는 것 같은데.’


여기선 커피를 어떻게 내릴까?

유진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원두를 꺼내는 크로크를 지켜보았다.


“흡!”


그리고 제 눈을 의심했다.

그는 두 손을 합장하듯 포갠 다음, 그 사이의 원두를 으깨 컵에 뿌렸다. 이 와중에 가루는 몹시 고왔다.


“아니, 지금 무슨······.”

“음?”


크로크가 태연하게 주전자를 들며 의문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보면 모르나? 자넨 정말 한결같군.”

“아니······.”

“커피 내리잖나.”


유진은 가루가 된 원두에 그대로 뜨거운 물을 쏟는 것을 보며 아연실색했다.

그거야말로 이쪽이 하고 싶은 말이었다.


이런 미개한 이세계인 같으니!


“누가 커피를 그렇게 내려요?”

“내가 이렇게 하네만? 그리고 자넨 커피가 뭔지도 모르지 않나. 훈수 두지 말게.”

“······.”


졸지에 비문명인이 된 유진이 입을 다물었다. 뒤늦게 해명한다고 믿어줄 것 같지도 않았다.


‘말해도 안 듣겠지.’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와 대화를 시도하는 것만큼 멍청한 짓이 또 없다. 유진은 그냥 멍청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그래도, 이건 정말이지······.

녹차 티백을 뜯어 물에 타는 사람은 본 적 있어도, 커피를 따로 추출하지 않고 그냥 물을 냅다 부어버리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받게.”


크로크가 한 잔을 더 마저 내리고는 유진에게 커피를 내밀었다.

갈색 가루가 바닥에 가라앉은 것이 참 식욕을 자극하는 비주얼이었다.


“내가 정말 중요한 손님이 아니고서는 커피를 잘 대접하지 않는데, 고맙게 생각해도 좋네.”

“······ 아, 예.”

“고맙게 생각해도 좋네.”

“······ 고맙습니다.”

“음.”


유진이 대충 대답해주고는 커피를 마셨다. 어쨌든 맛이 궁금하긴 했다.

놀랍게도······ 그냥 커피 향이 좀 섞인 맹물이었다.


아니, 뭔가 비법이라도 되는 줄 알았더니.

이 와중에 향은 기가 막히게 좋아 또 마실 만은 했다. 건더기가 자꾸 입에 들어오려는 거 하나만 빼면 참 좋을 텐데······.


“맛있지 않나?”

“여러모로 엄청나긴 하네요.”

“당연한 말을. 이거 엄청 비싼 거라네.”


칭찬으로 받아들인 건지 크로크가 자랑스럽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물론 유진은 속으로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괜찮긴 한데······ 얼마나 비싸다는 거지?’


조예가 그리 깊진 않지만, 웹소설을 좋아하던 홍 사원 덕분에 판타지 세계관의 클리셰 몇 가지를 외고 있던 참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지구와 이세계 간 시세차익을 실현하는 내용!


‘소금과 후추 같은 향신료를 가져와 이세계에서 비싸게 팔아먹는다거나, 반대로 지구에 없거나 귀한 물건을 싸게 들여온다거나······.’


그 공식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이쪽에 원두를 적당한 값에 팔아 적잖은 돈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자연히 유진의 은퇴도 빨라지고······.


“원래 왕실에서나 취급하던 고급 원두라나 뭐라나? 그만큼 가격이 장난 아니지.”

“오오, 그렇군요.”

“나도 실론 덕분에 이렇게 구한 거지, 보통은 평생 입에 대보기는커녕 향 한 번 못 맡아보는 귀한 녀석일세.”

“오오, 그렇군─”


유진이 대충 맞장구를 쳐주다 멈칫했다.

크로크의 말에 심각한 모순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근데, 크로크 씨.”

“음?”

“그러니까, 그렇게 귀한 원두를 구할 돈이 있으셨단 거네요?”

“자넨 당연한 소리를 질문으로 던지는 재주가 있구만.”

“······ 그럼 당연히 그간 밀린 월세를 낼 돈도 있으시겠죠?”


유진의 물음에 크로크가 입을 다물었다.


“흠.”


유진은 속으로 말을 삼켰다.


‘한 대 때리고 싶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됐다.

저 인간······ 아니, 난쟁이의 몸에 손을 한 번 대기 시작하면 정말 화를 주체하지 못할 것 같았다. 유진이 보기에, 크로크는 꿀밤을 버는 재주가 있었다.

괜히 어디 한 군데 부러지기라도 하면 그것만큼 큰일이 또 없었다.


떼인 돈은 다 갚아주고 다치던가!


‘······ 근데 무슨 일을 하는 거지?’


유진이 그새 커피, 아니 커피 향을 씌운 물을 다 마시고 쩝쩝대는 크로크에게 물었다.


“혹시 지금 하시는 일은 어떻게 되시죠?”

“······.”

“······ 제 거라도 드려요?”

“아니, 그냥 한 잔 더 내리지.”


크로크가 주방으로 향하며 말했다.


“난 발명가일세.”

“아하! 이것저것 만들어서 파시는 건가요? 의외로 실력이 좋으신가 보네요.”

“아니? 에단이 내가 만드는 건 전부 쓰레기라고 하던데. 그리고 그걸 왜 파나?”

“······ 그럼 돈은 뭘로 법니까?”

“돈은 실론이 벌어오지.”

“······.”


유진이 크로크를 노려보았다.

그럼 발명가라는 말은 왜 한 건데?


‘그냥 백수라는 거 아닌가?’


유진이 크로크의 말을 찬찬히 곱씹다 이내 경악했다.

그렇다. 크로크는 백수였던 것이다.


이렇게 부러울 수가!


‘내가 백수가 되려면······ 일단 노후된 건물부터 보수하고, 상가도 전부 채우고, 들어온 세입자들이 장사가 잘 안돼 나가면 월세가 뚝 끊기니 그것도 도와줘야 하고, 또······.’


아무튼 할 일이 많았다.

도대체 몇 년이나 더 일해야 은퇴 후 힐링 라이프를 즐길 수 있을지 감이 안 잡힐 정도!


유진이 크로크를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크로크는 유진이 커피 맛에 감명받은 줄 알고 수염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럼 월세 이야기는 실론이라는 사람과 해야 하는 건가?’


유진이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이쪽과 더 대화해봐야 진전은 없을 터.

그리고 유진이라고 5년 치 월세를 한 번에 받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관리인이 언제 올 줄 알고 그걸 모아뒀겠어? 천천히 할부처럼 갚도록 해야지. 어차피 일하는 사람은 그쪽인 것 같으니까······.’


유진이 혼자 고민하는 동안 계속 수염 속에서 손을 꼼지락대던 크로크가 돌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분이 좋아지자 방금 유진이 했던 말이 기억났던 것이다.


“자네가 새 관리인이라고 했지?”

“네? 아, 그렇죠.”

“흠. 잠깐 기다리게.”


그가 수염 하나를 뽑아 배배 꼬더니, 굳게 닫힌 방문 앞으로 다가갔다.


‘아까 다른 방에서 나오지 않았나?’


유진이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방마다 걸린 문패. 물론 글자는 읽을 수 없었다.

유진이 기억하는 건 크로크가 처음에 복도 끝 왼쪽 방에서 나왔다는 것, 그리고 지금 그가 다가간 방은 주방 바로 옆의 방이라는 것 정도.


남의 방이라는 소리였다.


“이걸······ 이렇게······.”


잠깐 수염을 들고 씨름하던 크로크.

······ 놀랍게도 방문이 스르르 열렸다.


‘진짜 도둑 아냐?’


그렇게 그가 방에서 한참 부스럭대더니, 가죽 주머니 하나를 들고 나왔다.


“이거면 되나?”

“뭐가요?”

“월세 말일세.”


유진이 뭔가 잘못 들었나 싶어 크로크를 다시 바라보았다.

크로크도 뭔가 잘못 말했나 싶어 유진을 다시 바라보았다.


“못 들었나?”

“······ 아뇨. 들었습니다.”


유진이 차분히 가죽 주머니를 열었다.

은화가 있었다. 금화도.


“······.”


유진은 주머니에 은화와 금화가 있는 것에 놀라야 할지, 수염 한 올로 닫힌 방문을 열어버리는 기예에 놀라야 할지, 태연하게 남의 돈을 들고 오는 뻔뻔함에 놀라야 할지 고민했다.


‘혹시 여긴 도둑질이라는 개념이 없는 세계인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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