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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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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
작품등록일 :
2024.09.13 00:56
최근연재일 :
2024.09.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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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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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9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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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9화

DUMMY

“죽겠다······.”


서른이 넘으면 슬슬 몸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던가?

박 대리는 요즘 그 속설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중이었다.


대학생 때만 해도, 아니 고작 1년 전만 해도 새벽에 열리는 해외축구 경기를 챙겨보기 위해 밤을 새도 피로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오후 10시만 넘어도 슬슬 잠이 몰려오면서 수면시간 8시간을 지켜주지 않으면 출근하고 퇴근할 때까지 내내 컨디션이 메롱이었다.


그런 박 대리에게 생명수와 다름없는 것이 바로 커피.

주어진 점심시간은 1시간. 하지만 근처에 있는 식당 중 하나를 적당히 골라 들어가 끼니를 해치우고 나오면 20분 정도 시간이 남는다.

담배도 피우지 않는 박 대리는 굳이 사무실로 일찍 복귀하는 대신 단골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뽑아 돌아가고는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남은 오후 근무가 정말 죽도록 힘들었던 것이다.


카페인도 내성이 있어 너무 자주 마시면 점점 기운을 받기 어려워진다지만, 그런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할 여유까지는 없는 그였다.

그런데······.


“어? 오늘 왜 이렇게 사람이 많지?”


박 대리가 평소 가던 카페에 다가갔다 눈을 휘둥그레 떴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인파가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 줄을 서고 있네.”


당황한 박 대리가 다급히 시간을 확인했다.

12시 45분. 오늘은 평소보다 느긋하게 점심을 먹은 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커피를 받아서 사무실로 돌아가려면 좀 빠듯할 것 같은데.’


무슨 모임이라도 하는 건지, 등산복을 입은 아저씨들이 삼삼오오 모여 카페 안을 점령하고 있었다.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고는 바쁘게 움직이는 알바생들의 다급함이 여기까지 느껴질 정도!


박 대리는 유리창 너머로 카페에 들어갈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 결국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돌렸다.


‘그냥 다른 곳으로 가자.’


어차피 커피 맛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니던가?

사실 박 대리가 이곳의 단골이었던 이유도 특별한 맛이 있었다기보다는 합리적인 가격 덕분이었다.


‘······ 그래도 거기 커피가 입에 착 붙긴 했는데.’


힘없이 터덜터덜 편의점으로 향하던 박 대리의 시선이 어딘가로 향했다.

어디선가 희미하게 나는 커피 향. 저도 모르게 코를 킁킁대며 그 근원지를 좇아 몸이 움직였다.


‘······ 무료 시음회?’


그렇게 박 대리가 편의점을 지나쳐 도달한 곳은 텅 빈 건물.

간판조차 제대로 달리지 않은 상가 앞에서, 급조한 듯한 기색이 역력한 현수막을 내세운 채 누군가 커피를 일회용 잔에 나눠주고 있었다.


“커피 한 잔씩 무료로 나눠드리고 있습니다! 오셔서 하나씩 받아가세요!”

“조만간 이 자리에 카페가 오픈할 예정입니다! 한 번 드셔보시고, 맛이 괜찮으셨다면 꼭 다시 방문해주세요!”


훤칠한 인상의 남녀 한 쌍.

남자가 얼음이 든 일회용 컵에 커피를 붓고, 여자는 직접 거리로 나와 큰 목소리로 호객을 하고 있었다.


‘신기하네. 무료 시음회라니.’


박 대리가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다 정신을 차렸다.

생각해보니 마침 커피가 필요하던 참이었던 그 아닌가.


‘그래도 편의점 커피보단 낫겠지.’


공짜라는 것도 중요하고 말이다.


박 대리가 헛기침을 하며 우연히 지나가는 척 카페 앞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커피 한 잔 드릴까요?”

“······ 네.”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준비되어 있는데 괜찮으실까요?”


박 대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가 환하게 웃으며 손에 명함 한 장을 쥐여주었다.


“이건 저희 카페 명함인데요! 앞에는 주소와 전화번호가 있고, 뒤에는 방문하실 때마다 이용하실 수 있는 스탬프가 있습니다. 스탬프를 열 개 모아주시면 음료 한 잔을 무료로 제공해드리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엄, 네. 감사합니다.”


박 대리가 명함과 커피를 함께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는 이미 단골 카페가 있으니 굳이 이곳을 기억해 방문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래도 공짜로 커피까지 받은 마당에 명함을 가져가는 성의 정도는 보여야 했다.


“······ 앗, 벌써 시간이!”


무료 시음회를 구경한다고 멍을 때렸던 게 문제였을까?

뒤늦게 시간을 다시 확인한 박 대리가 커피는 입에 대보지도 못한 채 허겁지겁 사무실로 복귀했다.

축축해진 등의 찝찝함을 느끼며 간신히 정시에 돌아온 박 대리가 옷을 펄럭이며 자리에 앉았다.


‘······ 고작 그거 뛰었다고 또 피곤하네.’


정말 헬스라도 끊어봐야 하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박 대리가 기계적으로 컵에 빨대를 꽂고 커피를 한 모금 머금었다.


그리고 전율했다.


“!”


입안에 머금은 커피에서 느껴지는 풍부한 향과 맛. 목구멍으로 넘기기 아까울 만큼 매력적이다.

박 대리가 천천히 커피를 음미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만연하던 피로가 싹 가시는 듯한 기분과 함께 묘하게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기분 탓이겠지.’


물론 카페인이 몸에 들어오며 잠시 각성 효과가 생긴 것뿐일 터.

하지만 평소 즐겨 마시던 곳의 커피에서는 느껴본 적 없는 개운함에 박 대리가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머금고는 눈을 감고 미각에 정신을 집중했다.

한 모금, 한 모금이 사라지는 것이 괜히 아까워질 만큼 훌륭한 맛!


‘······ 근데 왜 이렇게 조용하지?’


한참 커피에 집중하던 박 대리가 뒤늦게 이상함을 감지했다.

막 점심시간이 끝난 후에 다들 업무에 집중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린다. 지금처럼 기묘한 정적이 이어질 이유가 없었다.

박 대리가 불길함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그에게 집중되는 사무실의 수많은 눈을 마주했다.


특히 바로 옆자리에 있던 사수의 눈빛이 매서웠다. 정확히는 그가 아니라 들고 있던 커피를 향한 시선이었지만.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와 같은 맹렬한 기세!


“······ 한입 드실래요?”


일은 자고로 맞으면서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던 미친개 사수.

그가 박 대리가 내민 커피를 흘긋 바라보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슬슬 감이 잡히는 것 같아.”


도현이 하품을 삼키며 말했다.


“이제 로스팅은 그만 시험해봐도 될 것 같고, 슬슬 다른 메뉴도 준비할 때가 된 것 같다.”

“그럼 아메리카노는 이제 끝?”

“끝은 아니지.”


그녀가 방에 박스채로 쌓인 일회용 컵과 빨대를 정리하며 고개를 저었다.

당장 1층 상가의 인테리어가 시작된 참이라 뭔가를 보관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대충 청소가 끝난 5층 방에 두 사람의 짐을 포함해 각종 커피머신과 생원두, 볶은 원두 등을 보관하고 있는 상황.

그래도 방이 워낙 넓었던 덕에 생활에 큰 불편은 없었다.


“오늘도 시음회는 계속해야 하니까.”


홍보는 하루이틀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도현은 내친김에 카페가 오픈하기 며칠 전까지는 쭉 시음회를 이어갈 생각이었다.


“어제 왔던 손님들이 또 올까?”

“글쎄······.”


물론 그러면 정말 좋겠지만, 두 사람이 생각하기에 벌써 그만한 반응이 돌아올 때는 아니었다.

이제 고작 2일 차인데 벌써 반향이 오길 기대하는 건 좀······.


“괜히 기대하다 실망하지 말고, 마음 비우는 게 낫지 않을까?”

“그건 그렇지.”


두 사람이 서로 역할을 분담해 커피와 얼음컵을 각각 준비하며 오전을 보냈다.


무료 시음회가 시작하는 건 12시 30분.

직장인들이 식사를 마치고 나와 식후땡으로 커피 한 잔 땡기는 바로 그 절묘한 타이밍을 노리자는 유진의 제안이었다.


원래 1층 상가 안에 버려져 있던 기다란 테이블만 깨끗이 닦아 밖으로 내놓고, 그 위에 커피와 컵을 올려놓은 채 한 잔씩 드리는 방식!

그렇게 두 사람이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 미리 준비를 위해 1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멈칫했다.


“······ 도현아.”

“보고 있어.”

“내가 생각하는 거 맞냐?”


수상하게 골목길에서 서성이는 몇 명.

괜히 전봇대 옆에 기대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미세먼지 탓에 그리 깨끗하지도 않은 하늘을 하염없이 올려다보고, 손으로 입술을 매만지며 제자리를 왔다갔다 하는 사람이며······.


누가 봐도 그 몸짓과 기색이 영 어색했다.

두 사람이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시선을 느꼈는지 회사원으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으음······.”


그가 긴가민가 하는 얼굴로 머뭇거리며 다가오더니, 위험한 거래라도 하는 듯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 혹시 오늘도 커피 나눠주시나요?”

“······.”

“안 하시나요? 팀원들이 오늘은 사무실로 도시락 배달시킬 테니까 저보고 커피나 좀 가져와달라길래······.”


간신히 정신을 차린 유진이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응대했다.


“무료 시음회는 준비를 마치는 대로 바로 시작하려고 하고요. 아쉽지만 형평성 때문에 1인당 한 잔씩만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아······.”


박 대리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무료랍시고 혼자서 커피를 열 잔씩 달라고 떼를 쓰는 진상이 꼭 없으리란 법은 없던 것이다.


“그럼 일단 한 잔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그가 꾸벅 인사를 하고는 소중한 물건처럼 커피를 안고 돌아갔다.


······ 그리고 몇 분 뒤 각양각색의 연령대의 사람들과 함께 돌아왔다.


“1인당 한 잔 맞죠?”

“······.”


유진과 도현이 얼떨떨한 기색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비슷한 일이 아르도니아 왕국령 로잔에서도 반복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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