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ρ( ̄ヘ ̄ メ)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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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
작품등록일 :
2024.09.13 00:56
최근연재일 :
2024.09.19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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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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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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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7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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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6화

DUMMY

도현과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온 유진은 고민 끝에 일단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마음 같아서야 당장에라도 저쪽으로 넘어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자려고 누웠는데 집주인이 방에 들어오는 건 괴담이나 다름없지.’


현실과 이세계. 대한민국과 아르도니아 왕국.

어느 쪽에 있든 시간은 똑같이 흘렀다. 아침이 밝는 대로 준비해 넘어간 후, 실론이 없다면 약속을 잡고 다시 찾아가는 게 맞았다.


‘웬만하면 갔을 때 실론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크로크 같은 난쟁이를 데리고 사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했고, 어차피 일 이야기를 하려면 대화가 통하는 제대로 된 어른이 필요했기 때문.

밀린 월세를 어떻게 처리할지 협상하고, 더해 원두 공급 계약을 정식으로 체결해야 했다.


물론 자신은 있었다.

유진의 전 직장이 영업회사기도 했고, 어쨌거나 이쪽은 받아갈 채무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약점을 너무 공격하면 안 되겠지.’


건물주가 갑으로 있을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세입자가 건물에 남아있을 때까지다.

그냥 나가버리겠다고 하면 그걸로 끝인 것이다. 하물며 지금 유진처럼 특수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지금 있는 사람들이 계약을 마치고 나가버리면 난 세입자를 새로 들여올 수가 없어.’


유진이 넘어갈 수 있는 건 정확히 방에 한정된다. 그 밖으로 나가는 건 불가능.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고 싶어도 어떻게 접근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웬만해서는 서로 좋은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어, 지금 세입자들이 오래오래 남아주는 쪽으로 유도해야 했다.


‘그래야 월세를 두 배로 받지.’


거기다 이번 일은 유진에게도 무척 중요했다.


‘지금 이 건물은 너무 폐건물 같아.’


상가는 텅텅 비고, 행인들의 눈길이 닿는 1층은 특히 유리창 너머로 먼지 쌓인 인테리어가 그대로 눈에 들어온다.

무슨 말이냐. 여긴 망했구나, 하고 상가에 입점하려다가도 돌아갈 비주얼이란 소리다.

첫 물꼬를 잘 터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상황.


그러니 도현의 카페가 더 잘 되어야만 했다.


‘안 그래도 고민이었는데, 마침 개인 카페를 차리려고 한다니까······ 잘 꼬드겨봐야지.’


저쪽에서 가져온 원두에 푹 빠져있는 상황. 그걸 미끼로 잘 이야기하면 설득은 어렵지 않을 거다.

유진은 밤새 건물 상가가 가득 차 사람들이 쉴새없이 드나들고, 통장에 월세도 차곡차곡 쌓여 드디어 염원하던 백수의 꿈을 이룬 자신을 상상하다 잠에 들었다.




*




“크로크 씨, 계세요?”


유진이 날이 밝자마자 건물로 와 열쇠를 왼쪽으로 돌리고 이세계로 넘어왔다.

유진의 부름에 크로크가 방에서 미적거리며 걸어나왔다.


“또 왔나?”

“혼자예요?”

“그럼 혼자지. 왜 묻나?”


퉁명스레 대답하는 크로크. 아무래도 어제 은화와 금화를 거절했던 앙금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하긴, 크로크 딴에는 나름 신경을 써서 챙겨준 걸 수도 있지.


‘······ 아니지. 남의 돈을 가지고 생색내는 건 그냥 양심 없는 도둑놈인데?’


유진이 빠르게 잘못된 한때의 생각을 철회하고 크로크에게 말을 걸었다.

어차피 본론은 따로 있었다.


“혹시 실론 씨는 언제쯤 들어오시나요? 약속을 잡고 싶어서요.”

“실론? 흠······.”


크로크가 벽에 걸린 시계를 보더니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그 동작을 보고서야 벽에 걸려있던 게 시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만큼 유진이 아는 시계의 모양과는 괴리가 컸다.

그가 왼손가락 다섯 개를 전부 접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모르겠군.”

“······ 왜죠?”

“손가락이 부족해.”


유진이 크로크에게 다가가 친절히 그의 오른손을 붙잡고 왼손 바로 옆에 붙여주었다.

크로크가 무표정하게 유진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침 그러려고 했네.”

“아, 그렇군요?”

“자네가 아는 걸 내가 모르겠나?”


유진이 대충 고개를 끄덕여줬다.


‘몰랐던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크로크보다는 유진이 훨씬 아는 게 많은 것 같았지만······ 당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크로크가 숫자를 마저 세고는 답했다.


“별일이 없다면 여덟 시간 뒤. 있다면 나도 모르네.”

“지금이 몇 시죠?”

“자네는 시계 볼 줄도 모르는 건가?”

“······.”

“뭐, 모르는 것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지. 중요한 건 배우려는 자세가 아니겠나.”


크로크가 제멋대로 결론을 내리고는 친절히 대답했다.


“오전 9시네. 실론은 오후 7시에 돌아오겠지.”

“오후 5시 아닌가요?”

“늦는다면 그때쯤 올 거라고 덧붙이려던 참이었네.”

“······.”


일단 시간은 지구나 이쪽이나 별 시차가 없는 모양.


“예, 그럼 그때 다시 오겠습니다. 제가 뵙고 싶어한다고 말 좀 전해주세요. 그리고······.”


유진은 굳이 크로크와 말다툼을 벌이는 대신 주섬주섬 짐을 꺼냈다.

약속을 잡았으니 시간에 맞춰 다시 돌아와도 되겠지만, 이 건방진 난쟁이 씨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겸사겸사 선물 겸 뇌물로도 쓰고.


- 근데 원두를 어디서 이렇게 많이 받았어? 너 홈커피 시작했니?

- 아니?

- 그럼 좀 챙겨줄까? 초보자는 드립 커피부터 시작하는 게 좋은데. 이거 집에 가져가서 연습해봐.

- 아니, 사람 말을 좀 들어······.


도현이 따로 챙겨준 드립 커피 입문 세트.

그렇게 말해봐야 그리 대단한 것까지는 딱히 없었지만, 유진은 이걸 받자마자 그보다 더 잘, 그리고 자주 써먹을 법한 난쟁이가 하나 떠올랐다.


“크로크 씨, 저번엔 제가 커피를 대접받았으니까 이번엔 제가 한잔 대접해드리고 싶은데요.”

“자네가? 굳이?”

“저희 세계에는 그런 문화가 있어서요. 다른 나라의 문화는 존중해줘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크로크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의 말이 이치에 어긋남이 없었다.


그리고 대접해드린다, 라는 표현이 그의 마음에 쏙 들었다.

크로크가 흐뭇하게 웃으며 주방에서 잔을 하나 꺼내 가져왔다. 기대는 되지 않았지만, 성의를 봐 맛을 봐주는 정도야 가능했다.


“그렇다면야.”

“자, 잘 보시죠. 저희 나라에서는 커피를 이렇게 내리는데······.”




*




유진이 돌아간 후.


원래 제가 알던 세상이 부정당한 크로크는 멍한 얼굴로 커피가 담긴 잔을 만지작거리며 전용 의자에 앉아 잔을 바라보았다.


검으면서도 붉고, 갈색빛을 띠면서도 때로는 황금빛이 엿보인다.

잔 바닥에는 원래 응당 가라앉아 있어야 할 커피 가루가 보이지 않고, 이미 좋았던 향은 보다 세련되게 정제돼 한층 깊어졌다.

따뜻한 커피의 온기가 잔을 타고 넘어와 손바닥을 어루만졌다. 그 작은 기운이 괜히 크로크를 위로하는 것만 같아 더 감성이 충만해졌다.


‘커피를······ 이게 진짜 커피였다니······.’


크로크는 제 커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잠을 잘 자지 않는 초승달 난쟁이 부족. 하루를 길고 알차게 보내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하지만 크로크는 유독 어릴 때부터 잠이 많았다. 이상하게 또래 아이들에 비해 하루를 말똥히 버티기 어려워했다.

발명을 시작한 것도 그때문이었다. 일단 뭐라도 손에 잡고 있으면 졸음을 몰아낼 수 있었으니까.


그런 크로크에게 힘이 되어줬던 것이 바로 커피.


언제부턴가 대륙에 유행하기 시작한 음료. 특이하게도 커피를 마시면 잠이 달아나고 머리가 개운해지는 효능이 있었다.

우연히 커피를 접한 이후 크로크는 커피 중독자가 되었다.

종일 커피를 입에 달고 살았고, 그 덕분에 하루를 길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셀 수 없이 많은 커피를 내리고, 또 내렸다.

왕국 최고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나름대로 손에 꼽히는 맛의 커피를 내릴 수 있게 되었다고 자부하게 된 것이다.


······ 그랬던 크로크의 자부심이, 오늘 무참히 부서졌다.


- 이건 남겨두고 갈게요.


크로크가 유진이 남기고 간 도구를 빤히 바라보았다.

도대체 왜 이런 방법을 지금껏 생각하지 못했을까 의문일 만큼 쉽고 간단했다. 하지만 고작 그 차이 하나만으로 맛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가 지금까지 마셨던 건 커피가 아니라, 그저 향을 입힌 물이었던 것이다.


“······ 아마, 이렇게.”


크로크가 기억을 더듬으며 조심스럽게 새 원두를 꺼냈다.

유진이 했던 그대로를 따라 커피를 새로 내렸다.

비슷하면서도 조금 더 달콤해진 커피 향이 덥수룩한 수염을 뚫고 크로크의 코를 간지럽혔다.

크로크는 조심스럽게 수염을 정리한 후, 잔을 들어 입에 가져다 댔다.

정말 나지는 않았지만,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은 감동적인 맛! 크로크는 그의 세상이 한층 넓어지는 듯한 기분을 만끽하며 커피를 음미했다.


“크로크?”


그러던 순간, 실론이 벌컥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예정보다 이른 퇴근이었다.


“······ 실론?”

“오늘 장사가 잘 안 돼서······ 음? 좋은 향이 나네요.”


실론이 머리에 달린 나뭇가지를 살랑거리며 홀린 듯 주방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크로크가 들고 있는 커피잔을 빤히 들여다보더니, 차이점을 눈치챘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평소랑 좀 다른 것 같은데요?”

“어? 어······.”

“아하.”


실론이 싱그럽게 웃으며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짐작 가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새로운 발명품이죠? 이번엔 커피를 진하게 내리는 기계라도 만들었나 보네요. 저도 한 잔 줄 수 있을까요?”

“······ 뭐?”


실론의 작은 오해, 그리고 당황해 바로 반박하지 못한 크로크의 머뭇거림.

쓰레기 발명가 크로크가 진짜 발명가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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